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193화 (193/325)

〈 193화 〉 성검 뽑기

* * *

"여긴 어디야."

성녀가 내뿜은 빛에 정신을 잃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처음 안뚱땡과 만났던 공간처럼 모든 게 새하얀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고전명작[춘향전]에서도 잠깐 이런 곳에 있던 적이 있었는데.

'어디로 이동 했다고만 하면 이런 곳이네.'

횟수로만 따지면 벌써 세 번째였다.

이 정도면 하얀 공간 단골이라고도 볼 수 있는 상황.

분명히 이러고 있으면 알아서 메시지가 뜨거나 다른 사람이ㅡ.

"당황했다면 미안 해, 시간이 별로 없어서 말이야."

나오게 되어 있었다.

난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브젝트 헤드?'

건장한 체격의 정장 차림과 머리 대신 자리 잡은 책.

머리에 위치한 책은 계속해서 페이지가 넘어가며 사륵 사륵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난 그 모습을 보며 당황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될 거라고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기 때문이다.

'이걸 노리고 온 거기도하고.'

주인공 지분율이 45%나 되는데, 슬슬 이런 존재들을 만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당황하지 않네, 예상이라도 했다는 것처럼 말이야."

난 루베니아야.

루베니아는 그 말을 끝으로 허공에 앉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마치 원래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의자와 탁자 그리고 그 위에 티 세트가 순식간에 나타났다.

"일단 앉아."

"네."

아카벨름에 들어오자마자 날 부른 만큼 용건이 있을 터.

그걸 다 듣고 나서 내가 질문해도 늦지 않겠지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없다고 말하긴 했지만 원래 높은 사람들이 다 그렇듯, 형식적인 말일 뿐일 테니까.

"해주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은데 음... 뭐부터 듣고 싶어?"

"예?"

경박한 말투를 듣자마자 짐작은 하긴 했다.

괜히 뭔가 말해 줄 거로 생각해서 기다리고 있다가 시간 손해만 봤다.

시간 없다고 말까지 했으면 그런 말부터 먼저 하라고 제발.

"그럼... 저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네가 원래 있어야 할 곳이 여기가 아니었다는 건 알아."

가장 궁금했던 걸 입 밖으로 내뱉자마자 바로 답변이 날아왔다.

'알고 있다고?'

당황스러웠다.

처음 질문은 중요하면서도 떠보기용이었다.

걸리면 좋고 아니면 마는 거여서 반쯤은 포기한 상태였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전 왜 백태양에 빙의가 된 거죠?"

안뚱땡도 당황할 정도로 놀란 등장인물인 '백태양'

설명만 읽어도 절대로 등장할 리 없는 인물에 빙의된 이유.

그걸 알고 싶었다.

"그건 내가 결정한 게 아니야, 음... 굳이 따지자면 모두가 원했기에 나타난 결과라고 해야 하나."

애매모호한 말.

추가 설명을 듣기보단 난 바로바로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걸 선택했다.

숨겨진 의미는 천천히 곱씹어가면서 분석하면 될 일이었다.

"안뚱땡은 신이 아닙니까?"

"안뚱땡?"

루베니아는 생전 처음 듣는 단어에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가 이내 내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한 듯 배꼽을 잡고 한참을 웃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다면서 계속 딴짓을 하길래 난 참지 못하고 말을 걸었고.

"저기..."

"아하하하! 미안 미안, 넌 를 그렇게 부르는 구나."

"네?"

"아 이거 안 들려?"

그는 대체 어디까지 막아둔 거야, 라는 소리를 내뱉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안뚱땡? 그놈이 생긴 건 그래도 보기보다 되게 철저하거든. 음, 아. 질문이 뭐였지?"

"안뚱땡이 신이 아닙니까 라고 말했었습니다."

"네가 짐작한 대로 아니야."

역시 그랬나.

가장 근본적인 두 가지가 해결 되자 머리가 시원해지는 기분이다.

이제부터 그럼 자잘한 것들을 물어볼 차례였다.

"당신이 그럼 신입니까?"

"내가 루베니아니까 그렇긴 하지, 하지만 전지전능하지 않아."

이것도 아카벨름 안이어서 겨우 부를 수 있던거라서.

그게 아니었다면 널 이렇게 보지도 못 했을 거야.

루베니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전지전능 했다면 이렇게 빙 돌아서 만나지 않았을 거야.'

굳이 성녀를 매개로 삼지 않아도 꿈에서라도 만날 수 있었을 터.

하지만 루베니아는 아카벨름에서 성녀를 통해 날 이곳에 불러냈다.

아주 번거로운 방식을 선택했다는 건 그만큼 활동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것.

안뚱땡이 김민수 기숙사 앞에서 대기한 것과 큰 차이가 있었다.

"퀘스트는 그럼 당신이 준 겁니까?"

퀘스트.

메인 퀘스트부터 시작해서 긴급 퀘스트 등등.

속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계속 꼬리표처럼 달라붙었던 그것.

어쩔 땐 트롤링을 하는 것 같다가도 결국은 이정표가 되는 시스템.

'전지전능하진 않아도 그 정돈 해 줄 수 있을 수도 있잖아.'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문제였다.

하지만.

"퀘스트? 아 그건 일종의 튜토리얼 같은 거야."

이번에도 그의 대답은 내 예상을 빗겨 갔다.

"튜토리얼이요?"

"그래,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는 세계에 들어오면 뭐부터 해야 할 지 감이 안 오잖아? 그래서 그런 걸 배려하는 차원에서 아마 가 미리 안배해 놓은 걸 거야."

"누구요?"

"아 미안, 이것도 당연히 안 들리겠구나."

안 들리는 게 되게 많네? 하는 말과 함께 날 탓하는 듯한 음성.

하지만 그게 진심이 아니란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얼굴이 안 보이는데 표정이 읽히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

루베니아는 잠시 고민하는 제스처를 취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 웃고 떠드느라 시간을 많이 썼네, 더 이상 질문은 못 받아줄 것 같아. 이제부턴 내가 쭉 말할게."

그는 그런 말을 내뱉으며 탁자 위에 놓여 홍차를 단번에 마셨다.

어디가 입인지 알 수 없어서, 마술을 보는 것 같았다.

"일단 네가 아카벨름에 들어온 순간부터 내가 릴메이의 몸을 잠시 빌려썼기에 그녀는 아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거야."

릴메이는 들리지?

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으로 이제 뭐 어떻게 하나요 이런 게 궁금할 수도 있는데, 그 부분은 평소대로 하면 돼. 늘 하던 거 말이야."

내가 해야 할 질문을 미리 알고 있는 듯한 말들이 이어진다.

이런데도 전지하지 않다니, 말도 안 됐다.

"김민수는... 늘 예의주시하도록 해, 천방지축이거든. 걔가 무슨 일 저지르면 네가 수습해야 하는 거 알지?"

그건 몰랐는데요.

"꼭 해야 해! 이런 건 아닌데 아마 하게 될 거야. 와 이제 진짜 시간이 없네,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은ㅡ."

반드시 성검을 뽑아.

루베니아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또다시 빛이 전신을 감싸왔다.

'아니 멀쩡한 사람 정신을 왜.'

그렇게 난 다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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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양이 정신을 잃고 아카벨름에 누워 있는 사이.

우리의 영웅, 불굴의 용사 김민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주변에 사람을 불러봐도 바엘슨 뿐이고, 어딜 가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답답한 상황.

이럴 때일수록 해결책을 외부에서 찾아야 했다.

'그리고 난 그 방법을 알고 있지.'

순애일지작가님의 말대로,삼라만상의 진리를 깨달은 이상.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일시적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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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방치된 느낌입니다.]의 답변­ [척척 박사]순애일지작가[태양광]

모처럼 해외여행을 갔는데 혼자 남았다는 기분이 든다구요? 주변에 아무도 없고?

그... 같이 비행기 탔던 여인도 없다니 흠... 아무래도 뭔가 서프라이즈를 준비하는 거 아닐까요.

그게 아니라면 먼저 서프라이즈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죠.

성국 루베니아에 갔다고 하셨었나요? 저도 아직 거긴 한 번도 안 가 봤지만...

뭐 제가 늘 해외여행에 대해 조언을 할 때 강조한 게 있었죠.

이... 여자란 늘... 새로운 환경에서 어떤 눈이 떠진다고 해야 하나.

그런 건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또 듣기로는 해외에서 빅토리 아카데미 생도가 그렇게 인기가 많다더군요.

게다가 용사라고 불리는 몸이니만큼... 뭐 그냥 어디 특별한 곳을 가는 게 아니라.

머무는 숙소에서 사람들을 꼬셔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고... 성국 루베니아에 있는 뭐 특별한 어떤 상징 같은...

예를 든다면 성검을 한 번 뽑아본다거나 그런 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랄까.

사실 불굴의 용사가 성검을 뽑는 게 아니라면 누가 뽑을까 ㅋㅋ

참 안 봐도 뻔한 이야기입니다 ㅋㅋ

성검 뽑으면 여자가 줄을 설텐데. 왜 이런 고민하는 지.

바로 움직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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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순애일지작가님이야.'

심지어 오늘은 웬일로 늘 악성 댓글을 달던 인간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타이밍이 딱딱 맞아떨어진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

'나도 나름 전용기 탔으니까 귀빈이잖아.'

실제로 머무는 것도 바엘슨의 말에 따르면 아주 비싼 곳이라고 한다.

엉켜있던 실타래가 알아서 풀리는 듯한 감각.

김민수는 바로 방문을 벌컥 열고 바엘슨을 불렀다.

"바엘슨!!!"

"무슨 일이십니까?"

근처에서 운동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온몸의 근육이 화가 잔뜩 나 있는 바엘슨.

김민수는 잠깐 근육을 바라보며 자기 몸과 비교 했다.

그러다가 자신감이 떨어지기 직전에 바로 입을 열었다.

"날 성검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줘."

확신에 찬 눈동자.

굳은 결의가 깃들어 있는 말.

바엘슨은 그 말을 듣고 매우 놀라며 입을 열었다.

"안 됩니다."

뭔 개소리야.

그런 표정으로 김민수를 바라보는 바엘슨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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