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밥은 나중에 먹어야겠다. (유수진 일러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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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대회를 나가라구요? 생도가 헌터 대회를 나갈 수가 있어요?"
"너랑 김민수 생도는 특별하니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이쪽에서 팍팍 밀어 주마."
"근데 갑자기 왜요?"
상담실 안.
느닷없는 장두철의 소리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휴가 즐기고 온 사람이 적응할 시간 정도는 줘야지 다짜고짜 대회 참가부터 말을 꺼내다니.
애초에 생도가 헌터 대회를 나가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뭐가 있단 말인가.
"최근 헌터들이 의뢰금을 높이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말이야. 경각심을 조금 일깨워 주고 싶다."
빅토리 아카데미의 계획은 이랬다.
생도지만 헌터급 실력을 가진 나와 김민수 둘이 헌터들의 실태를 저격한다.
그러면 당연히 반응이 올 테고 그 증명의 장소로 헌터 대회로 고른다는 거였다.
생도에게 패배한 헌터들을 본보기로 삼아서 '똑바로 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준다나 뭐라나.
"그게 먹힐까요?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것 같은데..."
웬만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넘어가려 했겠지만 이건 아니었다.
헌터들을 도발한 생도가 대회에 참가해 입상해서 긴장감을 넣는다?
웬만해선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반응이 나올 거란 걸 장두철도 짐작 했는 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사실 그건 부수적인 목표에 불과하고 진짜는 따로 있다. 혹시 스킬 헌터라고 들어 봤나?"
"스킬 헌터요?"
"못 들어 본 모양이군. 간단히 설명하자면 최근 헌터들 사이에서 서브 스킬을 강탈당하는 사건이 늘고 있다."
그럼 그렇지.
갑자기 '느슨한 헌터계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야 한다.'라고 이상하다 싶었다.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짐작은 했는데 스케일이 상당했다.
"우리는 서브 스킬을 강탈당하는 헌터가 후천적 각성자들 위주라는 것에 주목 했지."
서브 스킬을 강탈당하는데 그게 후천적 각성자 위주다?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딱 하나.
'노블인가.'
얼마 전 파티에 갔을 때만 해도 느꼈던 묘한 선민의식이 실체화 되는 순간이었다.
후천적 각성자는 아예 파티에 끼지도 못하게 하는 것과 '노블'이라는 명칭 자체의 의미까지.
지나친 억측일 수도 있었지만 너무나 앞뒤가 딱딱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조금 더 조사해본 결과... 우리는 노블이 수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같은 각성자끼리 편을 가르는 미친 짓을 아직 하는 그곳 말이지."
장두철의 발언 속엔 강한 혐오감이 실려 있었다.
힘을 합쳐야 하는 마당에 편을 가르고 남의 것을 탐하는 헌터를 좋게 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심지어 최근 의뢰금을 올리고 있는 헌터들이 별 계기 없이 강해졌다는 것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헌터 대회에 저희가 나가는 거랑 그거랑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겁니까?"
결론은 이거였다.
스킬 헌터가 노블과 관련이 있으며 의뢰금을 높게 부르는 헌터들이 강해진 연관성은 이해가 갔다.
근데 갑자기 헌터 대회에 생도 둘이 나가서 긴장감을 넣는다? 이 둘을 연결 짓기엔 무리가 있었다.
'아니지, 잠깐만.'
그때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이 뇌리를 스쳤다.
"설마 노블이 헌터 대회에 나오는 건가요?"
장두철은 내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노블쪽 놈들은 헌터 대회 글라디르에 항상 참가해 왔었다.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말이지."
장두철은 품 안에서 헌터의 신원 정보가 담긴 종이를 여러 장 꺼내기 시작했다.
종이 가장 윗면엔 붉은 글씨로 노블이라고 써져 있었는데 일종의 낙인처럼 보였다.
"이 녀석들이 이번 글라디르에 참가하기로 된 놈들이지... 여러 인터뷰에서 이미 노블이란 걸 간접적으로 증명한 쓰레기들이다, 의뢰금도 최근에 높게 올렸더군,"
"이제야 이해가 좀 되네요... 근데 저는 그렇다 쳐도 왜 민수죠? "
"민수는... 노블에서 굉장히 상징적인 인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노블 쪽에선 민수를 새로운 리더 쯤으로 여기고 있는 모양이야. 민수가 원하지 않아도 말이다."
"허... 용사가 대단하긴 한가 보네요."
그 뒤로도 장두철과 수많은 대화가 오갔으나 쉽게 요약하자면 이랬다.
게이트와 던전이 급증함에 따라 모두가 함께 협력해야 하는 이때.
의뢰금을 올리며 사리사욕을 챙기는 헌터가 늘어났다.
이 헌터들은 대부분이 선천적 각성자였으며 강해진 계기가 불분명했다.
더불어 스킬 헌터 범죄로 인해 후천적 각성자들만 약해지고 있는 것에 위의 경우와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
후천적 각성자의 샛별인 나와 노블이 점찍은 차세대 리더 김민수가 헌터들을 도발하는 척하며 '노블'을 저격한다.
저격 후 글라디르에 참가하겠다는 걸 알린 뒤 노블 쪽에서 접근해 오길 기다렸다가 한 번에 검거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후천적 각성자의 샛별이니까 노블 쪽에서 해치려고 할 테고... 민수는 차세대 리더인 만큼 포섭을 하려고 하겠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 하든 무조건 먼저 다가오게 된 구조였다.
"이건 명령이나 그런 게 아니므로 부담스럽다면 거절해도 된다."
"한 가지 질문해도 되나요?"
"뭐지?"
"혹시 이 작전에 대해 민수도 알고 있나요?"
"김민수 생도는 아직 글라디르 참가 권유만 받은 상태다."
"그럼 나중에라도 이 작전을 김민수가 알 가능성이 있나요?"
"없다."
"그럼 하겠습니다."
트롤러가 없다는 게 판명된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어졌다.
'노블이라...'
앞으로도 여러 번 부딪칠 듯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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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주택 단지의 하늘정원은 가뿐히 즈려 밟을 정도의 꽃이 눈 앞에 펼쳐진다.
꽃으로 이뤄진 터널은 기본이고 흔들 의자부터 시작해서 가운데엔 커다란 분수가 계속 물을 뿜고 있었다.
'이게 무슨 옥상이야 정원이지.'
이 광경과 다르게 유난히 사람 한 명 없는 한적한 아카데미 옥상.
수진이는 다소곳이 돗자리를 펴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태양아!"
"아 누나 오래 기다렸어요?"
"아냐 나도 금방 왔어."
장두철과 글라디르 대회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다 끝난 뒤 점심시간.
밥을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수진이가 도시락을 싸왔다고 연락해왔다.
"처음 만들어 본 거라서 입에 맞을 지 모르겠네..."
수진이는 그렇게 말을 하며 수줍게 도시락을 내밀었다.
딱 봐도 대식가 용으로 보일 법한 크기의 도시락이었다.
난 늘 그렇듯 수진이 옆에 딱 붙어 앉으며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3인분 정도 돼 보이는 쌀밥과 고기반찬 세 첩과 같은 나물 두 첩 그리고 국까지.
말이 도시락이지 어디 고급 한정식과 같은 비주얼이었다.
"저번에 엄청 잘 먹길래... 많으면 남겨도 돼... 혹시 몰라서 많이 준비해 봤어."
"와 이렇게까지 안 해 줘도 되는데... 너무 고마워요 누나."
"아냐 이거... 그... 우리 나중에 원더랜드 데이트 갈 때... 연습용 같은 거야...헤헤..."
아 맞다.
수진이랑 원더랜드 데이트.
데이트 약속을 잡은 뒤 춘향전 게이트부터 노블 파티까지.
정신없는 일이 너무 여러 번 일어나서 까먹고 있었다.
심지어 잊어먹고 있는 그 틈을 타서 글라디르까지 일정이 추가된 상태였다.
'곤란하네.'
갑자기 글라디르를 참가하기가 싫어졌다.
여자랑 놀아도 시간이 부족한데 일면식도 없는 헌터들이랑 무기를 주고받아야 하다니.
수진이는 어디서 배운 건지는 몰라도, 탄산 음료 캔에 빨대를 콕 꽂아 가슴 위에 올려서 빨아먹고 있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눈웃음을 치며 날 바라보는데 없던 성욕도 만들어 낼 정도의 위력이었다.
"...바쁜 거면 약속 미뤄도 돼."
"네?"
"아니 그... 표정이 좀 그래 보여서..."
"그런 거 아니예요 누나. 제가 그걸 왜 미뤄요? 장난이라도 그런 말하지마요."
"헤헤 그래? 미안 미안."
그런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는 수진.
가슴이 큰 편이었기에 내 팔이 가슴 사이에 쏙 들어갔다.
방금 내 말을 듣고 안심한 건지 표정이 흐물흐물 해지며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는다.
"태양아...내가 먹여...줘도 돼?"
"그럼요."
"아...~"
"아~"
우물우물.
저번 식사 때도 느꼈던 거지만 확실히 간이 좀 심심했다.
살짝 소금이 조금 더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물론 이것저것 따질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한 번 씹자마자 바로 감탄사를 뱉었다.
"누나 진짜 너무맛있는데요?"
"진짜? 막... 간 너무 이상하거나 하지 않아?"
"딱 좋아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간이예요."
"신붓감이야?"
예상외의 질문이 빈틈을 찾아서 명치 쪽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답변을 하느냐에 따라 이후의 관계에 많이 지장을 주는 물음!
하렘 순애를 유지해야 하는 운명을 지닌 나에게 너무 매서운 공격이었다.
수진이는 저번에도 키스 마크를 남길 때도 그렇고 집착 욕구를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다.
어느 정도 대비해놔야겠다고 생각 했으나 이 정도로 날카롭다니.
만만한 여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저는 어때요?"
"응?"
"저는 신랑감이예요?"
"아...그..."
이럴 질문엔 질문으로 역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캣파이트는 무조건 일어날 수밖에 없어.'
안뚱땡이 만든 세계관인 만큼 내가 하렘을 차린 순간 캣파이트는 예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얼마나 피해를 최소화 시키냐였다.
만약에 신붓감이 어떠니 뭐니 하면서 입을 잘못 놀리는 순간 후폭풍을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캣파이트에서 살아남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한 발자국 뒤에서 구경하는 것 말곤 존재하지 않았다.
수진이가 역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해 하는지금 이 상황.
난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앙...! 태양아 여기...아카데미 옥상인데에..."
그래서 이러는 거야.
야외에서 하는 거야말로 진짜니까.
"저 믿죠 누나?"
"응...믿어..."
빽빽하게 사이를 좁히던 수진이의 다리가 천천히 벌어진다.
'아예 이런 쪽 대화는 생각도 못 하게 만들어 놔야겠네.'
밥은 나중에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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