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화 〉 처녀는 내 밥이지.
* * *
"이게 무슨...!"
둘째 왕자의 성.
그곳에서 카리스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겪고 있었다.
"그냥... 이건 스와핑...이나 다름없잖아...!"
아니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경우였다.
스와핑은 차라리 여인이랑 바꾸기라도 하지.
이번 경우는 아예 그냥 자기 파트너를 기부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말이 알아보는 거고, 데이트지.
무슨 방법으로 여자를 '알아'볼 것이며 무슨 기준으로 '판단'한단 말인가?
"진정해, 카리스."
"유이! 넌 이 상황이 지금 아무렇지도 않아? 저놈이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잖아!"
"그래도...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퀘스트로 이미 지정이 됐고."
왕이 첫째 왕자의 말을 허락한순간.
모두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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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명작[개구리 공주] 서브 스토리 '첫째 왕자의 불안' 발생!
첫째 왕자는 연애도 많이 해봤고 경험도 많으며, 흔히 말하는 '알파메일'입니다.
그가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능력을 키운 건 아니었으나 분명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첫 만남에 화살이 꽂힌 집에 산다는 이유로 결혼한다는 것.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왕도 이상하게 여겼는지 첫째 왕자가 다른 부인들을 '분석'하는 걸 허락 했습니다.
아내가 의심 된다구요? 당신의 음식에 독을 탈 것 같다구요?
이제 걱정하지마세요!
첫째 왕자가 있으니까요!
당신의 부인을 첫째 왕자에게 믿고 맡기세요!
그가 잘 데이트를 하여 여자를 파악할 겁니다!
첫째 왕자가 다른 부인들과 데이트를 할 때 절대로 방해할 수 없습니다.
※ 데이트에 나가지 않거나 방해할 시 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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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싫으면 부인을 내놓으라는 서브 스토리.
물론 동화에선 처음 보는 여인일 수도 있어도 게이트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랐다.
아는 사람끼리 게이트를 들어오는데 뭐가 초면이고, 뭐가 의심 된단 말인가.
'그놈... 첫인상부터 불길했는데.'
시스템이 한 사람을 평가할 때는 매우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스템이 게이트에 들어온 사람을 '선하다'라고 평가할 경우.
그는 실제로 굉장히 선하며 정의로운 자일 확률이 100%였다.
100%.
그 어떤 다른 것도 끼지 않고 완벽한 상태로 판명이 나야만 게이트는 사람을 평가한다.
만약 모호하게 이도 저도 아닌 인물이라면 그냥 아무런 수식어도 붙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대부분 게이트에 들어와도 헌터들은 게이트에게 어떤 수식어로 평가받는 경우는 극히 적었다.
'근데 뭐? 알파메일?'
게이트가 헌터를 수식어로 표현을 했을 때 그건 곧 이명이 된다.
천해일에게 '초인'이 붙었던 것처럼 말이다.
'나이도 스물 초반처럼 보이는데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카리스는 알지 못하겠지만.
게이트는 '백태양'의 삶 뿐만이 아닌 '이태옥'의 삶도 포함해서 판단을 내렸었다.
성 경험 횟수를 파악할 수도 없으며, 울린 여자의 눈물만 따로 담아도 수심 10m 수영장을 만들 수 있을 정도.
쓰레기 중의 쓰레기.
그게 바로 이태옥이자 백태양이었다.
"아니 뭘 그렇게 걱정해, 그냥 아무 짓도 못하게 확 제압하면 되는 거잖아?"
"그...후..."
그러다가 네가 홀라당 넘어가 버리면 어떻게 해.
카리스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내뱉으려다가 꾹 참았다.
동료를 믿어야 되는데, 왜 남자 하나 때문에 이런 말을 해야 하는가.
"유이 그냥 나갔다가 빨리 오는 게 어때? 얼굴만 보여주고 와도 어쨌든 데이트를 한 거로 취급할 거 아냐."
"카리스쨩, 왜 이래? 설마 나 좋아해? 혼또니~? 에~ 나 카리스쨩 외모는 초큼 곤란한데."
"지금 장난칠 때야!?"
쾅!
유이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결국 카리스가 폭발했다.
내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고 지금!
카리스는 유이를 날카롭게 노려봤고, 유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태연하게 웃었다.
"왜 그렇게 급발진해, 깜짝 놀랐잖아. 너 설마 지금 무슨 소설 써? 데이트 한 번에 홀라당 내가 걔한테 넘어가는 뭐 그런 거?
으, 너무 싫어, 끔찍해, 죽어 못생긴 카리스.
그가 화를 내든 말든 그녀는 상관없다는 뉘앙스였다.
"애초에 주인공의 기운이 느껴지는 게 두 명이라며."
"그래, 셋째 왕자쪽이 6, 첫째 왕자가 4."
"어쨌든 접근을 하긴 해야 되니까 오히려 잘 된 거지 뭘 그렇게 화를 내, 허접이야?"
"지금 상황에서도 그런 말을 하..."
"허접 카리스, 멍청해, 걱정만 많아."
유이는 싱글벙글 웃으며 카리스를 이해 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을 보냈다.
이래서 남자들은 안 된 다니까.
무슨 데이트 한 번에 뭐 그렇게 사람이 순식간에 바뀔 거라고 생각 하는지.
'내 취향이긴 하지만...'
그거랑 이거랑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진짜 데이트하는 것도 아니고 게이트 내에서 하는 서브 스토리를 진행하는데.
거기서 무슨 연애 감정을 가지고 뭘 어떻게 한 단 말인가?
"아까도 말했지만 여차하면 내가 확 박살 내면 되는 거잖아? 동료 수준 보니까 다 비슷비슷해 보이던데."
"주인공의 기운이 4할 정도 놈에게 느껴진다니까? 그 성기사는 그냥 조연이었잖아."
"그래 4할, 고작 4할이잖아. 그런 놈한테 내가 진다는 게 말이 돼?"
"..."
이 부분은 카리스도 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무력은 자신과 비슷한 수준.
아무리 기운이 느껴진다고 해도 이제 막 생도 수준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는가.
그렇게 결론을 내리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내가 잠깐 이성이 흐려졌었나 봐, 네 말이 맞아. 접근할 수 있을 때 밑천 다 털어먹는 게 맞지."
"또 내가 한 미인계하잖아, 이 건강미로 확... 으악"
푹.
유이가 치마를 살짝 들춰서 허벅지 바깥쪽 부분을 천천히 보이고 있을 때, 카리스가 베개를 던졌다.
시답잖은 장난은 그만두고 자라는 뜻.
"카리스쨩, 진짜 너무 재미없어. 노잼."
"...됐다. 그냥 알아서 해라."
그래 정말로 별일 없겠지.
카리스는 제발 그러길 바라며 침대에 누웠다.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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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또! 또! 저 방치해요!? 아니 대체 왜 다른 여자는 그렇게 챙기면서 전 그냥 방치하는 거에요?! 절 벌써 다 잡은 물고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니 무슨 말이야 그게, 어쩔 수 없었잖아. 그럼 그냥 김민수가 게이트 진행하는 거 얌전히 보고만 있..."
"그게 왜! 절 냅두고 다른 여자랑 데이트하는 걸로 이어지는 건지 묻는 거잖아요!"
적을 속이려면 아군도 속여야 하는 법.
난 완벽한 연출을 위해 멜라니에게도 '좋은 수가 있다'정도로만 말을 얼버무렸었다.
그리고 그 연출 계획 속엔 당연히 '멜라니의 질투'도 포함 되어 있었고 말이다.
'얘가 질투하는 게 왜 이리 좋지?'
화가 나서 팔을 휘두를 때마다 롤빵머리가 찰랑거리는 게 눈에 들어온다.
막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나 있는 표정이 너무 귀여웠다.
고운 이마가 찌푸려지는 것과 정말 상처를 받았는지 살짝 쳐진 입꼬리까지.
그녀가 나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표정을 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개 꼴리네.'
이러고 나서 잘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이좋게 끌어안고 잔다.
그야말로 '허허, 이것 참, 제 고추가 아주 그냥 딱딱해졌습니다'의 연속!
"웃어요? 지금 웃음이 나와요? 제가 이러는 게 웃겨요?!"
"맞아, 네가 지금 너무 귀여워서 웃었어."
너무 당당하게 나오는 태도에 멜라니가 말을 멈췄다.
난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기에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난 널 방치한 게 아니야, 오히려 구한쪽에 가깝지."
"구해요? 무슨 말이에요 그건 또."
"만약에 김민수나 둘째 왕자 그놈이 나와 똑같은 제안했다고 생각해 봐, 그럼 난 널 영락없이 뺏기는 거잖아."
"설마 지금 빼앗기기 전에 뺏었다 뭐 이런 이야기하려는 거에요?"
"맞아, 그리고 그게 사실이잖아."
완벽한 사실은 아니었다.
진실은 언제나 절반 정도는 감춰야 하는 법.
'이건 나니까 된 거겠지.'
게이트에서 대놓고 '포주'로 역할을 배정 해줬을 정도로 여자를 잘 다룬다고 판명이 난 나다.
내가 한 제안도 '첫째 왕자'가 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했기 때문에 승낙을 받은 거겠지.
'왕은 거대한 시스템이다.'
게임으로 치면 NPC 중에서도 메인 NPC.
왕은 모든 상황을 판단하고 스토리를 진행하며 변수를 차단 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퀘스트도 왕의 허가가 떨어지고 나서야 생긴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즉 왕만 잘 구워삶는다면 내 위주로 스토리를 굴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란 거다.
"...확실히 그렇긴 하네요."
그걸 내 곁에서 목격한 멜라니인 만큼 내 설득에 그대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늦게라도 내 계획을 듣고, 결과도 내가 말한 대로 나오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래도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알죠?"
"알지."
이렇게 귀여운 투정은 평생 받아줄 수 있다.
멜라니는 거기까지 말하고 기분이 어느 정도 풀렸는지 머리를 빗기 시작했다.
"...그래도 태양 씨의 부인이 저라는 건 잊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어?"
"게, 게이트 역할 말이에요! 게이트 역할! 저한테 소홀하면 스토리가 이상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말을 할 때마다 점점 쥐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멜라니의 목소리.
난 턱을 괴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떡 벌렸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상황이 다 끝나고 방심하고 있었는데.
이런 엄청난 일격으로 내 심장을 기습할 줄이야.
"다...당연하지."
개연성이고 뭐고 그냥 침대에 같이 잘 때 확 덮쳐?
왜 사람 성욕을 살살 긁는 거야.
'오늘 잠 못 잘 수도 있겠네.'
괴로운 밤이 예상 됐다.
++++
이튿날.
첫 번째 데이트 상대는 둘째 왕자의 신부였다.
[깊은 눈 발동!]
난 그녀를 보자마자 바로 정보를 파악했고, 의외의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처녀네?'
그녀가 처녀라는 사실.
그리고.
'처녀는 내 밥이지.'
난 처녀 폭격기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