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 개구리는 저주를 벗고 ~ 모습을 드러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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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부인이 성녀라는 걸 알고, 그게 개구리라는 걸 확인한순간부터.
난 과연 성녀가 정말 개구리인지를 의심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성녀는 개구리의 저주를 풀지 못하는가? 에 대한 의문이 생겼었다.
'애초에 셋째 부인이 성녀가 맞을까.'
사실 이 부분은 처음엔 떠올리지 못했었다.
그러나 비실이와 흑갸루가 나타났을 때, 게이트는 연기자가 변경 되었음에도 별다른 메시지를 내보내지 않았었다.
즉 역할에 문제만 생기지 않는다면 배역이 바뀌든 말든 게이트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다.
'바실리사가 개구리가 된 건 뭐... 저주 그런 영역이겠지.'
성녀가 저주에 걸릴 수도 있었지만 고작 이런 장소에서 걸린다는 건 너무 수상했다.
S급 게이트 클리어 경험도 우리보다 많고, 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성녀가 개구리가 되는 저주에 걸린다?
지나가던 개도 안 믿을 이야기다.
"안 그렇습니까 성녀님?"
개굴개굴.
그럼요. 제가 아니면 누구겠어요?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바로 이것.
개구리가 울 때마다 성녀는 정말 딱 그 상황에 맞춰서 의념을 보냈다.
이거 하나 때문에 개구리가 성녀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의심만 하다간 아무 결과도 안 나는데.'
저주를 풀어봐야 하나.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흰 빵을 구워오라고 했으니, 아마 또 왕은 몇 가지 물건들을 더 제시할 터.
그럴 때마다 개구리 공주의 비범한 능력이 하나씩 나타나고, 마지막에 저주를 풀게 분명했다.
때문에 정상적인 루트로 개구리 정체를 확인하려면 너무나 많은 시간이 허비 됐다.
'가장 이상적인 건, 오늘 안에 저주를 풀고 다시 개구리로 만드는 건데.'
잠깐만.
왜 굳이 저주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더 빠른 방법이 있었잖아.'
[깊은 눈 발동! 상대방의 기본적인 정보를 파악합니다.]
성녀는 [깊은 눈]으로 정보를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성녀가 아니라면 파악이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파악이 안 된다면 성녀, 된다면 다른 거다.'
이런 좋은 스킬을 냅두고 자칫하면 멀고 귀찮은 길을 걸을 뻔했다.
띠링!
[깊은 눈]의 결과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나자 난 진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녀님?"
상황 파악이 끝난 난 개구리를 바라봤다.
개굴개굴
그럴게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의념을 보내오는 성녀.
'그렇게 된 거였구나.'
미리 확인하지 않았다면 아주 위험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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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날! 너와 내가! 데이트를 보낸 그날 이후로……
"유이!"
딸깍.
문이 열리고 유이가 들어오자마자 카리스의 머릿속에 재생되던 노래가 꺼졌다.
데이트라고 해서 밤늦게 돌아올 줄 알았는데, 걸린 시각은 세네 시간 정도였다.
'무슨 일하기엔 둘 다 너무 짧은 시간이야.'
미인계를 걸기도, 백태양이 개짓거리하기도 터무니도 없이 짧은 시간.
카리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의 곁으로 다가 갔다.
"왜 아무 말이 없어, 유이 괜찮아?"
"아...아 어? 나? 나는 괜찮지, 나 엄청 쌩쌩해. 보여 줄까?"
"응? 아... 그럴 필요는 없어, 그냥 그 새끼가 무슨 짓 했나 혹시나 해서."
유이는 '그 새끼'가 누굴 지칭하는 말인지 정확히 알아들었다.
그리고 그 즉시 얼굴이 발갛게 물들여지며 다리에 힘이 쑥하고 풀려 버렸다.
털썩.
"유이 무슨 일이야., 그 새끼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유이는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급하게 무릎 사이로 얼굴을 숨겼다.
이 얼굴을 카리스가 보게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뻔하게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싸워선 안 돼...'
절대로, 절대로 그와 싸워선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서브 스토리가 발생 되고, 발생 시킨 당사자는 무조건 결과를 긍정적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자신이 만든 스토리에서 패배한다? 그건 게이트 공략에서 가장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는 말이었다.
"아냐... 그냥 발이 좀 꼬였나 봐 구두... 신어가지고."
"평소에 신지도 않던 걸 신어서 그러지, 그냥 운동화만 신고 나가도 충분 했잖아."
"어어...?"
"그도 그럴게, 세네 시간 정도로만 데이트할 거면 그냥 대충 다녀온 거 아냐?"
카리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유이는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웃음을 보냈다.
'내가 그 짧은 시간에 뭘 하고 왔는 지 얜 짐작이나 할까?'
아마 표정을 보니 평생 가도 모를 게 분명했다.
처음 만난 남자와 데이트하다가 미인계로 여관방에 들어가서, 보지가 빨리고 쿠퍼액도 먹어 봤다고 말하면.
카리스 넌 믿을 수 있어?
유이는 잡념을 털어내며 고개를 들어 카리스를 바라봤다.
"맞아, 그냥 간만 봤어. 원래 이런 건 여지를 주면서 살랑살랑 따라오게 만들게 해야 하는 법이거든."
"오...오오...난 그쪽은 자세히 모르지만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이런 건 나 말고 걔네들이 왔어야 하는 건데.
유이는 그런 생각하며 다리에 힘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뭐... 일단 그렇게 됐으니까 따로 백태양이랑 접촉하거나 하지는 마."
"음? 그건 왜지?"
"생각해봐, 내가 조금씩 떡밥을 던지고 있는데 네가 갑자기 나타나서 소리 지르면 물고기가 오겠어?"
근데 얜 왜 이렇게까칠해.
카리스는 예전과 묘하게 다른 유이의 태도가 신경 쓰였지만 굳이 걸고 넘어가지는 않았다.
원래 임무를 수행하고 다녀오면 예민해지기 마련.
그녀가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카리스는 최대한 그녀를 이해했다.
'다 사정이라는 게 있겠지.'
그러면 옆에 있던 그 찌질한 놈을 죽여야 하나.
주인공 비율로 봤을 때도 그놈을 처리하고, 백태양은 유이의 손바닥 안에 냅두는 게 가장 이상적이었다.
'주인공을 죽이려면 개연성이 필요한데...'
주인공은 죽이고 싶다고 막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주인공을 건물로 비유하자면 기초 공사, 중심 기둥과도 같은 존재였다.
아무 생각 없이 죽인다면 모든 근간이 무너지고 세상이 혼란에 빠질 수 있었다.
'이번 게이트에서 개연성을 쌓으...응...?'
탁자에 앉아 여러 생각하고 있을 때 유이의 모습이 다시 보였다.
"어...? 그 짐 뭐야?"
"아무래도 같은 공간에 있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부부가 같은 공간에 있어야 역할에 충실한 거라고 했던 건 너잖아."
"우린 진짜 부부는 아니잖아."
"아니 그게 무슨...?"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카리스는 유이을 바라봤다.
모든 게 다 결심이 선 듯한 얼굴과 등에 꽉 찬 배낭까지.
"내가 좀 진지하게 생각해 봤는데, 내가 백태양을 꼬시고 있는데... 너랑 같은 집에서 산다고 생각하면 괜히 이상한 생각하면서 나랑 거리 둘까 봐 그래."
불륜하고 있을 때 보통 이혼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보면 돼.
논리정연하게 딱딱 끊어지는 그 말에 카리스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 했다.
애초에 자기 분야도 아니었기에, 머리 한구석에서 계속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네'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그래서 나가겠다고? 그래도 일단 형식상 부부인데...? 아니 나간다고 쳐, 어디로 가게?"
"뭘 어디 가, 성이 이렇게 넓은데 그냥 별채로 가는 거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마, 카리스쨩.
그 말에 카리스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유이가 나가는 뒷모습을 쳐다 봤다.
딸깍.
넌 나보다 첫째 왕자에게 더 관심을 더 보이며 날 조금씩 멀리하던……
머릿속 노래가 다시 재생된다.
+++++++++++
"이제 드디어 잔치네."
"너 되게 표정 좋아 보인다."
"당연하지, 드디어 성녀님이 나타날 차례거든."
서브 스토리가 끝난 이후 모든 이야기는 [개구리 공주] 원작을 충실하게 따라갔다.
양탄자도 만들어서 가져다 바치고 이제 남은 건 아내들을 모두 불러 모아서 즐기는 연회 뿐.
민수는 개구리의 저주가 벗겨지는 순간이기 때문에 아주 기대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첫째 왕자 백태양님과 그의 부인 멜라니님께서 입장하십니다!"
"그럼 먼저 간다."
"그래, 나도 곧 성녀님과 함께 들어갈게."
마음 같아선 유이한테도 인사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저번에 양탄자 만들 때 아는 척했다가 멜라니한테 엄청 크게 혼났기 때문이다.
'아내가 옆에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오냐 그랬지 아마...'
진짜 볼에 확 뽀뽀해버릴 수도 없고, 아니다 했었구나.
쪽하고 볼에 입을 맞추자마자 부끄러워서 붕붕 뛰는 멜라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훤했다.
"지금 되게 무례한 생각 하는 표정이네요 태양 씨."
"내가? 그래? 아냐 나는 너 드레스 너무 예뻐서 헤벌레하는 표정이었어."
"너무 능글 맞아도 재수 없어요."
"뭐 어때, 어차피 부부 사인데."
난 멜라니의 허리를 꼭 끌어안으며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연회장의 맨 뒤.
느긋하게 앉아 있는 왕과 왕비를 보며 곧 저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 되니 너무 즐거웠다.
"둘째 왕자 카리스님과 그의 부인 유이님께서 입장하십니다!"
나팔수들은 우리가 입장할 때마다 계속 손을 놀리며 엄청난 성량을 뽑아냈다.
듣기 좋아, 좋지.
유이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손을 밑을 쭉 내려 손을 살살 흔들었다.
흑갸루가 고분고분해지자 그건 또 그것대로 색다른 맛이 있었ㅡ.
"알았어, 안 볼 테니까 내 발등 그만 밟아주면 안 될까?"
"태양 씨야말로 부인이 옆에 있는데 대놓고 방치 좀 그만하면 안 될까요?"
"...미안."
"사과는 빨라서 마음에 드네요."
멜라니의 질투 어린 질타를 받아 내며 드디어 그 순간이 찾아왔다.
"셋째 왕자 이반님과 그의 부인...께서 입장하십니다!"
차마 개구리라고는 말하지 못 하는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거창한 환영식을 받으며 등장한 민수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지게 홀로 연회장에 걸어들어왔다.
명백한 비웃음 뿐인 귀족들의 웃음에도 민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쿠르르 쾅쾅!
갑자기 세상을 쪼개버릴 것 같은 천둥소리가 성을 덮치고, 귀족들이 침묵할 때.
민수는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제 아내가 상자 안에 있습니다."
끼이이이이익.
연회실의 문이 평소보다 두 세배는 커지며 마차 하나가 들어올 정도로 넓어진다.
곧바로 들어오는 마차 한 대.
온갖 보석이 치장 된 황금 마차의 문이 열리고.
쿵!
쿵!
쿵!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저게 뭐야!"
"괴물! 괴물이다!"
"마녀의 소행이다! 바바 야가가 나타났다!!!"
김민수의 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음...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여긴 어디얌?"
강철로 신체를 조형한 듯 각지고 딱딱해 보이는 몸.
녹색 피부는 깊은 늪을 연상 시켰으며 컨테이너 박스보다 두 세배는 될 법한 단단한 팔뚝과 산맥 같은 어깨.
머리에 달린 분홍색 앙증맞은 리본만이 '여자'라는 걸 증명해준다.
"너...넌 누구야?!"
경악한 민수의 말.
"나? 나는 아만다가 먼데."
그녀의 부인이 대답했다.
난 트롤의 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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