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물러나 있거라, 내가 오늘 저놈을 단단히 혼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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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명작[춘향전]에 온 걸 환영해!
김민수는 분석할 필요도 없달까
너에게 가장 어울리는 역할은 [춘향전이몽룡]!
문무 겸비.
출중한 외모.
화려한 언변.
그리고 고고한 선비의 기세!
김민수 네가 아니면 누가 [이몽룡] 역할을 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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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는 게이트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정보창에 의문을 표했다.
춘향전? 저번에 돈키호테와 같은 경우인 건가.
근데 이번엔 역할까지 부여된 걸 보니 뭔가 더 세밀한 게 있을 게 분명했다.
[춘향전]이 원작과 얼마나 다를 지는 모르겠지만 [이몽룡]의 역할은 확실한 바.
또 다른 정보창도 김민수의 근거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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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역할은 [이몽룡]입니다.
고전명작 [춘향전]은 맡은 역할에 따라 클리어 조건이 다릅니다.
[성춘향]과 백 년가약을 맺고 [변 사또]를 혼내주는 [권선징악]을 재현하세요!
최고의 역할에 당첨된 걸 축하합니다!
당신만이 [이몽룡]에 가장 적합한 거, 알려나.
솔직히 몰라도 괜찮을지도? 진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이몽룡] 역할의 스킬 보유 목록
:: 문무겸비, 대기만성, 암행어사 출두요! ::
ㄴ문무겸비(고유) :: 이몽룡이야말로 문무겸비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인물일 겁니다.
장원 급제를 할 만큼 현명하고 강인한 기개와 정신력을 바탕으로 원하는 걸 모두 다 독차지하는 힘!
당신에게 [이몽룡]에 걸맞은 지혜와 무력이 깃듭니다!
ㄴ대기만성 ::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이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이몽룡입니다.
사또의 아들로 부모의 뜻조차 거역하지 못하고 한양으로 올라가게 됐으나 장원 급제를 하여 멋지게 등장하죠.
초반 이야기 진행을 할 때 문무겸비(고유)가 비활성화 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효과가 배로 불어나니 걱정하지 마세요!
ㄴ암행어사 출두요!(비활성화) :: 장원 급제로 암행어사를 달았을 때 활성화되는 스킬입니다.
탐관오리를 나약하게 만들고 주변에 수많은 군사를 소환하여 사이다를 선사하세요!
지금부터 고전명작[춘향전]의 세계가 움직입니다.
힘내라고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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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가..."
역시 나 말고 이몽룡에 어울리는 사람이 없는 거였나.
김민수는 고개를 두어 번 정도 끄덕이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백태양은 너무 양아치 같으니까 오히려 선비쪽으로 보면 내가 더 어울리는 게 맞지. 단순히 이... 뭐라고 해야 할까... "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었으나 아무튼, 그런 부분이 있었다.
애초에 내가 길거리에서 그렇게 울었던 이유도 헤어짐의 슬픔이 아니지 않았는가?
지조와 절개 그리고 소유민이 앞으로 백태양에게 받을 고통을 공감해서 일어난 결과였다.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고, 솔직히 슬슬 헤어질 각도 잡고 있었으니까.
생각을 정리한 민수는 주변을 둘러봤다.
사극 영화에서 양반들이 있을 법한 커다란 방에 화려한 병풍까지.
입고 있는 한복도 비단 옷에 때깔도 고왔다.
갓까지 있는 걸 보면 영락 없는 선비의 그것이었다.
"그럼 원작대로 춘향이를 만나러 가 볼까..."
문무겸비가 비활성화됐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이몽룡에 어울리는 인물이라면 그런 게 없어도 현명하지 않겠는가.
스킬이 존재하지 않아도 현명한 이몽룡에 가장 적합하기에 뽑힌 역할이다.
당연히 내 판단이 옳을 수밖에 없었다.
"크흠... 여봐라 게 누구 없는냐."
티비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기억할 만한 대사.
도도하게 뒷짐을 지고 방문을 열며 한 걸음 한 걸음 학처럼 걸어 나온다.
"예에 나으리 부르셨습니까."
"어어....그래... 춘향이한테 가자."
"예 준비해 두겠습니다."
양반은 신발을 신을 때도 몸을 굽히지 않는다고 했던가.
천장에 달린 끈 하나를 잡고 신을 신는다.
멋들어지게 곰방대 같은 것도 물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노비의 안내에 따라서 말에 올랐다.
"최근 춘향이에 관한 소문이 안 좋습니다. 어르신의 말씀에 따라서 아무래도 만남을 줄이시는 게..."
"이놈! 나를 가르치려 드느냐!"
"아이고 아닙니다. 제가 어찌 그런 경솔한 짓을 하겠습니까. 단지 저는..."
"듣기 싫다."
"알겠습니다."
보아하니 슬슬 춘향전의 내용에 따라 한양을 가기 직전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더더욱 괘씸했다.
'즐길만큼 즐기고 가야 하거늘!'
지금 당장에라도 춘향이를 만나서 이러쿵 저러쿵을 하고 싶었다.
소설 속에서는 맨날 묘사로 절세미인이니 가장 예쁜 기생이니 했으나 제대로 된 묘사 없던 성춘향.
고전 소설이라서 그런지 삽화조차 옛스러움이 가득해서 만족할 수가 없었다.
춘향전의 원본을 보면 정말로 야한 장면도 많이 나온다던데.
"그럼 혹시 나도? 으헤헤..."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큼흠 아무것도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나 보다.
민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말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노비가 기생집으로 안내를 제대로 하는지는 이몽룡의 기억을 바탕으로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방심할 수가 없는 곳이겠군.'
아무리 컨셉형이라지만 S급 게이트는 S급 게이트다.
단순히 춘향이랑 알콩달콩하고 역할 만 수행하는 게 끝일 리가 없었다.
분명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을 텐데.
지금 단계에서는 알아낼 수가 없으니 우선 등장인물을 파악해야 했다.
'괜찮은데?'
뒤늦게 이어진 생각이지만 나쁘지 않은 계획이지 않은가.
민수는 역시 자신이야말로 이몽룡에 제격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김민수를 보던 노비는 표정 관리를 굳건히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고개를 끄덕거리지?'
혹시 도련님이 불치병에 걸린 게 아닐까 걱정하는 노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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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언제까지 손님을 안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그 잘난 사또 아들이 평생 널 지켜 줄 수 있을 것 같아?"
"그게 아니옵고, 단지 저는 부부의 연을 맺은 남자와만 동침할 것 같을 약속 했기에……"
"바로 그 부분이 네가 정신이 나갔다는 거야. 누군 뭐 다들 안 그러고 싶은 줄 알어? 다 그렇게 약속한 사람 있어, 근데 받어. 왜? 양반 아들이랑 결혼을 못 해서. 넌 이게 지금 정당하다고 생각하니?"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제 머리를 올려주실 겁니다."
"포주가 잘도 허락하겠다."
성춘향.
양판 성 참판과 기생 월매의 딸로 신분의 격차를 무너트린 대표격 인물 중 하나.
그녀 또한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하고 있으며 양반 집의 딸이기에, 그 고고한 기세는 기생의 것이 아니다.
허나 그런 그녀도 두려운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포주였다.
"기생 딸년이면 기생이지, 왜? 팔자 좀 고쳐볼까 했느냐? 내가 니네 애비애미 그리고 좋다고 따라다니던 사내 새끼 하나 못 죽일 것 같아? 다 죽여 버린 다음에 나도 죽으면 그만이야. 그래도 좋으냐? 좋다면 그대로 살아라. 니년 애미로 젓갈을 담구는 걸 똑똑히 보게 해 주마."
춘향은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잠을 못 이루곤 한다.
가끔은 꿈에서까지 포주가 나와서 호통을 칠 정도였다.
넌 절대로 기생을 벗어날 수 없다는 그 말이, 자신을 기생집으로 끌고 왔던 저 말이.
올가미처럼 늘 춘향의 목을 휘감고 있었다.
포주가 저렇게 말했다는 걸 가족에게 알린다면? 이몽룡에게 알린다면?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었다면 기생집에 끌려오지도 않았을 거다.
아마 내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면 주변 기생들이 포주에게 알리리라.
포주는 정말로 보여 줄 때는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성정이 포악하고 사납고 호전적인 것과는 다른 이질적인 기운이 있는 남자였다.
다시금 그때를 생각만 해도 얼굴이 붉게 물들고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
포주를 잘 이르고 타일러서 거금을 주며 손님을 받지 않고 있었으나 한계가 있었다.
점점 더 많은 돈을 요구 할 때마다 잔고는 빠르게 줄었으며, 이젠 정말로 손님을 받아야 할 때였다.
게다가 방금 말을 나눈 기생도, 아니 기방 안에 있는 모든 기생이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포주와 몸을 섞으면서까지 트집 잡을 구석을 찾고 있을 테지.
"춘향아 어디에 있느냐."
"허이구, 머리도 못 올려놓고선 벌써 지랄 났네."
이몽룡의 말에 주변 기생들이 수군거린다.
춘향은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은 포주도 자고 있을 시간이어서 그나마 행동이 자유로울 때.
어쩌면 오늘을 끝으로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도련님 오셨어요? 일단 나가서 이야기해요."
우선은 눈앞의 포도를 먹는 것에 집중했다.
꿈이라도 좋으니 이 순간이 깨지 않기를 바라며 이몽룡의 말에 올라탔다.
그의 허리를 꽉 부여잡고 바람 선선히 부는 정자에 도착하니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였다.
"춘향아 난 네가 너무 좋다."
"...부끄러워요."
"우헤헤헤헤헤"
원래 이렇게 웃음소리가 경박했나 싶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함께 하며 웃고 떠들며 마음을 나누는 게 중요했다.
아직은 몸도 섞지 못하고 백 년가약만 맺은 사이라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그때를 생각하니 괜히 부끄러워져 몸이 배배 꼬일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별의 때는 다가오는 법.
"야 이 년아, 지금 기방에서 다들 손님 받겠다고 분주한데 너 혼자 이러고 있는 게 말이 되는 거냐?"
맑은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드리우듯.
그들의 사랑을 비웃듯, 춘향이가 가장 두려워하던 상황이 일어났다.
"허허... 어디 백정 같은 놈이 내 아내에게 년? 아주 단단히 혼나야겠구나."
"도련님, 저자는 아주 무서운 자입니다. 여긴 제가 정리할 터이니..."
몽룡은 포주를 보고도 물러설 기색이 없어 보였다.
자신을 지켜 주는 태도에 마음이 따듯해졌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런 상황이 몇 번이나 반복 됐기 때문에 포주도 더 이상은 참지 못할 터.
춘향은 절대로 둘이 싸우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물러나 있거라, 내가 오늘 저놈을 단단히 혼내줄 테니."
"춘향아, 네가 기어코 일을 크게 만드는구나. 발랑 까진 창년 같으니."
"이 노옴! 또다시 내 아내를 욕 보이느냐!"
"안 돼요!"
그녀가 몽룡을 말릴 틈도 없이, 그가 포주에게 달려들었다.
'제발!'
춘향은 손을 꼭 모으고 기도했다.
이렇게 된 이상 몽룡이 포주를 이기기를.
간절히 하늘에게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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