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데이트 때 있었던 일
* * *
툭툭.
"다들 알다시피 조금 있으면 합동 교육을 하게 된다. 약 한 달에서 두 달간 진행되며 이번에는 성국 루베니아랑 하게 된다."
"와 대박... 아니 그러면 성기사단이랑 성녀님도 볼 수 있는 건가요?"
"그래, 최근 급증하는 게이트와 던전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힐러와 같이 공략을 진행할 때 어떤 전투방식을 취해야 하는지, 어떤 포지션을 잡아야 하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배우며 실습도 진행할 거다."
"오오오오오!"
"해서 오늘 수업 시간에는 파티 공략을 할 때 유의할 점과 힐러의 장단점에 대한 걸 알려주겠다."
합동 교육을 두 달밖에 안 한다고?
'타임 어택도 아니고 이게 뭐야.'
두 달 안에 성녀를 꼬셔야 한단 말인가.
아니면 성녀만 따로 남을 가능성도 존재했다.
'그렇게 된다고 보는 게 맞나.'
용사와 성녀.
김민수가 몇 번이나 강조했던 조합.
애초에 '성녀'라는 커다란 네임벨류가 있어서 더더욱 성녀는 용사와 떨어질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붙어 있을 구실이 없었다지만 합동 교육이라는 좋은 기회가 생긴 지금.
성녀와 김민수가 떨어질 만한 전개를 안뚱땡이 펼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성국으로 그녀가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김민수가 간다거나 하는 쪽으로 어떻게든 둘을 붙여놓을 터.
한 마디로 성녀가 당장 사라진다고 해도 민수 옆에 붙어만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말이다.
'상식적으로 김민수가 성녀를 두 달 안에 꼬실수 있을 리는 없으니... 성녀가 남아 있다고 보는 게 맞겠네.'
그리고 성녀는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때 느꼈던 묘한 동족의 향기부터 착각인지 아닌지 모르는 비웃음까지.
웬만한 여자가 아니란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수업부터 듣고...'
더 이상 딴생각을 하기엔 김석구 교관의 눈초리가 너무 따가웠다.
"예전에 알피지 게임을 해 본 생도들이라면 어렴풋이 알고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힐러는 최후방에 존재하고 딜러가 그들을 지킨다. 왠지 아나?"
"힐러는 몸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정답이다. 알피지에서 힐러는 체력 스텟도 낮고 공격력도 낮으며 정말로 보조 그 자체에 특화 되어 있지, 한 마디로 최전선에 서기 적합하지 않도록 설계가 됐다는 말이다. 그러나 각성자가 힐러일 경우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김석구 교관은 스크린 화면에 여러 영상 자료와 사진을 띄워두며 강의를 이어 나갔다.
"선천적 각성자든 후천적 각성자든 일단 각성자가 되면 그 신체 능력은 일반인과 궤를 달리한다. 그리고 이건 당연하게도 회복 스킬을 가지고 있는 각성자들에게도 해당 되는 말이다. 공격 스킬이 메인인 헌터와 회복 스킬이 메인인 헌터, 여기서 누가 전방에 서는 게 유리할 것 같나."
"회복 스킬 헌터입니까...?"
"정답은 '둘 다 같이 서는 게 유리하다'다. 원거리 메인 스킬 보유자가 아니라면 웬만한 경우에 모든 게이트와 던전은 다 같이 일선에 서는 게 가장 중요하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공략하는만큼 인명피해가 적어질 확률이 높으니 말이다."
오 이건 좀 신박하네.
힐러도 각성자여서 연약하다는 페널티가 없으니 같이 전방을 담당할 수 있다는 건가.
"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힐러가 리타이어 되거나 죽는다면? 커다란 전력 손실이 되는 거 아닙니까?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힐러가 계속 뒤에서 보조를 해주는 게 안전한 거 아닙니까? 분명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르며 내 말이 무조건적으로 정답이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게이트와 던전에 들어온 이상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그는 멈춰있던 영상 자료를 재생했다.
화면 속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파티 배치 구도로 보스를 잡는 헌터팀이 움직이고 있었다.
중갑을 입고 있는 헌터는 최전방, 딱 봐도 딜러 역할을 하는 큰 대검을 든 자는 중간, 마지막으로 힐러와 원거리 스킬을 가지고 있는 헌터는 후미.
가장 이상적인 헌터 팀 조합으로 손 꼽히는 조합 중 하나였다.
실제로 영상에서도 이상적이라는 걸 그대로 보여주는 듯 보스를 굉장히 쉽게 요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광폭화를 하는 보스다! 모두 조심해!
젠장 놓쳤어!
크아아아악!
보스의 피부가 붉게 물들더니 순식간에 폭발적인 속도를 내뿜었고, 그 속도는 그대로 후미에 있는 헌터들에게 쏟아졌다.
단 몇 초.
딱 세 걸음.
그 미세한 차이로 탱커와 딜러는 보스를 따라잡지 못 했고 후미는 그대로 전멸했다.
영상은 거기서 멈췄으며 김석구는 박수를 한 번 쳐서 이목을 끈 뒤 입을 열었다.
"봤나? 이게 바로 힐러가 최전선에 있는 이유다. 결과론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게이트와 던전에 들어간 그 순간부터 모든 변수는 변수가 아닌 상수로 변한다. 언제든지 죽을 수 있으며 난이도가 급변할 수도 있다. 만약 방금 같은 경우도 힐러가 최전선에 있었다면? 탱커와 딜러의 보호를 받고 원거리 스킬을 보유한 헌터를 살렸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을 거다."
A반엔 보조 스킬을 메인으로 가지고 있는 생도가 없는걸로 알고 있다.
김석구는 시간을 확인한 뒤 수업을 마무리했다.
"아직 설명할 게 많지만 일단은 이 정도까지만 하겠다. 다음 시간엔 직접 훈련하면서 합동 교육 전, 힐러와 함께 팀을 이룰 경우에 주의해야 할 것 몇 가지를 알려주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감사합니다!""
그럼 나도 슬슬 움직여볼까.
데이트 때 류혜미에게 남긴 몇 가지 떡밥을 이제 완벽하게 회수할 차례였다.
"태양아 어디 가? 요즘 너무 바쁜 것 같아서 나 슬퍼."
찰싹.
류혜미에게 가려는 그때 가슴 사이에 내 팔을 쏙 끼워 넣으며 달라붙는 유민이.
그러고 보니 소유욕으로 치면 그녀도 수진이만큼이나 만만치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유민이를 빨리 어떻게든 처리하고 혜미한테 가기 위해 전전긍긍 했겠지만 이젠 아니었다.
"유민아."
"응?"
덥썩.
그녀의 허리를 팔로 둘러서 품에 쏙 넣은 뒤 진하게 입을 맞춘다.
반 애들이 다 보는, 쉬는 시간에 사귄다고 암암리에 퍼져 있는 소문을 종결 시킬 행동.
이 여자가 내 여자라고 만인에게 알릴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
'공개적인 장소에서 애정 행각.'
그것도 손을 잡거나 뽀뽀 몇 번하고 떨어지는 게 아닌 혀 섞는 게 보일 정도의 진한 키스.
이걸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여자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차피 차려야 할 하렘이라면 살살 달래는 방향으로 가는 것보단.
확실하게 도장을 찍는 게 더 효과적이란 걸 깨달았다.
바로 지금처럼.
쪽.
마지막으로 가볍게 뽀뽀를 하며 유민이에게 떨어졌고, 그녀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얼굴만 빨갛게 물들였다.
"그...어...아...태양아...?"
"요즘 바뻐서 그래, 이해해줄 거지?"
"...으...으응...당연하지..."
[성춘향의 메시지 :: 나으리 저는 이해 못 하고 있사와요... 소녀도 저렇게 풋풋한 장소에서 진하게...키스...가 아닌 당연히 조교압박능욕발정암컷교배 프레스를 해주신다면 소녀도 앞으로 나으리의 모든 행보에 대해 완벽한 이해를 함과 동시에 영원한 행복에 빠져 살 것 같사와요.]
'넌 이해 안 해도 돼.'
내 의자에 앉아서 얼굴만 붉힌 유민이를 뒤로하고 난 당당히 교실 문밖으로 나섰다.
'앞으로 이렇게 해야겠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 게 문제였다.
이제부턴 시원하게 나가리라.
'하렘섹스를 위하여.'
그리고 김민수의 절규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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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양)
>나 지금 연구실 가도 되지?
류혜미는 백태양의 문자를 보자마자 급하게 거울로 달려갔다.
화장은 꾸민 듯 안 꾸민 듯 하는 게 요즘 남자들한테 먹힌다고 하길래, 아침에 가볍게 해 둔 상태.
남은 건 머리였는데 이게 가장 애매했다.
'묶을까 말까.'
묶어도 예쁘다 그랬고 푼 것도 예쁘다 그랬었는데.
그녀는 어제 있었던 데이트를 다시금 떠올렸다.
'...매일매일 어제였으면 좋았을 텐데.'
행복했던 날이었다.
그날은 날씨까지 너무 화창해서 정말 완벽하다고 불러도 좋은 날이었다.
류혜미는 뭘 입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성숙한 여인이란 걸 보여주고 싶어서 '미시룩'을 택했다.
연상의 농후함으로 생도를 꼬시는 게 맞는가에 대한 죄책감도 들었지만.
백태양을 보자마자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었다.
시원시원한 키와 굵직한 몸 때문일까.
뭘 입어도 태가 났지만 제대로 차려입으니 정말 그 위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매일매일 교복만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다가 캐쥬얼한 정장을 입은 모습을 보니 눈이 저절로 하트로 변할 정도였다.
"교관님, 많이 기다리셨어요?"
"어어? 아냐... 그리고 그...네가 힘들었을 텐데 뭐."
"이 정도는 해야죠."
백태양은 데이트 전 날에 집 주소를 알려달라고 말했다.
왜냐고 물어보니 데리러 가겠다는 메시지가 돌아왔다.
어떻게 데리러 오는 걸까 하고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그는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자동차 한 대를 끌고 나타났다.
생도와 교관의 만남이 아닌 정말로 성인끼리 만나는.
그 진한 데이트의 시작은 자동차 안에서부터 시작된 거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