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솔직하게 말하면 죽일 거잖아.
* * *
"그렇다면 김민수 생도가 유혹에 빠진 걸 구해주셨다는 말씀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김민수 생도! 이게 정말 사실입니까!"
"...네...그렇습니다..."
갑작스럽게 열린 원더랜드 기자회견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렇게 빠를 수 있던 이유는 인명 피해도 없었고 건물도 손상된 게 크지 않기 때문이다.
다친 사람도 없고 해봤자 건물 좀 부서졌으니까 분위기가 딱딱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기자들의 질문은 조심성이 많이 제거된 상태였다.
"백태양 헌터가 환각 던전을 클리어 했던 당시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몬스터는 무엇이었나요?"
"서큐버스 퀸이었습니다. 김민수 생도도 퀸에게 당한 거구요."
"답변 감사합니다. 추가적으로 퀸이 마지막에 사랑 고백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퀸을 역으로 유혹한 게 정말입니까?"
"그런 사실 없습니다. 저 백태양은 절대로! 몬스터와 정을 나누지 않습니다."
"오...오오...!"
뻔한 대사였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사실 눈가리고 아웅인 수준의 답변이었다.
김민수의 발기는 바지로 가려졌지만 내 주니어는 그렇지 못 했다.
샤엘과 섹스하고 난 뒤에 전보다 자지가 더 커진 느낌이다.
대놓고 허벅지 안쪽에 빳빳해진 구렁이가 있는데, 정을 나누지 않았다는 걸 믿는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는 소리였다.
심지어 헌터 관련 전문 기자들이기 때문에 서큐버스가 무슨 몬스터인지 다들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말을 전적으로 믿어 주는 이유는 단 하나.
김민수 덕분이었다.
민수는 조금 전의 인터뷰에서 유혹 당했다는 걸 긍정했다.
그 영향으로 인해 '서큐버스와 정을 나눈 건 김민수'라는 게 기정사실화가 된 거였다.
'내 이미지 때문도 있겠지.'
S급 게이트 공헌도 1위와 여자를 꼬셨으면 꼬셨지, 당하지는 않을 것 같은 얼굴.
이미 대외적으로 내 이미지는 상남자로 굳건하게 자리 잡았다.
상남자 헌터가 서큐버스 퀸에게 빠진다? 아무도 믿지 않을 이야기였다.
"그럼 슬슬 마무리하겠습니다."
"아..."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얼추 환각 던전과 관련된 질문은 받아 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질문을 더 받아봤자 사적인 질문으로 빠질 확률이 높았다.
소유민과의 관계, 멜라니와의 관계 등등 말이다.
답변하지 않으면 되지 않냐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한 번 입 밖으로 꺼낸 화두는 내가 정확하게 답변하기 전까지 식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건 최악의 경우다.'
예전에 민수가 바람 폈다고 화를 내면서 때린 게 갑자기 미안 해진다.
근데 어떻게 보면 민수는 얼굴값을 못 하고, 난 하니까 괜찮지 않을까?
"자자 그럼 이쯤에서 마무리 합시다."
기자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절대로 선을 넘지 않았다.
정말로 만에 하나 선을 넘어서 각성자의 화를 부른다면? 비 각성자는 절대로 감당할 수 없었다.
실제 사례도 있었던 만큼 맺고 끊는 부분에선 굉장히 철저했다.
'그럼 이제 2부 질문을 받을 차롄가.'
공식적인 질문은 모두 끝났다.
마음 같아선 여기서 전부 끝내고 집에 가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유민혁, 그가 지금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유민이도 나에게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다.
근데 유민혁의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뒤로 물러났다.
패기와 기백에서 밀린 거였다.
'와라, 유민혁.'
난 백태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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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만약에 김민수가 지금 벌어질 일을 대처한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놈은 절대로 대응할 수 없어.'
오직 나만이 이 상황을 능숙하게 견뎌 내고 빠져나갈 수 있었다.
"아직 1학년이면서 벌써 많은 경력을 쌓았더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좋게 본 적은 없네."
"넵."
원더랜드 VIP룸은 정말로 아기자기한 분위기였다.
커다란 곰돌이 인형은 물론이고 천장엔 공룡들까지 달려 있었다.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라더니...'
너무 과하게 사람을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벽지도 공주들이 나오는 애니에서 볼 법한 분위기에 별가루도 뿌려져 있었다.
화룡점정은 소파였다.
떡대가 성인 남자 2배는 할 것 같은 남자 둘이 앉아 있는 소파는 핫핑크 색이었다.
추가로 한가운데 탁자엔 귀여운 머그잔 두 개가 있었는데, 코코아가 마시멜로를 둥둥 띄우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안뚱땡 미친 새끼.'
이건 전부 그놈이 만든 개그 에피소드의 영향일 게 분명했다.
"난 자네가 내 딸과 사귀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네."
유민혁은 이런 분위기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나를 어떻게 물어 죽일 지만 고민하는 맹수 같았다.
"근데 최근... 행보를 보니... 여자가 많더군."
이건 내가 모르는 이야기였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내자 유민혁은 핸드폰 기사를 슥 내밀었다.
그 기사 속엔 내가 멜라니 리무진에서 해맑게 웃으며 나오고 있었다.
누가 봐도 즐길 걸 다 즐긴 얼굴이었다.
'OX게임 밖에 안 했는데.'
말해봤자 믿을 분위기도 아니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거기에 소유민 생도라고 했나. 오늘 자네를 보는 표정이 심상치가 않더군... 나도 연애 해 봐서 잘 알고 있네."
"다 그냥 좋은 친구들이죠,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럼 그날 내 딸과 아침 거리를 다닌 것도 오핸가?"
예상했던 질문이 드디어 튀어나왔다.
당연히 딸을 가진 아버지라면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었을 거다.
전날 집에 들어오지 않은 딸이 이튿날 남자와 아침 거리를 걷고 있다? 그것도 굉장히 사이좋게?
무조건 같이 밤을 보냈다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수진이 성격상 그런 쪽으로 거짓말을 해도 티가 날 게 분명했다.
즉 유민혁은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온 거나 다름없었다.
"무슨 마음이신지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려하시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럴 땐 무조건 정공법으로 나가는 게 좋았다.
지구에 서도 수없이 이런 상황을 경험해 봤을 때 이게 가장 확률이 높았었다.
쩔쩔매는 대응은 최악이었고 굉장히 듬직하고 믿을 수 있는 남자라는 걸 보여 줘야 했다.
"...솔직히 지금 상황은 내가 무례한 걸 알고 있네, 자식의 연애에 간섭한 꼴이 되는 거니까."
유민혁은 굉장히 이성적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부모의 도리라는 걸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만약에 내 딸이 만나고 있는 남자가... 내 딸을 가볍게 여긴다면..."
취소.
유민혁은 굉장히 감정적이었다.
천천히 끓어오르는 주전자처럼 예열이 덜 됐을 뿐이었다.
그는 상상만 해도 분노가 끓어오르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얼마나 강한 각성자인지는 몰라도 격한 감정만으로 주변 사물을 흔들리게 하고 있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솔직히 어디까지 나갔나."
내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말이 이어졌다.
아마 처음부터 이걸 계속 물어보고 싶었을 거다.
모든 말들은 저 질문 하나를 위한 빌드업에 불과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죽일 거잖아.'
첫 경험은 선도실이었습니다. 거기서 따님의 빨통을 주무르면서 뒤치기로 처녀막을 뚫었습니다.
두 번째는 보금자리 호텔 VIP 스위트룸이었는데, 서로 씻겨 주기도하고 좆물도 먹이고 그랬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유민혁 헌터님, 더 궁금한 게 없으시면 가 보겠습니다.
유민혁이 듣고 싶은 건 이런 게 아닐 거다.
정말 진실을 원한다면 저렇게 말도 꺼내지 않았겠지.
연애도 해 보고 결혼도 해 본 사람이 절대로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이럴 땐 장단을 맞춰주는 게 정답이었다.
"백화점 게이트 사건이 끝난 후 더 깊은 우애가 생겨서 껴안은 정도입니다."
"...남녀가 껴안은 걸 자네는 고작 정도...라고 말하는군."
오답이었다.
유민혁이 생각보다 이렇게 순정남일 줄은 몰랐다.
연애 해봤다며, 첫사랑이랑 결혼한 건가? 대체 뭐 얼마나 풋풋한 걸 바라는 거야.
소설 제목에 가 들어가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니네 내가 예민하게 반응했어... 그래 그럴 수 있지... 요즘 세대는 또 다르다고 하니까..."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 이해할 수 있다고?"
갑자기 유민혁의 눈이 번뜩이면서 날 바라봤다.
먹잇감을 포착한 독수리의 동공이 떠오를 정도였다.
"네."
"그럼 내가 식사 초대를 하는 것도 이해해 주겠군?"
당했다.
단 한 번의 언어 선택 실수로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이야.
그는 처음부터 이걸 노렸던 거였다.
부모가 자식의 연애에 간섭하는 데는 사실 한계가 있었다.
서로 좋아서 만나는데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식사 초대는 부모가 쓸 수 있는 최고의 카드 중 하나였다.
어느 정도 부담감을 주면서도 호의를 보이는 양면성이 존재하는 카드.
지금 그걸 유민혁은 나에게 던진 거였다.
'관계가 확정 나는 건 피해야 해.'
수진이네 집에 가서 사귀는 사이로 확정이 난다면 앞으로 벌어질 일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지내는 방법은 모두와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거다.
즉 '내 애인은 누구누구 뿐이야!'하며 공인하는 것보다 '너희들은 다 날 사랑하니까 견뎌'라고 말하는 하렘을 펼쳐야 했다.
"알겠습니다. 시간 괜찮으실 때 말씀해주시면 바로 가겠습니다."
일단 여기서 거절하는 건 안 좋았다.
'수진이랑 입 맞춰서 대본이라도 짜야겠어.'
언제 초대 받을 지는 모르겠으나 시간적 여유를 둘 게 분명했다.
나름 남자 친구(진)이 집에 놀러오는 건데, 급하게 부를 리가 없었다.
"그럼 이번 주말에 보는 걸로 알겠네. 나머지는 수진이한테 말해둘 테니... 그때 보세."
"네 그때 뵙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유민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탁자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마시멜로 코코아 두 잔, 그리고 명함 한 장만이 남았다.
'유민혁.... 만만치 않은 상대야.'
이번 주말이라고 해봤자 나흘 밖에 안 남았다.
원래 계획은 이번 주 안에 유민이와 민수를 헤어지게 할 생각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억지스러워질 수가 있어서 최대한 천천히 진행하려고 했는데.
'이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바로 준비해야겠어.'
두 명의 여자를 동시에 잡는 법?
케이크를 먹는 것보다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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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스킬의 사용 흔적은 분명 [뒤처리]였다.'
서브 스킬이 비슷할 순 있어도 완전히 똑같기는 힘들었다.
'너무 똑같아.'
F급 스킬이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유민혁 본인은 아니었다.
어렵고 힘든 시절 주7일 15시간씩 청소 알바를 하면서 최초로 얻었던 스킬이다.
그러므로 뒤처리 스킬은 '유민혁의 청소 습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즉 백태양이 환각 던전을 막 클리어했을 때, '유민혁이 주변을 청소한 것처럼' 주변이 정리가 되어져 있었단 말이다.
'이번 주말에 물어볼 게 많군.'
딸과의 관계부터, 스킬을 얻은 경위까지.
이번 주말이 너무 기대가 돼서 절로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유민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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