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이만하면 많이 놀아줬다고 생각한다. 민수야.
* * *
《카이반 퍼스트 시리즈 모델 백태양은 '백태양'님에게 최적화된 무구로 그 어떤 전투 상황이 닥쳐오더라도 완벽하게 보조할 수 있도록 설계 되어 있습니다. 》
'안내 음성이 멜라니네.'
직접 녹음한 건가?
시답잖게 웃으며 몸을 살폈다.
알파메일을 얻기 전이었다면 찰과상으로 끝나지 않았을 법한 강력한 힘.
과거 시험을 통과하면서 뭘 얻은 건지는 몰라도 민수는 정말 강해져 있었다.
《 장비를 장착합니다.》
팔과 다리에 영화에서나 볼 법한 변신 슈트 같은 게 부착 된다.
머리색과 비슷한 백색의 색깔을 뿜어내며 나만을 위한 것을 증명한다.
끊임없이 끼릭끼릭 거리면서 내 손과 발 사이즈에 맞게 변형을 거듭 반복하고 있었다.
손과 발 뿐만이 아니라 주요 급소 부분에 갑주가 생겼는데, 전신무장한 꼴이나 다름없었다.
《 원하는 무기를 떠올릴 시 무기 케이스에서 자동으로 무기가 배출 돼 손에 장착됩니다. 그 외 여러 가지 기능이 있으며……》
'나중에 들어야겠네.'
흙먼지는 일시적일 뿐이다.
민수도 정신을 차리고 금방 덤벼올 게 뻔했기에 시간을 낭비할 순 없었다.
가장 중요한 무기 사용법도 들었으니 나머지는 추후에 이해해도 괜찮겠지.
흙먼지를 털어내며 김민수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방망이.'
대검, 할버드, 도끼, 박도 등등 쓸 수 있는 무기는 많았으나 지금 생각나는 건 단 하나.
역사적으로도 최고의 처방전이라고 증명된 완벽한 도구.
"여태까지 재미 좀 봤냐? 그랬기를 빈다."
무기 케이스에서 커다란 방망이가 날라와 손에 착하고 감긴다.
방망이가 날아왔을 때의 가속력을 그대로 받아서 힘의 낭비 없이 민수에게 휘두른다.
빡!
갑자기 변한 내 기세를 적응하지 못하고 직격타를 허용한 김민수.
놈의 눈엔 경악이 깃들어 있었다.
"또... 또... 날 방해하는구나 백태양!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내가 너한테 뭘 했다고 그래."
이 부분은 솔직히 억울한 게 많았다.
자기 거라고 생각했으면 더 각별하게 관리하고 케어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금고 문 다 열어 놓고 길거리에 내놓은 다음에 아무도 가져가지 않길 바라는 꼴이었다.
"유민이도 그렇고...! 이번 던전도...! 너 때문에 멜라니가 부탁한 모델 일도 제대로 못할 수도 있다고!"
민수는 한대 맞고 실력 차를 깨달은 건지 아니면 억울함이 터져 나온 건지, 소리치며 말을 이어 나갔다.
"다 네가 망치고 있어! 솔직히 이 개자식아! 남의 여자를 뺏는 게 말이 돼? 네가 그게 사람이 할 짓이냐고! 내가 유민이를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막 어! 하고... 그리고 그다음에 또 멜라니랑 일도 망치고! 교관님들 앞에서 다 두들겨 패서 개망신 주고! 이제는 나만 들어올 수 있고 내가 강해져야 하는 던전에서..."
"진짜 말이 너무 많아 민수야."
이대로 냅두면 끝도 없이 말을 이어 나갈 것 같아서 몸을 움직였다.
대화한다고 해결 되는 상황도 아니어서 얼른 민수를 패고 엔딩 조건을 만족시키는 게 옳았다.
"난 니 한풀이 들어 주려고 게이트에 들어온 게 아니야."
니 보상을 다 털어먹으려고 온 거지.
붓검과 방망이가 맞부딪친다.
게이트에서 얻은 보상이어서 그런지 확실히 단단하고 반발력도 장난 아니었다.
여차하면 부러트릴 각을 한 번 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을 듯했다.
"넌 뭐 그렇게 잘 났길래 맨날 내 말 지적하고 나한테 말 많다 그러고 급발진 하지 말라 그러고! 그리고 또 막 연애 코칭 해준답시고 이상한 소리나 하고! 순애일지작가님보다 모자른 자식이 어디서 나한테 일해라 절해라 훈수질이야!"
"이래라저래라 민수야, 과거 시험 장원 급제 어떻게 한 거야?"
민수는 어쩌면 대화의 천재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입 꾹 닫고 팰 생각만 가득 찬 사람의 사고를 이리 쉽게 바꾸다니.
일부러 대화의 허점을 만들어서 누군가 지적 해주기를 기다리는 거 아닐까?
"또!!! 또!!! 나한테 막 지적질이나 해대고 말이야! 그런 거 안 해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도 없어! 용! 호랑이!"
"큭!"
"나는 과거 시험 장원 급제를 한 이몽룡이라고! 권선징악의 흐름대로 가자!"
민수가 휘두르는 모든 검의 경로가 곧 후속타의 전조다.
휘두를 때마다 생기는 먹선이 시야를 가리고 언제든지 공격할 것처럼 꿈틀 거린다.
아무렇게나 휘둘러도 전투에 혼란을 주고 심리전을 유도하는 무기라니, 정말로 사기적이었다.
튀어나오는 호랑이와 용이 추가타를 먹이려는 걸 번번이 방해한다.
강타를 써도 어차피 똑같이 강타로 응대할걸 생각하니 이렇다 할 만한 돌파구가 마땅치 않았다.
'되도록 쓰고 싶지 않았는데...'
마족화를 사용할 만큼 민수는 강하지 않았다.
'더 이상 질질 끌 수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
아무리 강해봤다고 한들 단기간에 얻은 힘을 전부 다 활용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이 나에게도 해당 되는 말이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이 상황을 돌파할 수단은 정해져 있었다.
"하하 어떠냐! 잘 안 되겠지? 어? 힘들지?"
"나으리 힘내셔야 합니다! 이기셔야 합니다!"
보좌관들의 절망 어린 응원이 지금 상황이 얼마나 부정적인 지 알려 준다.
민수는 승기를 확실하게 잡았다고 생각했는 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가 강해진 건 의외였지만 난 더 엄청나고 혹독한 수련했다고! 이 붓검의 위력을 톡톡히 보여주마! 으아아아아!"
"허..."
이어진 민수의 행동은 솔직히 멋있다고 보기엔 아주 무리가 많았다.
주인공같지도 않아 보였고 용사와도 거리가 먼 동작들이 이어졌다.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주변을 먹선으로 가득 채우기 시작했는데, 그 폼이 아주 우스꽝스러웠다.
팔을 휘저으면서 그림을 그리는 중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 꼴이 마치 영유아가 크레파스를 들고 벽에 낙서를 하는 모양새였다.
딴에는 굉장히 진지한 표정으로 몸을 놀리고 있어서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냥 용이 아냐! 이몽룡과 어울리는 선비의 기개! 청룡으로 간닷!!!!"
차라리 계속 압박하다가 내가 무너지는 걸 노리는 게 낫지 않나?
주인공병에 대체 어떻게 걸린 건지 마무리를 화려하게 하고 싶나보다.
근데 문제는 내가 밀리고 있는 건 맞았지만 그렇다고 탈탈 털려 있는 상태는 아니라는 거다.
알파 메일로 인해서 쉽게 지치지도 않기 때문에 민수가 날 냅두는 이 순간에도 몸은 회복하고 있었다.
오히려 조금만 더 하면 처음 상태와 비슷하게 될 정도.
하지만 민수에겐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하긴 인성 교육 시간에도 이런 상황이 몇 번씩이나 있긴 했겠지.
그럴 때마다 민수의 적들은 얌전히 민수가 마무리 일격을 준비하는 걸 기다리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그게 주인공에 대한 안뚱땡의 생각일 테니까.'
변신할 때 건드리지 않는다 뭐 이런 것과 비슷한 이치 아니겠는가.
"나의 부름에 응답하라 청룡이여!!!"
민수가 만들어 낸 먹선들이 요동치면서 한 곳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평소보다 더 느린 소환 속도를 거치면서 용의 형상이 더 구체화 되기 시작한다.
놈은 자신이 만든 청룡을 바라보면서 히죽거렸다.
승리를 확신하며 쌩쌩한 나에게 마무리 일격을 먹이고 행복한 상상을 꿈 꾸려는 그때.
[마족화 발동! 종족이 인간에서 마족으로 변합니다. 주의하세요! 오랫동안 스킬 유지 시 신체에 부하가 걸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만하면 많이 놀아줬다고 생각한다. 민수야."
관아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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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빠라바라바라밤!!!
커다란 축포 소리와 함께 게이트 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멜라니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던 기자들이 갑자기 뛰쳐나간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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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 :: 고전명작[춘향전] 게이트 클리어!
축하드립니다.
아무런 페널티 없이 깔끔하게 고전명작 [춘향전]을 클리어했습니다.
게이트의 대립 구도인 암행어사[이몽룡]의 김민수와 탐관오리[변 사또]의 백태양 간 뜨거운 승부 끝에!
백태양이 승리를 가져가면서 엔딩 조건을 만족 시켰습니다.
승자독식 게이트이기에 엔딩 조건을 만족 시킨 백태양이 모든 보상을 독차지합니다!
고전명작[춘향전] 게이트 생환자 :: 백태양 , 김민수(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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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오오오...!"
"나왔다! 백태양 헌터랑 김민수 생도다!"
"근데 김민수 생도는 기절해 있는데?"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찍어! 찍으라고! 한순간도 놓치지 말고 다 담아!"
멜라니와 강태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기자들보다 두어 발자국 앞으로 섰다.
'나는 왼쪽이 조금 더 카메라빨을 잘 받으니까...'
강태민은 어떻게든 이 기회를 붙잡아서 자기 이미지를 극적으로 회복시킬 궁리를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하고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철저하게 계산하며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제...제가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태양은 김민수를 한 손으로 대충 들고 있었다.
강태민은 그 순간조차 놓치지 않고 최대한 공손한 자세로 김민수를 넘겨 받으며 방긋 웃었다.
김민수를 건네 받으며 사진이 찍을 때 눈빛에 강한 신뢰가 깃들어 있다는 감정을 담았다.
'백태양이 부른 오프너... 강태민, 완벽한 부활과 함께 최고의 파트너를 얻은 것인가?'
벌써 미래에 읽을 기사의 헤드라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덕분에 게이트를 열 수 있었습니다.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오옥...! 아닙니다...!!!"
백태양의 묵례라니!
강태민은 속으로 눈을 뒤집어 까고 양손을 브이자로 만들었다.
이보다 더한 보증 수표는 없으며 떡상의 발판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월클이야...!'
강태민의 헤벌쭉한 표정을 밀어내며 멜라니가 앞으로 나왔다.
멜라니는 아까부터 차마 대놓고 말하지는 못 하고 우물쭈물 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먼저 용기를 냈으나 백태양이 한 발 더 빨랐다.
"옷 예쁘게 입었네? 내가 말한 대로?"
"아니 그...! ...런 거 말고... 무기 이야기...해야죠..."
"이것도 좋았는데, 내가 부탁한 걸 잘 들어 준 네가 더 좋은데?"
자칫하면 느끼할 수도 있는 멘트.
하지만 백태양의 얼굴이 곧 개연성이었기에 능글맞음 정도로 순화 되었다.
게다가 플레이보이 같은 그의 얼굴과 더 잘 맞아떨어져서 기자들은 연신 셔터를 눌렀다.
"...몰라요..."
멜라니는 때 아닌 부끄러움에 당황하며 고개를 숙였고.
"자자 그럼 간단하게 기자회견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사적인 실례 되는 질문 제외하고 게이트 관련해서 천천히 받겠습니다."
백태양은 주변을 완벽하게 휘어잡으며 상황을 제어했다.
'김민수 생도 이야기 물어봐도 되나?'
기자들의 먹잇감이 포착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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