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잘못하면 이거 게이트 클리어 못 하는 거 아냐?
* * *
"나으리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사람들이 봅니다..."
"나보다 주변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처럼 말한다?"
짝!
입을 열었던 춘향의 고개가 순식간에 돌아갔다.
주변 행인들은 대낮에 여인이 따귀를 맞고 고통을 뱉는 것에 눈길조차 두지 않았다.
아니 둘 수 없다는 게 맞는 표현이리라.
'내가 그렇게 무섭나?'
시선이라도 둘 법도 한데 경직된 발걸음으로 나와 춘향이를 피하고 있었다.
평소에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고 다녔길래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걸까.
흔히 보던 소설 클리셰 중 하나인 어디 망나니에 빙의된 기분이다.
'소설 속에 빙의 돼서 그 소설의 소설 같은 게이트에 빙의를 하고...'
마트료시카가 된 기분이다.
'주변에 양반은 없나.'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면서 주변을 계속 살펴봤다.
신분 차가 나는 상대가 있을 경우 마찰을 일으켜선 안 되기 때문이다.
아니면 스토리 진행을 위해서 나타나지 않은 건가?
'그럴 듯하네.'
소설 속인 만큼 현실과는 동 떨어진 부분이 있을 게 분명했다.
특히 이런 '정의의 사도'와 관련된 되어 있을 경우엔 그 경우가 더 도드라지겠지.
'악당을 물리쳐야 하는 건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법칙 때문에 오히려 더 날뛰기 쉬워진 경우였다.
아이러니 했지만, 그게 권선징악 소설의 클리셰였다.
길거리에서 아녀자를 포악하게 패는 포주를 주인공 말고 누가 처치한단 말인가?
갑작스럽게 홍길동이라도 나타나지 않는 한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근데 주인공이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몽룡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대였고, 김민수는 아무것도 몰라서 가만히 있는 상황이었다.
이 둘의 적절한 조화로 인해서 포주가 역으로 활약하는 이상한 결과가 탄생한 거다.
"귀신은 왜 저런 거 안 잡아나가 몰라..."
"왜? 야 너 뒤지고 싶어?"
빡!
"아이고! 사람 잡네!"
"그래 이 새끼야, 내가 니 저승사자다."
혹시 몰라서 작게 중얼거리는 행인의 얼굴까지 쳐봤었다.
진부하고 작위적인 대사에 장단까지 맞춰가며 패악질을 부렸것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보통 이 정도면 포졸이라도 나타날 법 한데, 포졸은 커녕 비슷한 놈들조차 보이지 않다니.
"그...잠...하앙...길거리입니다. 나읏...리이...만지시면 안 됩니다아..."
춘향이의 젖가슴을 떡 주무르듯 문지르며 진하게 웃었다.
적어도 지금은 완전히 내 세상이라는 말이었다.
안뚱땡의 계획에서 가장 큰 문제는 날 변수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다.
날 철저하게 김민수가 예방 시킬 수 있을 거라는 그 잘못된 믿음 하나로 모든 걸 망쳤다.
[이몽룡]이 활약할 타이밍은 장원 급제를 하고 난 이후부터다.
그때까지는 힘과 권력이 하나도 없는 소년기를 보내는 데, 굉장히 클리셰적이다.
'안뚱땡은 아마 나X토나 원X스 같은걸 생각했겠지.'
딱 봐도 몇 년 뒤 강해져서 돌아오는 스토리를 적극적으로 찾았겠지.
소설 속에서 한 단계 성장한 뒤 게이트까지 클리어해서 보상을 몰아 먹을 생각이었을 거다.
근데 내가 개입함으로 모든 게 다 꼬였다.
"딴소리 하지 말고 안내나 잘해. 그 새끼 집이 어디라고?"
"도련님 집은 저쪽으로..."
이 년도 보통 웃긴 년이 아니었다.
자기 가슴을 거칠게 주무르면서 결혼할 상대방의 집을 묻는 포주.
뭘 할지 짐작하지는 못 해도 불길한 예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근데 춘향이는 품 안에서 얼굴만 붉히며 작은 반항 밖에 하지 않고 있었다.
반항이라고 해봤자 몸에 힘을 살짝만 줘서 손을 튕겨 내는 '척'만 하는 정도.
심지어 옷 위로 주무르는 것도 아니고 속에서 만지고 있는 거라 속살이 다 드러나 있었다.
이런 상황조차 흥분을 느끼는 지 입으로는 아니라고 해도 몸은 착실했다.
"틀리게 말하면 진짜 뒤지도록 맞을 줄 알아."
"아...안 됩니다..."
아차.
이 부분에서 말 실수했다는 게 느껴졌다.
방금 말 때문에 갑자기 손가락 방향이 바뀌려고 하고 있었다.
일부러 오답을 내서 진짜 뒤지게 맞고 싶은 욕망이 튀어나온거다.
이 정도로 극마조 성향을 지닌 여자가 있을 줄이야.
미리 예방 주사를 한 방 놔주기로 결심했다.
[강타 발동! 왼주먹에 강대한 힘이 깃듭니다!]
쾅!
"웁!"
"너 방금 손가락이 좀 흔들린다? 일부러 틀리려고 하는 거 모를 줄 아냐? 제대로 안내해."
춘향이는 연약한 여인 행세를 하는 보스급 몬스터가 맞았다.
방금 정확히 발축을 돌리며 허리를 회전시켜 주먹에 완벽하게 힘을 전달했다.
거기에 강타 스킬까지 발동해서 일반 몬스터라면 무조건 몸이 터지는 게 정상이었다.
혹여 그걸 버티더라도 리버샷을 맞으면 신체 구조상 쓰러지는 게 정상일 텐데.
"네..헥...네...우욱..."
잠깐 맞은 곳을 부여 잡고 고통을 호소할 뿐 곧바로 말을 이어가며 길을 안내했다.
'긴가민가 해서 시도 해봤던 건데...'
너무나 큰 도박 수를 던져서 그런지 뒷목이 서늘해진다.
최악의 경우에 강타를 맞고 춘향이가 죽게 된다면 클리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게이트 공략은 실패하며 보상도 얻지 못한다.
가장 두려웠던 점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페널티였다.
이젠 다 '사망'이라고 생각하는 게 편해서 나타나지 않는 건지, 무슨 사정이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뭐가 됐든 페널티는 무조건적으로 피해야 했다.
'다행이다.'
두 가지의 근거를 바탕으로 한 행동이었다.
첫 번째는 그녀가 스킬을 썼다는 점이다.
올가미가 목에 걸렸을 때 스킬 발동을 막지도 못 했고 그 전조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처녀폭격기가 아니었다면 올가미에 걸려서 노예가 됐을 지도 몰랐을 정도였다.
두 번째는 그녀가 매우 중요한 등장인물이기 때문이다.
[춘향전]에서 '성춘향'보다 중요한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녀에게 많은 비중과 힘이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생각했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강타까지 발동해서 리버샷을 먹였고, 꽤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돈키호테보다 더 단단하고 강하다.'
성적인 체벌 혹은 일반적인 폭력 행위를 할 땐 느낄 수 없던 반발력이 느껴졌다.
신체 강화 스킬이 여러 개가 아니었다면 주먹이 박살 날 수도 있을 정도였다.
'살심을 가지고 치면 바로 반응하는 건가?'
[성춘향]을 대할 때와 [보스 몬스터성춘향]을 대할 때와의 차이를 명확하게 둘 줄이야.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지금이야 이렇게 고통스러운 척을 할 뿐.
나중에 이야기가 진행 된다면 그녀도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
아무리 패도 죽지 않는 마조 보스 몬스터와 함께 있어야 한다니.
진짜 개팔자가 따로 없다.
"저...저쪽입니다."
"그래 대문만 봐도 알겠다."
춘향이가 가르킨 손끝을 따라가 보니 어마어마하게 큰 기와집이 있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화려 했는데 고증 따위는 나 몰라라 하는 수준이었다.
민수가 살 집이라서 그런지 현대식 기와집 느낌이 잔뜩 났다.
얼마나 주인공을 아끼면 게이트 내에서까지 이런 복지를 챙겨 주는 걸까.
꽃나비 기방도 춘향이가 사는 곳이어서 엄청 화려한 편이었는데, 저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화장실에 비데도 있는 거 아냐?"
"네? 그게 무엇입니까 나으리?"
"아냐, 아니다 몰라도 된다."
잡념을 털어내고 성큼성큼 대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문 앞에서 마당을 쓸고 있는 몸종도 보였겠다.
본격적으로 움직일 차례였다.
"누...누구 십니까?"
"허, 이 새끼 봐라. 알고 있으면서 물어보네."
뭐 하러 온 건지 알지?
뒤이어진 말에 몸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후다닥 집 안으로 들어갔다.
눈치가 빨라서 편한 놈이었다.
김민수가 저놈의 반만이라도 닮았어도 NTL 퀘스트는 클리어가 불가능 했겠지.
새삼 김민수가 얼마나 수동적인 라노벨 쿨찐 주인공으로 설정 됐는 지 체감 됐다.
"우헤헤헤헤헤...."
문 너머 괴상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거 보니 빼박 민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는데 아마도 내 이야기까지 같이 한 듯했다.
'PTSD가 오나?'
행복했던 분위기가 갑자기 찬물이 뿌려진 것처럼 식은 걸 보니 뻔했다.
이게 처음 당해 보는 거랑 두 번째 당해 보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니까.
원래 놀이기구도 두 번째 탈 때가 더 무섭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물론 이 놀이기구는 민수가 자원해서 탄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끼이이이이이익.
대문틈 사이로 불안한 얼굴로 입술을 발발 떠는 민수가 보인다.
벌써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춘향이 이 년 젖가슴이 탱탱한 거 알고 계셨습니까 도련님?"
"아아앙...도려...련니임...보시면 안 돼....요...오오..."
춘향이는 순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미친 마조였다.
그저 자신을 패죽일 듯이 몰아붙이는 사람에게 맹목적인 변태.
그런 성춘향의 정체를 김민수는 전혀 알 지 못한다.
여자한테는 무조건 착하게, 착한 남자가 결국에는 이긴다.
나쁜 남자는 결국 한 물 가고 그렇게 상처 주는 건 옳지 않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우리 스윗 민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겠지.
"지...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포주 네 이노오오오오옴!!!"
김민수의 몸종으로 보이는 놈은 지금 김민수의 눈치가 아닌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집 안에 큰 어른이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그다음으로 강한 사람의 눈치를 본 거다.
즉 지금은 집 안에 민수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
"아직 머리도 안 올리시지 않으셨습니까. 그저 입으로만 나불거리는 걸 여자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도련님."
네? 안 그렇습니까?
그리 말을 내뱉으며 춘향이의 저고리를 훌러덩 풀어 버렸다.
사르륵 거리는 소리를 내며 앞섶이 그대로 드러나 가슴이 흘러나온다.
주무를 땐 몰랐는데 이렇게 다 풀고 보니까 유방이 보통 사이즈가 아니었다.
앞으로 나올 폭유 성녀를 암시라도 하듯, 미리 사이즈를 알려주는 건가 의심까지 들었다.
"너...너 지금 내 춘향이를...!"
"아니죠,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머리를 아직 못 올리셨잖습니까."
민수는 한 번 겪었던 일로 인해 두통이 생기는 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게다가 내 정체를 알아차리진 못 했으나 행동에 비슷한 향기가 나서 그런 걸까.
따박따박 말대꾸하면서도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난다.
'됐다. 들어왔어.'
자연스럽진 않았지만 어쨌든 드디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춘향이의 젖을 꽉 쥐자 손가락 사이사이로 살이 터질 듯 튀어나온다.
벌겋게 익은 유방이 그녀가 얼마나 흥분하는 지를 알려 준다.
"그녀가 싫어하지 않느냐! 당장 놓지 못할까!"
물론 민수는 동정이기 때문에 그런 걸 알 턱이 없었다.
여자가 인상을 찌푸리고 아픈 신음을 내뱉는 걸 다 부정으로 인식하는 스윗동정식 생각이었다.
"아앙...나으리이이이...도...도련니임... 보시면 안 돼요오오..."
"오오 춘향아 내가 널 지금 당장 구해 주마!"
좋아 죽을 것같이 신음을 내뱉는 성춘향과 싫어하니까 그만하라는 김민수.
정말 환상의 조합이었다.
'이대로 김민수의 멘탈을 망가트리고 춘향이를 완벽하게 조교 한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클리어 조건을 달성할 수 있었다.
물론 [변 사또] 역할까지 수행을 해야 했지만, 그 전에 일을 끝낸다면 일이 더 쉬진다.
하지만 이 생각은 김민수의 뒤이어진 말로 인해서 모두 사라졌다.
"내가 한자만 제대로 배운 뒤 장원 급제를 해서! 반드시!!! 그때까지만 기다려다오 춘향아!"
"뭐?"
한자를 제대로 배운 뒤?
과거 시험을 봐야 되는 새끼가 한자부터 배워야 한다고?
이거 자칫하면 [변 사또] 역할을 받았을 때 김민수가 암행어사가 되지 못할 수도 있는 건가?
그럼 스토리 진행도 안 되고?
'...잘못하면 이거 게이트 클리어 못 하는 거 아냐?'
생각하지도 않았던 변수가 튀어나왔다.
김민수가 장원 급제를 하지 못할 경우.
아니, [이몽룡]이 장원 급제를 하지 못하고 암행어사가 되지 못할 경우.
[춘향전]은 완성되지 않는다.
완성되지 않는 이야기 속에서 [악역]은 절대로 이야기를 끝낼 수 없다.
심지어 '권선징악'의 클리셰 중 하나인 [춘향전]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아아앙...나으리...조금 더 쎄...아니...힘이 너무...좋으...아앙..."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춘향이의 신음만이 정적을 채우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