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 누가 주인공이야?
* * *
"하... 진짜 화살 너무 멀리 떨어진 거 아냐?"
김민수의 화살은 백태양과 바엘슨이 쏜 것과는 다르게 아주 멀리 날아갔었다.
왕국 안에서 떨어졌다면 이렇게 걸을 일도 없었을 텐데.
그의 화살은 성벽을 넘어 어느 늪지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쩝... 그래도 성녀님이니까."
역할 배정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김민수는 최대한 자기 머리를 굴려 가며 배역들의 정체를 추론 했다.
'왕자는 남자가 하는 거고... 신부는 여자가 하는 거겠지...'
일반적으로 동화는 그런 식으로 진행이 되는 만큼.
신부는 당연히 멜라니와 성녀님이 되는 게 정상일 터.
왕궁에서 첫째 왕자의 얼굴이 김민수였다면 귀족의 딸은 무조건적으로 멜라니일 수밖에 없었다.
멜라니야말로 귀족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여자였으니까.
배역은 보통 그런 식으로 결정되는 거 아니겠는가.
'바엘슨의 신부는 대역이니까...'
그럼 남은 건 단 하나, 성녀 뿐이었다.
'으흐흐...소설 이름도 개구리 공주니까 말이지...'
무슨 모종의 이유로 저주를 받아서 성녀님은 개구리가 된 게 틀림없어.
민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거 말고는 변수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또 나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흘러가는구나."
[춘향전]때는 백태양이 개짓거리하면서 날 막았지만.
이번엔 정말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난 개구리 공주가 무슨 내용인지 알고 있거든."
물론 이를 티 낼 생각은 없었다.
백태양이 이걸 눈치챈다면 바로 방해할 테니까.
일단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면서 착실히 게이트 클리어를 위해 협력하는 '척'을 하는 것.
이게 김민수가 세운 목표였다.
"그러고 나서 클리어 보상을 독차지 한 후에... 이번에야말로 놈을 밟는다."
개굴개굴.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 때 민수는 드디어 개구리를 찾을 수 있었다.
원작 스토리에선 개구리는 화살을 물고 있다고 나와 있었다.
근데 지금 눈앞에 있는 개구리는 화살을 물고 있는 게 아닌 화살을 밟고 있었다.
"뭐... 사소한 거니까 괜찮겠지, 그렇죠 성녀님?"
개굴개굴.
"음... 마음 같아선 바로 뽀뽀부터 하고 싶지만... 그래도 제가 개구리한테 뽀뽀는 못 하니까... 금방 저주 풀어드릴 테니 조금 기다려주세요 성녀님."
개굴개굴.
민수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걸까.
개구리는 입을 크게 벌리며 울음소리를 이어 나갔다.
"백태양... 원작 스토리를 알고 있는 난 신이라고."
넌 나한테 뒤지게 맞을 줄 알아.
그런 다짐하며 민수는 개구리를 머리 위에 올리며 왕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다 왔구나 나의 소중한 왕자들이여."
왕의 말에 난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한 명 얼굴이 바뀌었는데도 그냥 한다고?'
네가 그 소중하다고 말하는 둘째 왕자의 얼굴이 아까랑 너무 다르지 않냐?
저렇게 날렵하고 비열하게 생긴 놈이 아니었잖아.
"그럼 곧바로 결혼식을 진행하겠다. 모두 왕자들은 모두 앞으로 나오거라."
국왕한테 따지고 싶은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으나, 막무가내 진행에 순순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얘넨 진짜 누구지?'
분명 둘째 왕자는 바엘슨이었다.
근데 이게 무슨 일인지 왕궁에 도착했을 땐, 바엘슨은 어디 가고 처음 보는 남녀가 모습을 보였다.
흔히 말하는 더치페이스가 굉장히 안 된 조합이었다.
'외모 보고 사람 판단하면 안 된다지만 참...'
딱 봐도 졸렬하게 생긴 남자와 남자 여럿 꼬셨을 것처럼 생긴 여자.
그냥 얼굴에 '저 악역이고요, 바엘슨은 저희가 해결 했습니다'라고 써져 있었다.
'일단은 지켜보자.'
'그래요.'
당장 바엘슨의 위치를 물어보려고 했지만 일단 스토리 진행이 우선이었기에 멜라니와 나는 참기로 했다.
바엘슨이 죽었다면 진행이고 뭐고 무시 했겠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게이트 진행 사항에 그 어떠한 변동도 없다는 게 그걸 증명해줬다.
'바엘슨이 만약 죽었다면 스토리에 지장이 생겼겠지... 둘째 왕자가 죽었다거나 말이야, 근데 아무런 변동도 없는걸 봐선 그냥 무슨 수작을 부린 거야.'
수작을 부린 다음에 죽였을 가능성? 그럴 수도 있긴 했지만 성녀가 침착했다.
그녀가 얌전히 있다는 건 바엘슨이 멀쩡하다는 것.
따라서 우린 지금 눈앞에 상황에 충실하기로 결론을 내렸던 거다.
"귀족의 딸과 결혼한 첫째 왕자여 축하하니라."
"감사합니다."
결혼식은 엄청 성대하게 이뤄지거나 만인의 축복받는다거나 하지 않았다.
"상인의 딸과 결혼한 둘째 왕자여 축하하니라."
"네 감사합니다."
보통 왕족의 결혼이라면 온 나라가 떠들석할 정도로 소문을 내야 정상이다.
근데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진행하는 이유? 그건 셋째 왕자 때문이었다.
"...개구리와 결혼한 셋째 왕자여... 축하하노라."
"...감사합니다."
김민수.
정확히 말하자면 이반.
그는 스토리상 개구리와 결혼한다.
개구리랑 결혼하는 왕족을 만천하에 알리면서 성대하게 결혼식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근데 정말 개구리랑 결혼하는 겁니까??!?!"
뭐야 왜 저렇게 호들갑이야.
'연기를 하는 건가?'
김민수가 무슨 생각인 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일단 굉장히 하는 게 허접하고 뭘 숨기고 있는 티가 팍팍 났다.
"그것이 네 운명이다."
어이없어 하는 연기를 하는 민수와 기계 같은 왕의 대사.
왕의 눈엔 무슨 일이 있어도 이야기를 진행 시키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보였다.
왕은 모두에게 축복한다는 말을 내뱉은 뒤 퀘스트를 주는 NPC처럼 입을 열었다.
굉장히 작위적이고 갑작스러운 대사였다.
"그럼 내일까지 흰 빵을 구워오도록 하여라."
이제 해산하도록.
왕의 말을 끝으로 영화 컷씬이 넘어가는 것처럼 우린 어전 밖에 나와 있었다.
결혼식이라고 하면서 반지를 교환하거나 뽀뽀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다는 게 아쉬웠다.
'멜라니랑 진도를 나갈 기회인데...'
형식상이라고는 해도 부부라는 관계로 묶였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건 말도 안 됐다.
일단 그 부분은 넘어가고.
"근데 니네 누구야?"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생겼다.
졸렬한 남자와...
아니 그냥 부르기 쉽게 명칭을 비실이와 흑갸루 정도로 통일했다.
비실이는 내 말을 듣자마자 날을 세우며 입을 열었다.
"설마 우리한테 니네라고 한 건가? 요즘 애들은 예의가 너무 없다니까."
"그러게, 예전에 저러면 바로 우리한테 죽었는데 참..."
흑갸루는 어전 밖으로 나오자마자 비실이 품에서 벗어난 상태였는데, 사이가 엄청 좋은 건 아닌 듯했다.
정말 딱 비지니스적인 동료 느낌이 난다고 해야 하나.
"백태양! 보고도 모르겠어? 딱 봐도 적이잖아. 잠시만 기다려 줘요 성녀님, 제가 곧바로 처리하겠습니다."
민수는 상황 파악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성녀와 멜라니 앞에서 활약하는 게 더 중요해 보였다.
손바닥 위에 고고하게 올려져 있는 개구리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놓고, 멜라니를 힐끔거리는 김민수.
참 바쁘게 산다 싶었다.
'개구리가 성녀라고 판단을 내린 건가?'
놈이 내린 판단치곤 꽤 날카로웠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래 뭐... 나쁘지는 않은데.'
문제는 싸울 분위기가 전혀 아니라는 거다.
왕이 있는 어전 문밖에서 갑자기 치고 박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당장 주변에 있는 기사들만 봐도 흉흉하게 우리를 부라리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다 트롤 킹이랑 맞먹는 수준... 어쩌면 그 이상.'
왕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뭐라고 못 하는 거지.
조금이라도 왕궁에 위협이 될 움직임을 보인다면 바로 제압이 들어올 터.
사실 그걸 알고서 난 곧바로 비실이와 흑갸루를 떠본 거고 말이다.
'아무리 강해봤자 여기선 한 번 참아야지.'
어지간한 또라이가 아니고선 얌전히 넘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음... 우리는 글쎄... 아직 말해주기가 좀 그런데?"
"그러게, 아직 제대로 정한 게 아니어서 말이야."
비실이의 말에 흑갸루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뒷골이 땡겨 왔다.
'또또, 무슨 흑막 같은 대사...하...진짜.'
안뚱땡 하나만으로도 짜증 나 죽겠는데, 여기서 새로운 떡밥이라니.
김민수 여자 다 뺏고 주인공 지분 다 차지하면 해피 엔딩 아니었어?
그냥 마음 편히 하렘 차리고 싶다고.
"일단 뭐... 내일 보자, 어차피 세 번 정도는 꼭 만나야 되니까."
"맞아 맞아, 그럼 안녕~"
더 여기서 입씨름을 해봤자 의미가 없다고 판단 했는지, 비실이와 흑갸루는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세 번이라고?'
무언가를 아는 듯한 대사.
비실이와 흑갸루는 [개구리 공주]가 무슨 내용인지 알고 있는 듯했다.
"이런... 내가 유니콘 각성을 하기도 전에 도망치다니... 운이 좋군."
"딱 봐도 너보다 세 보이는데 무슨."
"...! 백태양... 날 모욕하는 건 이번 게이트가 마지막일 거다!"
"...그래...근데 그전에 우리 같이 바엘슨을 찾아보지 않..."
"싫어!"
무슨 사춘기 소녀냐?
김민수는 거기까지 말을 내뱉은 뒤, 개구리를 소중하게 머리 위에 올려 두고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갔다.
"...저희라도 일단 찾아보죠."
"그래, 뭐..."
이번 게이트에서 귀찮은 일들이 아주 많이 벌어질 것 같음을 예상하며.
난 멜라니와 함께 바엘슨이 이동했을 예상 경로로 걸음을 옮겼다.
+++++++++++++++++++
"카리스, 누가 주인공인지 파악 했어?"
"아니... 나도 그걸 모르겠어."
카리스, 백태양한테 속으로 비실이라 불린 사내는 마른세수를 반복했다.
정말 일이 쉽게 풀릴 줄 알았는데, 이렇게 꼬일 줄이야.
"둘 다 주인공인 건 말이 안 되는데..."
다른 소설이면 예외가 있을 수 있어도 이 소설의 주인공은 오직 단 한 명뿐이다.
근데 어떻게 된 일인지 주인공의 기운이 두 명에게 느껴졌다.
그것도 비율로 따지면 6:4 정도로 말이다.
"잘생긴 쪽이 주인공이지 않을까? 내 취향이던데."
"...유이, 제발 그런 쪽 발상은 하지 말아 줄래?"
"고멘~"
주인공을 죽이긴 해야 하는데.
오직 죽일 수 있는 건 단 한 명뿐.
"그 목소리 큰 찌질이가 주인공일 것 같기도하고..."
"으음..."
비실이와 흑갸루, 아니 카리스와 유이.
그들은 정말 오랜만에 깊은 난제를 맞닥트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