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198화 (198/325)

〈 198화 〉 거짓말이었어요.

* * *

리리엘 루베니아.

여기서 난 성이 루베니아라는 부분에 주목했다.

신의 이름과 똑같은 성.

어쩌면 이게 이름을 듣지 못 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듯 보였다.

'뭐...신성한 보호 그런 것도 있을 테고.'

근데 성검 하나 얻었다고 뭐 이렇게 얻는 게 많아.

비하할 생각은 없었지만 고작 검 하나 뽑았다고 얻는 이득이 말도 안 됐다.

간단한 임무 수행 후 엄청난 보상을 한 명한테 몰아주는 방식.

마치 주인공을 위해 마련된 달콤한 간식들.

딱 봐도 김민수가 먹어야 할 것들이었다.

'성검을 얻어서 신성력을 사용하고, 성녀의 목숨을 쥘 수 있으며, 본명도 들어서 더욱더 가까워지고, 용사라는 인정까지.'

생각나는데로만 바로바로 나열해도 네 개.

근데 이 네 개 중에 그 어느 것 하나 가볍게 취급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가 뽑았으니 됐지 뭐.'

결과가 결정된 이상 계속 다른 결과를 상상하는 것도 미련한 짓이었다.

김민수가 먹었더라면? 사실 가져도 상관없었을지도 모른다.

놈이 성검을 뽑는 순간 나도 똑같은 시도를 했을 테고, 난 실패하지 않았을 테니까.

확정된 상황을 바꿀 수 있느냐 없는냐,이게 나와 김민수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용사님? 아니, 태양 씨?"

성녀, 아니 리리엘은 내가 이름을 듣고 말을 멈추자 걱정되는지 말을 걸어왔다.

"혹시 아직도 이름이 들리시지 않나요?"

"아, 아닙니다. 이름 들렸습니다. 리리엘 루베니아, 좋은 이름이네요."

"감사합니다. 루베니아님께서 지어 주셨는데 센스가 참 좋으시더라구요."

리리엘이 말하는 루베니아와 페르쿠스가 말하는 루베니아는 느낌이 아주 달랐다.

페르쿠스가 말할 땐 되게 위엄있는 신 같았는데.

리리엘이 언급하는 루베니아는 뭐랄까, 푸근한 아버지 느낌이었다.

'페르쿠스도 그렇고, 루베니아도 그렇고 완전 성녀를 딸처럼 여기고 있구나.'

그래서 가장 안전한 아카벨름 꼭대기에 성녀를 살게 하고, 여러 방비를 한 거겠지.

새삼 용사 직위가 박탈 당하자마자, 페르쿠스가 왜 김민수를 칼 같이 내쳤는지 이해가 됐다.

애지중지하게 키운 딸이 이상한 놈 손안에 들어갈 뻔했는데.

화가 안 나는 게 비정상이었다.

"근데 왜 저는 성검이 제대로 안 뽑히는 걸까요."

난 생각을 정리하고 바로 궁금한 걸 물었다.

분위기만 봐도 내가 용사가 된 이 상황에서 왜 아직 성검은 돌에 박혀 있단 말인가.

말이 검집처럼 박혀 있는 거지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초박형 콘돔이나 다름없었다.

이게 왜 안 되나 싶어서 성검을 이리저리 문질거리던 중 리리엘이 입을 열었다.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근데 그... 음... 너무... 세게 문지르시면 어..."

"예?"

잘 모르겠다는 말 이후에 우물쭈물 거리는 입술과 비벼지는 허벅지.

아까완 다르게 고개도 푹 숙이고 있는 게, 무슨 상황인지 짐작이 안 갔다.

"그게 그... 성검이 저랑 연결이 되어 있잖아요? 사실 연결된 게 하나 더 있는데... 신성력적인 부분이랑... 근데 이게 아무래도 정신력이 약해지면 어..."

육체에도 영향을 줘요.

말을 하며 얼굴이 점점 발갛게 변하는 리리엘.

난 그런 행동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아니 뭐 이런.'

신성력만 연결되어 있다고 했지 이런 설정이 있다는 건 처음 들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됐다.

만약에 김민수가 성검을 뽑았을 경우.

그 찐따 같은 놈이 성녀를 어떻게 꼬실수 있단 말인가.

'김민수를 위한 어떠한 장치 같은 거겠지.'

히로인들이 대부분 처녀이면서 동시에 치녀인 건 다 이유가 있는 법.

마찬가지로 성녀도 그와 비슷한 시스템이 적용 된 거라고 볼 수 있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아니 너무, 너무 일방적으로 다 퍼주는 거 아닌가요?"

고작 이 검이 뭐라고.

어이가 없기도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성녀라는 이유로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용사한테 모든 걸 내줘야 한다니.

내 분노에 리리엘은 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아무나 고르지 않아요. 그리고 솔직히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끝도 없죠, 아무한테도 검을 맡길 수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용사가 필요한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구요.

리리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말이 안 됩니다."

"마음은 주지 않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아시잖아요."

뭐지?

마치 내 연애사를 꿰뚫고 있는 듯한 말.

난 거기에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리고 태양 씨."

"네?"

"말씀하시다가 그... 너무 세게 쥔 것 같아서요..."

"아..."

화를 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나보다.

그녀는 그 말을 내뱉으며 황급히 침대에 다시 걸터앉았다.

아무래도 힘을 많이 쓰는 만큼 성감대가 자극이 되는 모양이다.

'난 이런 거 필요 없는데.'

김민수야 절대로 꼬실수 없으니 필요한 거지.

난 상관없는 기능이었다.

심지어 성검도 제대로 뽑은 게 아니어서 신성력도 쓰지 못 하는 마당에 이런 기능만 존재하다니.

무슨 최면 어플을 가지고 있는 기분이어서 굉장히 찝찝했다.

"그래도 일시적인 거니까요! 제가 힘만 짠하고 회복 되면 이런 일이 없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이 정도로 힘을 잃은 게 처음이어서 저도 놀라고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다 좋잖아요?

리리엘은 그 말을 하며 빵실빵실 해맑게 웃었다.

좋은 게 좋은걸 아니냐는 말.

여기서 뭐라고 말을 더 해봤자 의미 없는 말만 오갈 뿐이어서 난 바로 긍정했다.

"당장 드릴 말씀은 여기까지! 많이 피곤하셨을 텐데 제가 괜히 오래 잡아둔 게 아닌지 죄송해요."

"아닙니다. 당연히 만나야죠, 덕분에 저도 많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럼 내일 봬요! 용사님."

그녀는 푹 쉬라는 말을 끝으로 친히 문 앞까지 걸어가서 마중을 해줬다.

'여기서 임팩트.'

성검에 대한 숨겨진 비밀도 알았고, 이제 용사가 확정난 상황.

본격적으로 성녀와 가까워질 준비가 모두 끝났다는 말이었다.

"성녀님 혹시 저는 절대로... 성검을 이상하게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책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 주세요."

박력 넘치는 마지막 대사.

성녀는 그 말을 듣자마자 푸스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됐다, 나가자.'

집으로 가서 보상도 정리해야 하고 시야 한쪽에서 계속 반짝거리는 알림창도 열어봐야 할 터.

'잠깐만.'

그렇게 성녀의 방에서 나가기 전에 난 마지막으로 스킬을 발동했다.

[깊은 눈 발동! 성녀를 지그시 바라봅니다!]

이름을 들을 수 있다는 건 정보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

'된다.'

거절 당했다는 메시지는 뜨지 않았다.

리리엘의 정보를 읽으며 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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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갔나?"

백태양이 방을 나가자마자 리리엘은 침대로 달려가 풀썩 쓰러졌다.

방구석에 콕 박혀 있는 성격이었기에 낯선 사람을 만나면 바로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꼭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미쳤어 진짜 왜 그런 거짓말까지 하면서!'

리리엘 루베니아.

이름조차 제대로 들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묵묵히 성녀 생활을 해 온 지 23년.

만나는 남자라곤 페르쿠스와 바엘슨 정도였던 삶.

그 삶이 끝나자마자 바로 여자로서의 본능이 깨어났다.

'여자 친구도 많은 사람한테 왜 그렇게 마음이 떨려서...'

성검을 쓰면 육체가 뭐 어쩌구 한다는 말?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그런 성인지에서나 나올 법한 설정을 루베니아가 넣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몸을 비비적 거린 건 진짜였다.

"으아아아앙!"

폭 폭 폭 폭

애꿎은 베개만 주먹으로 툭 툭 때리며 리리엘은 이불 위에서 발장구를 쳤다.

'맨얼굴로 남자 보는 건 처음이었단 말이야.'

페르쿠스는 남자로 취급하지 않았다.

'좀...좀 많이 멋지긴 한데...'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바로 눈이었다.

단숨에 사람을 삼켜서 품에서 못 벗어나게 할 것만 같은 양아치 같은 눈.

'그거 말고도 많았지.'

팔에 대놓고 드러난 근육과 손등에 있는 핏줄.

게다가 커플 염색 같아 보이는 서로 똑같은 백발까지.

둘 다 염색한 게 아니라 원래의 머리색이 그렇다는 점에서 더 좋았다.

'아니 좋긴 뭐가 좋아? 정신 차려!'

이건 해방감 때문이야.

이름도 누군가 들어 주고, 얼굴도 막! 막!

"바,바람둥이가 무슨 그렇게 책임 진다고 할 때 진지한 얼굴로 하냐고..."

리리엘은 이미 김민수의 질문글을 통해 백태양의 연애사를 알고 있었다.

때문에 얼마나 백태양이 여자가 많은 지 파악이 됐었다.

"책임을 막... 무슨 진다 그러고..."

그녀는 백태양과 조금 전까지 함께 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너무 호들갑을 떨지 않았나 걱정했다.

백태양이 용사라는 걸 듣자마자 좋아서 폴짝폴짝 뛰고 싶은 것도 참았는데.

그걸 진정 시키느라 그가 방에 들어오기 전까지 얼마나 심호흡을 많이 했는지.

'다른 사람은 상상도 못 할 횟수였지.'

리리엘은 감정을 천천히 진정시키며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손을 밑으로 내렸다.

찌걱.

이미 다 준비가 끝난 듯 촉촉하게 젖어 있는 허벅지 사이와 손가락.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겉에 대기만 했는데도 이 정도라니.

'설마!'

리리엘은 두 눈을 부릅 뜨고 백태양과 대화하며 앉았던 자리에 시선을 돌렸다.

"꺅! 미쳤나 봐 진짜!"

역시 예상대로 앉았던 곳의 침대 시트가.

조금 젖어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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