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182화 (182/325)

〈 182화 〉 내 의도가 아니야, 아니라고.

* * *

펄럭이는 흑색 망토가 날개처럼 휘날린다.

전체적으로 석탄처럼 까맣게 변한 피부 사이사이 금맥 같은 핏줄이 흐른다.

하늘과 바닥에 광활하게 펼쳐진 알 수 없는 흑적색 글자들이 쫙 펼쳐진다.

마치 이곳이 폭군의 영역이다,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그 모습은 뭐야."

민수는 지금 보고 있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처음 저 스킬을 발동했을 땐 저렇게 멋진 모습까진 아니었는데.

지금은...

'너무 멋있잖아.'

쟤가 저렇게 멋지게 3 페이즈에 돌입하면.

내가 기를 쓰고 그렇게 하고 싶었던 유니콘 각성은 대체 뭐가 되는 거지?

이런 사소한 외형부터 아주 중요한 소환수의 외형까지.

열등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만든 게이트에서도 열등감을 느껴야 된다니.

"왜 그렇게 주인공처럼 구는 거야, 주인공은 나라고 몇 번을 말하냐고!"

[불굴의 용사 기본 효과 발동! 자동으로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위기를 감지합니다!]

[현재 있는 곳은 폭군의 땅입니다. 폭군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결코 이길 수 없는 적을 상대합니다! 전체적인 신체 능력이 상승하며 승리할 시 큰 보상을 얻게 됩니다!]

상황이 왜 이렇게 변한 거지.

분명 내가 유리했는데.

민수는 붓검을 꼭 쥐며 눈앞에 있는 보스 몬스터를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천천히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 너 주인공 하라니까? 왜 그런 말도 있잖아, 자기 인생의 주인공은 나다! 이런 거."

적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쾅!

눈 한 번 깜빡이는 시간에 백태양의 얼굴이 보였고,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공격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놈이 접근해서 휘두르는 발차기 하나만으로도 압도적인 수준 차이가 여실히 느껴진다.

몇 초 전만 해도 아만다가 먼데에게 도움을 기다렸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싸가지 없는 손이 나으리의 귀한 몸에 흠집을 낸 거군요?"

"잠! 잠깐만 기다려라! 회복은 되도 아프다! 하지 마람!"

춘향이가 얼린 트롤 킹의 손이 단번에 박살이 난다.

쨍그랑!

춘향이와 아만다가 먼데는 언뜻 보면 다윗과 골리앗 같은 구도였으나 실상은 완전히 달랐다.

압도.

S급 몬스터로 보정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트롤 킹과 태생부터 S급인 성춘향.

그사이에는 단기간엔 절대로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간격이 존재했다.

'재벌 3세와 벼락 부자를 보는 것 같네...'

만들어진 것과 타고난 것에 대한 차이.

그것 때문에 지금의 트롤 킹은 절대로 춘향이를 이길 수 없었다.

부스스스스스ㅡ.

상처를 입을 때마다 점점 사라져가던 민수 랜드가 이젠 가루로 변하고 있었다.

예전엔 복구가 가능한 붕괴 수준이었다면 이젠 그 잔해조차 사라지는 수준.

김민수가 날아가서 부딪친 회전목마도 가루가 되어 절반만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개처럼 짖어보라니까, 그럼 다 끝나는 거잖아."

"이젠 절대로 패배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내가 고작 한 번 맞고 포기할 줄 알았어?"

그건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야.

압도적인 전력 차이.

너무나도 불리한 상황.

하지만 이런 순간에 진정한 힘을 발휘해서 적을 무찌르는 게 용사 아니던가.

"난 오늘! 널 쓰러트린...꾸에에에에에엑!"

땅과 하늘이 구분 되지 않고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한다.

정말로 이길 수 있을까? 살면서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의심을 하기 시작한 민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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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왜 승리가 안 뜨는 거야.'

얼마나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줘야 만족하는 거지? 죽이지도 못 하잖아.

지릿지릿.

마족화를 킨 이후 피부를 누가 뜯고 있는 것처럼 전신이 아렸다.

폭군과 마족화를 동시에 킨 부하가 걸리는 듯한데, 아직은 견딜 수 있었다.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대략 짐작하길 약 30분 정도.

부하의 강도가 점점 세지는 걸 보면 사실 30분도 굉장히 후하게 쳐준 거였다.

결론만 말하자면 지금 상태에서 전력을 낼 수 있는 시각은 단 30분이라는 소리.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이걸 안 것만으로 큰 수확이다.'

한 번도 내 본 적 없는 전력을 내서 자기 분석을 할 수 있다는 건 아주 좋은 기회였다.

정말 필요할 때 모든 힘을 끌어내는 처음 끌어내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짓이니까.

"이쯤 되면 포기해라, 미안 해지잖아."

김민수가 아무리 메인 스킬 출력을 늘려도 나도 똑같이 출력을 올리면 모든 건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는 그 어떤 변수도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푹.

"끄아아아아아아!"

가볍게 휘두른 곡괭이가 민수의 왼쪽 어깨에 정확히 찍혀서 살갗을 파고들어간다.

본래 찍히자마자 썩어 문드러져야 정상이지만 특유의 회복력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김민수.

이걸 왜 계속해야하는지 이제 슬슬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나는 포기 안 해! 붓...어?"

발악하며 몸을 뒤로 뺀 민수가 붓검을 휘두르려고 하는 순간.

놈은 그제야 자기 손에 검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말했지, 이건 너한테 너무 과분한 무기라고."

"내놔! 내 무기잖아! 회수!"

내 손에 들린 붓검을 보자마자 민수는 불길한 마음에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러나.

[상대방이 회수를 발동 했습니다. 귀속된 무기 [이몽룡의 붓검]이 김민수에게 돌아가려 합니다.]

[마족화에 깃들어 있는 탐관오리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탐관오리는 절대로 자기 손에 들어온 재물을 남에게 주지 않습니다.]

[폭군 효과 발동! 아랫것이 소유한 물건을 독차지합니다.]

부들부들부들부들 툭.

손에 쥐어진 붓검이 물에 막 나온 물고기처럼 팔딱거리다가 축 늘어진다.

"회수!"

회수를 외칠 때마다 뺨을 툭툭 치듯이 움찔거리긴 했지만 붓검은 요지부동.

내 손을 벗어나지 못 했다.

이제 완전히 붓검을 뺏은 건가라고 생각할 무렵, 메시지창이 나타났다.

[주인공 지분율이 낮기에 [주인공­김민수]의 무기를 뺏을 개연성이 부족합니다. 잠시 후 회수 됩니다!]

'허 어이없네.'

주인공 무기를 뺏으려면 그런 것도 필요한 건가.

하긴 원래 주인공이 자기 주 무기가 깨지거나 뺏기면 더 좋은 무기가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법.

즉 당장 상위 무기가 나타날 예정이 아닌 이상 김민수의 무기를 뺏기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더럽고 치사해서 진짜.'

안뚱땡 소설이라고 이런 식으로 편애를 한다 이거지.

그렇다면 이쪽도 다 생각이 있었다.

"돌려달라고!"

"그래, 돌려줄게."

어차피 다시 네 손으로 들어갈 거라면.

'압도적인 활용법 차이를 보여 줄게.'

본다고 해서 따라 할 수도 없을 정도로.

한 손엔 붓검, 한 손엔 탐욕의 곡괭이.

김민수가 붓검을 쓸 때마다 가장 멍청하다고 느꼈던 점은 굳이 그림을 그린다는 거였다.

허공에 칠해진 먹선만을 왜 그대로 공격에 써먹지를 못 했을까.

스릉.

"내...내 무기를 네가 왜...!"

붓검을 가볍게 휘두르자 길게 뻗어진 먹선이 그대로 날카롭게 민수를 향해 날아간다.

"꾸에에에엑!"

묵직한 먹선이 그대로 놈을 강타하자 한결 같은 돼지 멱 따는 소리가 들렸다.

'응?'

그때 난 특이한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리 두들겨 패도 금방금방 회복하던 민수가 이번엔 바로 일어나지 못했던 것.

강하게 때린 것도 아니고 정말 기본적인 활용만 했을 뿐인데 어째서?

'설마 회복 능력이랑 멘탈이랑 연관이 있는 건가?'

하지만 이 생각은 금방 바뀌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냥 상실감에 일어나질 못하는 거였다.

쿵.

"미안하다... 나 여기서 죽으면... 안 돼서... 일단은... 후퇴하겠담..."

타이밍 좋게 트롤 킹도 춘향이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역 소환된 상황.

마지막에 슬쩍 본 트롤 킹의 모습은 정말로 끔찍했다.

몸의 절반이 얼어붙고 깨질 듯이 전신에 금이 가 있는 모습은 정말.

새삼 저기서 해맑게 손을 붕붕 흔들며 다가오는 춘향이가 보스 몬스터라는 게 체감됐다.

"나으리! 제가 단 한 번의 타격도 허용하지 않고 시원하게 이겼사와요! 이제 그만 자궁 큥큥..."

"꾸엑."

푹 푹.

춘향이는 날 보며 오느라 김민수가 발밑에 있다는 걸 인지조차 못하고 그만 밟아버렸다.

아니지, 인지를 못 했을 리가 없지.

'고의네 이거.'

알면서도 일부러 얼굴을 두어 번 정도 밟는 춘향.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못 된 건지 지 알 수가 없었다.

"야 민수야, 다 끝났으니까 이제 그냥 포기해."

"맞아요, 이제 그만 포...어머 자세히 보니까 이몽룡이었네요?"

난 민수의 배를 툭툭 걷어차며 말을 걸었다.

승리한 지는 한참 됐는데, 아직 승리했다고 뜨지 않는 걸 보면 다른 승리를 원하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니 김민수가 포기하길 바랄 뿐이었다.

자기 의도대로 되지 않는 걸 안다면 이제 게이트 나갈 때도 됐잖아.

"음음... 이몽룡 도련님 앞에서 하는 건... 이번이 처음...? 아닌가 두 번째이려나요..."

춘향이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잠깐만.

옷을 왜 벗어?

"너 지금 뭐 해?"

"나으리도 차암... 그걸 꼭 소녀 입으로... 당연히 이번 일이 끝나면 주시기로 했던 자궁 큥큥 귀두 키스... 준비죠."

"...?"

"소녀는 정말 나으리가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지을 때 사실 소녀가 발정 난 짐승이 아닐까 의심한답니다."

맞잖아.

춘향이는 내 이어진 말은 싹 무시하고 저고리를 마저 풀었다.

흙먼지가 깔린 바닥에 옷이 더럽혀지는 건 싫은지, 옷들은 전부 민수 위에 올려놨는데.

놈이 움찔거리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전투가 끝나고 바로 승리 기념 섹스라니.

사람이 다 춘향이 같은 줄 아나.

그런 결론을 내고 뽀얀 젖가슴을 출렁거리며 다가오는 춘향이를 밀어 내려는 그때.

띠링!

[퀘스트 클리어 조건 달성 직전입니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믿을 수 없는 메시지가 눈앞을 가렸다.

"..."

퀘스트가 아예 대놓고 김민수 앞에서 춘향이와 섹스를 하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아 진짜 이건 내 의도가 아닌데.'

근데 왜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는 거지.

일생일대 미스테리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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