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 백태양 엔딩은 처음이지? 천천히 맛 보게 해줄게.
* * *
"흠... 개구리를 성녀님으로 볼 수 있는가, 없는가, 그게 가장 큰 문제네."
셋째 왕자 이반의 성.
그곳에서 김민수는 개구리와 탁자 하나를 두고 마주 보며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주제는 '개구리를 성녀님으로 보고 뽀뽀해야하나'였다.
개굴개굴.
원작 스토리를 몰랐다면 저 개구리가 정말 평범한 개구리인 줄 알았겠지.
민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앞으로 어떻게 하면 완벽하게 게이트를 클리어할지 궁리했다.
일단 최우선 목표는 백태양을 완전히 짓밟아버리는 것.
다시는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내가 사랑했던.
"물론 그렇게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마음 정리도 끝나 있었고... 뭐... 아무튼 그랬던..."
여자들을 뺏어간 죄.
그 죄는 이자까지 쳐서 받아 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성녀님의 역할이 아주 중요합니다."
부부는 일심동체, 일편단심, 백년해로라던데.
제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절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민수는 개구리에게 애절하게 말을 걸었고, 화답이라도 하듯 목소리가 들렸다.
개굴개굴.
그럴게요.
개구리 울음소리와 동시에 들린 성녀의 목소리.
민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개구리와 얼굴을 가까이했다.
"역시...! 성녀님이셨군요...!"
그럼요. 제가 아니면 누구겠어요?
"하긴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불굴의 용사, 다크니스 워리어... 아니 방금 호칭은 잊어 주시고."
김민수는 실언했다는 표정으로 개구리와 거리를 벌렸다.
'후... 아직 가명까지 말씀 드리기엔 좀.'
아무리 미래가 약속된 사이지만 지켜야 할 선은 엄연히 존재했다.
마음 같아선 모든 걸 공유하고 싶었지만 야속한 운명이 가로막고 있었다.
'이 운명만 벗어난다면 바로 그냥 후...'
그렇게 속으로 손주 이름까지 정해 둔 후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일단 그럼... 앞으로 세 가지 정도의 시련이 나올 겁니다. 첫 번째는 빵이고... 두 번째는..."
가장 먼저 설명한 건 고전명작[개구리 공주]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에 대해서였다.
너무 디테일한 부분까진 챙기지 않아도 상관없을 터.
실제로 고전명작[춘향전]에서도 엄청나게 세부적인 걸 요구하지 않았었다.
'그냥 과거 시험을 보는데 한자를 필수로 제시한 빌어먹을 선택지가 문제였지.'
고전명작 속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얼마나 스토리 흐름대로 잘 이끌고 나가냐'다.
'운이 좋게 난 주인공 포지션에 걸렸으니까 그냥 보통 이야기 흐름대로만 가면 돼.'
김민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게이트 이후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양옆에 딱 달라붙은 멜라니와 성녀 그리고 그걸 절망스럽게 바라보는 백태양.
바엘슨은 큰 잘못은 없었지만 자기 편을 들지 않았으니 괘씸죄였다.
"그럼 일단 출입문으로 나가주세요, 그런 다음에 빵을 구워달라고 하시면 됩니다. 아시겠죠 성녀님?"
개굴개굴
그럴게요.
좋아 완벽해.
민수는 이후 스토리를 완벽하게 해결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내용을 알고 있으니 후반부에 필요한 준비물을 미리 얻고자하기 위함이었다.
'이번엔 다를 거다.'
백태양 참교육만을 상상하며 민수는 이튿날이 되길 기다렸다.
멘탈이 박살 내면 백태양 넌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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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내놓기로 한 당일.
멜라니를 제외한 모두의 경악한 표정을 확인하며 난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이거지.'
조연이 주연을 잡아먹는 법.
[춘향전]에서도 해 본 일이었고, 이미 백태양의 삶 자체가 그런 삶이었다.
즉 오히려 안뚱땡이 날 조연에 넣은 게 최악의 한 수가 됐다는 거다.
"저...정말 그걸 수락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은 제안 같더구나, 불만이더냐 이반?"
"아...아니 그것이 아니라."
"뭐 그래... 빵이야 잘 구울 수도 있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첫째 왕자의 말이 맞다."
왕의 말이 한 마디 한 마디 이어질 때마다 비실이와 김민수의 얼굴이 망가진다.
하긴 단 한 번도 이런 변수는 생각해 본 적이 없겠지.
'니 놈들 다 원작 내용을 알고 있나 보지?'
흰 빵을 준비하라고 했을 때 보였던 그 자신만만한 표정들.
그때 지었던 표정들은 어디 갔는지, 전부 다 얼굴엔 당혹스러움뿐이었다.
'이 자식들아, 니들만 승승장구할 줄 알았냐?'
난 어제 일을 떠올리며 아랫입술을 깨물며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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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멜라니와 난 바엘슨을 발견한 뒤 우리 성에 데려왔다.
"제압하고 바로 치료를 한 것 같아요."
"병 주고 약 주고를 진짜 하는 애가 있었네..."
"신기하네요 근데, 출혈의 흔적만 봤을 땐 치명상인데 이렇게 멀쩡하다니."
바엘슨은 피칠갑한 겉모습과 다르게 아주 멀쩡한 상태로 자고 있었다.
'지하 수도 썩은 내를 참고 어떻게 자나 했는데...'
정말로 자는 것처럼 보여서 몸도 흔들어 보고, 뺨도 때려봤으나 바엘슨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멜라니는 비실이와 흑갸루를 의심 했고 난 그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감했다.
목이 돌아갈 정도로 뺨을 후렸는데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뭔가 수작을 부렸다는 거니까.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지는 몰라도 신기하네요... 역할도 뺏고... 바엘슨은 그냥 계속 재우고..."
"그러게... 세력도 꽤 크긴 한 가 봐."
"세력이요?...아...아 그러네요, 오프너가 필요했을 테니까."
오프너는 귀하다.
얼마나 귀하냐면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를 할 정도로 귀했다.
아무리 일감이 없어도 먹고 살만큼 꾸준히 통장을 채워주고 품위 유지비도 넉넉하게 넣어 준다.
강태민 같은 경우야 물욕이 과할 정도로 많은 케이스여서 돈이 딸렸지만.
보통 경우는 돈에 허덕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오프너를 꼬실 정도면... 뭘 쥐어준 거지?'
나중에 이 부분은 게이트에서 나가면 강태민에게 물어봐야겠네.
어차피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사이즈여서 더 논의를 해봤자 무의미했다.
"일단은 흰 빵부터 만들어야겠네."
"근데 흰 빵을 만드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사실 그것도 그래."
흰 빵을 만들어서 그대로 가져다가 바친다는 건 스토리에 그대로 따른다는 의미.
그렇게 된다면 무조건 김민수한테 패배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뭔가 색다른 게 필요하단 말이지."
주연이 이끄는 대로 이야기가 진행 된다면 들러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때문에 조연은 스토리 흐름을 크게 망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견제가 필수였다.
[춘향전]에서 포주와 변 사또로 춘향이를 뺏은 것처럼 말이다.
'아니지... 잠깐만? 그건 완전히 스토리 흐름을 망치는 거였잖아.'
애초에 춘향이쪽도 문제가 있긴 했지만.
이건 넘어가고 중요한 건 결말이 완전히 바뀌어도 상관이 없다는 부분이다.
'...역시.'
게이트 메시지에서도 '그 누구라도' 엔딩을 맞이할 시 클리어로 인정 된다는 말.
이 말은 즉.
'내가 엔딩 내도 된다는 거잖아.'
너무 오랜만에 게이트에 들어와서 그런 걸까.
김민수 위주로 돌아가는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띠링!
긴급 퀘스트가 눈앞에 나타났다.
"어?"
"무슨 일이예요?"
"...좋은 수가 떠올랐어."
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멜라니에게 마저 빵을 다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 이거지.'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다.
그 이후 일은 정말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빵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익숙하게 한 침대에 자는 것까지.
막힘없이 아주 부드러웠다.
'그냥 바닥에서 잔다고 하면 바로 불쌍하게 볼 줄 알았어.'
호감 있는 상대방이 바닥에 자는 걸 얌전히 지켜볼 여자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 당연한 법칙에 따라 멜라니는 한 침대를 쓰는 걸 어쩔 수 없이 참겠다고 말했다.
때문에 난 멜라니를 꼭 끌어안고 잤는데, 끓어오르는 성욕을 억누르느라 혼났었다.
유민이를 하루 만에 공략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하려고 했지만.
한 번 참았다.
수진이와 유민이를 그렇게 공략한 이후 단순히 좆을 막 휘두른다고 능사가 아니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빵 잘 챙겼지?"
"다...당연하죠!"
"소리까지 지르고 그래, 어제 일 때문에 그래?"
"허... 저 진짜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알겠어, 알겠어."
그렇게 밤을 같이 보낸 후.
성으로 걸어가면서 난 멜라니가 어제 일을 어색하게 여기지 않도록 최대한 분위기를 풀어냈다.
부부니까 어쩔 수 없었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난 솔직하게 말하면 좋았다는 감정 표현 등등.
부끄럽게 만들었다가 그걸 순식간에 장난스럽게 바꿔가며 소소한 행복을 누렸다.
"그럼 왕자들은 모두 만든 빵을 보여라."
왕의 말이 끝나자마자 빵을 보이는 김민수와 비실이.
비실이는 두부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새하얀 빵을 내놓았고, 김민수는 천사의 날개 같은 흰 빵을 선보였다.
"그래 다들 새하얀 빠...응? 첫째 왕자여, 그게 무엇이냐?"
"말씀하신 빵입니다."
그러나 내 빵은 달랐다.
보기만 해도 딱딱해 보이는 석탄 같은 빵.
중간중간에 흩날리는 빵가루가 잿가루로 보일 정도의 비주얼.
"왜 이런 빵을 만들었지?"
"아우들이 너무 걱정 됐기 때문입니다."
"...뭐라?"
무슨 걱정된다는 말이냐?
이어지는 왕의 말에 난 웃음을 꾹 참으며 답했다.
"장남으로서 아우들의 신부가 과연 정말로 아우들과 잘 어울리는 한 쌍인지... 그게 너무 걱정이 됩니다. 제가 아우들보다 살아도 훨씬 오래 살았고, 경험도 훨씬 많은데. 아우들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계속 말해 보거라."
"해서 제가 한 번 맛... 아니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그녀들이 공주로서의 품격을 가졌는지 말입니다."
모두가 흰 빵을 가져온다면 왕은 당연히 셋째 왕자 이반, 김민수한테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나 전혀 다른 결과물을 가져온다면?
'나한테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겠지.'
흰 빵 중에서 가장 먹음직스러운 빵보단 아예 검은색 빵이 더 눈에 띌 테니까.
그렇게 왕의 시선을 돌린 다음 내 방식대로 스토리를 이끌어가면 되는 거다.
"어떻게 확인을 하겠다는 거냐."
"한 명씩 한 명씩, 제가 한 번 데이트해보겠습니다."
난 그 말을 내뱉으며 어제 나타났던 긴급 퀘스트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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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퀘스트!
남편이 셋.
부인도 셋.
남편 중에 백태양이 하나.
뭘 해야 할지... 아시죠?
잘 부탁드립니다!
클리어 조건 :: 아시잖아요.
페널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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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하마."
"감사합니다."
난 왕의 말에 깊이 감동한 척하며 고개를 숙였다.
'일단 흑갸루 너부터.'
백태양 엔딩은 처음이지?
천천히 맛 보게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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