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부족해
* * *
형편없이 널브러져 있는 김민수와 아무 말없이 머리채를 잡힌 성춘향.
상황만 보고 있다면 여자 쪽이 모든 걸 포기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그 어떤 것이든지 자세히 봐야 제대로 보이는 법.
바닥에서 돼지 멱 따는 소리를 토해내는 민수는 모르겠지만, 춘향이는 아주 작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머리채를 잡히며 몸이 흔들리는 와중에 다리를 꽉 모으고 있는 성춘향.
남들이 본다면 겁에 질려 있는 것처럼 인식 했겠지만 난 아니었다.
'신음을 억지로 참고 있다.'
가까이서 봐야 알 수 있을 정도로 웃고 있을 정도면 말 다 한 거였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어서 고통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연기력까지.
설마설마 했는데 그녀는 정말로 마조 성향을 띠고 있었다.
'마조 춘향이라니...'
안뚱땡은 도대체 김민수한테 뭘 알려주려고 한 거지?
대체 무슨 야동을 보길래 이런 게이트를 알려 주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저런 놈이 갑자기 마조 여자 앞에 있다고 멋진 알파메일이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 걸까.
'늘 최악의 선택만을 하는구나.'
안뚱땡의 멍청한 점은 정말로 뽑을 수가 없을 만큼 많았다.
근데 굳이 그중에서 최고를 뽑자면 단 하나.
'김민수를 너무 과대평가 한다는 점.'
안뚱땡의 모티브로 만들어진 게 바로 김민수였다.
외모도 잘 나지 않고 성격도 이상하지만 주변 여자들이 이유 없이 좋아하는 캐릭터.
대충 살면서 무슨 만화를 봐 왔고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그런 캐릭터가 원하는 걸 모두 해내려면 작가가 상황을 모두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내가 끼어든 그 순간부터 안뚱땡의 모든 계획은 틀어진 거나 마찬가지.
그치만 안뚱땡은 계속 김민수는 수행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었다.
'이제야 슬슬 감이 잡힌다.'
김민수가 모든 일을 멋지게 해낼 거라는 잘못된 믿음.
그게 얼마나 안 좋게 작용하는지 여태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었다.
당해 보기 전까지는 커다랗게만 보였던 안뚱땡이다.
첫 만남 때 아무 이득도 보지 못해 너무 그를 과대평가했던 걸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늘 상황을 수동적으로 대처하기를 반복 했다.
"쌍년아, 오늘 복날 개패듯 맞을 줄 알아라."
"잘못했어요 나으리, 제발요 제발 하지 말아 주세요 나으리."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멍청한 듀오의 장단에 맞춰줄 필요 없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도 된다는 믿음이 생겼다.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없는 안뚱땡과 차려 둔 밥상에 숟가락도 못 올리는 김민수.
'이제부터 보여 줄게.'
김민수의 연애를 철저하게 망가트리면 안뚱땡이 또다시 모습을 드러낼 게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 그 계획의 첫 번째 퍼즐이 내 손안에 있었다.
"나으리 저만 매질하시고 제발 도련님만은 더 이상 해코지 하지 말아 주세요 제발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짝!
"흡...!"
입술이 터질 정도로 거칠게 뺨을 후려쳐도 춘향이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지조와 절개 그런 걸 담고 있는 눈빛이었다면 그만 쳤을 지도 모른다.
'좋아 죽는구나 그냥.'
춘향이의 눈에는 짙고 음습한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만족하지 못하며 이대로 끝내지 말라는 욕망이 그녀의 눈에 그대로 나타났다.
SM플레이를 안 해 본 게 아니었기에 표정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었다.
"도련님, 기절한 척 하신 김에 제가 말도 좀 타겠습니다."
꾸준히 관리했던 말이라면 김민수가 쓰러졌을 때 난동이라도 피웠을 거다.
근데 가만히 나무 그늘에서 눈을 감고 있는 걸 보니 그런 말도 아니었다.
몸종들이 관리하는 말이란 게 원래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춘향이는 기절한 척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이몽룡을 쳐다봤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돌아본 그 순간부터 기절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심하게 만들었다는 게 중요하지.'
유민이처럼 같은 단계를 밟고 있는 춘향이를 생각하니 손에 힘이 들어갔다.
"꺅!"
그녀의 머리채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자 약속이라도 한 듯 비명이 들린다.
스스로 비명을 내뱉으면서 신음을 억제하는 게 너무 티가 났다.
"이 년 때문에 더 안 맞은 걸 다행으로 아쇼."
말 위에 그녀를 들쳐업고 기방으로 향했다.
벌을 줄 시간이 다가온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 걸까.
춘향이의 입가에 미소가 점점 더 진하게 번지고 있었다.
'이 년 봐라.'
왜 게이트의 난이도가 S급인지 짐작 되는 부분이었다.
++++++++++++++++++++++++++
기방 꽃나비.
늘 대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기다려야 하는 기방의 문이 굳게 잠겨 있다.
간간이 몸종들이 나와서 서신을 들고 급히 여러 방향으로 나뉘어 뛰어 나가는 게 전부였다.
"미리 손님 분들께 오늘 장사는 하지 못한다고 알리거라, 애먼 발걸음 하셔서 기분 상하지 않도록. 그리고 다음에 오실 땐 더 진하게 놀아드린다고 꼭 말하고."
"네, 알겠습니다."
얼굴 꽤 먹어 준다는 기생들만 모인 기방엔 때 아닌 침묵이 맴돌았다.
원래는 가무를 연습하거나 풍류를 위해 주변을 꾸미는 듯 분주해야 할 터.
그러나 오늘만큼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마당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몸종들이 나가자 그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기생들 또한 자세를 고쳐 몸을 낮췄다.
오직 단 한 명만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이 흡사 왕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늘 진짜 나으리가 단단히 마음을 먹으셨구나.'
평소라면 춘향이가 무슨 짓을 해도 '어차피 머리 올려질 년인데 뭣 하러'라며 무관심으로 일관 했다.
근데 오늘은 장사도 멈추고 모두를 불러모아 춘향이를 벌 준다고 하시니,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흙바닥에 무릎 꿇어 돌이 살을 찌르는 게 아플 법도 한데, 기생들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더 나은 개선이 이뤄질 수 없다면 모두가 밑바닥에 처박히길 원했다.
춘향이를 계기로 꽃나비 기생들의 처우가 개선 된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를 왜 부른 지 알고 있지? 최근 이 년 때문에 기강이 너무 흐트러진 것 같아서 불렀어."
포주가 춘향이의 목을 잡고 번쩍 들어 올리더니 바닥에 내팽게친다.
"켁커억!"
보기만 해도 뼈가 부러질 것 같은 힘과 바닥에서 일어나는 흙먼지가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 준다.
기생들은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또 아들 하나 잘 물어서 혼자만 이 지옥을 빠져나가려는 꼴을 손 놓고 봐야만 한다니.
그건 그녀들에게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월향이가 결국 해냈구나!'
수련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월향이가 누구던가.
춘향이만 없었다면 천하제일미를 독차지할 외모를 가진 기생.
가무면 가무, 풍악이면 풍악, 서예면 서예.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꽃나비 최고의 기생이었다.
내가 나으리 한 번 꾀어서 말해볼게.
미쳤어? 그러다가 맞아 죽으면 어떻게 해.
다른 년들도 아니고 나으리가 나한테까지 손찌검을 할 리가 없잖아. 그리고 이렇게 손 놓고 있다가 춘향이 그년이 기방이라도 빠져나가면? 그땐 정말 늦어.
수련은 그때 대화를 다시금 떠올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정말로 꼬실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수많은 기생들이 구워삶아도 눈 하나 깜빡 안 하던 포주가 여자를 안다니.
'지도 결국 사내 새끼라는 거지.'
하긴 꼬추 달린 놈이 어떻게 월향이 젖가슴을 마다한단 말인가.
게다가 몸을 파는 기생도 아니어서 그 효과가 더 엄청 났을 게 분명했다.
사내놈들이 월향이 젖 한 번 빨아보겠다고 빠트린 돈만 어림잡아도 기와집 한 채였다.
"야 이 년아, 일어나서 사과부터 해야지 어? 너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마음고생 심했는 지 아냐?"
포주의 가장 무서운 점은 아무리 뛰어난 기생이라고 해서 봐주는 게 없다는 점이었다.
다른 기방 이야기를 들어 보면 보통 포주는 매출을 담당하는 여인들에게 눈치도 보곤 한다던데.
저놈은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돈을 많이 벌어 주던지 말던지 상관없이 바로 뺨부터 후려 갈기는 게 꽃나비의 포주다.
걸걸한 입과 포악한 품성 속에서 춘향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몽룡 때문이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간 건지는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는 그 방패마저 사라진 모양.
춘향이는 포주의 우악스러운 손에 머리통이 잡혀 강제로 고개를 들고 있었다.
탱탱 부어 있는 뺨과 터져 버린 입술에서 나오는 피.
"빨리 일어나 쌍년아."
무릎을 꿇고 있는 기생들은 처음에는 통쾌한 감정이 들었다가 점점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춘향이가 통쾌하게 벌을 받는 게 기쁜 것도 잠시 언젠가 자신도 저렇게 될 미래를 그렸기 때문이다.
"제...불찰로 인해..."
"불찰? 개소리하고 있네, 너는 다 알고 했던 거잖아. 어? 그 새끼가 다 감싸 안아주니까 눈먼 장님 마냥 이곳저곳 싸돌아다니고 안 그랬냐?"
짝!
바닥에 패대기까지 쳐진 여인이 무슨 힘이 있을까.
비틀거리는 다리를 겨우 진정시키면서 일어난 게 조금 전이었다.
사과를 하라기에 시키는 대로 입을 열었으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폭력을 행사한다니.
아무리 잘나가는 기녀들도 포주의 눈치를 보게 만든다.
그는 폭군의 기질을 타고난 자였다.
"잘 들어, 나중에라도 니네들 곁에 이몽룡 같은 새끼가 나타날 수 있어. 사랑에 눈이 멀 수도 있고, 근데."
할 건하고 사랑에 눈이 멀어야지, 니네 기생 아냐? 아직 머리도 안 올렸는데 뭔 지랄이야 이게.
그 뒤로는 차마 고개를 들고 볼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광경이 이어졌다.
단어를 잘못 선택할 때마다 처맞는 춘향이.
더 이상 통쾌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지 못 하는 기생들.
평소에 포주와 친하게 지내던 몸종들도 겁을 먹었는지 사시나무처럼 몸을 발발발 떨고 있었다.
쾅쾅쾅!
"게 아무도 없는냐! 왜 오늘은 안 연다는 것이냐! 내가 오늘 월향이를 만나려고 저번 주부터 기별을 넣어 놨거늘! 내 이유라도 자세히 들어야겠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공개 처벌은 의도치 않은 난입으로 인해 급작스럽게 종료 됐다.
"누구야?"
"그 왜 얼마 전에 금의환향한 선비 있지 않습니까. 그 자일 겁니다."
"니 년이 수를 쓴 건 아니고?"
"...제가 어찌 그러겠습니까."
"하긴 이 꼴 날 텐데, 그렇게 못 하겠지."
월향이는 포주의 의심을 벗어나면서 말을 가지런히 받았다.
포주는 춘향이를 발로 차서 구석에 몰아넣은 뒤 손을 휘휘 저었다.
상황을 정리 하라는 그 손짓에 몸종과 기생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술상 하나 차려라, 오첩으로 준비하고 얼마 전에 산 도자기 잔 깔고."
"청나라 거 말씀이십니까?"
"오냐."
몸종들이 춘향이를 방 안으로 옮기고 월향이가 몸을 가지런히 단정한다.
"월향아 마중 나가서 잘 달래드리고 바로 내 방으로 모셔라."
"네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쓴 돈이 있는 만큼 마중을 월향이가 하는 게 그림이 좋았다.
태풍 같던 시각은 언제 그랬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쾅쾅쾅!
"월향아! 혹시 그 포주놈이 무슨 해코지를 하거늘 나에게 반드시 말하거라! 내 경을 칠 것이니라!"
"풉..."
문 밖의 선비가 듣지 못할 비웃음이 터져 나오며 상황은 마무리됐다.
++++++++++++++++++++++++++
'부족해...'
몸종이 침구를 깔아 가지런히 눕혀져 있는 춘향이는 진한 기갈을 느꼈다.
곱디 고운 손가락에 힘 하나 들어가 있지 않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조금 더 미움을 받아야 할까?'
공허한 눈동자가 포주가 있는 방의 방향 쪽으로 움직인다.
"부족해."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방 안에 추악한 욕망이 조용히 들끓고 있었다.
만족하지 못한 몸에서 절로 소리가 새어 나온다.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그 빌어먹을 선비놈만 아니었다면 포주의 그 거친 손이 자신을 더 어루어 만졌을 텐데.
"아...하아...읏...하아..."
손이 스스로 밑으로 내려가 치마를 들추고 음부를 쑤셔 댄다.
촉촉하게 젖은 보지 속을 분주하게 움직여가며 씹물을 뽑아낸다.
"나으리이..."
더, 더 그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다.
자신을 천박하게 만드는 그와 계속 붙어 있고 싶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