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 우승자는 바로 저. 김민수죠.
* * *
"아니 왜 이해를 못 해요? 우승을 못할 수도 있으니까 미리 힘을 주겠다는 말이잖아요."
"아니 그니까 무슨 힘이 있길래 저한테 힘을 줘서 우승을 하냐마냐 하시는 데요. 그리고 저 우승 한다니까요?"
"아니 못한다니까요!"
왜 이렇게 이해를 못 해? 진짜 사람 맞아?
박병철은 김민수와의 대화에서 많은 혼란을 느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주는 정보 그대로 넙죽넙죽 받아먹더니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처음부터 거절을 하던가 왜 선택적으로 받는데!'
김민수에게 선별 과정이 있다는 것도 알려 줬을 때만 해도 좋다고 했던 김민수다.
노블이란 것도 알려 줬고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정보도 줬으면 한편됐다고 생각해도 되는 거 아닌가?
지금 김민수는 완전히 남을 대하는 표정을 띠고 있었다.
"아니 왜 못한다고 하시는데요! 저 진짜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노블인 거 다 알고 정보 주신 것도 감사한데! 저 진짜 그 정도까진 아니거든요?"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정보 알려주셔서 좋은데, 그건 뭐... 솔직히 요즘은 정보화 시대라고 하니까... 제 능력이라고도 생각했거든요? 사람을 이끄는 자석을 매력이라고 한다면서요... 그런 게 저한테 있다고 해야 되나? 했는데... 너무 막 이렇게 무슨 힘을 준다 이러면서 우승 시켜준다 하니까... 사이비 같고 좀 그러네요...저한테 잘해주신 성의를 봐서 오긴 했는데... 좀 싫어요 이제..."
"...?"
김민수는 자신이 한 말에 코딱지만큼의 오차도 없다고 느꼈다.
'완벽하군.'
박병철이 처음에 자신에게 접근해서 정보를 알려 줬을 때만 해도 좋은 사람인 줄 알았다.
선별전의 존재와 예선전의 방식 그리고 휴식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까지.
평범한 사람이라면 알 수 없는 귀한 정보들이 쏟아질 땐 든든한 아군이 생긴 건가 싶었다.
근데 박병철은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감히 백태양한테 접근을 하다니...'
그놈한테도 똑같은 수작을 부렸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 보였다.
객관적으론 내가 더 우세하고 잘생겼고 인기 많고 섹시하고 대중적이고 상남자스러웠지만 주관적인 세간의 평가는 아니었다.
아무리 선천적 각성자에 환장하는 노블이어도 백태양 정도라면 후천적이지만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을 터.
'훗... 내 추리에 깜짝 놀랐겠지.'
왕년에 추리 소설 좀 읽은 보람이 있었다.
박병철이라고 했던가? 교묘하게 백태양과 날 어떻게 해 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어림도 없지.
정보만 쏙 빼먹고 버린다.
'그리고 우승이 뭐?'
내가 못 해? 그것부터 짜증이 났다.
사실 이게 박병철의 제안을 거절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불굴의 용사.
선비의 정신.
장원 급제 합격자.
'물론 약 육 천 번 정도 넘게 도전 했지만.'
중요한 건 횟수가 아니잖아.
그걸 해냈다는 '결과'가 중요한 거지.
결국 끝까지 가면 이긴다는 걸 증명한 거나 다름없는데.
뭐가 어쩌고 저째?
예쁜이들이 많이 오는 사교계 파티를 여는 집단이어서 좋게 봐주려고 하니까 안 되겠네.
"저는 제 힘으로 당당히 우승을 차지 할 겁니다. 현역 헌터들? 어차피 다 신인이지 않습니까. 전 S급 클리어도 두 번이나 클리어 했다구요."
"아니 그건..."
백태양이 거의 다 깬 거잖아.
반박을 하려고 했던 박병철은 김민수의 표정이 너무 당당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어차피 결승전은 정해져 있습니다. 백태양과 김민수. 이건 세상이 멸망해도 변하지 않아요. 그리고 우승자는 바로 저."
김민수죠.
민수는 그 말을 내뱉고 폼나게 팔을 쫙 펼쳤다.
별다른 의미는 없었고 망토가 있었다면 펄럭 거렸을 거라 상상하며 한 동작이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니 백태양이 밉지도 않습니까? 당신한테 수많은 상처를 남겼잖아요. 압도적으로 이기고 짓밟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냐는 말입니다."
박병철은 마지막으로 외쳤다.
노블의 수뇌부들이 백태양을 직접 나서서 잡냐 마냐로 시간을 썩히고 있을 때 자신이라도 뭐라도 해야 했다.
'백태양은 확실히 위험하다.'
첫 만남 때부터 심상치 않다고 느꼈고 싸우는 모습을 보니 그 예감이 더 선명해졌었다.
상대방을 압도 한다는 느낌이 아닌 도살하는 듯한 폭력적인 모습은 아직도 뇌리에 선명했다.
침대만한 무기 케이스를 방패 삼으며 상대방의 공격을 막고 순수하게 주먹으로 상대를 피떡으로 만드는 무력.
글라디르에서 '백태양한테 걸리면 고기떡이 된다.'는 말이 괜히 돌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글라디르 대회를 먹었다고 해도 수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백태양의 스킬을 뺏을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백태양을 이길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은 김민수에게 힘을 몰아주려고 했던 거다.
'거절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김민수가 힘을 받게 만들어야 했다.
"맞아요. 이기고 싶죠."
"그럼 더더욱 저희 노블의 힘을...!"
"허나, 거절합니다."
백태양? 그래 나한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악마나 다름없는 놈이지.
또한 나의 여자 친구를 빼앗고 멜라니한테도 꼬리를 치는 쓰레기이며.
마지막으로 나한테 '겨우' 몇 번 이긴 거 가지고 1학년 대표 무력, 헌터계의 신성 등등 원래 내가 가졌어야 할 것들을 훔친 도둑이었다.
하지만.
"놈은 제 라이벌입니다. 그렇게 이기기 싫어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비정상적으로 파워업 해서 이겨봤자 기분이 나아질 리가 없었다.
오직 피와 땀으로만 쟁취해낸 승리만이 진정한 승리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럼 이만, 아디오스."
민수는 최대한 고고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경기장 저쪽인데..."
"큼흠."
다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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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김민수! 너 어디 갔었어?"
"엑! 뭐야 이거 놓고 말해!"
호텔에서 김민수를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지 않아 경기장에서 대기하려고 있을 때.
타이밍 좋게 김민수가 경기장 입구 쪽에서 걸어왔다.
묘하게 자신감이 가득 차 있는 얼굴을 보니 분명 노블이랑 어떤 접점이 있어 보였다.
도망치지 못하게 우선 멱살부터 잡은 뒤 거칠게 몰아붙였다.
"너 노블이랑 뭐 있지? 그렇지 않고서야 선별전 같은 정보를 네가 다 알 수 있을 리 없잖아."
"백태양!"
깜짝이야.
민수 특유의 급발진을 오랫동안 겪지 않아서 까먹고 있었다.
민수와 대화할 땐 침이 튀기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해야 했는데.
"뭐."
"난 반드시 우승할 거다!"
붕붕.
키 차이때문에 멱살이 잡힌 민수는 당당하게 우승 선언을 하며 허공에 다리를 휘둘렀다.
놔달라는 걸 간접적으로 표현한 듯해서 우선 멱살 잡은 걸 풀었다.
뜬금없는 소리를 한 걸 보면 노블이랑 뭐가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보였다.
"물론 노블한테 몇 가지 정보를 받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나라는 사람의 인간을 끄는 자석... 이걸 매력이라고 한 다지? 그런 것 때문에 일어난 결과일 뿐... 어떤 유착 관계가 있었던 건 아니다. 노블이 뭔 수작을 부린다고도 했으나 내가 거절 했지, 왜냐? 난 용사니까. 그것도 너란 악마를 무찌를 용.사."
이게 내 대답이다.
민수는 그렇게 말하고선 흐트러진 갓을 고쳐 썼다.
"그럼 진짜 노블이 너한테 접근을 했단 말이야?"
"그래, 박병철이라고 했던가? 놈이 나한테 이것저것 정보를 주긴 했어."
"박병철?"
나한테 반말 했던 놈이잖아.
그놈도 노블이었다니.
하긴 그 촐랑촐랑한 성격이 어떻게 예선전을 버텼나 했더니만 노블이라면 납득이 갔다.
높은 확률로 그놈이 스킬 헌터일 가능성이 높았다.
몇 마디 나눴을 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유민혁과 달리 너무 초라한 박병철이었다.
그런 놈이 휴식도 없이 연이어 치러진 전투를 무사히 끝낸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그럼 그놈부터 잡아야 하나.'
우선순위를 확실하게 정해놔야 앞으로 일이 꼬이지 않았다.
문제는 박병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는 거였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경기장에서 박병철을 기다리는 게 유일한 상황이라니.
민수는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자기 여자 친구를 빼앗고 처녀까지 따먹은 놈 뭐가 좋다고 계속 말을 이어가는 지 참.
어떻게 보면 김민수는 정말로 속이 넓은 놈이었다.
"그래, 박병철. 근데 되게 웃기지 않냐? 나한테 무슨 힘을 준다더라. 그래서 내가 말했지. 나는 내 힘으로 우승할 터인데 무슨 개짓거리냐? 라고 어때."
"너한테 힘을 준다고 했다고?"
"어, 근데 거절했어. 왜냐고? 난 내 힘만으로 널 쓰러트릴 거거든. 난 너 정도면 내 라이벌 자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지지마라."
텁텁.
놈은 내 어깨를 두어 번 정도 두드리며 날 스쳐 지나갔다.
아아! 글라디르에서 알립니다 조만간 본선 경기가 시작됩니다. 밖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거나 게이트 깊숙한 곳에 계신 참가자들께서는 모두 게이트에 처음 들어오셨을 때 있었던 장소로 찾아와주시길 바랍니다! 아아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글라디르에서 알립니다……
민수가 말을 다 하길 기다렸다는 듯 방송이 뒤이어져서 나왔다.
'어이가 없네.'
정리해 보면 노블이 김민수를 이용해서 날 치려고 했단 건가?
근데 김민수는 거절한 거고?
'...김민수가 그럼 노블이랑 손을 잡은 건 아니라는 건가?'
제대로 따져 보자면 그 김민수가 노블을 일방적으로 이용했다고도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김민수가 똑똑해졌다고 봐야 하는 건지 노블이 멍청한 건지.
한 가지 확실한 건 노블 쪽도 우승을 노골적으로 노리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그럼 최소 결승까진 가야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겠네.'
그렇게 결론을 지으니 해야 할 일이 하나밖에 없었다.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우승을 하는 것.
오직 우승만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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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안.
본선에 참가하는 모든 헌터가 모이자마자 안내 방송은 기다렸다는 듯 시합을 진행했다.
아아! 본선 첫 경기는 백태양 헌터와 박병철 헌터입니다. 두 헌터는 게이트에 설치 된 무대에 올라와주시길 바랍니다!
첫 번째 경기는 백태양과 박병철.
본격적인 노블 대 백태양의 싸움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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