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 레이리들은 그냥 쉬엄쉬엄하고 말이야
* * *
"너희들이 실습 할 게이트는 C급 게이트로, 트롤 왕국에 들어갈 예정이다."
"C급이요?"
깜짝 놀라는 민수와 다르게 놈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석구 교관은 놀라는 반응을 예상 했다는 듯 PPT 자료 화면을 넘기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앞으로도 자주 말하게 될 테지만... 최근 정말 던전과 게이트의 숫자가 과할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그렇기에 실습 교육이긴 하지만 교육의 느낌보단 실습 그 자체의 느낌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질문 있나?"
"트롤 왕국은 어떤 곳입니까?"
"지금부터 설명해주겠다. 일단 현재 합동 교육에서 나눠진 팀의 수는……"
김석구의 설명이 이어지고 있을 때 난 김민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슬아슬하게 제시간에 도착한 다음 열심히 하는 척이라니.
속셈이 너무 뻔히 보이는 수작 아니던가.
'그게 효과가 좋긴 하지 근데.'
여태까지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말이다.
김민수는 결석부터 시작해 교류회 분위기를 박살 낸 장본인 아니던가.
놈은 눈치채지 못 했겠지만, 놈을 바라보는 김석구의 표정은 정말 뭐라도 한 마디 하고 싶어 근질거린다는 얼굴이었다.
성녀가 있어서 참는다는 느낌이 팍팍 느껴질 정도.
수업에 열심히 집중하고 있기에 망정이지 딴 짓했다면 바로 죽도록 팼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나저나 C급은 좀 쎈데?'
글라디르에서 날고 기는 헌터들이 주로 활동하는 무대가 B에서 C급인 걸 감안했을 때.
C급 게이트를 1학년들끼리 간다는 건 굉장히 과감한결단이었다.
게이트 보수를 올려서 받고, 돈이 입금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이런 이야기도 전부 다 C급 게이트가 기준이었다.
그 이하의 난이도는 어찌어찌 4급 5급을 때려 넣으면 된다지만 C급부터는 완전 이야기가 달리지니 말이다.
"우선 C급부터는 완전히 그 환경이 다를 거다. 근데 뭐... 여기 있는 멤버 전원 S급 게이트 클리어 경험이 있으니 그 부분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김석구는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티는 안 나지만 아무래도 성녀가 앞에 있는 자리인지라 긴장한 게 조금씩 눈에 보였다.
하긴 한 나라의 왕 같은 존재인데 긴장이 안 될 리가 없겠지.
콕 콕.
'음?'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을 때.
누가 팔을 찌르길래 고개를 돌렸더니 거기엔 멜라니가 '내 말이 맞죠?'라는 얼굴로 씩 웃고 있었다.
그래 확실히 맞긴 하네.
멜라니의 뒷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니 똥 굵다'는 얼굴로 같이 마주 보고 웃었다.
"게이트 클리어 조건은 트롤 킹의 제거다. 히든 클리어 조건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없는걸로 알고 있고, 이미 비슷한 유형의 게이트가 수차례 공략 되어 있어서 어찌 보면 실질적인 난이도는 E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혹시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네 성녀님 언제든지 하셔도 됩니다."
성녀가 입을 열자마자 순식간에 반말에서 존대로 바뀌는 김석구.
확실히 '성녀는 히로인이다'라고 생각해서 심적 거리가 가까워졌는지, 그녀가 어렵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근데 막상 이렇게 그녀의 영향력이 팍팍 풍기는 자리에 같이 있으면, 성녀가 어떤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만인에게 존중과 사랑을 받는 존재라...'
그런 사람을 김민수가 노리고 있다라.
웃기는 일이다.
"게이트 조사를 누가 했는 지 알 수 있을까요? 자세하게 명단을 받고 싶어서요."
"아 그거라면 혹시 이론 교육이 끝나고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앗, 네네. 그럼 그렇게 부탁드릴게요."
명단이 왜 필요하지?
궁금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일단은 그냥 넘기기로 했다.
"그럼 마저 설명하자면... 게이트 예상 발생지는 보금자리몰 뒤에 있는 철악산이다.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바로 투입될 예정이니 절대 늦어선 안 된다. 결석은 더더욱 안 되고 말이야."
김석구는 그리 말하며 김민수를 노려봤다.
또 빠지면 이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거라는 엄중한 경고.
그냥 수업을 빠진 것도 아니고 중요한 행사 개최식을 빠진 거니까 이 정돈 당연한 취급이었다.
주인공 지분율까지 뺏겼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런 이유 없이 봐주던 시절은 끝났다.
'김민수는 그걸 눈치 못 챈 것 같지만.'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한쪽 눈으로는 성녀를 보고, 반대쪽 눈으로는 멜라니를 바라보는 게 참.
저렇게 열심히 사는 것도 하나의 삶이구나 싶었다.
존중 같은 건 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냥 단지 얼른 주인공 지분율을 다 뺏어서 진짜 마음 편히 한 번 패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우선은 기본적인 설명은 다 끝났다. 사실 포지션 같은 부분을 더 말해주고 싶지만, S급 게이트 경험자들끼리 상의를 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 돼서 말이야. 그럼 여기까지 하고 난 이만 가도록 하지."
나 간다고 바로 자리 뜨지 말고 반드시 포지션에 대한 상의는 하도록.
""고생하셨습니다.""
김석구는 그렇게 말하며 교실에서 나갔고, 교실엔 적막이 감돌았다.
대놓고 '이걸 말해라!'라고 자리를 깔아주니까 다들 말문이 막힌 거였다.
바로 그때.
"근데 어렵게 생각할 거 있어? 그냥 나랑 바엘슨 그리고 백태양이 전방에서 모든 걸 클리어하면 되잖아. 레이리들은 그냥 쉬엄쉬엄하고 말이야."
김민수가 나섰다.
방금 나 되게 스윗하지 않았어? 라는 자신감이 가득 찬 얼굴을 하며 칠판에 대놓고 '레이리'라고 쓰는.
노블 사교계 파티에서 했던 짓거리를 반성하지 않고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보면 바엘슨은 게임으로 치면 전형적인 탱커 느낌이잖아? 마침 성기사 계열의 스킬이기도 하니까... 그니까 전방 중에서도 최전방. 그리고 백태양은 딜탱이니까 그 두 번째 쯤에 있으면 되고... 나는 굳이 따지자면 딜러 느낌이니까 마지막에 있으면 되는 거야, 다들 이해하고 있지?"
민수는 그리 말하면서 동그라미 세 개를 연이어 각자의 이름을 써넣었다.
개미를 삼등분해서 머리 가슴 배 나누는 것도 아니고 뭐 하는 건지.
"그리고 성녀님과 멜라니는 그냥 편하게 쉬는 거지 우리 셋이서 단 한 마리의 몬스터도 놓칠 리가 없으니까 말이야. 안 그래?"
"..."
가뜩이나 조용한 교실이 완전히 침묵 속으로 빠져 버렸다.
멜라니는 질렸다는 얼굴로 김민수를 바라봤고.
바엘슨은 내가 지금 들은 게 진짠가? 싶어서 계속 귀를 후비고 있었다.
나는 뭐 말할 것도 없고.
성녀는……
짝 짝 짝 짝 짝
"와 용사님 어떻게 그런 생각을?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저희랑 완전히 다른 지능을 갖고 계신 것 같은데요? 진짜 수준이 너무! 너무 압도적으로 달라요!"
물개박수를 치며 민수의 말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우헤헤헤, 제가 또 이런 부분은 특출 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인터넷 이야기랑 아주 비슷한 수준의 그런 것 같아요! 어쩜 이렇게 창의력이 기가 막히신지!"
"우후후후후! 제가 또 그런 과거의 영광. 뭐 온고지신 이런 거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염병하네.
지금 너 꼽주는 거잖아.
사람이 눈치가 없어도 어떻게 저렇게 없지?
뭐라고 한마디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멜라니가 내 팔을 붙잡았다.
"제가 할게요."
"뭘?"
"전 이런 시간 낭비 하고 싶지 않아요."
멜라니는 굉장히 불쾌한 얼굴로 김민수 쪽으로 걸어 나갔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좀 하지 마세요. 여기 성녀님이 당신보다 강할 텐데 지키긴 누가 뭘 지킨다는 거예요 도대체? 그리고 애초에 그런 실력도 안 되잖아요. 태양 씨라면 모를까 진짜……"
멜라니는 김민수가 내뱉은 모든 개소리를 절대로 반박하지 못하게 완벽한 근거로 받아치기 시작했다.
김민수는 무슨 만화 캐릭터 마냥 점점 쭈그려지더니 이내 구석에 틀어박혔고, 그렇게 상황은 깔끔하게 마무리됐다.
'험난하다. 험난해.'
내일 과연 이 조합으로 무사히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을지.
의문이 깊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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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힘들다..."
합동교육 첫째 날이 끝난 후.
난 침대에 드러누워 무기력하게 천장을 올려다봤다.
성녀가 나타난 이후부터 뭔가 조금씩 엇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확실한 건 그녀가 적은 아니라는 건데 그렇다고 아군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했다.
김민수를 은근히 돌려까는 건 맞지만 엄연히 따지자면 김민수의 입장에 있는 거니까.
'다시 또 끌려다니는 전개가 됐네.'
게이트가 열리고 거기 안에 들어갈 때까지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냥 시원하게 성녀 앞에서 자지 깐 다음에 무지성으로 따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민수가 근데 트라우마가 얼마나 심할지를 모르겠네.'
놈의 자기 합리화 능력은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유민이에 이어서 혜미까지 그렇게 뺏겨 놓고 바로 멜라니랑 성녀한테 '레이리' 이러는 걸 보면.
진짜 만만치 않은 놈은 확실했다.
"춘향아."
뿅.
"네 나으리!"
이름을 부르자마자 바로 튀어나오는 춘향이.
난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오늘 있었던 모든 일의 스트레스를 풀고자 했다.
"벌려 봐."
"네에."
춘향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치마를 들추더니.
검지와 중지를 사용해 보지를 훤히 벌려 나에게 들이밀었다.
"나으리 어서 빨리 소녀에게 자궁압박교배 프레스로 임신 시켜 주시와요..."
"헛소리 말고."
내일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까지 몸을 확실히 풀어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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