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성녀는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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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가 김민수를 알게 된 건 인터넷을 막 시작할 때였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하루 종일 컴퓨터만 붙잡으며 인터넷 서핑을 하던 시절.
그때 당시엔 SNS가 그렇게 활성화됐을 때가 아니어서 볼 만한 게 많이 없었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와 뉴스 몇 개만 보면 볼 게 다 떨어졌을 때.
그녀는 심연을 탐색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질문글을 보다 보면 뭔가 재미있는 게 나오지 않을까 하는 발상.
그 발상 하나로 그녀는 매일매일 깊은 인터넷의 심연으로 잠수해 갔다.
처음엔 항마력이 부족해서 도저히 읽을 수 없던 글들도 시간이 지나니 점점 익숙해질 무렵.
그녀는 깊은 심해에 숨은 진주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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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녀와 고민이 있습니다] 스윗생도
스윗생도님의 106번째 고민글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글을 올린 지 벌써 106번째네요.
사소한 부분부터 지금까지 여러 가지 질문을 올렸는데 전부 하나하나 친절하게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세상은 따듯한 곳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은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직 제가 티도 별로 못 내고 말도 제대로 못 섞고 있지만 반드시 이 여자와 끝을 보고 싶습니다.
최근 달달한 발렌타인데이가 다가오는데 그녀에게 초콜릿 하나 선물해주고 싶어요.
수제로 하고 싶은데.
여자들은 이런 거 부담스러워할까요?
제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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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타지 않아 보이는 순박한 연애 감정.
작위적인 스토리와 꾸며낸 연출이 아닌 정말로 정제 되지 않은 원석 같은 이야기.
'이건...귀하네.'
성녀는 단숨에 스윗생도의 글에 매료 됐다.
아침 드라마 꼬박꼬박 챙겨보는 시청자의 기분을 그때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자극을 받을 수 있는데 어떻게 챙겨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녀는 그날 스윗생도의 모든 질문글을 밤새도록 읽으며 풋풋한 썸을 1열에서 직관했다.
날이 가는 지도 모르고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만 움직이며 스윗생도가 누굴까 하는 의문도 품었다.
'점점 신상을 공개하긴 하는데...'
일단 닉네임부터 '스윗생도'인 걸로 봐선 정말로 아카데미 생도일 확률이 높았다.
아니면 생도가 될 예정이거나 말이다.
실제로 질문글을 살펴보면 아카데미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는 엄청 많았다.
이 말은 즉 아카데미 생도가 되기 전 '교육'을 받는다는 것인데.
'인성 교육받는 거 보니... 일단 선천적 각성자인 건 확실하고.'
글쓴이가 한국인이었기에 이런 부분은 쉽게 유추가 가능했다.
'사실 진짜는 그 밑에 있지만.'
스윗생도의 질문글은 풋풋한 썸과 연애의 어떤 그 간질간질한 감성이 가득할 뿐.
사람을 웃기게 하는 재미라거나 흥미를 진진하게 만든다거나 하는 부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남의 연애사가 재미있긴 해도 매일매일 챙겨볼 정도는 아니라는 것.
그러나 그녀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 스윗생도의 글을 챙겨보는 이유는 단 하나.
스윗생도의 질문글에 답변을 다는 놈이 너무 웃기게 글을 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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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녀와 고민이 있습니다]의 답변 순애일지작가 [태양광]
흠.
일단 뭐 감사 인사는 바다는 두겠습니다만 이런걸 쉽게 하시면 안 됩니다.
호이가 계속 되면 권리가 되는 줄 아는 게 많으므로...
스윗생도님의 그 뭐라고 할까 너무 과한 선의와 마음이 당신을 오히려 해치지 않을까 걱정되는군요.(찡긋)
각설하고 본론부터 말씀 드리면 오히려 발렌타인데이는... 받아야 하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화이트 데이때 주는 거고 발렌타인 데이는 받는 거니까요.
제가 보는 만화나 각종 참고 자료 혹은 동영상 매체에서도!
그 어떠한 경우에서도! 남자가 초콜렛을 주는 경우는 절대 절대 절대 네버 없었습니다.
기다리세요.
절대! 호구가 되어선 안 됩니다.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이 이해가 됩니다만... 그래도 '선'이라는 게 존재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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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두고두고 패고 싶게 글을 쓰네.'
어떻게 저런 짧은 글을 쓰면서 자기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그 어떤 대문호가 와도 순애일지작가를 이길 수 없을 듯했다.
시인이 아무리 시어를 고민하면서 한 자 한 자 힘겹게 적으면 뭐 하는가.
'절대 절대 절대 네버 없었습니다.'라는 문장조차 넘지 못할 텐데.
이때부터 성녀는 정말 끊임없이 '스윗생도'와 '순애일지작가'의 문답글을 기다렸다.
아무리 고된 일과가 있더라도 알람 소리가 띠링 띠링 핸드폰을 울릴 때면 힘이 번쩍 났다.
그렇게 문답글을 지켜보길 몇 년.
그녀는 뜻하지 않게 '스윗생도'가 용사 김민수라는 걸 알게 됐다.
지독한 스토킹이라거나 음습한 인터넷 뒷조사 같은 방식은 아니었고.
어느 날 스윗생도가 스스로 신분을 밝힐 만한 힌트를 모두 던졌던 것이다.
자신이 빅토리 아카데미에 들어가며, 검을 쓰고, 엄청난 실력자고 1학년 랭킹 1등됐다.
뭐 이런 식으로 적나라하게 자기 신상정보를 드러냈는데.
웃긴 점은 순애일지작가와 자신 말고는 아무도 김민수의 질문글을 보지 않았기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이었다.
익명의 대나무숲이 아니라 실명의 대나무숲 느낌이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성녀는 김민수에게 굉장히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처음에는 달지 않았던 댓글도 달아보고, 반응이 없자 어조를 조금 강하게 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중엔 진심으로 욕까지 하게 됐었지만 정지 당할 걱정은 없었다.
왜냐하면.
"성녀님! 또! 또! 날라왔습니다. 대체 인터넷에서 뭘 하시길래 악성 유저로 신고가 들어오는 겁니까?"
"페르쿠스, 그럼 제가 스트레스를 어디에 푸나요. 저번에 운동이라도 하라고 하셔서 개인 헬스장 운동 기구 주문하자마자 어떤 일이 기억 났는 지 벌써 까먹으셨나요?"
"...주소 우회를 세 번이나 했는데 미친놈들이 끝끝내 주소를 찾아내서 성녀가 운동한다느니 하며 몸평을 하고 기사를 쫙 퍼트렸었죠..."
"그러니까요, 제가 그렇게 고생하는데 익명으로 좀 난리 피울 수 있는 거 아닌가요?"
페르쿠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교황이 계정 제재하지 말라고 포털사이트에 압박을 넣는데 감히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있겠는가.
심지어 커다란 비리 같은 것도 아니고 그냥 이용자 계정에 들어오는 신고를 '무시'하라는 게 전부인 부탁이었다.
포털 사이트 처지에서도 사소한 부탁 한 번 들어 주고 성국과 연을 쌓을 수 있다면야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오히려 역으로 성녀가 쓰는 계정을 완전 보안 계정으로 만든 뒤 엄중히 관리까지 할 준비가 되어 있을 정도.
때문에 성녀의 계정은 악플 혹은 욕설 계열의 '사소한' 신고로는 절대 정지를 먹지 않게 된 것이다.
무적의 계정을 등에 업고 성녀는 신랄하게 김민수와 순애일지작가에게 '바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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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ㅇㅇ:: 진짜 사람답게 살고 싶으면 인터넷에 연애글 안 올릴 텐데 ㅋㅋ 정신 못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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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따끔한 일침을 날리기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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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ㅇㅇ:: (절규하는 김민수짤) 이거 너지? 이거 너지? 이거 너지? 이거 너지? 이거 너지?이거 너지? 이거 너지? 이거 너지? 이거 너지? 이거 너지?이거 너지? 이거 너지? 이거 너지? 이거 너지? 이거 너지?이거 너지? 이거 너지? 이거 너지? 이거 너지? 이거 너지? 길거리에서 질질 짜는 거 실화임?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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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벌어질 때는 성장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소금을 뿌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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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ㅇㅇ:: 모쏠아다 티가 너무 심하게 나네, 잘 씻기는 하지? 너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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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풀이 죽으면 더 이상 질문글을 안 올릴 수도 있으니 따듯하게 보살필 때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를 몇 년.
성녀는 이제 슬슬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빅토리 아카데미 측에서도 합동 교육 공고를 보낸 지금 더 이상 컴퓨터로만 구경할 필요가 없게 된 거였다.
그동안 어떻게 한국으로 갈 지 구실만 찾고 있던 마당에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심지어.
"성녀님! 성녀님이 그렇게 가시고 싶다던! 제가 빨리 보내드리고 싶었던! 한국을 갈 수 있게 됐습니다!"
"좋네요. 좋아요."
왠진 모르겠지만 페르쿠스가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였기에 일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 됐다.
눈 깜짝할 사이 도착한 한국.
그녀는 가장 먼저 용사 김민수를 찾았고, 이 행동에 일말의 후회가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제가 말입니다... 그때 이렇게 말했죠... 더 이상 날 건드리지 마라, 죽.이.고.싶.으.니.까."
옆에서 들리는 꾸덕진 찐내나는 목소리.
백 퍼센트 허세와 구라로 이루어진 자작극.
성녀는 면사포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민수를 내려다봤다.
"그렇군요... 정말 멋지네요, 혹시 다른 이야기 더 있을까요?"
"그럼요 얼마든지요. 오늘 이 밤이 다 가도 제 이야기보따리는 털리지 않을 예정입니다."
"너무 기대돼요."
진심이었다.
성녀는 속으로 물개박수를 치며 웃었다.
'질질 짜는 거 한 번 더 보고 싶은데... 방법 없으려나.'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며.
성녀는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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