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원래 말 많은 놈일수록 엑스트라일 가능성이 높다
* * *
"백태양 생도, 잠깐 나 좀 보지."
"예? 네."
글라디르 대회 하루 전 날.
장두철은 갑작스럽게 날 상담실로 호출 했다.
"반드시 우승해라."
"갑자기요?"
격려 같은걸 해주는 건가 싶었는데 보기 좋게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보통 이럴 땐 힘내라, 긴장하지 마라,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해주지 않나?
뜬금없이 우승부터 이야기를 꺼내다니.
'어차피 할 생각이긴 했는데'
아무리 신인 헌터 위주로 참가한다 해도 그렇지.
이걸 대놓고 교관이 언급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널 과대 평가하거나 그런 게 아니다. 어디까지 아주 객관적인 평가로 내린 결론이다."
"전 메인 스킬 못 쓰는데요?"
"상관없다."
상시 발동형 메인 스킬 보유자는 지구로 따지면 핵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헌터끼리 선의의 경쟁해 진취적인 욕구를 자극 하는 글라디르여도 선은 존재하는 법.
그렇기에 글라디르에선 상시 발동형 메인 스킬 보유자 같은 경우엔 철저히 메인 스킬을 봉인 당한다.
김민수가 괜히 하루 종일 훈련실에 처박혀서 몸을 더 혹독하게 단련하는 게 아니었다.
장두철 또한 그걸 굉장히 잘 안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뭘 걱정 하는지는 안다. 메인 스킬을 사용하냐 못 하냐의 차이는 정말 큰 차이긴 하니까, 하지만 우리도 몇 가지 근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내 눈에서 의욕이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느낀 걸까.
장두철은 아예 화이트 보드에 '우승 근거'라고 적으며 몇 가지를 적어 내려갔다.
"우선은 이 대회가 신인 헌터 위주라는 점이다.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모든 신입 헌터들이 참여하는 대회인 만큼 실력자가 많을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너에 비하면 많은 부분들이 떨어진다."
"그래도 걔네는 아카데미도 졸업 했는데요?"
"아카데미를 졸업 한다고 다 일류가 되는 건 아니다. 애초에 빅토리 아카데미만 하더라도 졸업만 하면 다들 1급 헌터가 되는 줄 알고 있지만 진실은 다르다."
"아하..."
1급 헌터의 벽이 그렇게 높았다니 좀 의외였다.
새삼 유민혁이 얼마나 대단한 헌터인지 알게 됐다.
'난 그런 헌터의 딸을 따먹은 건가.'
없던 정복욕이 갑자기 생겨났다.
장두철은 내가 흥미를 보였다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검은색 마카를 빠르게 움직였다.
"일단 우승 후보를 몇 명 추려봤는데 한 번 확인해 보겠나?"
"음..."
"아주 얼굴에서부터 확인할 가치도 없다는 걸 팍팍 티 내는구나."
"죄송합니다."
"뭐 상관없다. 어차피 다 네가 이기면 될 일이니까."
솔직히 우승 후보 같은 건 관심조차 없었다.
김민수가 글라디르에 참가한다고 한 이상 대부분은 엄청 떠벌거리다가 퇴장할 게 분명할 터.
이런 사소한 부분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았다.
'김민수의 두 번째 성장 이벤트가 될지도 모르겠네.'
역경을 딛고 성장하는 용사.
메인 스킬이 봉인 당했지만 멋지게 우승 후보를 물리치는 주인공.
가 왕도성장물이라는 걸 감안했을 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추측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더더욱 우승을 해야만 하는 거고 말이다.
"근데 제가 우승해야 하는 이유는 뭡니까? 김민수도 있잖아요."
"아 그건..."
장두철은 말을 잇기 전 상담실 창문으로 밖에 누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딱 봐도 사람 한 명 다니지 않았으나,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는 지 아예 문까지 열어 철저히 사람 여부를 검사했다.
"사실 이제부터가 본론이라고 할 수 있겠군. 이건 너와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여야 한다."
철컥.
장두철은 아예 문까지 잠근 뒤 진지한 얼굴로 내 앞에 앉았다.
여태까지 부드러운 얼굴로 분위기를 풀어 주던 사람이라곤 생각할 수도 없는 표정이었다.
"빅토리 아카데미 내에도 노블의 끄나풀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김민수 생도한테 접근할 가능성은 매우 높지."
"설마 김민수도 그럼...?"
대답하면서도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멍청한 놈이 스킬 헌터라는 거대한 범죄 조직에서 활약을 할 수 있을 리 만무 했으니까.
'그래도 일단 장단은 맞춰줘야지.'
진지한 분위기인 만큼 맞장구도 적절히 쳐주는 게 옳았다.
"김민수 생도는 아니다. 그럴 생도도 아니고 말이지, 그러나 문제는 김민수 생도 주변에 있는 인물들이다."
"민수한테 접근해서 무슨 수작을 부릴 수도 있다는 거죠?"
"그래. 알게 모르게 연합을 맺어서 민수를 돕거나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선천적 각성자 전체가 한 팀을 이룰 지도 모르지."
"그렇게까지 해서 얻는 게 뭡니까?"
이건 정말 순수한 의문이었다.
노블에서 활동하지도 않는 김민수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고 편을 가르고, 그래서 얻는 이득이 대체 뭐란 말인가?
'애초에 그걸 나누는 거에 의미가 있나?'
차별화에 대한 목적성이 너무 흐릿해 보이는 일이었다.
선천적 각성자와 후천적 각성자를 나눠서 파벌 싸움을 했을 때 대체 무슨 이점이 생기는 걸까.
장두철도 내 의문을 눈치채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
"없다."
"네?"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너도 짐작은 했을 거다. 이걸 나눠서 대체 무슨 의미가 있고 어떤 장점이 있는 거지? 그들의 처지에서 한 번쯤 생각도 해봤겠지."
하지만 없다. 그렇기에 위험하다.
나지막이 내뱉은 말은 상당히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 수많은 의미 중에서 가장 뚜렷한 것.
'상당히 미친 새끼들이잖아?'
목적도 흐릿하고 과정도 위험하나 아무런 이득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차별을 목적에 두고 선천적 각성자와 후천적 각성자 사이에 신분 차를 명확하게 하여 만인에게 인식 시키는 것.
하이리스크 로우리턴의 일을 노블은 행하고 있었다.
"해서 후천적 각성자 쪽의 대표 주자인 네가 반드시 우승을 차지해야 한다. 당당히 우승해서 반드시 차별 없는 헌터계를 만들어 다오. 비록 윗물이 썩었으나 그렇다고 아랫물까지 썩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근데 왜 접니까?"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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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빠른 일이기 때문이다라..."
장두철의 마지막 말을 곱씹으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내가 무슨 스피드런 전용 캐릭터도 아니고.
자세하게 물어보고 싶었으나 장두철의 눈빛이 너무 진지해서 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근데 이제 뭘 해야 하나.'
어차피 글라디르는 개인전이기 때문에 따로 김민수와 접촉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애초에 내가 붙어 있으면 노블이 접근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따로 떨어져야 하고 말이다.
그렇게 뭘 해야 될지 어리버리 타고 있을 때 다행히 안내 방송이 경기장 안에 울렸다.
글라디르 예선전이 곧 시작 되오니 참가 하는 모든 헌터는 즉시 경기장 중앙에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글라디르 경기장의 중앙.
그곳으로 몸을 옮겼을 때 참가자들을 맞이한 건 커다란 게이트 입구였다.
'뭐야?'
처음부터 이상한 점이 있긴 했다.
수많은 헌터들이 개인전을 치르는 거에 비해 경기장이 너무 협소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헌터들이 오는 만큼 엄청난 넓이의 공간이 필요할 터.
글라디르는 그런 고민을 싹 날려 버리고도 남을 물건을 준비해 둔 상태였다.
참가자 분들은 경계심을 풀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주시길 바랍니다. 이 게이트는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 인공 게이트로 순수하게 글라디르 대회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이트입니다. 안심하시고 편한 마음으로 게이트에 입장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합니다. 글라디르 대회에 참가하는 헌터 분들께서는 경계심을 풀고 게이트 안으로……
"아니 무슨 시험을... 게이트 안에서 봐? 참나... 어이가 없군."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저희는 좀 다르죠. 아무래도 경.력.자니까요 우하하하하!"
난 게이트 안에서 시험을 보는 게 신기하고 새롭다 정도의 반응이었는데 주변은 아닌가 보다.
주변 말소리만 대충 주워들어도 마냥 긍정적인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헌터들이 다 신입이다 보니까 마음에 다들 여유가 부족했다.
심지어 몇몇 헌터는 게이트를 보자마자 '몬스터다!'라고 큰소리로 외쳐 쪽을 당한 경우도 있었는데.
"아...아니었네..."
당연히 그중엔 민수도 포함 돼 있었다.
'근데 진짜 어지간히도 신경 썼네.'
글라디르는 복장부터 시작해서 무기까지 다 개인 지참이기에 구경할 게 굉장히 많았다.
특히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들은 아예 이사를 준비하나 싶을 정도의 짐을 챙길 정도였다.
민수도 그런 괴짜들 사이에서 지지 않으려는 듯 전통 한복 차림과 더불어 검은색 갓을 쓰고 있었다.
"어? 너 백태양이지?"
"예?"
나도 장비를 챙겨서 게이트 쪽으로 걸어가려는 찰나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난 박경철이라고 한다. 나 알지?"
"아니 모르는데?"
"?"
"?"
우린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운 표정을 지으며 몇 초간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봤다.
박경철이 누구야?
게이트 들어가서 환경 파악부터 해야 하는 이 귀중한 시간을 왜 방해하는 거지?
박경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날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이내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우하하하하! 듣던 대로 화끈하고 멋있군! 근데 말이야 잠깐 오류가 생긴 것 같아서 꼭 바로잡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너보다 선배야. 그러니까 반말하는 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만? 물론 긴장해서 그럴 수도 있고...해서 가볍게 사과하고 넘어가도록 하지. 내가 너에게 접근한 이유는 바로..."
"아냐, 긴장한 거 아니고 반말 일부러 한 거 맞아."
이곳은 아카데미가 아니었다.
"...뭐라고?"
"일부러 말 깐 거라고. 게다가, 언제 봤다고 선배래? 아니 그리고 나인 건 어떻게 안 거야?"
"...어...아니...그게..."
따라서 누군가한테 억지로 잘 보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소설 클리셰대로 간다면 이놈은 무조건 엑스트라였다.
'원래 말 많은 놈일수록 엑스트라일 가능성이 높다.'
보아하니 나한테 붙어서 뭐라도 건져볼 속셈인가 본데.
어림도 없었다.
[로시난테 발동! 안전 운전 하세요!]
히이이이잉!
군마가 발굽질을 하며 우렁차게 우는 소리가 경기장에 크게 울려퍼진다.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내서일까 자신의 존재감을 마음껏 어필하는 로시난테였다.
'저런 놈들은 상대를 안 해야돼.'
엑스트라한테 발이 묶여서 쓸데없는 대화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곧바로 로시난테에 탑승해 박경철을 뒤로하고 게이트 속으로 들어갔다.
본격적인 글라디르 예선전의 시작이었다.
"아니... 침대만한 무기 케이스를 들고 다니는데 모를 수가 있나..."
뒤에서 들리는 말은 가볍게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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