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느슨한 헌터계에 긴장감을 불어 넣는 방법.
* * *
이튿날 아침.
'생도라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네.'
등교를 정말 얼마 만에 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디에 갔다 하면 던전이나 게이트가 쏙쏙 튀어나오고 맨날 클리어를 해야 하고.
클리어하면 그 포상으로 휴가를 받아서 아카데미에 안 나가고.
이게 두 세 번 정도 반복 되니까 아카데미를 가는 것 자체가 너무 낯설어졌다.
편입 와서 등교한 날보다 등교하지 않은 날이 더 많다니.
남들이 보면 양아치가 일부러 아카데미를 빼먹은 줄 알 터였다.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몇 개 점검해볼까...'
오랜만에 메인 퀘스트 남은 기한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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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NTL 퀘스트의 남은 기한은 329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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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애매한 기한.
멜라니가 거의 다 넘어왔네 어쩌네 하지만 현실은 유민이 말곤 공략한 히로인이 아무도 없었다.
주인공 지분율은 20.1%.
예전에 단순 계산으로 해봤을 때 앞으로 나올 여인은 넷.
히로인은 게임 같은 게 아니었기에 한 달에 한 명씩 클리어하자는 견적 나오지도 않았다.
유민이를 정말 빠르게 공략한 것? 그건 순전히 운에 불과한 일이었다.
원래라면 멜라니처럼 떡각도 안 잡히고 계속 야금야금 호감도를 쌓아 올리는 게 정상일 터.
당장 오늘만 하더라도 그렇게 파티에서 같이 놀아도 나가는 진도가 '같이 등교'가 고작이었다.
'그 차 안에서 또 뭘 하기란 말도 안 되는 거고...'
아무래도 멜라니와 류혜미는 천천히 빌드업을 쌓는 것 외엔 이렇다 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멜라니는 요즘 알아서 어항에 들어온 경우여서 상관없었다.
문제는 류혜미라고 몇 번씩이나 강조를 했으나 이젠 어느 정도 상황이 나아졌다.
류혜미의 가장 큰 문제는 접점이 너무 부족하다는 거였다.
근데 얼마 전에 얻은 헤라클래스의 곤봉 때문에 이런 고민이 싹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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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래스의 곤봉 :: 헤라클래스의 곤봉입니다.
원래라면 얻을 예정이 아니었으나 보상 지급 문제로 인해 얻게 된 신화 속 유물입니다.
본디 평범했던 곤봉은 헤라클래스를 만나 여러 신화를 겹쳐 쌓아가며 유물이 됐습니다.
현재 주인이 바뀜에 따라 곤봉에 쌓여 있는 모든 신화가 비어 있습니다.
헤라클래스의 곤봉이 사용자 백태양의 성향에 맞춰 이름이 변경 됩니다.
최근 [마족화]를 사용하여 [변 사또]의 상태로 상대방을 압살한 것이 확인.
헤라클래스의 곤봉이 '탐욕의 곤봉'으로 변합니다.
자신만의 업적으로 신화에 닿으시길 바라겠습니다.
현재 탐욕의 곤봉에 담겨져 있는 업적 목록
[탐관오리] :: 탐욕의 곤봉으로 타격 시 타격된 곳의 능력치를 일시적으로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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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래스의 곤봉을 얻었을 때 이걸 어디에 쓰나 했는데.
류혜미에게 보여준다면 아주 환장하고 달라붙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이제 내 전용으로 바뀌었다고 말하며 그런 부분까지 상세히 알려주다 보면 분명 기회는 올 터.
이미 얼굴에 정액도 한 번 뿌려 놨기 때문에 작업하기가 더 수월할 수도 있었다.
좋은데?
긍정적으로 결론을 마무리 지은 뒤 집 밖을 나섰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와요? 그러다가 지각이라도 하면!"
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앙칼지고 날카로운 목소리.
안 봐도 뻔한 멜라니였다.
기숙사에서 보금자리쪽이 알아봐준 집으로 이사한 뒤 아카데미와 거리가 좀 벌어졌다.
예전에는 걸어서 가볍게 갔다면 지금은 차로 가도 될 법한 거리가 됐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래서 멜라니도 리무진을 타고 나타났는데 아주 훌륭했다.
차 안에 있으면 수진이랑 유민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차가 있는데 지각을 어떻게 해. 그리고 여차하면 내려서 로시난테 타면 되지."
"미리미리 준비하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이래서 그냥 처음부터 저희 쪽에서 준비한 집으로 이사 오셨으면... 처...처음부터 같이 등교해서 이렇게 번거롭게... 막..."
"알았어, 무슨 이야기하는지 알았어. 일단 가자, 이러다가 진짜 늦겠다."
뒤늦게 안 사실이었지만 멜라니는 정말 잔정이 많은 여자였다.
방금과 같은 방식으로 은근 자신과 같이 함께 하면 좋은 점을 조심스럽게 어필하는 점만 봐도 그랬다.
유민이 같았으면 화끈하게 그냥 동거부터 하자고 말을 꺼냈을 텐데.
이런 점이 유민이와 멜라니의 라이벌 관계를 더욱더 단단하게 굳혔을 거로 생각했다.
성격도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르고 연인을 대하는 방식도 차별점이 있다고 해야 하나.
'확실한 건 민수가 감당하기엔 둘 다... 무리가 있다는 거지.'
차에 타면서 옆에 있는 멜라니를 쳐다봤다.
"왜...왜 그렇게 봐요?"
"그냥 보는 거지 뭘... 이유가 있어야 보는 건 아니잖아."
"지금 그럴게 아니라 저한테 요즘은 아카데미에서 뭘 하는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맞네.
멜라니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카데미를 안 간 지가 너무 오래 돼서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는 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진짜... 제가 꼭 챙기게 만드네요... 흠! 요즘 게이트가 많아지다 보니까 아무래도 실습을 나가는 빈도가 많이 늘었어요... 그리고..."
멜라니는 현 빅토리 아카데미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해줬다.
게이트와 던전 수가 급증함에 따라서 아카데미 교관들이 정말 바빠졌다는 것.
1학년 생도들까지 F급 게이트와 던전으로 파견 지원을 갈 정도로 손이 모자라다는 것.
"마지막으로 상시 발동형 메인 스킬 보유자 정기 점검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아... 그거?"
"네 이건 그 무슨 일이 있어도 빠지시면 안 돼요."
상시 발동형 메인 스킬 보유자 정기 점검.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스킬 숙련도를 확인 받고 출력을 공식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날이다.
게이트 내에선 출력을 조정한 건 정말 예외적인 경우다.
'출력을 제한하다가 죽으면 어쩌려고 하냐'라는 의견도 있긴 했다.
그러나 상시 발동형 스킬의 출력을 제한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주변의 안전이다.
눈앞의 적을 죽이기 위해 상시 발동형 스킬의 한계를 해방했을 때 그 여파로 모두가 죽는다면?
벌레 하나 잡겠다고 초갓집을 다 태워 버리는 격이 될 터.
그렇기에 내가 백화점과 돈키호테 게이트에서 했던 행동이 무조건 옹호 받기 어려운 거다.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모두가 살아서 돌아온 해피엔딩이지만, 과정론으로 따지면 모두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한 셈이다.
"이런 거 말고는 별거 없네요."
"그래? 생각보다 진짜 별거 없네."
"기껏 알려 줬는데 설마 그렇게 말하고 휙 가는 거 아니죠?"
"당연히 고마움도 잊지 않고 있지."
"말이나 못 하면 진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아카데미 안이었다.
지정된 주차 공간에 리무진이 정차 되고 나란히 정차를 할 때 의외의 인물이 등장했다.
"백태양 생도, 잘 쉬었나?"
1A반의 담임이자 최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몇 안 되는 헌터 중 하나.
장두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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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양이 등교하기 몇 시간 전.
교관들은 모두 강당에 모여 회의를 시작했다.
"최근 게이트와 던전 수가 급증함에 따라 1학년까지 파견을 보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왜 유독 한국에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지 통 모르겠군, 다른 나라는 게이트 수가 오히려 줄고 있는데 한국만 늘어나다니. 다른 나라에 지원요청이라도 해야 할 판국이야."
"가장 큰 문제는 헌터들의 사리사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닌 헌터도 많지만 최근 게이트와 던전이 급증함에 따라 의뢰금을 과하게 올리는 헌터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멍청한 놈들! 뭐 때문에 헌터가 됐는 지도 잊어 버리고 재물에 눈이 멀어서 개짓거리나 하고 다니다니...! 생도들도 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애를 쓰는 마당에!"
회의는 과열 된다.
주요 안 건은 급증하는 게이트와 던전에 대한 논의였다.
대화만 들어도 알 수 있듯, 한국에서만 급증하는 게이트와 던전 그리고 헌터들의 사리사욕은 정말로 큰 문제가 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사람을 구하는 헌터의 이미지가 목숨과 돈을 놓고 저울질하는 쓰레기로 변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이번에 백태양과 김민수 생도가 복귀 합니다. 그 둘의 복귀라면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지, 이 바닥은 실력이 전부고 그 둘은 어린 나이에 S급 게이트를 두 건이나 해결하지 않았는가."
"근데 이렇게 말하는 것도 웃기긴 하군. 생도들의 실력이 좋으면 뭐 어쩌겠단 말인가? 아직 보호 받아야 하는 시기에 게이트에 밀어 넣자는 건가?"
과열된 회의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결론이 영원히 나지 않을 듯했다.
"그럼 이렇게 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그때 잠자코 있던 장두철이 입을 열었다.
장두철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교관들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했다.
몇 명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고 몇 명은 난색을 표하며 안 된다는 눈빛을 보냈다.
"확실히 그 방법이라면 느슨한 헌터계에 긴장을 넣긴 하겠군."
뇌뿌리가 썩어 빠진 헌터들을 갱생 시키는 완전 새로운 방법.
그 시작은 백태양과 김민수에게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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