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98화 (98/325)

〈 98화 〉 최후의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나.

* * *

내가 김민수를 부르고, 민수가 으르렁 거리자 테이블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이제 여자들을 보낼 차례네.'

애당초 목적이 김민수와의 접촉이었기에 여자들이 더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저희끼리 할 이야기가 있어서 자리 좀 비켜 주시겠어요?"

"네...네네 가자."

"어...어어 응."

반대편에 있던 여자들은 진즉에 벗어나고 싶었는 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첫 만남부터 갑자기 섹스판타지 물어보는 애랑 더 놀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터.

'예전엔 그냥 좀 찌질한 정도였는데.'

민수와의 첫 만남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자기 여자한테 제대로 해명도 못 하고 교문밖에서 찌질하게 기다리던 그날.

유민이는 나랑 몸을 섞고 있었고 민수는 눈치채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서 있었다.

그땐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전형적인 로맨스 코미디의 주인공이었는데.

지금은 눈치도 없고 이상한 것만 배워와서 써먹는 빌런 그 자체로 변해 버렸다.

술을 마시면서 순애일지작가님을 계속 언급하는 걸 보면 아마도 꾸준한 연애 코칭을 받은 모양이었다.

안뚱땡의 자캐딸로 만들어진 민수는 원래부터 불안 했다.

근데 추가적으로 안뚱땡의 지식이 주입 되니 성격이 변해 버린 거였다.

"아니 참나... 저를 야.라고 부르신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레이리들을 물리기까지 하시는 겁니까? 태옥씨 이거 명백히 선. 넘으신 겁니다. 진짜 제가 누군지 아시게 되면 기겁하실텐데... 지금이라도 잘못을 깨닫고 저에게 사과를 하신다면 봐 드릴 수도 있습니다."

"김민수씨."

"에? 아니 큼흠... 누구죠 그게? 저는 다크니스 워리어입니다."

본명을 부르자마자 민수는 당황했다는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안 떨던 다리를 발발발 떨기 시작하며 주변이 의식 되는지 두리번거리길 반복한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아니라고 하는 게 참 대단하다 싶었다.

"민수씨 맞잖아요."

"허...참...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저도 안 참습니다. 보아하니 좀 친다고 자신만만 하신 것 같은데, 저한테까지 이런 모습 보이시면 곤란해요. 제가 김민수든 아니든 제가 다크니스 워리어라고 이름을 밝힌 그 순간부터 제가 얼마나 덴져러스한 존재인지 감을 못 잡으신 겁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건데요?"

"예?"

끝까지 아니라고 하는 상대방한테 계속 '너 걔 맞잖아.' 이런 식으로 말을 해봤자 좋을 게 없었다.

민수는 아까부터 계속 자기 정체가 어쩌구 하면서 자신을 굉장히 위험한 사람이라고 포장 해 왔다.

그렇다면 그걸 이용하는 게 가장 빠른 참교육의 길이었다.

"아니 뭐 계속 위협을 하시니까 무서워서 여쭤봤어요."

마음 같아선 민수를 눕혀놓고 시원하게 두드려 패고 싶었다.

하지만 파티에서 싸움판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우선은 말로 살살 긁는 것에 집중했다.

말로만 허세 부리는 게 아니라 너 정말로 할 수 있냐? 이런 식으로 은근히 돌려서 말이다.

"아니 그냥... 뭐 알아서 하시라는 거죠... 태옥씨는 사회생활도 안 해 보셨어요? 이런 건 다 눈치로... 게다가 제가 진짜 김민수면 어떻게 하시려고..."

민수는 순식간에 쭈구리로 변했다.

술이 좀 들어가고 여자가 앞에 있을 땐 기세등등한 대장군처럼 굴더니.

여자들이 사라지자마자 하늘을 찌를 것 같았던 기세가 모두 사라졌었다.

"그렇든 아니든 하시는 짓이 너무 진상이잖아요. 누가 첫 만남에 그딴 걸 물어봐요."

"예에? 아니 술자리에서는 다 그렇게 논다고... 아니 놀아요...!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저 진짜 화 냅니다? 제대로 즐기실 줄 모르시는 분 같은데... 저보다 나이 많아서 제가 참고 있었거든요? 근데 이렇게 나오시니까 알려드릴 수밖에 없네요..."

어떻게든 미꾸라지처럼 상황을 빠져나가서 우위를 점하고 싶은 민수.

그리고 그 모든 걸 가소롭게 보면서 어떻게 놈을 어떻게 교육 시킬 지 고민하는 나.

이미 관계만 놓고 봤을 때 상황은 종결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뭘 알려 줘요. 그러지 말고 그냥 제가..."

"...옥상으로 따라와 태옥아."

?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당황 했냐? 내가 경고 했지, 건드리지 말라고 화 낼 수 있다고. 웃으면서 살갑게 말해 주니까 장난인 줄 아나... 레이리들을 그렇게 보내고 걍 남자들끼리 찐한 이야기나 나눠볼까 생각했는데, 넌 진짜 안 되겠다. 따라나와."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민수는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면 사이로 보이는 놈의 눈동자엔 강한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아니 진짜 이렇게 급발진을 한다고?'

그 어떤 전조도 없이 갑자기?

술이 좀 들어가서 그런 걸까.

민수의 행동은 도저히 예측 불가능한 수준으로 뻗어 나갔다.

'그냥 적당히 몇 마디 하고 뺨 몇 대 두드리고 멜라니 쪽으로 유도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니었나 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몇 대 두드릴 기회가 생긴 거였다.

'스트레스는 풀겠네.'

민수 멱따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개운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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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 사교계 파티가 이뤄지고 있는 건물의 최상층.

그곳에서 안뚱땡은 '귀족'스러움을 뽐내며 자기 계획표를 점검하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군... 내가 알려 준 대로만 하면 민수는 멜라니를 삼초 안에 함락 시킬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최고의 계획들만 엄선해서 골랐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레이'디'를 '리'로 바꿔 부르는 디테일부터 시작해서 과감한 섹드립을 통한 거리 좁히기 스킬까지.

억만금을 줘도 알 수 없는 기술들을 모두 민수에게 하사했다.

더불어 민수는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알아버리는 천재 답게 정장 바지를 롤업시키며 패션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뿐만 아니라 흰색 와이셔츠에 이너를 입지 않음으로 자기 몸매를 과시하는 대담함까지 선보였으며, 화룡정점으로 최고의 가명까지 가지고 있었다.

"다크니스 워리어... 훠우... 생각만 해도 두렵군."

그 누가 이런 가명을 생각한단 말인가?

다른 범재들은 끽 해 봐야 진짜 사람 이름 같은걸 쓸 게 분명했다.

그사이에 진짜 어둠의 전사가 등장한다면?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민수는 지금쯤 파티를 휩쓸고 있겠지? 크흠... 너무 궁금하네... 나가 볼까나...."

어차피 가면을 쓰면 누가 누군지 모르는 파티이기에 친히 민수 곁으로 행차하려는 찰나.

느닷없이 방문이 벌컥 열렸다.

헐레벌떡 들어온 사내를 보자마자 안뚱땡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부르기 전까진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니까 왜...!"

그러나 뒤이어진 사내의 말에 안뚱땡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그게... 옥상에 김민수 생도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뭐?...왜?"

"잘 모르겠습니다... 경비원들이 옥상 쪽에 휴식을 취하러 갔다가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 해서 가면을 벗겨보니 그게 김민수 생도였답니다."

"...뭐 어디 다친 곳은? 누가 한 건 지는 파악 되고?"

"네 그...뺨이 좀 많이 부었고... 복부를 많이 맞은 흔적이 있긴 한데 이게 티가 안 나게 때리는 법을 배우기라도 한 건지..."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게 뭔데!"

"아 네 그 ... 많이 다친 건 아닌데 기절할 만큼 맞았고 누가 했는 지는 추정이 어렵습니다."

"...알겠어 나가 봐."

"넵."

탁.

사내는 안뚱땡의 볼살과 턱살이 분당 삼십회씩 떨리는 걸 보자마자 황급히 자리에서 벗어났다.

나가지 않았다간 무슨 분노가 자신을 덮칠 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백태양도 없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이야...."

노블에서 파티를 개최한 이유?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백태양이 참여할 수 없다는 게 가장 컸다.

선천적 각성자만 모인 곳에서 백태양이 파티에 참가할 수 있을 확률은 0%에 가까웠으니까.

실제로 방명록에서 백태양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었다.

"있다고 하더라도 추방 시킬 생각이었고... 그래서 당연히 파티의 주인공이 민수가 되어야 하는데... 기절...이라니..."

민수가 기절할 때까지 파티가 계속 되면 좋겠으나 시계는 벌써 12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조사에 따르면 인싸들이 보통 클럽이나 헌팅 포차에서 가장 활발한 시간대가 11시부터 2시까지였다.

그전까진 탐색전을 펼치다가 저 황금 시간대에 여자와짝을 맺고 2차를 가는 게 보통이다.

"그러므로 지금 민수가 활약을 해야 하는데... 그래야 멜라니랑 맺어지는데..."

근데 민수가 두 시간 안에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기 지식과 민수의 행동력이라면 이십 분 만에 그 어떤 여자든 후릴 수 있을 텐데.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내 완벽한 계획을 이렇게 망칠 줄이야..."

파티에서의 엄청난 활약으로 민수를 킹카로 만들고 멜라니와 이어지게 한다.

그 후 휘황찬란한 모습을 하며 룰루랄라 유민이에게 찾아간다.

그리고 유민이 면전에다가 널 차버리고 더 멋진 여자를 구했다고 자랑한다.

이 계획을 생각하기 위해서 사흘 밤낮을 지새웠거늘.

"하지만 이건 생각 못 했을 거다."

민수를 주인공으로 만들 방법이 파티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었다.

자신은 의 작가였다.

작가의 가장 큰 권력은 이야기를 원하는 방향으로 틀 수 있다는 것.

지금은 그 권능이 많이 약해져서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에 그쳤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민수라면 다 해 줄 테니까."

안뚱땡은 계획표가 그려진 테이블을 치우고 새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 그 종이에 여러 가지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하며 뭐라 뭐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민수에게 연애 경험을 선사 하리라..."

계획표의 가장 첫 줄.

그곳엔 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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