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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여친쩔더라-111화 (111/325)

〈 111화 〉 난 백태양이다.

* * *

글라디르 인공 게이트 안.

난 구석에 박혀서 방금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렸다.

'내가 왜 그랬지?'

상대방이 무례했다는 걸 감안 해도 너무 예민한 대응이었다.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면서 넘어가면 되는 일을 왜 굳이 긁어부스럼을 만들었을까.

심지어 백발 태닝과 커다란 무기 케이스라는 시그니처까지 있는 마당이었다.

알아보기 싫어도 알아볼 수 있을 만한 특징이어서 말 좀 걸 수도 있는 걸 텐데.

'난 원래 안 그런데.'

잠깐.

내가 지금 누구지?

이태옥이냐, 백태양이냐.

동공이 쉴 새 없이 떨려가고 압박감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지금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지금 같은 상황을 또 겪어야 할 것 같은 직감.

문제는 예전처럼 쉽게 내가 누군지 명확한 답을 내놓기가 어려웠다.

이태옥은 희미해지며 백태양으로서의 삶이 진해지고 있는 요즘.

백태양의 기억이 온전히 머리에 있는 것도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지구의 기억이 모두 다 나는 상태도 아니었다.

두 가지 음식을 섞으니 어중간한 맛이 나는 퓨전 요리처럼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런데도 억지로라도 답을 내려는 그때.

"백태양, 여기 있었네. 한참 찾았잖아."

김민수가 말을 걸어왔다.

"뭐야?"

"뭐냐니 나도 붙어 있기 싫거든? 근데 뭐... 다들 이미 팀이 있는 것 같더라고... 참나... 무슨 개인전에 팀을 만들어두냐? 내가 절대 쫄거나 그런 건 아니거든? 근데 그냥 뭐... 일단은 아는 사람끼리 붙어 있으면 좋다...란 거지."

얜 왜 갑자기 역겹게 츤데레 컨셉이야.

게다가 약간의 찐따미까지 곁들여서 처음 보는 속성의 맛을 자아냈다.

찐데레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역겨운 건 역겨운 거고 실제로 민수의 말대로 주변을 보니 아는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 있는 게 보였다.

분명 대회 진행 설명에 보면 일 대 일의 전투로 진행 된다고 했으나 게이트 안이라는 불안감 때문일까.

안전하다고 몇 번이나 안내 방송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변수 차단에 최대한 힘 쓰는 모습이었다.

"내가 근데 진짜 좀 살펴 봤거든? 이게 아무래도 이번에는 사람 수가 너무 많아서 예선이 좀 다르게 진행 되는 모양이야."

"다르게 진행 된다고?"

"어어 본격적인 예선전에 앞서 좀 선별을 한다나 뭐라나."

"넌 근데 그걸 누구한테 들은 거야?"

"어? 나? 그...그냥 뭐 주워들은 거지... 내가 너보다 여기 빨리 들어왔니까..."

처음엔 큰 목소리로 떠벌거리다가 목소리가 순식간에 줄어든다.

아무래도 노블이 접근해서 은근슬쩍 정보를 흘린 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이런 정보를 민수가 스스로 알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뭘로 선별 한다는 거지?'

예선전을 치를 헌터를 뽑기 위한 선별 작업.

솔직히 생각나는 거야 엄청나게 많았다.

무식하게 사람들을 모아 놓고 몇 명을 패배시켜라 같은 경우도 있었고, 깃발을 쟁취하라고 하는 등.

대규모 인원을 선별하는 방법은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뭐가 됐든!!! 어차피 너랑 나는 결승에서 만날 거니까 너무 많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여차하면 내가 있잖아? 이럴 때를 대비해서 붓검도 들고 왔으니까..."

민수는 지금 상황이 불안한 지 계속 입을 떠벌거렸다.

같은 반인 정을 봐서 적당히 대꾸를 해주려고 했으나 그 끝이 보이지 않아 포기했다.

'이목이 너무 끌리네.'

잡생각은 집어치우고 주변을 살펴 보려고 눈을 돌리다가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백발 태닝과 큰 목소리로 말을 하는 선비 조합은 주목을 과하게 끈다는 것.

가뜩이나 특정 짓기 쉬운 외형인데 민수까지 합쳐지니 누가 봐도 우린 백태양과 김민수였다.

"생도가 헌터 대회에 참가하다니..."

"대단하긴 해도 좀..."

"그때 그 도발 봤어요? 저는 솔직히 선을 넘었다고 생각해요."

"결국 백태양도 엄청 뭐 있는 척하더니... 김민수랑 같이 다니는 거 보면 끼리끼리이긴 한가 보네."

"갑자기 되게 후져 보이네요."

마지막 두 문장을 빼곤 다 납득이 갔다.

애초에 장두철도 이걸 노리고자 우릴 글라디르에 집어넣은 거였으니까.

"근데 대체 언제 안내 해주는 거야? 사람들을 이렇게 방치 시켜도 돼?"

주변 헌터들의 불만이 슬슬 나오고 있을 때 그 순간만을 기다려왔다는 듯 방송이 흘러나왔다.

아아! 아아! 잘 들리십니까? 오래 기다리게 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잠깐 특수한 사정이 생겨서 그걸 처리하느냐고 안내가 좀 오래 걸렸네요! 일단 사전에 공지했던 대로 게이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건 실시간으로 중계가 됩니다. 공정성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함이죠!

인공 게이트여서 통신 장비 사용에 제약이 없는 건가.

하늘을 쳐다 보니 촬영을 위한 드론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약간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네."

"그러게."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고.

민수가 오랜만에 맞는 말을 내뱉었다.

드론과 허공에서 퍼져 가는 안내 방송.

게이트 밖 관객석에서 구경하는 사람들.

말이 헌터 대회지 멀리서 본다면 동물원이나 다름없었다.

자 그럼 일단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저희가 원래라면 예선전부터 바로 진행 하려고 했는데 이게 너무 수가 많아지더라구요... 해서 간단하게 선별 과정을 한 번 하고자 합니다. 당연히! 무조건! 헌터라면 갖춰야할 기본 조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든든한 파트너? 신뢰? 우정? 인성? 성품? 재력? 권력? 그런 건 다 필요 없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건 무력이죠! 때문에! 우선! 여기 인원들 중 절반을 줄이겠습니다!

'클리셰대로 가네.'

그것도 전통적인 선별 과정을 따르고 있었다.

난 이 틈을 타서 최대한 빠르게 주변 헌터들을 관찰했다.

김민수처럼 사전에 정보를 들었다면 당황하지 않을 테고 그놈들이 높은 확률로 노블일 터.

굳이 노블이 아니더라도 요주의 인물로 따로 분류를 할 수 있었고 말이다.

'하나... 둘... 셋... 뭐야 되게 많잖아.'

모든 헌터를 다 보기엔 불가능해서 주변만 대충 흝어 봤는데도 그 수가 매우 많았다.

대충 봤는데도 수십을 넘을 정도였으니 전체적으로 따져 봤을 땐 최소 천이 넘는 숫자였다.

노블 파티에서 봤던 수보다 몇십 배나 많은 수.

그렇단 건 노블 파티에 왔던 헌터들이 극소수라는 것.

생각보다 규모가 굉장히 큰 집단이었다.

괜히 장두철이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왜 그리 편가르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게 아니었다.

동요하지 않았다고 해서 노블이란 건 아니었지만 확률이 높은 건 부정 못할 사실이다.

그럼 이제 의문이 생기실 겁니다? 어떻게 줄이냐? 그 방법은 당연히! 아주 당연하게도! 전투죠! 목숨은 신경 쓰지 마시길 바랍니다! 생명에 지장이 생길 정도의 상처가 생기기 바로 전에 즉시!!! 바로 강제 전송을 통해서 게이트 밖으로 사출 되어 치료를 받게 됩니다! 그러니 마음 편히 전투를 해주세요! 바로... 지금부터요.

?

대다수 헌터들은 갑자기 깔린 판에 적응하지 못한 채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를 틈타 이득을 보는 건 정보를 미리 알고 있던 소수의 인원들이었다.

쾅!

"뭐야! 갑자기 왜 이래!"

"방송 못 들었어? 절반을 줄이라잖아. 몇 명인지는 모르겠는데... 뭐 아무튼 가까운 놈부터 치는 게 빠른 길 아니겠어?"

이게 진짜라는 걸 알고 있는 헌터들이 발 빠르게 움직인다.

얼을 타고 있는 헌터들의 뒤통수를 치며 방금까지 말을 나누던 자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아 넣는다.

투두두두두두!

"크하하하하! 어차피 니네 다 안 죽는다니까 적당히 맞고 빠지던가! 난 그래 처음부터 이런걸 원했어! 이게 글라디르 아니겠어?"

"근데 안내방송 목소리가 처음이랑 조금 다르지 않아?"

"알 바야? 일단 우리가 예선전에 진출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어?"

"맞긴 하네."

사전에 말을 맞춰 팀을 짜둔 헌터들은 서로의 등을 든든히 맞대고 마음껏 스킬을 사용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전이라고 믿고 있던 헌터들은 무방비하게 피해를 입고 있었다.

선별 과정을 아냐 모르냐의 차이가 탈락하냐 마냐의 차이를 가르다니.

'시작부터 불공평하네.'

나조차도 김민수가 이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면 기습에 굉장히 무방비 했을 거다.

"백태양! 네가 기성 헌터들을 싹 다 무시하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다 선배에 대한 리스펙으로 어! 좋은 그런 게 나오는 거다!"

"절 또 언제 보셨다고 이렇게 공격적으로..."

쿠구구구구궁!

나한테 원한이 있는지 눈에 불을 켜고 대검을 휘두르는 이름 모를 헌터 하나.

가볍게 무기 케이스로 공격을 막으며 김민수의 위치를 파악했다.

"다들 저에게 다가오지 마세요! 저는 정말로 용.서.가 없는 타입 입니다."

민수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열 받는 표정을 지으며 붓검을 붕붕 휘두르고 있었다.

상대방을 해치겠다는 게 아닌 정말로 딱 위협용 수준으로만 검을 다루는 김민수.

주변 헌터들도 그걸 알 텐데 이상하게도 놈에게 공격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마치... 민수를 지켜 주듯이...'

지킨다고?

"어딜 보는 거냐 백태양! 고작 내 일격 하나 막았다고 여유를 부리다니! 으랏챠! 강태파격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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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 까가가가가각!

금속끼리 거세게 부딪치는 소리가 계속해서 튀어나온다.

"백태양! 뒤가 비었구나!'

기습하면서 당당하게 자기 위치를 알리는 또 다른 헌터.

아까부터 묘하게 공격을 집중 당하는 나와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김민수.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벌써 손을 써뒀구나.'

노블은 날 예선전조차 보낼 마음이 없는 듯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 그쪽의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그딴 식으로 나와도 결과는 똑같아.'

난 백태양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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