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여기서 우승하면 되는 건가.
* * *
노블 파티가 열렸던 건물의 최하층.
그곳엔 오직 한 명을 위해 만들어진 화려한 무대와 단상이 존재했다.
그 단상 앞엔 수많은 사람이 무릎을 꿇고 단상 앞에 선 남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하기 위해 너희를 불렀다.
가면으로도 가리지 못 하는 턱살과 축 늘어진 볼살.
SD 캐릭터를 제대로 그리지 않고 그대로 실사화한 느낌.
노블의 수장 더 데빌 카오스 울트라 킹이자 의 작가 안뚱땡이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모인 거래?"
"몰라."
"저번처럼 멋진 별명으로 불리고 싶어서 소집한 것만 아니면 좋겠는데."
"아, 그땐 진짜 끔찍했지. 더 데빌 울트라 카오스 킹을 만족할 때까지 불러줬잖아."
"글라디르 때문에 스킬 하나라도 더 뺏어야 되는 시간에..."
노블은 최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후천적 각성자들 중에서 약한 자들만 골라서 쏙쏙 맛있는 서브 스킬을 빼먹어야 했고, 글라디르 준비로 인해 여러 인사들에게 뇌물을 뿌려야 했기 때문이다.
당장 노블 파티 때만 해도 글라디르 고위급 인사들을 따로 불러 룸에서 뼈 빠지게 로비를 해야만 했다.
'난 동행열차 같은 노래 딱 질색인데.'
땅벌부터 시작해서 동행열차 그리고 V라인까지.
취향도 아닌 트로트들 가사와 안무를 외우면서 열심히 접대를 하고 있었거늘.
저 단상에 있는 뚱뚱한 놈이 갑자기 파티를 급히 끝내는 바람에 제대로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었다.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재력과 연줄까진 좋았다.
그러나 늘 중요한 부분에서 늘 삐끗하는 게 저놈이었다.
'스틸 스킬만 아니었어도.'
이건 개인의 불만이 아닌 노블 전체의 불만이기도 했다.
단지 스킬을 빼앗길 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남의 스킬을 뺏어서 강해질 수 있다는 욕망.
이 두 가지가 모든 불만을 억누르고 단상 위의 남자에게 복종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영웅, 불굴의 용사! 김민수가 글라디르에 참여한다고 한다. 잘 보면 알겠지만... 뭐 내가 백번 말해주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르겠군. 이런걸 백문이붙어일견이라고 한다지 아마? 우헤헤.
띡.
안뚱땡은 되도 않는 말을 내뱉으며 빔 프로젝터를 작동시켰다.
하얀색 스크린에 점차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한 인터뷰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글라디르에 백태양 헌터와 김민수 생도가 지원한단 말씀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생도 신분은 글라디르 참가 자격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의문이 많았습니다. 생도와 헌터를 가르는 게 과연 무엇일까요? 나이? 아카데미 졸업? 게이트 클리어 횟수? 저는 다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화면 속엔 백태양과 김민수가 나란히 앉아서 마이크를 하나씩 쥐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었다.
대부분 기자들은 백태양에게 질문을 하며 끊임없이 대답을 요구했다.
특히 마지막에 던진 기자의 질문은 굉장히 민감해질 수 있는 사안이기에 잠시 정적이 생겼다.
헌터와 생도를 나누는 기준이란 무엇일까.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화두였다.
같은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다고 해도 백태양은 헌터라고 불리고 김민수는 생도라고 불린다.
이 차이는 과연 무엇 때문에 생겨나는 것일까.
실력입니다.
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속으로만 생각했던 답.
내뱉는다면 큰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말.
그것을 백태양은 스스럼없이 내뱉으며 당당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바른 말했을 뿐인데 뭐가 잘못 됐냐는 눈빛으로 오히려 기자들을 노려보기까지 한다.
헌터와 생도의 기준은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는 많은 분들에게 헌터라고 불리며 검증된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제 옆에 있는 김민수도 조만간 그렇게 불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렇기에 이 자리에서 선언합니다. 저와 김민수는 생도가 아닌 헌터의 신분으로서 당당하게 글라디르에 참가할 것입니다.
찰칵찰칵.
수 천 번의 플래쉬가 터져 나온다.
백태양은 당당하게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바라봤고 민수는 반짝임을 이기지 못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어우 플레쉬가...
아 맞다! 김민수 생도! 하나 여쭤봐도 되나요?
네네! 무슨 질문이든 편하게 하세요!
백태양의 포부가 밝혀지고 뜨거운 주제가 끝나갈 무렵 한 기자가 민수를 불렀다.
민수는 오랜만에 찾아온 질문에 얼굴을 활짝 피며 입을 열었다.
아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혹시 최근에 인터넷에 돌고 있는 찌라시로 김민수가 성인용품점에 갔다는 썰이 있던데 알고 계시나요?
네?
...?
질문을 한 기자 외의 모든 사람이 당황했다.
아니 그걸 지금 여기서 말한다고?
그런 표정이었지만 아무도 그 기자를 말리거나 나무라지는 않았다.
그편이 훨씬 더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성인용품 알바라고 한 사람이 인증까지 하면서 올렸던 게시글... 혹시 안 보셨나요?
네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만...
아 다행입니다. 역시 사실이 아니었군요. 게시글에 따르면 김민수처럼 보이는 애가 와서 이것저것 물어 보다가 소형 사이즈 콘돔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있어서요... 게다가 우다다다 급발진하며 말하고 갑자기 혼자 중얼거리다가 이상하게 웃었다는 말도 있고... 역시 찌라시가 맞았나봅니다. 감사합니다.
기자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민수의 얼굴은 점점 하얗게 질려갔다.
아...그...어...네네...진짜 처음 듣습...
대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서 만인의 의심을 받는 일촉즉발의 상황.
백태양은 처음에는 가만히 지켜볼 생각이었다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급히 입을 열었다.
사적인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그게 찌라시라도 선을 좀 넘으신 것 같습니다. 그럼, 여기서 이만 기자회견 마치겠습니다.
그렇게 급하게 백태양은 기자 회견을 끝내고 김민수의 목덜미를 잡아 현장에서 벗어났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상도 끝을 맺었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으로 보이나?
"김민수의 소형 콘돔 말씀 말이십니까?"
갈!!! 그게 아니다! 그게 아니란 말이다! 진짜 중요한 건 저 두 명이 글라디르에 참가한다는 거다!
'그걸 누가 모르냐고.'
안뚱땡이 말하기 전에 인터뷰 동영상이 올라오자마자 모두가 같이 봤기에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긴 단톡방에 없으니까 우리가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
안뚱땡을 제외한 나머지 노블 회원들은 그리 생각하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힘이며 권력이며 다 좋았지만 아무래도 단톡방에 넣는 건 좀 그랬기 때문이다.
그게 설령 노블의 수장이라고 해도 말이다.
뭐 승부 조작을 하자고 부른 게 아니다. 단지 우리 쪽에서 뺏은 스킬 몇 개를 티 안 나게 민수에게 주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겠거니 해서... 불렀다. 이게 본론이다. 그리고 당연히 백태양은 탈락 시켜야 한다. 여차하면 최수의 후단도 사용해도 되니 미리 허가하겠다. 놈이 우승하는 일 만큼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
"최후의 수단이라고 하신 겁니까?"
...? 아아 그래 그렇다.
"...알겠습니다."
'그것'까지 써야 할 정도로 백태양이 위협적이란 말인가?
본래 천해일이나 장두철을 상대할 때 쓰려고 준비를 한 거였는데.
'왜 저렇게 백태양을 높게 평가 하는 거지?'
생도 신분으로 S급 게이트 클리어? 그래, 대단한 일이 맞으며 칭송받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날고 길어 봤자 생도는 생도였다.
비 각성자들이야 좋다고 빨아주겠지만 헌터계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해 봤을 땐 잘 쳐줘봤자 3급에서 2급 사이.
풋내기 애송이 하나가 정말로 글라디르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설령 놈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메인 스킬빨일 게 분명할 터.
'글라디르는 몬스터를 잡는 게 아니라고.'
글라디르에서 우승을 하려면 결국 헌터끼리의 대련에서 승리해야 했다.
그리고 이때 상시 발동형 메인 스킬 보유자는 페널티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절대 우승할 수 없을 거다.'
상시 발동형 메인 스킬 보유자는 헌터끼리 격돌 시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메인 스킬을 발동할 수 없다는 규칙.
이 규칙이야말로 백태양이 절대로 우승할 수 없다는 근거나 다름없었다.
김민수에겐 힘을! 백태양에겐 절망을! 놈에게 아무리 길고 날뛰어도 넘을 수 없다는 벽이 있다는 걸 알려라! 그리고 민수의 찌라시 글을 올린 놈을 추적해서 글을 삭제해 달라고 하고 단단히 겁을 줘라! 그건 정말로 사실이 아닐 테니까!
안뚱땡이 열변을 토하는 사이 나머지 노블 회원들은 열심히 핸드폰을 두드렸다.
[노블 단톡방]
>알겠습니다. 모든 건 로얄 로드를 위하여.
안뚱땡이 없는 노블의 단톡방.
노블의 실행 계획은 항상 수장이 없는 곳에서만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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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디르 대회 당일.
예선전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 많네."
거대한 경기장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내뱉은 첫 감상이었다.
'여기서 우승하면 되는 건가.'
진한 웃음을 지으며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글라디르 예선전 시작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