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 아주 의지가 넘치네요, 금방 금방 맞고 회복하는 게 정말 멋있어요 용사님!
* * *
'그건 대체 뭐였을까.'
또 각성을 하려는 징조였던 건지 아니면 새로운 무언가였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 너무 답답했다.
차라리 김민수한테 물어보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이놈은 어디 간 건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딴생각 계속 하실 거면 저 가구요."
"아냐 왜 가, 가지 마."
"이런 식으로 하면 제가 서운하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있는데도 절 방치하니까요."
"아니 내가 무슨 널 방치했다고."
잡념은 멜라니의 말에 모두 싹 날아갔다.
'진짜 오랜만인 것 같네.'
사실 순서만 놓고 봤을 땐 유민이 바로 다음이 되어야 정상인데.
여러 사정이 겹치고 일정이 꼬이고 민수가 트롤링을 하다 보니 순서가 많이 엉켰다.
그래도 꾸준히 하루도 안 빼먹고 틈틈이 연락하는데 어떻게 아무런 계기가 안 생겼을까.
"신기하긴 하네."
"뭐가요?"
"우리가 이제야 만났다는 게."
"헛소리하지 말아요, 그쪽이 저 방치한 거라니까요?"
여기엔 진짜 너한테 설명할 수 없지만 아주 복잡한 사정이 있어.
하렘을 위해서 3P도 좀 하고 NTL 퀘스트도 깨고 그러느라어쩔 수가 없었어, 진짜야.
방금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혀 위에 올려서 내보내고 싶었다.
저것 말고는 설명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거짓말하자니 좀...'
양심상 그건 꺼려졌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이렇게 다시 옆에 있잖아."
"능글능글하게 대답하지 말고 좀 진지해 지세요. 계속 이런 식이면 제 등 못 맡겨요."
"어차피 너 등 뒤엔 아무도 못 오게 할 거라서 괜찮아."
"아 진짜!"
"알았어, 미안 미안."
등을 못 맡긴다라.
'그건 안 되지.'
당장 내일 있을 실습 교육의 한 팀으로서 그건 절대 지양해야 할 일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팀을 이렇게 짠 건 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뭘 노리는 지 뻔히 보이는 조합 아냐?'
나, 멜라니, 김민수, 바엘슨 그리고 성녀까지.
처음 팀이 발표가 됐을 땐 내가 뭘 잘못 읽고 있나 이 생각마저 들었었다.
그야말로 드림팀.
예전에 밸런스를 맞추겠다고 김민수와 나를 다른 반에 지원 보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결과였다.
나와 바엘슨 그리고 김민수가 전위, 성녀가 중위, 멜라니가 후위를 담당하는 말도 안 되는 조합.
말이 생도 다섯 명이지, 어디 1급 헌터팀과 비교해 봤을 때도 크게 밀리지 않을 만한 파워였다.
그리고 동시에 어떤 전개가 펼쳐질 지 너무 눈에 뻔히 보이는 순간이었다.
"용사와 성녀, 누가 짰는 지는 몰라도 되게 고전 이야기 좋아할 것 같네, 그치?"
"그러게요. 거기에 바엘슨까지 넣을 걸 보면 또 마냥 용사를 신뢰하지는 않는 것 같구요."
"그래?"
"그럼요. 애초에 합동 교육으로 진행 되는 실습은 아무리 난이도가 높아봤자 D급 정도예요. 근데 거기에 상시 발동형 메인 스킬 보유자를 넷이나 끼워 넣는 게 말이 돼요? 하나만 있어도 클리어가 되는 마당에... 루베니아 최고의 성기사까지 넣는다? 이건 너무 속보이죠."
우리를 못 믿는 거나 다름없어요.
멜라니의 이어지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확실히 그렇긴 하네."
정확하게 말하자면 김민수를 믿지 못 하는 게 분명했다.
용사와 성녀, 붙어 다닐 수밖에 없는 둘 사이를 중재하려면 자기 쪽 사람 하나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한 거겠지.
게이트에 들어가게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바엘슨의 실력이라면 성녀를 옆구리에 끼고 버프를 받으며 일인돌파를 하는 게 가능할 터.
아주 합리적인 보험임과 동시에 비효율적인 전력 낭비였다.
"솔직히 이번 조합에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예요. 김지혁 선배 같은 경우도 약한 팀에 지원을 들어가는 마당에 저희는 왜..."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다 생각이 있겠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본심은 달랐다.
'생각은 무슨, 빌어먹을 안뚱땡이 개짓거리 한 거겠지.'
예전에 고전명작[돈키호테] 게이트처럼 흔들다리 효과를 일으켜 보려는 개수작이 확실했다.
성녀와 멜라니까지 넣어가며 두 명을 동시에 뭐 어떻게 해 보겠다는 음흉한 속셈.
나랑 바엘슨을 넣는 이유?
'아마 위험한 건 우리가 처리하고 멋진 장면만 김민수한테 주려는 수작 때문이겠지.'
멜라니가 눈치채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이 조합을 짬으로 인해 교관이 우리 쪽에 붙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주 그냥 대놓고 일을 저질러 보겠다 뭐 이런 건가?'
교관도 없겠다.
게이트는 나랑 바엘슨이 있겠다.
김민수는 성녀와 멜라니와 함께 룰루랄라 놀겠다?
그게 되겠냐고.
애초에 그렇게 되려면 대전제가 '두 여자 모두 김민수를 좋아한다'가 깔리고 들어가야 했다.
근데 좋아하는커녕 멜라니는 김민수를 이젠 거의 혐오하는 쪽에 가까웠다.
모델 건도 멋대로 도망치고 기업 이미지를 바닥으로 내리찍을 뻔하고.
여러 가지 악감정이 쌓여 있는 마당에 고작 게이트 한 번으로 그런 걸 싹 뒤집으려고 하다니.
'이게 무슨 갑자기 가슴 만지면 얼굴 발갛게 되면서 부끄러워하는 라노벨인 줄 아나.'
그간 있었던 응어리는 차분히 대화나 사과로 푸는 거지.
급박한 상황에서 둘만 있다고 '내가 이땐 이래서 미안 했어... 오해야...' 이런 식으로 풀리는 게 아닌데.
안뚱땡과 김민수의 수준을 생각해 봤을 땐, 생각이 왜 저기에 머물렀는 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복잡하게 생각하고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가 이거잖아요."
"그렇긴 하지."
"아니면 혹시 C급 게이트에 넣으려는 거 아닐까요? 그도 그럴게 태양 씨랑 저는 S급 게이트 클리어 경험이 있잖아요."
"민수도 있고."
"맞아요 셋이 있으니까... 난이도 있는 게이트에 넣어서 홍보 목적으로 쓰려는 걸 수도 있겠어요!"
"그럴 수도 있겠네."
멜라니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며 게이트 난이도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무조건 S급 게이트일 확률이 100%였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이 멤버가 위험에 빠지기란 하늘에 별 따기니까.'
무슨 뭐만 하면 S급 게이트냐.
어이가 없네.
"근데 다들 대체 언제 오는 거죠? 조금 있으면 실습 이론 시작인데..."
"그러게, 우리 몰래 뭐 맛있는 거 먹고 있는 거 아냐?"
"제발 그런 진부한 대사 좀 하지 마요, 재미없어요."
"쩝, 그래."
멜라니의 싸늘한 반응에 상처 입은 척을 하며 빈자리를 살펴봤다.
성녀, 김민수 그리고 바엘슨.
'얘네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지?'
일단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 말고는 없었다.
제발 김민수가 안 보이는 사이에 트롤링하지 않길 바라며.
난 소소하게 멜라니와 담소를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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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정말이십니까 성녀님?"
"그럼요."
"후하후하후하후하후하... 저랑 혹시 같은 팀을... 짜시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백태양이 그토록 찾던 김민수는 성녀의 곁에 있었다.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콧김을 거세게 뿜어내며.
'나 지금 매우 들떠 있다'를 온몸으로 표현하며 말이다.
"당연히 용사랑 성녀는 붙어 있어야 하니까요, 저희 쪽 전력이 많이 강해졌지만 뭐... 그만큼 강한 게이트를 가면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쵸?"
"네 그렇습니다. 저와 태양 씨와 김민수 생도까지 있는 마당에 뭐가 문제겠습니까?"
"...아아...예예..."
쟤는 왜 있는 거야.
김민수는 성녀와 자기 사이를 떡하니 가로막고 있는 바엘슨을 째려봤다.
'넌 눈치도 없냐?'
용사와 성녀가 사이좋게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그사이에 껴서 뭐라는 거야 진짜.
심지어 이 자리에 없는 백태양, 그 빌어먹을 자식의 이름까지 거론하는 꼴이라니.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나저나 용사님."
"네 성녀님!"
용사님으로 불리며, 성녀님으로 부른다.
이 얼마나 짜릿하며 뇌가 녹아버릴 것만 같은 달달함이란 말인가.
사실 마음 같아선 그냥 '용사'가 아닌 '불굴의 용사'라거나 '다크니스 워리어'라고 불러 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일단 '지금'은 참기로 했다.
시각은 차고 넘치니까.
"그때 교류회에서 태양 씨랑 멋지게 싸웠을 때 발밑에서 빛이 났던 거 알고 계신가요?"
"비...빛이요?"
"네 빛이요. 뭔가 계속 기다리시면서 아직이다...! 아직이야...! 라고 막 하셨잖아요."
성녀는 어수룩하게 김민수의 발성을 따라 하며 그 추한 몸짓을 재현했다.
다리를 후들거리면서 주먹을 바들바들 떠는 모습.
바엘슨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자기 옆구리에 있던 투구를 뒤집어썼다.
'절대로 웃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그건 용사한테 실례가 되는 행동이야.
바엘슨은 루베니아 국가를 부르고 슬픈 생각하는 등 웃음을 참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아...그건 잘 모르겠습니다...아무래도 카운터 펀치 같은걸... 그... 노리지 않았을까."
김민수는 적잖이 당황한 듯 얼굴을 붉히며 말을 절었고.
"아니예요. 그런 걸 노리시기에는 굉장히 처참한 상태셨는걸요. 보세요 제가 다 찍어왔어요."
성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를 재생시켜 김민수가 일방적으로 처맞는 장면을 보여줬다.
아직...아직이야...!
뭐래.
퍽 퍽 퍽 퍽.
맞는 소리가 카메라를 뚫고 나올 정도로 선명해서, 김민수는 괜히 맞았던 부위들을 한 번씩 쓰다듬었다.
"제...제가 너무 맞아서 그냥...그랬나봅니다. 근데 빛은 진짜 모르겠어요."
"아... 모르시는 구나..."
"그...그럼요!"
어라.
내 행복했던 시각은 어디에?
김민수는 갑자기 왜 이런 시련이 찾아왔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여자가 제일 싫어하는 남자한테 맞는 영상을 틀어 주며 해명을 하라는 이 상황이.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알겠어요. 그럼 이만 실습 이론 교육 받으러 가 볼까요?"
"네네 좋아요! 좋습니다 성녀님!"
"아주 의지가 넘치네요, 금방 금방 맞고 회복하는 게 정말 멋있어요 용사님!"
"우헤헤헤, 제가 또 불굴의 용사입니다."
아니네.
행복한 시간 맞구나.
민수는 금방 해맑게 웃으며 성녀와 함께 실습 이론 교육실로 몸을 옮겼다.
"용사님 죄송하지만 거기 제자리입니다."
"...아...그...넵."
바엘슨도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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