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69화 (69/325)

〈 69화 〉 고전명작[춘향전]

* * *

원래 게이트에 들어오면 주변 풍경이 바로 보여야 한다.

근데 지금은 사방이 하얀색으로 덮여 뭐가 있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안뚱땡 처음 만났을 때 생각나네.'

자동차를 아무리 몰아도 벗어날 수 없던 그 공간이 생각 났다.

갇힌 건가? 라고 생각하자마자 그 생각을 부정 하듯 메시지창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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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명작[춘향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당신의 내면과 성향 그리고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역할'이 배정됩니다.

'남의 여자'를 뺏은 횟수 24회

'어장 관리' 횟수 102회

'처녀폭격' 횟수 74회

'혼전순결이라고 말하던 여자 처녀막 찢은 횟수' 6회

'먹고 버린' 횟수 69회

'성 경험' 횟수 ... 측정 불가

종족값 인큐버스로 추정.

가장 어울리는 역할 분석 중...

...

..

.

분석 완료.

결과.

당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역할은 [춘향전­변 사또]입니다!

아직은 [변 사또]가 나오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자유롭게 활동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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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개소리야.'

먹고 버린 횟수라니?

다른 건 다 뭐 그렇다 쳐도 저거 하나만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를 먹고 버려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사람을 매도하다니.

지구에서의 기억까지 읽는 건 저번 환각 던전에서 이미 겪었기에 알고 있었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그걸 바탕으로 제멋대로 판단하는 건 좀 아니지 않는가.

순정은 없을지언정 서로 연인끼리의 도리는 지키면서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고작 게이트 정보창 따위가 내 삶을 부정하려고 하다니.

'어이가 없네 그냥...'

순식간에 기분이 상해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때 알림창이 하나 더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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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역할은 [변 사또]입니다.

본명은 변학도지만 우리에겐 [변 사또]가 더 익숙할 겁니다.

고전명작[춘향전]에서는 맡은 역할에 따라 클리어 조건이 다릅니다.

[변 사또]의 역할은…… 아시죠?

늘 하던 거니까 익숙하시겠네요!

최적의 역할에 당첨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변 사또] 역할의 스킬 보유 목록

:: 탐관오리, 수청을 들라, 매질 ::

ㄴ 탐관오리(고유) :: 변 사또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에서 '징악'을 담당하는 인물입니다.

성정은 포악하고 주변 평판은 좋지 않으나 대신 막강한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ㄴ수청을 들라 ::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계집에게 강압적인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보통의 기개를 지닌 인물이라면 절대로 거절할 수 없습니다.

ㄴ매질 :: 변 사또의 말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자들에게 매콤한 매질을 가합니다.

명령을 내릴 수도 있으나 직접 타격할 시 그 효과가 배가 됩니다.

아직 등장할 시간대가 아니므로 [변 사또]와 관련된 모든 부분들이 비활성화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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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변 사또 같은 스킬들이네."

하나같이 고전 이야기에 나오는 '악인'의 특징을 빼다 박은 스킬들이었다.

'내가 변 사또라면...'

김민수의 기억을 읽어 본다면 절대로 이몽룡이 될 수 없을 터.

하지만 안뚱땡이 설계한 소설 속에선 김민수는 그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용사 같지 않은 놈이 용사의 스킬을 들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춘향전에서도 김민수가 이몽룡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다.

'일단 아직 내가 나오기 전이라는 걸 보면 둘이 헤어지기 전인가 보군.'

이야기 흐름상 그게 맞겠지.

변 사또가 등장하는 시점은 이몽룡과 춘향이 헤어지고 난 뒤 여러 달이 지난 후다.

그렇다면 아직 이몽룡과 춘향이가 잠시라도 떨어지면 죽을 것처럼 연애하는 시점일 터.

'근데 그럼 난 여기 계속 갇혀 있어야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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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이 비활성화 된 상태에선 스토리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습니다.

당신에게 임시 역할 [포주]를 부여합니다.

지금부터 고전명작[춘향전] 세계 속으로 들어갑니다!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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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주변 풍경이 변하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없던 하얀 공간에 민속촌에서나 볼 법한 건물들이 올라온다.

초가집도 있고 기와집도 있으며, 사극에서 나오던 장면들이 구현된다.

입고 있던 일상복이 사라지고 화려한 한복으로 옷이 바뀐다.

포주라면서 입고 있는 옷은 영락 없는 기둥서방의 그것이다.

"일어나셨어요?"

"어? 아... 어어."

"소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눈을 몇 번 깜빡이는 사이에 이야기의 중간에 정확히 들어온 모양이다.

주변이 변할 때만 해도 길거리에 툭 떨어지는 줄 알았더니, 정신을 차리니 눈앞에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서 있었다.

보통 포주한테 이렇게 극진하게 대접하나?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눈앞에 있는 것부터 직시함이 옳았다.

단정한 한복에 곱게 땋은 머리가 허리 근처에서 살랑거리고 있는 여인.

예쁘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기생'다운 색기를 가지고 있었다.

방금 대화를 통해 유추해봤을 때 같이 밤을 지새운 사이였나보다.

포주랑 기생이랑 같이 자는 경우는 거의 없을 텐데.

상품에 손을 대다니, 기둥서방이나 하는 짓 아닌가?

조선 시대 포주는 뭔가 법이 다른 걸까.

"참, 춘향이가 또 손님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문을 나가려던 찰나 뒤를 돌아 입을 연다.

그녀는 차분히 말하면서도 눈에 끓어오르는 독기를 품고 있었다.

같은 기생인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우를 받는 게 불만이겠지.

춘향전을 대충 읽었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남원 사또의 아들이 만나는 계집을 그러면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급제를 하지 않아도 사또의 아들이라는 신분은 변하지 않는다.

신분제가 철저한 곳인 만큼 이몽룡이 좋다고 난리를 치면 아무런 힘을 쓸 수가 없다.

"...그럼 계속 지켜보기만 하시는 겁니까."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마."

"그 말만 벌써 다섯 번째입니다. 제가 언제까지 그런 기약 없는 약속을 기다리며 차별을 묵인해야 한단 말입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잘 어르고 타일렀을 텐데, 어제의 포주와 오늘의 포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게 문제였다.

그간의 포주 경험을 통해서 기생을 제어했겠지만 나에겐 그런 재주가 없었다.

당장 지금 만 봐도 고사리 같은 손을 꽉 쥐고 나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있지 않은가.

영화나 그런 쪽을 보면 포주가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는데, 그런 건 원치 않았다.

"내 오늘 따로 자리를 마련할 터이니, 신경 쓰지 말라니까?"

무슨 말투를 써야 할 지 감을 잡지 못해서 하대가 뒤죽박죽이었다.

이런 부분은 차차 나아지겠지.

"믿겠습니다. 그럼 소녀 정말로 가 보겠습니다."

"어 그래."

손을 휘저으며 그녀가 문을 나가는걸 지켜봤다.

'그렇단 말이지...'

방금 대화에서 아주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가장 큰 수확은 원작과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는 점.

원작에서 춘향은 기생의 딸이지만 기생으로 보기엔 애매한 점이 많았다.

기생의 딸일 뿐 기생의 일은 한 적이 없다는 게 바로 그 부분이었다.

근데 여기선 춘향이 기생집 안에 소속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일을 거부하는 것으로 봐선 이미 이몽룡과 부부의 연까지 맺은 시점이다.'

어쩌면 맺기 전일 수도 있다.

썸남이 생겨서 밤일하지 않는 여자라고 생각하니 이해가 쉬웠다.

외모까지 예쁜데 연을 맺고 있는 게 사또의 아들이기까지 하니 건들 사람이 없던 거다.

조금만 뭐라고 하면 이몽룡이 와서 난리를 칠 게 뻔할 테니까.

그렇다고 춘향이를 그대로 냅두기엔 외모가 너무 아깝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겠지.

상황 파악은 끝났다.

"춘향이 이 년 어디에 있지?"

천박한 말투 속에 거친 품성을 잔뜩 집어넣으며 방에서 나온다.

먼저 나간 여인의 팔목을 사납게 붙잡으며 화난 표정을 연기한다.

조금 전만 해도 차분하게 대처하는 듯싶다가, 화가 난 얼굴을 보니 그녀의 얼굴에 꽃이 핀다.

드디어 벌을 받겠구나 하는 눈빛으로 입이 열린다.

"지금 낭군을... 만나러 간다고..."

"머리 올려 준 사람도 없는데, 낭군이라니. 이 계집년이 미쳤구나."

이야기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는 건 어디까지나 [변 사또] 역할의 이야기다.

임시역할 [포주]가 부여받은 지금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말이다.

김민수 혼자서 진행하려고 했던 게이트에 갑자기 내가 난입해서 생긴 오류일 거다.

[변 사또]와 [포주] 둘 다 등장하지도 않으려고 했겠지만, 일이 틀어진 거겠지.

'김민수 네가 무슨 이몽룡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변 사또]가 수청을 들라고 할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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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렇게 유쾌하세요 도련님."

"그래? 헤헤...헤헤헤... 아니 그럼 내가 그렇게 웃기단 말이냐?"

"정말이라니까요."

"우하하하하하하"

옥쟁반에 이슬이 맺히는 듯한 청아한 목소리.

길거리를 지나가면 누구나 고개를 돌려 볼 법한 얼굴의 여인이 웃고 있었다.

말끔하게 정리된 앞머리의 이마는 반듯하고 가지런하다.

그 밑으로 떨어지는 눈은 토끼의 그것처럼 동그랗고 반짝이며, 코는 오뚝하다.

입은 딱 붙은 앵두처럼 두툼하고 보드라니 가히 절세미인이라.

달이 부끄러워 물 속에 숨고, 물고기가 숨을 쉬는 법도 잊어버릴 여인.

성춘향.

"춘향아 난 네가 너무 좋다."

"...부끄러워요."

"우헤헤헤헤"

김민수는 지금 춘향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귀가 찢어질 듯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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