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이게 무슨 사교계 파티야 이거 완전 그거잖아.
* * *
어두운 방 안.
컴퓨터 한 대가 유일하게 조명의 역할을 하며 방을 비추고 있었다.
그 어둑어둑한 공간에서 한 남자가 소파에서 오만하게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었다.
원래라면 다리를 꼴 생각이었으나 허벅지 굵기의 사정으로 인해 녹록지 않았다.
"더 데빌 카오스 울트라 킹이여, 민수에게 접근한 건 어떻게 됐나?"
"그...그것이..."
"뭐라? 실패했다고? 어쩌다가 그런 일이 일어났지? 내 계획은 완벽 했을 텐데!"
"그...그게...!"
"그렇군... 그렇게 된 거였어... 삼라만상의 진과 리. 그 두 개를 모두 얻어 버린 민수의 과도한 선견지명으로 인해 벌어진 결과였군... 이번 사교계 파티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데뷔를 시키고 싶었거늘..."
"대...대신 준비된 옷은 다 택배로 보냈습니다. 받았다는 택배 기사의 메시지까지 확인했구요. 아마 패션 문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흠..."
안뚱땡은 고민에 휩싸였다.
원래라면 복장뿐만이 아니라 사교계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인기가 있어지는 지 등 다양한 팁을 전수해주려고 했다.
이번 사교계는 특히나 신경을 써서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을 하므로 더더욱 그랬다.
근데 이 계획이 시작부터 이렇게 틀어질 줄이야.
"이번 사교계에 참가하는 아이들 중 멜라니도 있다고 들었다."
"네, 맞습니다."
"최근 근데 멜라니와 민수의 사이가 심상치 않아... 약간 좀 더 가까워졌다고 해야 하나... 문자하는 빈도 횟수도 늘은 것 같고... 민수의 적극적인 대쉬에 넘어가지 않을 여자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후후... 맞습니다...근데 걱정되는 게 하나 있습니다."
"뭐지?"
"최근 노블에서도 민수의 행보가 조금...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민수의 절규'짤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너무 과도한 웃음밈이 되어 버린 듯합니다. 해외 커뮤니티에서도 슬픈 일이 있으면 전부 다 그 짤을 애용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명성에 큰 흠이 날 듯합니다... 그리고 그런 영향 때문에 민수의 얼굴이 '웃기다'라는 평가를 받는 추세입니다."
"본론만!"
"노블의 다른 회원들이 민수의 얼굴만 보면 웃음 벨이 울린 것처럼 비웃을까 봐 걱정이 됩니다."
"으음..."
이건 안뚱땡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심지어 최근 기절 상태로 게이트를 클리어한 모습도 찍혀서 '기절민수'도 밈이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민수의 멋진 외모를 그런 식을 소모한 것들을 용서할 수 없었으나 너무 수가 많았다.
"어쩔 수 없지, 민수의 잘난 외모로 여자를 후리지 못 하는 건 아쉽지만 난 민수의 화려한 언변을 믿는다."
"그 말씀은...!"
"그래... 이번엔 가면을 쓰는 컨셉으로 가야겠다. 무슨 느낌인지 알지?"
"네 그럼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안뚱땡과 더 데빌 카오스 울트라 킹의 대화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늘 그렇듯 목소리는 한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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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아토.
예약을 해도 1년이 걸리며 아무나 예약할 수 있는 곳도 아닌 최고급 레스토랑이다.
엄선된 사람들만 식사할 수 있는 이곳은 지금 두 명을 제외하곤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어때요, 여기 괜찮죠?"
"근데 손님이 왜 아무도 없어? 설마 전세야?"
"당연하죠. 당신이랑 저랑 밥 먹는데 제가 왜 다른 사람 얼굴까지 봐야 되요?"
"그래 뭐..."
멜라니는 주변에서 가장 부자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사람이었다.
귀족스러운 품격과 귀품 그리고 그 자세가 몸에 아예 스며 들어가 있는 수준이었다.
"분위기도 좋긴 한데, 여긴 그것보다 진짜 음식이 정갈하고 담백해서 좋아요."
"좋은 곳이네. 나도 나중에 너 이름 대면 예약 없이 그냥 당일 식사 가능하냐?"
"참나, 백태양 씨 이름 대도 당일 예약할 수 있을 걸요?"
마주 보고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이야기가 끊길 때쯤.
난 슬슬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떡밥을 던졌다.
"근데 난 뭐 부자들 사교계 모임 같은 거면 다 드레스 입을 줄 알았는데, 아니네?"
보통 생각하기에 부자의 사교계 모임이란 샹들리에가 휘황찬란하게 대롱대롱 달려 있고 샴페인을 나르는 사용인들이 그려졌다.
거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명품 드레스 혹은 정장을 입고 제일 잘나가는 사람에게 붙기 위해 기웃거려야 한다.
이게 일반적인 사교계에 대한 나의 인식이었는데.
멜라니의 복장은 그런 쪽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차림이 아니었다.
오히려 홍대나 강남쪽에 놀러 갔을 때 여자애들이 입었던 옷과 아주 흡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멀리서 봐도 명품 티가 나서 아예 급이 달라 보인다는 것.
"아 그게 뭐라고 하지... 태양 씨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달라요. 분위기도 엄청 자유롭구요."
"그래? 신기하네. 기대 된다. 근데 선천적 각성자 쪽이면 유민이도 오는 거야?"
유민이 이름이 나오자마자 멜라니는 날 곧바로 째려봤다.
톡에서 보냈던 'ㅡㅡ.'와 같은 얼굴이 되어선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왜요? 그게 왜 궁금한데요?"
"그냥, 유민이도 선천적 각성자잖아. 다 모이는 건가 해서."
"아니예요. 아시다시피 소유민은 메인 스킬이 너무 약해서 노블도 체면상 따로 부르지 않고 있어요. 사실 예전부터 유민이는 그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했구요."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제일 걱정했던 게 바로 유민이의 존재였다.
선천적 각성자의 모임이라면 그중에서도 상시 발동형 메인 스킬 보유자의 존재는 각별할 터.
만에 하나라도 내가 멜라니와 함께하는 모습을 유민이가 본다면 아주 일이 골치 아파질 수도 있었다.
'유민이를 달래주기도 모호하고 달래주지 않아도 애매한 상황이 펼쳐질 테니까.'
근데 뭐 오지 않는다니 더할 나위 없이 호재였다.
"아 그래? 안 오는구나."
"지금 저 앞에 두고 다른 여자 이야기하면서, 뭐 그 여자 파티에 오면 껴달라고 할 생각 이었어요?"
멜라니는 반 정도 일어날 기세로 식탁에 손을 얹고 있었다.
정황상 보면 그렇게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지만 이건 오해였다.
"그런 게 아니라 민수랑 유민이 둘이 좀 그렇잖아. 근데 만나면 애매해지니까 그러지."
"끝이예요?"
"뭐가?"
"그 말하려고 물어본 게 아닐 거잖아요."
티가 많이 났나?
멜라니가 확실히 사람을 많이 상대해 봐서 그런지 맥락 파악은 기가 막혔다.
어떻게 이런 여자랑 민수랑 이어 줄 생각을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안뚱땡의 연애 플렌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도 끼고 싶어, 사교계 파티."
"으음..."
"안 돼?"
"아뇨... 뭐 파트너 동반은 흔한 일이긴 한데... 너무 백태양 씨가 네임벨류가 높아서 걱정이예요. 웬만한 경우엔 변장이라도 시키겠는데... 태양 씨 몸이 좀..."
이건 확실히 곤란한 문제였다.
'몸이 너무 좋아도 문제일 줄이야.'
그렇게 큰 키는 아니었지만 키를 감안 해도 몸이 엄청 좋았다.
태닝한 피부에 백발 그리고 무슨 옷을 걸쳐도 다 소화해내는 압도적인 옷걸이.
그 어떤 옷을 입어도 얼마나 근육진 몸인지 보여주는 옷태.
게다가 여기서 끝이 아니라 바지를 입으면 살짝 굴곡 진 왼쪽 허벅지의 묵직한 볼륨감까지.
'확실히 문제가 되긴 하겠네.'
변장을 해도 할 수 있는 건 얼굴과 머리칼색 뿐이지 골격은 바뀌지 않는다.
멜라니에게 노블에 대한 설명을 대충만 들었을 때도 굉장히 배타적이었다.
선천적 각성자를 무슨 귀족으로 생각하고 후천적 각성자들을 노예로 생각하는 집단.
그런 집단에 후천적 각성자의 새로운 거인으로 취급받는 내가 나타난다면?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게 분명했다.
아니면 보지도 못하게 아예 사전에 들어오지 말라고 차단을 할 수도 있었고 말이다.
"그래서 태양 씨 아쉽지만 아무래도..."
띠링!
그때 멜라니의 핸드폰이 울렸고, 멜라니는 그걸 확인하자마자 눈동자가 커졌다.
"...같이 못 갈 뻔했는데 될 것 같아요. 이번에 가면을 쓰고 파티를 진행한다고 하니까... 염색만 좀 해서 해외에서 고용한 제 보디가드 설정으로 같이 가면 될 것 같은데요?"
"갑자기? 되게 순식간에 바뀌네."
"그러게요. 원래부터 노블 회장이 좀 제멋대로이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마음대로 바꾼 적은 없었는데... 흠... 이유를 모르겠네요."
"민수도 참가한다니까 그런 걸 수도 있지."
"김민수도 원래부터 참가 했었어요. 생각보다 거기 정보가 많거든요. 그래서 노블에 가입은 하지 않지만 그들이 여는 모임은 참가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저도 그중에 하나구요."
상황이 갑자기 딱딱 알맞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 정도면 제발 노블 파티에 가달라고 애원하는 수준이었다.
밥상이 이렇게 깔렸는데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염색을 그럼 무슨 색으로 하지."
그럼 이제 무슨 색으로 염색을 하냐의 문제만 남았다.
"근데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그 백발 자연이예요?"
"그럴...걸?"
백태양에 대해서 자세한 건 모른다.
근데 이름이 '백태양'이니까 당연히 그렇게 되는 거 아닐까?
"한국인도 백발이 자연으로 나올 수가 있어요? 염색이 아니라...?"
"나도 잘 몰라."
"흠... 궁금하긴 하네요. 태양 씨의 위쪽으로 뭔가 비밀이 있을 것 같아요."
"됐고 밥이나 마저 먹자. 근데 그 파티는 몇 신데?"
"아홉 시요."
아홉 시?
지금이 한 시 반인데?
멜라니는 분명 파티를 가기 위해서 옷을 입었다고 말했는데, 파티 시간과 지금 너무 많은 차이가 있었다.
"아홉 시에 있는 파티 옷을 지금 입었다고? 굳이? 나랑 점심 먹을 때?"
그래서 그 부분을 콕 집어 말하자 멜라니의 얼굴이 불그스레 물들었다.
한참을 뭐라고 말 못 하고 우물주물 거리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그...그럴 수도 있죠 뭐! 뭐 왜 안 되나요? 그냥 미리 준비한 걸 수도 있잖아요!"
"누가 뭐래? 그냥 신기해서 한 말이었지. 너무 그렇게 반박 안 해도 돼, 다 알고 있으니까."
"됐어요! 능글 맞아가지고 정말... 진짜 싫어요!"
"파티 같이 데려가줘서 고마워."
"...네."
오물오물.
멜라니는 볼이 빵빵해진 햄스터 마냥 음식을 계속 입에 넣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게 눈에 보여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딱딱한 분위기가 아니고... 가면을 쓰고... 딱히 옷을 갈아입을 필요는 없겠네.'
드레스 코드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게 아주 좋았다.
그럼 남은 건 염색을 무슨 색으로 하냐 였는데, 사실 이건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금태양이 될 때인가.'
NTR계의 왕도 주인공이 등장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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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니와 점심을 먹은 뒤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무기 테스트도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머리를 금발로 염색하고 가면을 쓴 뒤 멜라니 옆에 딱 붙었다.
"절대로 티 내면 안 돼요. 여기 사람들 눈치 좋으니까... 되도록 입은 무겁게 하셔야 돼요 알죠?"
"안 다니까, 나 그렇게 바보 아냐."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가드로 보이는 사내가 우리 둘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입장하셔도 됩니다."
멜라니도 가면을 써서 원래라면 신분 확인을 제대로 해야 하는 게 맞지만, 아마 멜라니 특유의 기품 때문에 알아차린 모양이다.
생각보다 별 탈 없이 입장을 한 뒤 눈동자를 굴리며 어떤 분위기인지 대략 스캔을 시작했다.
'뭐야?'
노블 사교계 파티에 들어간 난 정말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완전...'
안뚱땡이 주최한 가면을 쓴 사교계 파티의 정체는.
'헌팅포차잖아.'
번화가 헌팅포차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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