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화 〉 보상은 쓰거나 달콤하거나
* * *
"아무도 없네요."
"그러게."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나왔을 때 주변엔 예상대로 아무도 없었다.
'수법이 점점 지능적으로 변하고 있네.'
이번에 안뚱땡이 쓴 방식은 꽤 고차원적인 방식이었다.
기존에 했던 방법이 게이트에 들어가자마자 난이도를 변경시키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엔 게이트를 두 개 준비해서 게이트 내부에서 다른 게이트로 이동을 시키는 형식이었다.
이 부분의 차이를 성녀한테 물어보니 답은 금방 나왔다.
"기존 게이트는 난이도가 변경되지 않았으니, 게이트가 변동 됐다는 감지가 걸리지 않아요."
내부에선 S급 게이트에서 공략 중이라고 해도 외부는 C급 게이트에 들어간 걸로 인식이 된다는 말이었다.
게이트가 바뀐 게 아니라 기존 게이트에서 다른 게이트로 납치하면 걸리지도 않는다는 것.
성녀는 이를 두고 아주 무서운 방법이며 반드시 막아야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게 되겠냐고.'
소설 속 세상에서 작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만나서 패는 건 이미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으니, 깽판을 치는 걸 막는 건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늘 안뚱땡이 예상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 정도.
"어때 보여?"
"글쎄요... 게이트를 클리어하자마자 공헌도를 알려주는 게 정상인데..."
난 우선 멜라니 쪽으로 다가가서 그녀가 보고 있는 클리어 결과창에 시선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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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급 게이트 [트롤 왕국] 클리어!
S급 게이트 고전명작[개구리 공주] 클리어!
현재 게이트 클리어 보상 합산 중입니다.
또한 각각 공헌도가 다르기에 최고 공헌도를 뽑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
다소 시간이 소요 될 것으로 예상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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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간 곳은 하나인데 클리어한 곳은 둘.
이럴 때엔 어떻게 하나 궁금했는데, 게이트도 결국 한계가 왔는지 저 메시지만 뚝 내뱉고 묵묵부답이었다.
"아 맞아,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그 사람들이 태양 씨한테 뭐라고 하지 않았어요?"
"응? 아아, 했지."
"뭐라고 했는데요?"
"별거 아니었어."
민수가 트롤 킹과 진하디진한 특대 키스하고 나서 게이트가 클리어 될 무렵.
비실이는 자기 이름을 밝히며 말을 걸어왔었다.
난 카리스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다.
어?
차차 알게 될 거다, 우리의 무서움을.
너 나한테 졌잖아.
...
시답잖은 대사와 뻔한 퇴장.
카리스, 아니 비실이는 그 말을 끝으로 유이와 함께 자리에서 사라졌다.
들어온 통로가 다르니 아마 다른 곳으로 나간 거였겠지.
"자기 이름 말고는 뭐 더 없었어요?"
"응, 진짜 별말 안 하더라고, 확실한 건 세력이 맞긴 한가 봐, 계속 우리우리 거리는 거 보니까."
"그리고 자주 보게 된다니... 노블일까요?"
"걔네랑 조금 다른 느낌이던데."
장두철이 말한 제 3 세력.
그게 비실이와 유이가 속한 그룹이란 건 거의 확실 시 되는 상황이었다.
'근데 왜 성녀가 아닌 김민수랑 나지?'
비실이가 박수를 쳤을 때 나타난 수많은 무기들이 노린 건 나와 김민수 둘 뿐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노골적으로 노렸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장두철은 성녀를 노릴 수도 있다고 해서 호위로 날 붙인 걸 텐데, 김민수와 날 노리다니.
'아니면 하나 더 있거나...'
게이트 하나 다녀왔다고 뭐 이렇게 정보가 넘치는 거야.
어쨌든 오늘 일정은 이걸로 끝이니 집에 가서 천천히 생각해도 되겠지.
"태양 씨~! 멜라니~! 바엘슨이 깨어났어요!"
"가 봐야겠네."
"보상보단 사람이 먼저니까요."
클리어 메시지가 뜨고 난 뒤 게이트는 칼 같이 바엘슨을 밖으로 뱉어냈다.
바엘슨은 바로 일어나지 않고 몇 분 동안 혼자 끙끙거리다가 이제서야 일어난 거고 말이다.
"으...으음...여기는?"
"게이트 밖이에요. 클리어를 했거든요, 몸은 괜찮나요?"
바엘슨은 일어나자마자 성녀의 얼굴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죽을 수도 있었는데 성녀부터 챙기다니, 신앙심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렇군요, 걱정 감사합니다. 다들 무사하셔서 다행입... 근데 민수씨가 안 보이는군요?"
"아..."
김민수.
그 이름이 나오자마자 바엘슨을 제외한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어..."
"아..."
"구석에서 토하고 있어."
최대한 잘 말하고 싶었지만 이거 말고 마땅한 대답이 안 떠올랐다.
바엘슨은 토하고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난 궁금증을 해결해주기 위해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태양 씨 말은... 해피 엔딩을 위해서 트롤 킹이랑 진한 딥키스를 약 2분간 진행했고... 그 여파로 토를 하고 있다는 말인 거죠?"
"응... 그래도 널 걱정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그...렇군요."
비방, 비난의 목적 하나 없이 순수하게 나누는 대화가 이렇게 분위기가 얼어붙게 만들 수도 있구나.
우에엑!
꾸에에엑!
푸에에에엑!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도 한계가 찾아왔다.
무시하려고 했지만 김민수의 존재를 입에 담는 그 순간.
저 구석에서부터 들리는 헛구역질 소리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 민수씨가 그래도 굉장히... 멋진 희생했다고 생각합니다."
"맞아요,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아무나 할 수 있는 희생은 아니죠. 역시 용사님이예요! 카메라로 못 담은 게 아쉬울 정도로요!"
"마...맞아요, 음... 그렇죠."
바엘슨의 말을 필두로 성녀와 멜라니도 한 마디씩, 김민수를 위해 거들었다.
'진짜 그냥 아찔하네.'
게이트를 클리어하면 보통 백이면 백 분위기가 압도적으로 좋아야 정상이었다.
게다가 그냥 보통 난이도도 아니고 최고난도라고 불리는 S급 아니던가.
그런데도 이렇게 분위기가 딱딱하게 얼어붙은 이유는 단 하나.
김민수 때문이라고 볼 수 있었다.
'티를 내지를 말든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 때문에 게이트를 클리어하게 된 거야'부터 시작해서 '그러니까 일단 나는 속을 좀 게워내고 올게'라고 말하기까지.
얼마나 그사이에 자기 업적을 칭송하고, 흔히 말하는 '빨아주길' 원하는지.
서로 고생했다고 토닥여도 모자랄 판국에 김민수의 태도는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된 거였다.
심지어 부상을 입은 바엘슨도 얌전한데, 참.
"음 어..., 일단 보고는 제가 하겠습니다."
"어머 태양 씨가요?"
"네."
난 이 분위기를 깨기 위해 일단 아무 말이나 내뱉었고.
그때 타이밍 좋게 멜라니의 말이 이어졌다.
"그 어...아! 보상이 나오고 있나 봐요!"
"야 김민수! 그쯤하고 와!"
난 나무에 대가리를 박고 속을 게워내는 민수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그래도 말하는 거 보니까 나름 첫 키스던데, 소중한 추억을 예쁘게 간직할 생각해야지.
"나...나 아직 토 덜 했..."
"닥쳐."
형형색색 빛나고 있는 게이트 앞.
반투명한 창으로 보상을 계산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사라지고 축포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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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정말로 축하합니다!
C급 & S급 게이트를 완벽하게 클리어하셨군요!
C급 [트롤 왕국]과 S급 고전명작[개구리 공주]에서 가장 멋진 활약을 보여 준!
김민수가 공헌도 1위를 차지합니다.
그는 트롤 킹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게이트 클리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2위는 백태양입니다.
그는 트롤 킹에게 가장 큰 위협과 데미지를 가했으며 [개구리 공주]에서도 독보적인 활약으로 서브 스토리를 개척해 나가는 등…
3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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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나타난 메시지는 엄청나게 길었다.
공헌도 순위부터 시작해서 순위의 이유까지 친절하게 알려 줬다.
'안 하던 짓을 하네.'
그렇게 공헌도 순위가 이어지고 모두가 자기 보상을 확인할 때.
난 다른 부분을 보고 깊은 생각에 잠겼었다.
'...왜 전부 다 표시 되지 않는 거지?'
의문이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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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이게 무슨 일이야.....아....!"
칠악산에서 해산한 후.
김민수는 바로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보고는 백태양이 한다고 했고.
클리어 이후 보고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바로 휴식을 하는 게 보통이었다.
"두... 두 번이나 했어..."
가장 최악인 건 업적 「이건 노 카운트!」가 이미 달성 됐기 때문에 더 이상 첫 키스 카운트가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김민수는 가장 읽기 싫은 문구를 눈에 넣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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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 「첫 키스」 달성!
첫 키스를 달성함에 따라 입을 맞춘 상대방의 힘을 복사합니다.
이미 복사된 힘을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업적 보상 조정 중……
복사된 대상의 힘이 C급에서 S급으로 격상됨을 확인.
트롤의 힘을 강화합니다.
근력 위주의 신체 능력이 대폭 강화 되며 머리와 심장이 가루가 되지 않는 한 죽지 않습니다.
업적 「두...두 번이나?!」달성!
한 대상과 끈적한 딥 키스를 두 번이나 그것도 하루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한 상태입니다.
키스한 대상과의 인연이 강해집니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해질 때, 반드시 만나게 됩니다.
강한 인연으로 묶이며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무조건 함께 있습니다.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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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빅토리 아카데미 남자 기숙사에 깊은 비명이 약 다섯 시간 정도 쉬지 않고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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