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146화 (146/325)

〈 146화 〉 전조

* * *

"백태양 생도, 그동안 자네가 뛰어난 활약과 성장을 보일 때마다 좋은 말만 해왔던 게 독이 된 건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죄송합니다."

"김민수 생도가 아무리 그렇게 먼저 때렸다고 하더라도 똑같이 대응하는 게 말이 되나!"

"죄송합니다."

난 아침부터 교관들이 쫙 깔린 회의실 한가운데에서 용서를 빌고 있었다.

'빌어먹을 새끼.'

당연히 이렇게 될 줄 알고 마음먹고 등교를 해서 억울한 건 없었다.

어쨌든 상시 발동형 메인 스킬 보유자끼리 복도에서 한 판 붙은 건 사실이었고, 그게 굉장히 위험한 일이긴 했으니까.

하나도 억울하지 않았고 오히려 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었는데.

김민수가 등교를 하지 않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얼마나 찌질한 거야.'

고작 여자한테 고백도 못 하고 분풀이 상대한테 하루 종일 얻어터졌다고 아카데미를 안 나와?

그것도 주인공이?

김민수가 오지 않은 것 때문에 난 모든 질타를 그대로 받고 있었다.

선빵을 쳤다는 김민수한테 화살을 돌릴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설교를 받다가 마지막으로 천해일이 결론을 지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네, 지금이야 평소 행실을 보고 넘어가는 거지만... 다른 생도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던 거란 걸 명심하게."

"감사합니다. 다음부터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합세나, 모두 해산해도 좋네."

""넵""

천해일의 말에 모두가 해산하며 상황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해 둔 게 있어서 다행이네.'

이마저도 그간 쌓아둔 이미지가 좋았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정학을 당할 뻔했다.

정학을 당하게 된다면 당연히 합동 교육엔 참가 못하게 될 테고, 그리되면 성녀와 제대로 대화조차 할 수 없을 터.

김민수 시원하게 한 번 팬 걸로는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사안 들이었다.

'그나저나 장두철 얼굴을 못 보겠네.'

같은 반 담임의 얼굴을 제대로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물론 짝사랑하면서 티를 제대로 내지 않은 장두철의 잘못이 전적으로 있었지만.

조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까, 동정심이 조금 일었다.

"백태양 생도는 가지 말고 잠깐 남아 있게."

"넵."

교관들이 모두 자리를 떠난 후 나도 따라서 나가려는 찰나.

천해일이 날 붙잡았다.

'장두철도 남아 있었네.'

하필이면 남은 게 장두철이라니.

난 감정이 표정에 드러날까 얼굴을 숙이며 두 명이 먼저 말해 주길 기다렸다.

"혼내는 건 다 끝났으니까 그렇게 죄인처럼 있지 않아도 된다, 백태양."

"허허, 뭐 젊을 때 실수는 누구나 다 하는 거 아닌가. 게다가 민수 그놈은 오지도 않았으니... 욕 봤다고 생각하게."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히 욕 본 게 맞지.

엄밀히 따지면 김민수가 먼저 시작한 거니까.

'그냥 얌전히 예전처럼 질질 눈물이나 짤 것이지 왜 달려들어선...'

복도 난동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여기서 더 숙이고 있으면 그것도 이상했다.

최대한 장두철 쪽을 피해서 얼굴을 들고 시선은 천해일에게 고정했다.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뭐 사실 짐작은 하고 있겠지만 합동 교육에 관한 거네."

"합동 교육 말씀이십니까?"

"원래 합동 교육은 정말 이렇게 안전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안전에 신경을 쓴다네."

"하지만 이번에 갑작스럽게 새로운 세력이 나타났다는 정보가 들어와서 말이야."

"새로운 세력이라면...?"

"그건 우리도 알아내지 못 했네, 단 노블보다 위험한 놈들이라는 건 확실해."

노블보다 위험한 새로운 세력이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소리란 말인가.

'설정을 얼마나 많이 넣어 둔거야.'

하루라도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날이 없었다.

일단 그럼 새로운 세력이 나타난 것과 합동 교육을 연결해서 말하는 걸 보니 이 다음 나와야 할 말은 딱 하나.

"교관들이 너무 성녀 곁에 있으면 훈련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우니... 백태양 자네가 성녀를 밀착 호위하게."

"같이 조를 짜거나 하는 건 우리 쪽에서 모두 신경을 써줄 테니 넌 지키기만 하면 된다."

주인공이나 할 법한 성녀 호위 이벤트가 나한테 오는 건가.

이것도 주인공 지분을 40%나 뺏어서 생긴 나비 효과라고 볼 수 있나.

'그리고 그만큼 김민수 취급이 많이 변했다.'

지분을 20%만 가지고 있을 땐 몰랐는데 40%를 뺏으니 김민수에 대한 취급이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 같았으면 복도 난동을 벌이고 아카데미에 나오지 않아도 '많이 다쳤으니'라거나 '힘을 무리해서 사용했기 때문에'라거나 하는 등.

여러 교관들의 근심 어린 걱정이 허공에 떠다녀야 정상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망나니 취급이었다.

혼자서 날뛰어서 사람을 패고 학교에 오지 않은 양아치.

딱 이게 지금 놈의 신분이었다.

'뭐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 지 모르겠네.'

일단 확실한 건 하나였다.

성녀와 계속 붙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거 하나면 됐다.'

김민수는 성녀와 제대로 된 대화도 못하리라.

+++++++++++++++++++++++++++++++

"페르쿠스!"

"...예 성녀님."

"지금은 바로 말 못 하지만 저 페르쿠스한테 화낼 게 생겼으니까 그렇게 아세요! 진짜 엄청나게 큰일이니까요!"

"알겠습니다."

오늘도 난리군.

페르쿠스는 한숨을 푹 내쉬며 합동 교육 일정표를 살폈다.

'당장 내일모레군...'

처음에는 용사와 성녀가 만나는 극적인 순간을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돼서 정말 좋았었다.

계시의 주인공들을 직접 만나며 대화도 나눠보고 이 세상의 구원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도 해 보고.

얼마나 건설적인 과정이란 말인가.

심지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뻗어가서.

각국의 고난이도 게이트를 격파하면서 새로운 희망의 불꽃이 있음을 명백히 알릴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신앙이 되는 길 그 자체였다.

아니 되는 길 그 자체'였었다.'

'뭔가 느낌이 안 좋아.'

어제를 기점으로 갑자기 용사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용사라는 게 처음부터 용사일 수가 있는 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용사로 불리는 게 옳은가?

당장 저렇게 하루 종일 컴퓨터만 하는 성녀조차 '성녀'로 불리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사람들을 구하며 자의적으로 '성녀'라고 칭하는 게 아닌 타의적으로 '성녀'라고 불릴 때까지.

손톱이 다 벗겨지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고고한 길을 걸으며.

그녀는 그렇게 만인에게 성녀라고 불리게 됐었다.

그러나 용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용사라...'

그저 메인 스킬 이름이 '용사'라는 것만으로 그는 용사가 되었다.

아무도 그걸 의심하지 않았고,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나만 이런걸 수도 있겠군...'

괜히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고 긁어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지.

페르쿠스는 그리 결론을 내린 뒤 이것저것 짐을 챙겼다.

'제 3의 세력이라...'

만약의 경우를 모두 대비하며 말이다.

페르쿠스가 이렇게 열심히 짐을 싸고 있는 사이 성녀 또한 마찬가지로 분주했다.

'이걸 내 눈으로 직관을 못 하다니...'

어금니가 바득바득 갈릴 정도로 분하고 억울했다.

==================================

[요즘 저한테 너무 안 좋은 일만 일어납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 [호기심 박사]스윗생도

­스윗생도님의 10049번째 고민글입니다­

안녕하세요.오늘은 점잔게 글을 올리네요.

참... 요새 고민이 많이 업었습니다. 고백하면 뭐든 게 끝나는 일이니까요.

재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안고 가서 그녀에게 고백한다면 다 성공하고 훈훈하게 끝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그게 아니었답니다.

제가 사랑하는 그녀는 어느 사이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서 하하 호호 하고 있더군요.

제가 고백을 할 거라고 그렇게 사전에 미리 기미를 주고 여지를 주며 애정 표현도 과감하게 했다고 생각하는데.

주말 일요일에 잔다길래 그냥 냅뒀습니다.

바쁘다고 해도 그냥 넘어갔구요.

그게 진정한 달콤함이라고 믿었습니다.

집착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녀의 한줄기 웃음이 되어 주기 위해 SNS에서 떠도는 웃긴 영상도 엄선해서 보내주고.

인터넷 밈도 좀 써 주면서 같이 웃자는 마음으로 접근을 했는데 참...

그녀를 뺏겼습니다.

그리고 전 뺏은 놈한테 말했죠.

어이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줘라.

그랬더니 그놈이 막 절 비웃으면서 놀려대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한 판 했습니다.

전 비록 많이 다쳤지만 제가 이 정도면 그놈은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을지...

후후 짐작하시라고 믿습니다.

오늘은 그래서... 아카데미에도 가지 안았습니다.

날도 좋고... 시련의 상처도 있기에 (절대로 싸워서 생긴 상처 때문은 아닙니다)...

그래서 요즘 진짜 왜 하는 일마다 안 될까... 뭐가 문제일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제 저에게 남은 건 츤츤거리는 부잣집 그녀와 절 열렬하게 사랑하는 순결한 여인 뿐이네요...

문제라고 생각하시면 바로 답변 남겨 주세요 꼭 참고 하겠습니다.

[답변0] [좋아요0] [싫어요1] [댓글1]

==================================

ㄴㅇㅇ:: ㅋㅋ내 생각엔 니 망상병만 고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역겨운 소리 그만해라 [신고1]

==================================

'맞은 데다가 여자까지 뺏기고... 그것 때문에 등교 거부까지 했다고?'

근데 그걸 내가 직관을 못 했다니.

이건 전부 다 페르쿠스 때문이었다.

나쁜 페르쿠스.

아카데미에 가게만 해줬다면 그 재미있는 걸 모조리 봤을 텐데!

성녀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침착하게 스크롤을 밑으로 내렸다.

질문글에 댓글을 달았으니 한 군데 더 댓글을 달아야 했기 때문이다.

드르륵, 멈칫.

'어라? 없네?'

왜 오늘은 답변글은 없지?

그녀는 재미있는 것도 놓치고 답변글도 올라오지 않은 자기 슬픈 삶을 한탄하며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드디어 내일모레.

합동 교육이 시작되기에 지금 충분히 게으르게 시간을 썩혀야 했다.

* *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