〈 201화 〉 멜라니는 웃고 있다
* * *
"이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털썩.
안뚱땡은 쏟아지는 기사를 모조리 스크랩해 천천히 읽으며 좌절하고 있었다.
[성검을 뽑은 백태양! 용사 되다!]
[백화점 구출, 빅토리 아카데미 학생 대표, 용사 등등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업적을 이뤄낼 것인가? 아직 그의 나이 스물!]
[상남자 특) 백태양 관련 기사 씀]
[그동안 용사 칭호를 받았던 김민수, 조사 결과 루베니아에 구금 중인 걸로 밝혀져…]
《특종! 백태양의 공항 패션 비밀은 ?! 자세하게 알아보자!》
[모로스 차일드의 굴욕! 보금자리에게 빼앗긴 한국의 위상!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누리꾼들 "응 아냐 돌아가" 단호박 대처]
그 어느 것 하나 민수에게 호의적인 기사가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그 예상치보다 훨씬 더 처참한결과가 나오자 정신이 버티지 못 했다.
"50%가 넘어가면 안 됐는데... 반드시 뽑아야 했는데..."
이미 확정된 결과를 바꿀 수 없음에도 안뚱땡은 수도 없이 중얼거렸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일이 생겨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수정을 했을 텐데.
더 이상 그럴 힘도 없었으며, 힘이 있다고 해도 이젠 민수가 주인공도 아니었다.
"비겁한 새끼... 원래라면 민수가 독차지 해야 할...모든 것들이..."
기민스도 사실은 김민수를 위한 장치였다.
멜라니와 거리를 확 가깝게 만들기 위해서 힘을 되찾자마자 바로 움직이도록 설계한 전개.
이름도 비슷하니 그만큼 '같지만 난 달라!'라는 느낌도 줄 수 있었다.
게다가 안뚱땡이 생각하기에 민수는 찐따미가 그저 무늬에 불과했지만 기민스는 진짜였다.
"으아아아아아! 왜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거야!"
역하디 역한 진상 찐따 그 자체 기민스.
놈을 시원하게 박살 내면서 이미지도 상승하고, 여자도 얻고 그래야만 했는데.
이 모든 게 민수가 성검을 뽑지 못 해서 벌어진 일이라니.
나비 효과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제, 이제 뭘 해야 되지?"
김민수가 100%일 때도 백태양을 제대로 압박하지 못했었다.
근데 이젠 정확히 반반으로 나눠져서 주인공 경쟁을 할 수 있게 된 백태양이다.
그런 놈을 어떻게 잡아먹어야 한단 말인가.
"아니지... 아니야, 이러면 내가 민수를 못 믿는 것 같잖아?"
내가 진정한 주인공인 김민수를 믿지 않으면 누가 믿는단 말인가!
안뚱땡은 축 처진 아랫배를 벅벅 긁으며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원작자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긴 했지만 일단은 이게 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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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으아아아아아! 이게! 이게 무슨 개망신이고 개짓거리야! 장난 하는 거야!"
안뚱땡과 마찬가지로 패닉에 빠진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기민스 모로스.
그는 입국 심사장에서 백태양한테 죽기 직전까지 얻어터진 후 치료받고 있었다.
쨍그랑!
분노에 이기지 못한 손짓이 꽃병을 던져 경호원 팀장 얼굴에 제대로 적중시킨다.
"이 쓰레기들아! 니넨 내 경호원 아냐? 근데 뭐 하고 있었길래 처음에 나 한번 말리고 그 이후에 아무 개입도 안 하는 거야!"
고용주가 맞고 있는 걸 그냥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경호원이 세상에 어디 있어! 내가 이러려고 돈 주는 줄 알아!
사실 틀린 말 하나 없었다.
물론 말하는 방식이라거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잘못 되긴 했으나, 기민스의 말은 구구절절 다 맞았다.
기민스의 경호원은 몬스터를 상대하는 각성자들 중에서 엄선한 게 아닌 범죄자 헌터팀에서 구한 자들.
누구보다 대인전에 능통하고 인간을 제압하는 데 이골이 난 사람들이었다.
'할 말이 없군.'
경호원 팀장 박태원은 지은 죄가 있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기민스의 폭언을 견뎠다.
실제로 경호원이 막은 건 기민스가 백태양을 치려는 행동 뿐.
그 이후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말해 줘도 핑계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아니 사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게 옳은 표현이었다.
'백태양이 졸업하면 1급이 될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박태원도 백태양을 실제로 접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들리는 말로는 뭐 이민준이 지지하고 유민혁이 인정했다고는 하지만.
그래 봤자 새로운 혜성을 반짝이게 만들어 주기 위한 국뽕 작전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게 웬걸.
"대체! 어! 왜 입만 꾹 다물고 있는 거야! 내가 죄송하다는 말만 하는 걸 싫어해서 그러는 거야? 그래! 그렇겠지! 그래도 무슨 말이라도 해 보라고! 왜 그랬냐고! 어! 왜!!!"
저희는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박태원은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말을 꾹 삼키며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이럴 때는 그저 가만히 있는 게 기민스를 진정 시키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경호도 결국 목숨이 붙어 있어야 하는 거잖아.'
박태원은 똑똑히 목격했다.
압도적인 폭력 앞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말릴 수 있을까? 라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왜 1학년이 학생 대표를 맡은 지 알 것 같군.'
빅토리 아카데미가 학생회장으로는 4학년 김지혁을 세워두고, 대표는 백태양으로 정한 이유가 있었다.
내부적으로 통솔해야 하는 건 김지혁의 쾌활한 성격이 적합 했고, 외부적인 일을 처리할 땐 백태양이 그냥 정답이었다.
방해 요소를 확실하게 처리하는 잔혹함과 승리의 증거를 반드시 남기는 치밀함.
"후욱...후욱... 백...백태양이라고 했나? 그놈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아봐! 일단 최대한 알아봐! 약점! 특히 약점 같은걸 알아보란 말이야!"
한 번 찍어 누른 상대에게 공포를 각인하는 압도감까지.
빅토리 아카데미가 왜 1%라고 불리는 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백태양이 1학년으로 있는 아카데미.
그곳이 빅토리였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알아보겠습니다!"
박태원의 눈동자엔 아직도 백태양이 기민스를 패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사탕을 쥐고 해맑게 웃는 것 같은 미소.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순수한 폭력을 선사한 백태양.
놈은 용사가 아니었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고 알아봐야겠군.'
괴물.
백태양은 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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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멍청이! 해삼! 말미잘! 똥개!"
"미안 하다니까."
"하나도 안 미안 하잖아요!"
기민스를 시원하게 패고 난 다음 집으로 도착했을 때.
예상 했던 대로 멜라니가 문 앞에서 삐딱한 표정으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보는 눈이 많으니 어서 집으로 들어가자고 입을 열었고.
들어가자마자 바로 말을 쏟아 냈다.
"제가 뭐라고 했어요? 말해 봐요!"
"최대한 피하라고 했지."
"들었는데 그러는 거예요? 미쳤어요?! 기민스는 또라이라니까요! 진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구요!"
"그래서 내가 공항에서 오줌도 좀 지리게 해놨어."
"이이익!!!"
"아아! 아! 옆구리 꼬집지마!"
꼬박꼬박 내뱉는 말대답에 결국 멜라니는 폭발했다.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제가 알아서 먼저 해결할 수도 있던 거잖아요! 아니 그리고! 기민스가 그냥 개인 보복 말고 경제 보복 같은 거 하면 어쩌려구요!"
"최영남 회장님 있잖아."
"진짜! 진짜 바보! 멍청이! 사람 마음도 모르고!"
"으악! 진짜 아퍼!"
또 꼬집혔다.
'근데 맞잖아.'
모로스 차일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원 연구 사업 선도자인 건 맞지만.
한국에선 이상하게 성공하지 못한 케이스였다.
외국에서 흥하고 한국에서 망하는 원인 모를 운명을 겪은 기업 중 하나인 것.
'모로스 차일드랑 보금자리랑 하는 사업이 거의 비슷하거든.'
보금자리가 문어발 기업이긴 했지만 근본은 절대 바뀌지 않았었다.
기업 이름 '보금자리'에 걸맞게 한국에 아주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쳤는데.
더 자세하게 떠올리면 국뽕에 취할 것 같아서 잡생각을 털어냈다.
"좀! 침착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었어요!"
"나 되게 침착하게 했어, CCTV 영상 지금쯤 풀려서 알겠지만 선빵도 걔가 먼저 쳤고."
"과잉 대응이었잖아요!"
"에이, 각성자끼리 치고 박는데 과잉 대응이 어디 있어. 무조건 정당 방위지."
각성자과 비 각성자 차이 중 하나가 바로 정당 방위의 범위였다.
각성자들끼리의 전투는 죽음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에, 죽이지만 않는다면 대부분 이해해줬다.
실제로 그런 걸 걱정하다가 등을 돌려서 기습을 당해 죽은 사례도 많고 말이다.
"꼬박꼬박 말대꾸! 제가 당신을 얼마나 걱정 했는 지 알아요? 심지어 기사 쓴 것도 윤산동이었단 말이예요!"
"윤산동? 그게 누구야."
"당신 이사로 악플 달렸을 때 기사 쓴 장본인이요!"
"그 이후로 나락 간 거 아니었어?"
"백태양 코인이라면서 엄청 막 그러다가 이제 다시 복귀 했데요. 아무튼! 제가 지금, 이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근데 이러고 있으니까 마누라한테 바가지 긁히는 것 같네.
신혼부부 같은 풋풋함도 조금 섞여 있는 것 같아서 입가에 웃음이 새어 나왔고.
"왜 웃어요! 왜!"
"진짜! 진짜 아파 이거!"
"아프라고 꼬집는 거예요! 못났어 진짜!"
멜라니는 그걸 용납하지 않고 바로 옆구리를 꼬집었다.
슬슬 당해주는 건 이쯤에서 하고 반격이 들어갈 차례였다.
"근데 나 그렇게 많이 걱정 했어? 잘못될까 봐?"
"네?"
끔벅끔벅.
정공법으로 바로 밀어붙이니 사고가 정지한 멜라니.
사슴 같은 눈동자만 뻐끔거리는 게 귀여웠다.
"응? 아까 말했잖아. 얼마나 걱정 했는 지 아냐며, 궁금해서."
나 얼마나 걱정 했는지.
그 말을 하며 멜라니와 몸을 천천히 겹쳤다.
옆구리를 꼬집힐 만큼 이미 거리가 가까웠기에, 그녀를 안는 건 매우 쉬운 일이었다.
"뭐...뭐... 그...그냥 조금 했어요 조금!"
"아까는 많이 했다며."
"몰라요! 저, 저희 기업에 피해가 갈까 봐 걱정한 거지 절대 당신 때문 아니거든요?"
"나 성녀랑 루베니아에서 아무 일도 없었어."
"진짜요? 믿어도...가 아니라 그걸 왜 저한테 말해요?"
성녀에 대한 말하자마자 표정이 반짝이다가 금방 얼굴을 바꾸는 멜라니.
사실 약혼자는 핑계였고 목적은 처음부터 이거였을 테지.
용사와 성녀 사이에 어떤 끈적한 게 있었는지 없었는지가 가장 궁금했을 거다.
"궁금해할까 봐."
"안 궁금하거든요!"
"그럼 말 안 해도 되지?"
"...당연히 말해줘야죠."
"왜?"
멜라니는 뭐라고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당연히 저, 저희 기업 모델이니까요."
"날 좋아해서가 아니라?"
"...사람은 진지한데 능글 맞기나 하고! 진짜 싫..."
이때 바로 기습 입맞춤.
걱정돼서 집까지 찾아왔다는 여자를 그냥 돌려보내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멜라니는 입술이 닿자마자 천천히 눈을 감았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자궁 교배 압박 프레스! 나으리 드디어, 이 롤빵 머리 계집도 따먹으려고 하시는 거군요! 아예 그냥 기민스인지 뭔지 그 새끼 앞에서 결혼식 웨딩 드레스 보지 케이크 교미를 하시는 건 어떠신가요!]
춘향이의 말은 바로 무시했다.
귀 기울여 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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