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춘향이 이 년 젖가슴이 탱탱한 거 알고 계셨습니까 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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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렇게 웃고 계십니까?"
"아, 왔나? '더 카오스 킹'?"
"후훗 이제는 '더 데빌 카오스 킹'입니다."
"역시 내가 알려 준 대로 훌륭한 작명 센스구나."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허허 청출어람이 곧이로다"
"우하하하하하하"
화려한 인테리어로 가득 찬 방 안.
안경을 쓴 뚱뚱한 남자가 웃고 있었다.
일명 안뚱땡.
그가 포근하게 몸을 기대는 모습은 유기농 베이컨을 보는 것 같았다.
"아 참 왜 웃고 있었냐고 물어 봤었지. 좋은 일이 생겼거든."
"저도 들어도 되겠습니까?"
"우리의 숙원이 드디어 더 가까이 졌다랄까... 이 정도면 너도 알겠지?"
"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역시 예의 그 '김민수'의...?"
"맞다."
안뚱땡이 정말로 좋은 소리를 들어서 기쁜 듯 또다시 호탕하게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계획에 흠집 하나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민수가 게이트의 정보를 멜라니에게 알린 건 정말로, 정말로 계산 밖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은 그 순수한 마음을 어찌 탓 하겠는가?
"...흠...백태양의 개입도...뭐...흠집이라고 보기엔 어렵지."
"당연합니다. 그 녀석이 활약해봤자 뭘 얼마나 하겠습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역시... 나와 생각이 너무 흡사해서 두려울 지경이다."
"후후... 더 데빌 카오스 킹의 자격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완벽한 티키타카였고 누구도 낄 수 없는 대화의 흐름.
누구도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으며 말이 다 끝나야 다음 말이 튀어나온다.
정말로 환상의 호흡이었다.
"최근... 백태양의 존재감이 너무 커졌어... 게이트에 난입할 정도라니..."
"그러나 그걸 다 계산해서 완벽한 가이드를 만들어두지 않으셨습니까."
"후후후후 그것 또한 맞다."
안뚱땡은 비릿하게 웃으면서 탁자에 펼쳐진 계획표를 내려다봤다.
가장 윗칸엔 삐뚤삐뚤하게 '아카데미 순애일지'라는 글씨가 굵게 자리 잡았다.
그 밑으로마인드맵처럼 조잡하게 그려진 여러 가지 글자가 난잡하게 써져 있었다.
"당연하지. 고전명작[춘향전]에서 백태양은 그 무엇도 얻어가지 못할 것이다."
"역시 두렵습니다 사부님."
"후후하하하하 더 데빌 카오스 킹이여! 너는 노블을 더 자극해 새로운 시대를 열 준비를 하거라!"
"알겠습니다!"
대답을 듣자마자 안뚱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음...노블한테 가 봐야겠군."
1인 2역은 외로운 법이었다.
'민수는 이제 알아서 잘하고 있겠지.'
내가 써 준 그대로의 길만 밟으면 급격하게 성장하게 되리라.
벌써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백태양을 박살 낼 김민수가 눈앞에 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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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가 이렇게까지 어려워질 일인가..."
민수는 포주에게 맞아서 기절한 척을 했을 때 나타난 퀘스트창을 떠올렸다.
퀘스트창엔 선택지가 두 가지 있었는데, 왜 추천 선택지가 있는지 이제서야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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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패배를 통해 성장하는 [주인공의 클리셰]를 획득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이몽룡]의 각성의 계기로 퀘스트가 진행됩니다!
1. 쉽고 빠른 군자의 길 (추천, 강추, 난이도 쉬움, 무조건 택하길 바람)
2. 고난의 행군 (1번과 보상 비슷하나 조금 더 좋음 하지만 추천하지 않음 무조건 1번을 하길 바람)
둘 중 하나의 퀘스트를 선택해주세요!
1번으로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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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1번을 했어야 했는데..."
그때 당시엔 쉽고 빠른 군자의 길에 무언가 함정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게이트도 S급이고 일반 몬스터인 [포주]한테 얻어맞기까지 한 고난도 환경.
그런 곳에서 퀘스트로 쉬운 길을 제시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무언가 함정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날 배려 해준 거였다니..."
민수가 1번을 선택하려고 했을 때도 퀘스트창은 몇 번이나 선택을 되돌리길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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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2번을 선택하시겠습니까?
1번보다 나은 보상이 있지만 큰 차이는 없으며 게이트를 제대로 클리어하지 못할 시 아무것도 얻어가지 못 합니다.
차라리 어려운 것보다 빠른 클리어를 위한 1번이 좋지 않을까요?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1번을 선택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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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1번을 선택 해야 했다.
하지만 김민수가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순애일지작가님의 답변 때문이었다.
"슬슬 삼라만상의 진리에 다다를 때가 됐다고 생각하셔서...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삼라만상의 진리가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지는 말할 수 없었으나.
순애일지작가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런 거였다.
절대적인 믿음으로 S급 게이트 위치까지 알려주셨는데 어떻게 믿지 않겠는가.
그래서 김민수는 2번을 선택 했다.
순애일지작가님을 믿으며, 퀘스트를 믿지 않고 자신만의 신념으로 상황을 타파하는 용사!
그거야말로 순애일지작가님이 바라는 모습 아닐까.
"인성교육에서 한자는 안 들어간다고..."
현대에선 한자가 그렇게 많이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 인성 교육을 받으면서도 한자는 정말 간단한 기본소양에 속했다.
한자를 1~9급으로 수준을 나눴을 때 인성교육에서 알려주는 건 딱 4급까지.
즉 일상생활에서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지식이었다.
그러나 과거 시험은 일상생활 수준의 한자 지식으로는 턱도 없었다.
애초에 한자도 반듯하게 쓰인 것도 아니어서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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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을 선택하셨습니다!
고난의 행군에 맞춰진 클리어 조건이 드러납니다!
클리어 조건 :: 과거 시험을 그 어떠한 보조 도움 없이 장원 급제(0/1)
춘향이와의 뜨거운 사랑 성공! (0/1)
클리어 조건을 이행하지 못할 시 게이트 공략은 실패하며 그대로 방출당합니다.
※게이트 실패 시 그 어떠한 불이익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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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펼쳐진 고난의 행군 클리어 조건창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불행 중 다행인 건 게이트 실패 시 불이익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게이트 웨이브가 일어날 일은 없겠네.'
공략 실패 시 게이트 안에 있던 몬스터가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게이트 웨이브.
그것만 없어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아무도 모를 법한 장소에 게이트가 나타난 것이기에 웨이브가 일어난다면 재앙 그 자체였다.
그나마 멜라니가 밖에서 자신을 기다려주고 있을 테니, 정말로 만약에 게이트 웨이브가 일어나도 걱정이 없었다.
'어쩌면 당연히 내가 성공할 거로 생각해서 아무런 지원도 없이 혼자 있을 수도...'
마음이 통하는 사이여서 그런 걸까?
민수는 자신이 멜라니의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기업 카이반의 모델로 자신을 추천한 이유가 뭐겠는가?
답은 딱 한 가지.
호감 뿐이었다.
자신도 유민이를 차버린 뒤 마침 좋은 여자를 찾고 있던 차였다.
'기다려 멜라니... 내가 게이트만 클리어하면 곧바로 그냥...!'
우헤헤헤, 몸종들밖에 없는 기와집에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한참을 그렇게 웃고서 다시 한자 공부를 하려는 그때.
"도련님 춘향아씨가 찾아왔습니다."
"그으래? 아니 어떻게 가녀린 그녀가 이 험한 흙길을 뚫고 왔단 말이냐. 내 어서 마중을 나가야겠다!"
몸종의 말에 민수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욱더 밝아졌다.
당장 한양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별문제 될 건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왜냐면 자신은 주인공이고 [용사]이며 어차피 한양에 가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사람들이 다 모여서 공부하는 곳에 같이 있다 보면 한자도 외우고 과거도 통과하지 않겠는가?
옛날 사람들보다 21세기에 사는 자기 생각이 더 열려고 있다고 도출한결과였다.
'일단 춘향이부터!'
춘향이는 정말로 예뻤다.
괜히 이몽룡이 원하고 변 사또가 수청을 들라 한 게 아니었다.
코딱지만한 마을에서 그 정도의 사랑 이야기가 나오려면 개연성은 얼굴 뿐이었는데.
정말로 모든 걸 납득시킬 만한 외모였다.
단아하고 고운 선과 뽀얀 피부 게다가 탱탱한 가슴까지.
"문밖에 있느냐?"
"네, 그렇습니다 근데 그..."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빨리 말해 보거라."
"다른 남자와 같이 왔습니다..."
"뭐?"
헐레벌떡 신발을 신다가 다른 남자라는 소리에 자빠질 뻔했다.
예전에 보금자리몰에서 울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과한 걱정이겠지.'
기생이라고는 하지만 양반의 딸이기에 몸종을 들인 걸 수도 있었다.
남자 몸종을 들여서 든든한 보디가드 같은걸 한 걸 테지.
민수는 스스로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면서 자기 합리화를 끝냈다.
"무...문을 열 거라."
"넵."
그런데도 불구하고 떨리는 턱을 조절하지 못 했는지 말을 조금 절었다.
침을 꼴깍 삼키면서 제발 그때 그 상황과 비슷한 일이 아니길 빌었을 때.
"춘향이 이 년 젖가슴이 탱탱한 거 알고 계셨습니까 도련님?"
나의 춘향이가.
그때 날 죽어라고 팼던 포주의 품에 안겨.
"...도...도련니임..."
젖가슴을 희롱 당하며 애타게 날 부르고 있었다.
"...으윽!"
갑자기 엄청난 두통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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