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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여친쩔더라-152화 (152/325)

〈 152화 〉 나는 그런 게 웃기다는 거야, 민수야

* * *

"...승자는 백태양!"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일이 왜 이렇게 됐지.

'분명 간단한 교류회 느낌으로 한다고 그랬었는데.'

30분 전에 해도 루베니아 측에서 간단하게 실력 확인해보자고 제의가 들어왔었다.

난 당연히 수락 했고, 루베니아 측은 날 배려하기 위해서 똑같은 학년 수준의 기사를 매칭 시켰다.

결과는 당연히.

'좀 더 살살할걸 그랬나?'

압살이었다.

뻔한 클리셰 중 하나였다.

국내에서 엄청난 활약을 해도 해외에선 알아주지 않고 직접 실력을 봐야겠다고 해서 코가 깨지는 경우.

계속해서 연전연승을 거듭하면서 '역시 소문이 사실이었나...'하는 대사를 끄집어내는.

굉장히 '주인공'스러운 전개 중 하나였다.

"큭...나를 쓰러트렸다고 해서 루베니아를 이겼다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다!"

"그래그래..."

당연하지, 넌 고작 1학년 대표잖아.

난 학생 대표고.

자부심 같은 게 있는 건 아니었고 그냥 딱 놓고 봤을 때 원래 상대가 안 돼야 정상이었다.

아무리 내가 덤터기를 썼다고 해도 빅토리 아카데미를 대표하는 학생이지 않은가.

그런데 루베니아 1학년 대표가 날 상대해서 이기려고 한다? 그런 발상 자체가 오히려 예의가 없는 거다.

"아! 역시 모두가 예상한결과대로 백태양 생도가 승리를 시원하게 가져가면서 루베니아 성국의 콧대를 완전히 작살 냈습니다! 이야! 이거 그냥 아주 진기명기네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진짜 예의 없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미친놈이었잖아.'

4학년 학생 대표 김지혁.

빅토리 아카데미에 있는 여섯 명의 메인 스킬 보유자 중 하나.

쾌활하고 활발하며 사교성이 좋은 성격으로 학생회장까지 맡은 인싸 중에 인싸.

큰 키와 시원시원하게 잘생긴 얼굴은 누가 봐도 호감이었고, 입을 열기 전까진 모두 다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교류회하면서 김지혁이 사회를 맡자마자 모두 그에 대한 평가를 싹 바꿨다.

'앞에 나서기 싫다는 게 학생 대표가 싫다는 거였어?'

MC 하고 싶어서 학생 대표를 거절하는 정신 나간 놈이 학생회장이라니.

1% 중의 1% 라고 불리는 빅토리 아카데미에 대한 신뢰가 조금 깨지는 순간이었다.

"아... 루베이나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연습 경기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진정한 교류를 위해 백태양 생도와 비슷한 실력자를 내보낸다고 하는군요!"

김지혁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마이크를 잡고 교류회를 진행했다.

선을 넘을 것 같으면서도 넘지 않고, 어느 한쪽의 편만 드는 게 아니라 골고루 약 올리면서 진행하는 방식.

그냥 악동 하나가 마이크를 쥐고 있는 듯했다.

"백태양 생도! 지금 어떤가요? 솔직히 조금 겁이 나나요? 일학년과는 완전 차원이 다를 텐데요... 루베니아 성국의 기사들은 철갑옷을 입지 않아도 온몸이 강철이라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른 학생이랑 교체하는 건 어떤가요?"

사람 속을 미묘하게 긁는다고 해야 하나.

근데 또 시원하게 웃으면서 말하니까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김지혁 덕분에 합동 교육 분위기가 더 좋아진 것도 있었고 말이다.

"음... 그러면 선배님이 해주시는..."

"아! 저는 사회를 봐야 해서요... 아쉽게도... 그러면 변경 의사가 없다는 걸 알고 바로 또 다음 경기 진행하겠습니다!"

미꾸라지네 완전히.

한두 번 빠져나가 본 말솜씨가 아니었다.

'근데 이거 분위기 너무 과열되는 거 아닌가.'

분명 처음에는 그냥 '간단한' 교류회라고 했는데.

이제는 완전히 빅토리 아카데미와 루베니아 성국 중에 누가 더 강한 지를 겨루는 경기가 되어 버렸다.

'교관들이랑 고위 사제들은 안 말리나?'

이 정도면 본래의 목적을 잊은 거잖아.

시선을 돌려서 그들을 찾았을 때 난 정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백태양! 반드시 승리다! 무조건 승리! 절대 승리야!"

"믿겠다."

"태양 생도! 모든 건 실전입니다! 이론을 제대로 증명해 보세요!"

김석구, 장두철, 이진석.

빅토리 아카데미의 게이트, 훈련, 스킬 이론을 담당하는 대표격 교관들이 누구보다 열심히 응원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장두철은 믿겠다는 말 한마디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깃발은 어디서 난 거야.'

대놓고 빅토리 아카데미 상징이 박혀 있는 깃발을 흔들었는데, 굉장히 진심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루베니아 쪽도 엄청 진심이네.'

김석구, 장두철, 이진석 포지션으로 보이는 사제들이 똑같은 행동하고 있었다.

게다가 생도들은 몰래몰래 돈까지 걸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걸 보니 토토라도 벌어지고 있는 모양.

그야말로 놀자 판이었다.

'내가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나.'

말이 합동 교육이지 실상은 체육 대회 느낌이 물씬 났다.

선의의 경쟁하면서 서로 친목을 도모하는 그런 체육 대회 말이다.

첫날이기에 오히려 더 그런 분위기를 내서 최대한 빨리 친해지게 하려는 건지도 몰랐다.

게이트나 던전에 같이 들어가서 실습을 진행하게 됐을 때.

어색하다거나 서로를 믿지 못해서 불상사가 발생하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 이 정도 분위기면 맞춰주는 게 또 인지상정이지.

"자... 이번 상대는! 아 싸움을 길게 끌지 않겠다는 의지가 단연 돋보입니다. 루베니아 부대표가 올라오는군요! 바엘슨 배터!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S급 게이트를 여러 번 공략한 경험이 있는 정말 기세 높은 유망주 중 한 명이죠. 세간에 따르면 졸업하는 즉시 1급 헌터가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말 엄청난 실력자입니다!"

쿵, 쿵.

"와...크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거구가 교류회 무대 위로 올라왔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만화 효과음처럼 '쿵'이라는 글자가 발 근처에 머무를 것 같은 포스.

이 미터는 되어 보이는 키에 사람 네 명 정도를 합친 것 같은 놓은 떡대.

솥뚜껑만한 손까지.

서양판 돌쇠였다.

"백태양 생도... 늘 만나 보고 싶었는데 이런 기회가 생겨서 참 기쁩니다."

"저랑요?"

"네, 세계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아카데미에서 가장 뛰어난 생도, 누가 그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겠습니까."

왜 이렇게 얼굴에 금칠을 해 줘.

'이래봤자 뭐 안 나오는데.'

전 사실 그쪽 교단의 성녀를 마구잡이로 따먹을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되도록 김민수가 보는 앞에서요.

절대 이렇게 말하고 싶진 않았지만 괜히 입이 근질거렸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왕이면 느긋하게 뭐라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눴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뇨 저는..."

"두 선수의 대화가 순조롭게 진행 되어가고 있군요! 그럼 바로 경기 시작 하겠습니다!"

"...늘 겨뤄보고 싶었습니다."

바엘슨은 김지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에게 달려왔다.

터질 것 같은 허벅지가 폭주 기관차의 심장처럼 꿈틀거리며 몸을 이끄는 게 눈에 들어온다.

멧돼지가 광분을 해도 저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

"가볍게 하는 거 맞죠?"

"저는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전력 선언을 하는 바엘슨.

원래였다면 달려오는 바엘슨의 힘을 역이용해서 옆으로 파고들었겠지만.

어울려주기로 결심한 이상 그렇게 시시하게 대응할 수는 없는 노릇.

쾅!

"와... 맞붙었습니다! 백태양 생도도 작은 편이 아닌데 아무래도 바엘슨 생도와 맞서고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긴 하는군요!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절대로 밀리지 않고 있습니다!"

힘 대 힘.

남자의 자존심 싸움이라고 할 수 있었기에 절대 피할 수도, 밀릴 수도 없었다.

가볍게 팔씨름을 해도 괜히 남자끼리 하면 없던 힘까지 뽑아내는 마당에.

아카데미 이름을 걸고 '가볍게'하는 교류회에서 힘 싸움을 진다?

이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힘드시면 놓으셔도 됩니다. 전 아직 제대로 힘조차 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전 전력을 다 하겠습니다."

유치한 말장난을 한 번 정도 주고받은 뒤 난 바로 전신에 힘을 불어넣었다.

알파메일과 일점집중을 전력으로 발휘하자 바엘슨은 점점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힘은 비슷한데...'

바엘슨의 근력 수치만 놓고 봤을 땐 나와 비슷하거나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힘을 '어떻게' 쓰느냐의 부분에선 아직 날 따라올 수가 없었다.

가지고 있는 신체 능력과 상관없는 재능의 영역.

백태양을 기껏 만들어놓고 안뚱땡이 쓰지 않은 이유.

"오오...! 이게 무슨 일이죠? 바엘슨 생도가 무릎을 꿇기 일보 직전입니다! 이야 이거 흥미진진하군요!"

너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순애든 하렘이든 하렘 순애든.

아무튼 연애 노선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려고 만든 악역 캐릭터가 너무 강하다면?

주인공이 절대로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과한 설정이 들어간 존재라면?

'나 같아도 폐기 했지.'

하체의 균형이 무너진 바엘슨을 요리하는 건 정말로 쉬웠다.

왼발을 축으로 몸을 살짝 틀어 오른발로 다리를 걸 듯 바엘슨의 종아리를 걷어찬다.

각성자라고 해도 신체 구조가 변하는 건 아니기에 카프킥은 그 효능을 제대로 발휘했다.

"끄...윽...읍...!"

"무장을 하고 있었다면 결과가 다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에게 귓가로 소소한 위로를 건넨 후.

코어를 그대로 위까지 끌어올려 무릎을 바엘슨의 턱에 그대로 직격 시켰다.

"아 여기까지! 짧지만 강렬했습니다! 역시 그 사내들의 뜨거운 우정이라고 할...어?"

승부는 빠르게 끝나고 김지혁 또한 분위기를 달굴만한 대사를 내뱉으려고 하는 그때.

저벅저벅.

무대 위로 예상외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세가 아주 등등하구나 백태양, 네가 여태까지 날 비웃은 만큼 이 자리에서 널 무찔러 주마."

"....?"

"어...김민수 생도가 루베니아 쪽에서 나타났군요...하하..."

결석한 주제에 당당한 포즈로 헛소리나 하는 김민수.

난 그런 민수를 보며 늘 그렇듯해맑게 웃으며 놈을 비웃었다.

"난 그런 게 웃기다는 거야, 민수야."

너 지금 대체 뭐 하냐?

분위기 망치는 데 진짜 재능이라도 있는 건가?

역시 절대로 얕볼 수 없는 주인공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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