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 전 김민수 생도한테 한 번 접근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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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오늘은 좀 다르네?'
민수를 신나게 두드릴 무렵 여느 때와는 다르게 굉장히 잘 버틴다는 걸 느꼈다.
원래 같았으면 적당히 맞다가 쓰러진 척 하거나 기절을 해야 정상인데.
오늘은 성녀가 보고 있어서 그런지 아주 온몸에 힘을 빡 주고 어떻게든 견디고 있었다.
'근데 오히려 더 그래서 의미가 없는 건데.'
몸에 힘을 준다는 건 그만큼 몸이 굳는다는 것.
타격을 당했을 때의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딱 그뿐이었다.
발이 굳으니 허리가 멈추고 허리가 멈추니 움직임에 제약이 생긴다.
김민수는 이 간단한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번데기처럼 버티기만을 반복했다.
바닥도 굴러보고 맞을 때 힘의 방향으로 몸을 돌려보기도하고.
이것저것 하기는 했지만 글쎄.
"이쯤 했으면 그냥 포기 하는 게 어때? 불쌍해서 그래."
"후후 겁나나 백태양? 내가 화려하게 널 이기는 모습이, 두려운 거지?"
뭐라는 거야.
대체 얘는 무슨 상상에 빠져 있길래 이런 상황에서도 저런 말이 나오는 걸까.
얼굴 한쪽은 크게 부어 있고 다리는 후들거리는 지금.
김민수는 아직 승리를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초 근거리에서 네가 날 어떻게 이기냐고.'
검을 잡아도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놈이 맨몸싸움에서 자신을 이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툭.
왼손을 가볍게 휘둘러 페이크로 빈틈을 만들고.
"꾸에....읍...!"
왼손에 의해 몸이 기울 때 바로 오른 주먹을 꽂아 넣어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뽑아낸다.
어디서 맷집 훈련이라고 한 건지 평소 같았으면 길게 들렸어야 할 '꾸에엑' 소리가 안 나왔다.
막스 베라미치가 김민수를 두드렸을 때처럼 말이다.
이건 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민수를 한두 번 패보는 아마추어가 아닌 만큼.
그 어떤 상황이 와도 돼지 멱 따는 소리는 기가 막히게 뽑아내야 프로라고 불릴 수 있거늘.
'곤란한데.'
이런 식이라면 나중에 또 막스 같은 놈이 와서 민수를 팰 때.
'내가 그놈 담당일진이야'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었다.
"아! 김민수 선수! 버티기만 하면 희망이 없습니다!"
김지혁의 정확한 해설에 몸이 반응이라도 한 걸까.
민수는 꾸역꾸역 몸을 움직여 내 얼굴 쪽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문제는 그게 하품이 나올 만큼 느린 속도라는 거다.
슥.
가볍게 놈의 주먹을 피해 주고.
빡.
정확하게 간 쪽으로 주먹을 쑤셔 넣는다.
리버샷.
일반인이 약하게 때려도 켁켁 거리는 걸, 신체가 극도로 강화된 각성자가 전력으로 쑤셔 넣었다?
이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는 수준이었다.
"끄...읍...흐으윽...아직...아직이야...!"
"뭐가 아직이야, 끝났는데."
민수는 리버샷을 한 대 맞자마자 온몸에 전기 충격이라도 온 것처럼 발발발 떨기 시작했다.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것까지 애써 참으며 파이팅 포즈를 취하는 민수는 정말 애처로웠다.
교류회에 난입한 것도 쟤고, 민폐만 끼치는 것도 쟨데 왜 내가 나쁜 놈 같지.
그림만 봤을 땐 약자를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양아치였다.
'근데 보통 지고 있을 때 아직이라는 말을 쓰나...?'
때를 기다린다는 말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은데.
'기다릴 게 뭐가 있지?'
카운터 펀치 몇 번 날린다고 해서 김민수가 이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힘내라! 힘내라! 용사님~!"
때마침 들리는 성녀의 응원.
난 이걸 기다리는 건가? 라는 생각도 했지만 저건 순수한 응원이라고 보기엔 거리가 멀었다.
카메라를 들고 면사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우리를 찍는 그녀.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해맑게 웃고 있다는 게 티가 확 났다.
'왜 찍는 거야.'
김민수를 응원하는 입장이면 민수가 맞고 있는 건 안 찍어야 되는 거 아냐?
응원하는 뉘앙스도 약간 김민수가 이기길 바라는 게 아니라 버텨서 더 맞길 바라는 그런 쪽이었다.
어디까지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묘하게 동족 냄새가 난단 말이야.'
종잡을 수 없는 성녀를 뒤로하고 민수를 끝나려는 순간.
김민수가 환하게 웃는 걸 볼 수 있었다.
'설마 성녀가 응원하는 걸 기다린 건가?'
뭐 그런 멍청한 생각이 다 있어.
응원한다고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어?"
김지혁의 놀란 음성과 함께 민수의 발밑에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바뀌긴 하네.'
한 번 봤던 빛이었다.
복도에서 김민수가 난동을 피우며 유니콘 각성인지 뭔지 했던 그 빛과 아주 유사했다.
'설마 교류회에서 능력을 쓰려는 건가?'
어디까지 민폐를 끼쳐야 속이 후련한 거야.
난 급히 민수에게 달려들어서 놈의 전신을 두들겼다.
"꾸욱...엑....버텨야 돼...! 버텨야 돼...!"
"버티긴 뭘 버텨."
이젠 더 이상 민수를 패며 스트레스 해소 같은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김민수를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빅토리 아카데미의 위상이 떨어질 게 확실했다.
학생 대표가 자진해서 문제아를 처단한다면 이미지가 완전히 바닥을 치지는 않을 터.
'진짜 환장하겠네.'
김민수가 먼저 능력을 쓰냐 아니면 그 전에 내가 먼저 김민수를 제압 하냐.
본의 아니게 교류회에서 타임 어택하게 됐다.
김지혁이 뭐라고 말을 하며 주의라도 끌면 좋을 텐데.
학생회장도 사람인지, 인지를 뛰어넘은 상황을 직면하니 입이 굳어 버린 모양이다.
"이 일격엡...!"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제발."
상황 파악을 아예 못 하나?
눈치라는 게 없는 건가?
능력을 쓰면 안 되는 교류회에서 대놓고 능력을 쓴다고 광고까지 해?
누군 스킬이 없어서 안 쓰는 줄 아나.
'생각보다 빛이 차오르는 속도가 빠르다.'
난 필사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으로 민수의 턱을 치면서 그대로 팔을 휘둘러 팔꿈치까지 얼굴에 직격 시켰다.
'교관들이 정지를 외치지 않는덴 다 이유가 있어.'
그들 또한 내가 미리 끝내주길 바라는 거다.
교관들이 직접 나서서 김민수에게 제재를 가하는 순간.
빅토리 아카데미 측의 완전한 실수 인정이 되어 버리는 거다.
그러나 내가 막는다면 개개인 학생의 일탈로 무마할 가능성이라도 생기게 된다.
원.
짧게 오른 주먹을 뻗어서 명치를 가격한 뒤 재빠르게 회수하고 왼 주먹을 내민다.
내밀며 왼쪽 발끝을 돌리며 그대로 허리와 어깨를 사용해 주먹을 휘두른다.
투 훅.
"꾸에에에엑!"
체육 대회에서 박 터트리기하다가 콩주머니를 맞고 박이 터지듯.
김민수는 시원하게 돼지 멱 따는 소리를 전방에 발사하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불굴의 용사가 괜히 있는 말은 아니었는 지 하도 때리느냐 손등이 얼얼 했다.
"아지히익...히야아..."
"뭐?"
놈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김민수의 발밑에 있는 빛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더 거세졌다.
아무도 모르는 일반인이 봐도 빛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건 명확한 그때.
"거기까지."
성녀가 나섰다.
성녀는 마치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처럼.
가벼운 손짓 몇 번으로 김민수 발밑에 뿜어져 나오는 빛을 모조리 지워 버렸다.
조금 전까지 카메라를 들고 민수를 응원하던 사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무래도 백태양 생도와 용사님이 싸우면서 게이트가 생기려고 했던 것 같네요."
두 분은 싸우느라 그 부분을 미처 신경 못 쓰신 것 같습니다.
그녀는 그 말을 내뱉고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하게 자리에 앉았다.
'뭐야 이게.'
할 거면 진즉에 하지 왜 이제 와서 상황을 마무리 짓는 거야.
고맙긴 했지만 괜히 헛짓거리를 한 기분이어서 아주 찝찝했다.
"어...김민수 생도가 넉다운이 됐으므로 교류회 승자는 백태양입니다!"
급하게 마무리 짓는 김지혁의 말을 끝으로.
교류회는 그렇게 결과적으로 봤을 때 별탈 없이 마무리가 됐다.
다들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우선은 분위기가 차갑게 식어 버린 교류회를 마무리가 우선이었다.
"그럼 교류회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잠시 후 내일 실습을 위한 이론 교육이 있을 테니 다들 준비하도록 하세요."
천해일의 말을 끝으로 교류회 때문에 모여 있던 생도들은 모두 해산했다.
짧지만 긴 교류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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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뭐가 있긴 한 것 같죠?"
"네 그렇게 보입니다."
교류회가 다 끝난 후 귀빈실 안.
그곳엔 페르쿠스와 성녀가 마주 보며 다과를 즐기고 있었다.
"백태양 생도가 이변을 알아차리고 바로 제압하지 않았다면 큰일이 날 뻔했습니다."
"그러게요, 시간을 벌어 준 덕분에 게이트를 닫았으니까요."
김민수의 발밑에 생겨났던 빛.
그건 명백히 던전 발생의 전조였다.
그것도 빅토리 아카데미 전부를 집어삼킬 수 있을 만큼 아주 커다란 던전.
성녀는 빛을 보자마자 알아차려서 힘을 끌어 모았고 간신히 던전 발생을 저지할 수 있었다.
백태양이 빠르게 김민수를 두드려 패지 않았다면 아주 위험했을 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걸 못 알아차렸다는 게 너무 이상해요. 페르쿠스도 그걸 그냥 빛이라고 생각했고..."
"네... 저도 성녀님이 말씀 해주시기 전까진 그냥 자연 현상 같은 건 줄 알았습니다."
"눈치챈 사람은 그러면 저와 백태양 생도 정도라는 거네요."
김민수의 발밑에 빛이 났을 때 다들 제지하지 않은 이유?
정말로 그 빛을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백태양은 그걸 다르게 생각한 모양이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었다.
"던전을 발생 시키려고 하는 용사라... 알면 알 수록 재미있네요."
성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십니까?"
"행동으로 보여야죠. 여기서 말하는 건 더 의미 없잖아요."
전 김민수 생도한테 한 번 접근해볼게요.
그 말하고 성녀가 귀빈실을 나가려는 그때.
페르쿠스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성녀님! 근데 왜 카메라를 가져가시는 겁니까? 여기 두고 가시지요."
"싫어요."
메롱.
성녀는 혀를 쏙 내밀고 문을 닫고 후다닥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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