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190화 (190/325)

〈 190화 〉 성녀님이 저번에 말씀하셨던 거, 하겠습니다.

* * *

성국 루베니아가 나라로 인정받기 전.

게이트가 허공에 툭 튀어나오고 던전이 지형지물을 바꿔가며 썩어가고 있는 세상에.

기적이 내려왔다.

'누구도 너를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리라.'

게이트 밖으로 튀어나온 몬스터가 사람들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을 때.

근처에 떨어진 쇠 파이프를 들고 일어난 여인의 각성.

성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신이야! 신이 강림하셨다!'

­성녀님이시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섬광과 성녀를 감싸는 찬란한 빛.

성녀를 제외한 모든 자는 그걸 축복으로 여겼으며, 성녀는 그걸 저주라고 생각했다.

[신성한 가호가 내려집니다. 당신은 %@(의 보호를 받습니다. @$@의 시선에서 벗어납니다.]

처음엔 가호라길래 마냥 다 좋은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왜 그러세요?"

­아뇨 아무런 어... 뭐라고 하셨죠?"

그 가호가 어떤 가호인지 점차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성녀는 소외감을 느꼈다.

본명을 말해도 사람들이 들어 주질 못하며 가명조차 제대로 듣지 못한다.

급한 대로 '릴메이'라는 가명을 만들었지만 들을 수 있는 건 페르쿠스 정도.

'아니 페르쿠스가 지어줬기에 가능한 거였지.'

작은 여자 뜻을 가진 가명.

당시에 페르쿠스가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며 '이러면 힙합 같고 좋지 않습니까?' 했던 순간이 기억난다.

누구에게도 이름으로 불릴 수 없다는 고독함.

그걸 그나마 달래준 게 페르쿠스였다.

'고마운 사람.'

하지만 그렇다고 성녀가 가진 외로움을 해소할 수는 없었다.

이름 못 불리는 거 가지고 좀 어떠냐, 라고 누군가는 말할 수 있으나.

그녀에겐 이건 굉장히 큰 문제였다.

부모님이 남겨 준 마지막 흔적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

성녀이기에 원래도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다는 것.

이 두 가지는 그녀에게 큰 흉터가 되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만나고 싶었던 거기도 했지.'

사실 성녀가 용사를 만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놀리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자기 이름을 어디까지 들을 수 있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성녀는 한국에 오자마자 밤늦게 용사를 만났고, 바로 자기 이름을 말했지만.

­무슨 말씀 하셨습니까?

­아,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럼 마저 이야기하겠습니다. 이건 제 무용담이기도 하지만 꽤 웃긴 이야기인지라... 제가 최근에 붓검이란 걸 얻었는데 이걸로 용을 그리면 그게 그대로 나오고... 참 나중에 제가 진짜 멋지게 한 번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아아 네.

결과는 실패.

김민수는 가명조차 듣지 못하고 고개만 갸우뚱하며 헛소리만 늘어 놨었다.

그래서 당연히 이번에도 기대하지 않고 성녀는 가명을 말한 거였다.

이름을 물어봐도 말할 수 없으니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고작 이름이 뭐라고.'

왜 이거 가지고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아직도 이해되지 않았다.

이름을 가려주는 게 무슨 가호이고 보호란 말인가.

자신을 소개해야 할 때 굳이 신분으로 소개해야 하는 게, 오히려 치욕이었다.

"릴메이ㅡ."

모처럼 오랜만에 내뱉은 이름이니만큼 성녀는 자기 이름을 끝까지 내뱉었고.

"릴메이...이후부터 잘 안 들렸습니다."

"제 이름이 들리세요?"

"...? 네 당연하죠."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

이름이 들린다는 소리가 왜 이렇게 감격스럽고 고마운지.

면사포를 쓰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못생긴 표정을 보일 뻔했다.

"가명이예요."

성녀는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 얼른 말을 이어 나갔다.

말을 멈추자마자 어색해진 분위기가 조금씩 풀어진다.

"가명도 쓰십니까?"

엥 굳이? 라는 표정을 그대로 드러낸 백태양 얼굴이 너무 웃겼다.

사람이 어떻게 이리도 솔직한 지.

"네, 사정이 있어서요."

"약간 음..."

"렙 네임 같죠? 교황님이 지어 주셨어요."

"굉장히 신성하고 세련 됐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 참입니다."

큼흠.

백태양의 그런 모습에 성녀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상황이 웃겼다기보단 이름을 누군가 들어줬다는 해방감이 원인이었다.

"아하,아하하, 아... 죄송해요. 이게 그러니까 음."

그녀는 조금 전에 말했던 '사정'을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본명이 아닌 가명을 들은 거긴 했지만, 그래도 페르쿠스를 제외한다면 최초 아니던가.

또한 여태까지 보여 준 모습을 봤을 때 충분히 믿을 만한 사람이기도 했다.

'백태양이 용사일 수도 있고.'

가능성이 완전히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계시에서도 그저 용사와 성녀가 함께 한다고만 했을 뿐.

용사가 누군지 정확하게 지칭한 적은 없었으니까.

가명도 듣지 못 하는 김민수와 가명은 전부 다 들은 백태양.

둘 중에 누가 더 용사에 가깝냐고 물어보면 답은 이미 정해진 거였다.

"제 가호 때문에 그래요."

성녀는 백태양을 믿기로 결심했다.

가명 하나 들을 줄 안다고 가호에 대해서 말해주는 게 섣부른 판단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몇 년 동안 아무도 듣지 못한 걸 듣는 사람한테 이 정도도 말하지 못한다면.

세상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는 것과 비슷한 소리였다.

"가호요?"

"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넘기셔도 돼요.

그렇게 성녀는 해방감을 느끼며 속 깊게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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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한테 오길 잘했네.'

릴 메이.

가명이라고는 하지만 그 이름을 듣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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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라면 주인공이 겪어야 할 이벤트를 먼저 체험한 당신!

주인공다운 행보로 인해 김민수의 지분율 5%를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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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던 지분율이 단번에 솟아올랐다.

고작 가명 하나 들었다고 오를 수치인지 의아할 정도의 수치였다.

'보호를 받고 시선을 벗어난다라...'

성녀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생각이 점점 깊어졌다.

'누구'의 보호를 받고 '누군가'의 시선에서 벗어난단 말인가.

심지어 성녀는 김민수한테도 똑같은 시도를 해봤다고 말했다.

'김민수는 안 들렸는데, 내가 들렸다고?'

주인공 지분율만 따지면 더 높았을 텐데.

수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보통 소설대로라면 이런 중요한 스토리로 뻗어 나갈 만한 단서는 주인공이 먹는 게 당연할 터.

하지만 김민수는 단서는커녕 첫 단추조차 꿰지 못한 거다.

'왜지?'

소설 속 존재들은 주인공인 김민수한테 모든 걸 오픈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놓치고 있는 뭔가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핵심적인 무언가.

'안뚱땡이 소설의... 신이 아닌 건가?'

그 생각을 머리에 떠올리자마자 천둥이라도 친 듯 소름이 돋았다.

안뚱땡의 허술한 행보가 이해되는 듯한 가설.

왜 여태 김민수를 그렇게 밀어 주고도 제대로 활약조차 못 했는 지에 대한 의문.

그런 것들이 모두 해결 되는 하나의 가능성.

"제 이야기가 그렇게 충격적이었나요?"

"네? 아, 아닙니다."

"그래도 그것만 빼면 저도 평범한 소녀랍니다."

성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양이 같은 자세를 취하며 장난을 쳐왔다.

김민수를 놀려 먹자고 할 때 나왔던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

이게 본 모습인 거겠지.

"성녀님 혹시 저도 성국에 가 볼 수 있겠습니까?"

감상은 그만하고 난 가능성을 바로 실험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성국에서 일어난 일인 만큼 성국 방문은 필수였고.

"물론이죠, 언제든지 오셔도 돼요."

"그럼 당장 내일 가능할까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급발진이라고 느끼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확인해야 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야.'

빅토리 아카데미에 있어 봤자 할 수 있는 건 사건이 터지길 기다리는 것뿐.

수동적인 자세로 있다가, 상황 해결할 때만 능동적으로 변하는 건 이제 이쪽에서 사양이었다.

"내일요? 음... 뭐 가능은 한데, 제 이야기가 태양 씨한테 뭔가 큰 힌트가 됐나보네요?"

"네."

그것도 아주 큰 힌트가 됐습니다.

뒷말은 삼켰다.

성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박수를 짝 치며 내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럼 저도 같이 가야겠네요. 내일 당장 갈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거든요."

괜찮죠?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 준비를 위해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그래요."

"아 참."

"네?"

방에 나가기 직전.

난 몸을 돌려 성녀를 바라봤다.

"저번에 말씀해주셨던 거 하겠습니다."

"뭘요?"

"김민수 골탕 먹이기요, 저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

"오늘따라 태양 씨랑 대화가 잘 통해서 기쁘네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난 방을 나왔다.

이후 복도를 걸어가며 생각을 정리했다.

'생각해 보니 그랬어.'

안뚱땡을 처음 만났을 당시 놈은 굉장히 당황했다.

이럴 리 없다면서, 뭔가 오류가 일어난 거라며 내가 '백태양'이 된 걸 믿을 수 없는 눈치였다.

그러고 보면 이상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누구보다 김민수 하렘을 원하는 놈이 왜 '백태양'이라는 캐릭터를 등장시킨단 말인가.

처음에 나왔던 '백태양' 설명대로 영원히 봉인 시키는 게 맞는 옳은 선택일 터.

하지만 난 보란 듯이 백태양으로 활약을 했고 김민수 여자를 뺏었다.

'소설 작가가 소설을 마음대로 못 쓰는 건 말도 안 돼, 작가가 원하면 갑자기 운석이라도 떨어트려서 당장 다음 화에 완결도 낼 수 있는 거잖아.'

아무리 소설 속의 신이 따로 존재한다고 해도 창조주인 작가한테서 누군가를 지킨다?

이것도 말이 안 되는 경우였다.

'안뚱땡은 그냥 글을 쓰기만 하는 작가고... 실질적인 힘이 그렇게 세진 않은 거야.'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안뚱땡의 위치가 점점 낮아진다.

성국.

'그곳에 실마리가 있다.'

모든 건 그곳에 존재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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