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월드클래스?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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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군.'
이민준은 멀리서 걸어오는 백태양을 보자마자 일어났다.
'지금부터 잘 보여야겠어.'
처음 계획은 김민수에게 접근할 생각이었다.
[용사]라는 타이틀도 달고 있었고 재능까지 이미 검증이 된 생도였으니까.
여기서 끝이 아니라 잠재성도 엄청 났다.
1학년인데 이 정도였다.
나중에 나이를 먹어가면 얼마나 더 성장할지 알 수가 없었다.
외모가 살짝 부족하긴 했지만 스타성은 충분했다.
'그래 봤자 원석이었어.'
불량스러워 보이는 인상을 풍기면서 다가오는 남자.
저 남자는 이미 세공된 보석이었다.
태초부터 완성형이 있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직접 보고 나서도 한동안 이게 맞나? 라는 생각했다.
돈키호테를 상대하는 움직임은 일개 생도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태양 씨, 오셨군요!"
김민수와 백태양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조건 백태양이었다.
물론 호랑이를 개집에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 길드 스카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접점은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었다.
명함만 교환했다고 인맥이 생겼다고 말할 수 없다.
인맥은 말 그대로 '맥'이었다.
뛰지 않는 맥박을 어떻게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 이민준 팀장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하루 만에 뵙는 건데요 뭘."
"하하, 그렇긴 합니다."
이민준은 지금, 이렇게 태평하게 웃고 있는 남자가 게이트에서 봤던 남자라는 걸 믿을 수 없었다.
메인 스킬의 사용으로 인해 풀과 나무조차 으스러진 그 광경을 잊지 못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돈키호테를 잡을 때 봤었던 무기 활용은 경악 그 자체였다.
커다란 무기 케이스를 사출할 때부터 모든 걸 계산하는 그 치밀한 두뇌.
원거리, 중거리, 근거리 무기로 상대방과 간극을 조절하며 전투하는 센스.
인간형 몬스터를 망설임 없이 죽이는 결단력.
이건 누가 가르쳐 준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만 가능한 재능의 영역.
백태양은 그 영역 안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로 거듭날 게 분명했다.
"혹시 방학 때 스케줄이 잡혀 있지 않으시다면 같이 게이트나 던전 도는 건 어떻습니까?"
"그...러죠 뭐."
반응이 떨떠름 했지만 상관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백태양과 약속을 잡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이민준은 이 자리에 있게 해준 김석구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지금 밖에 약속을 잡을 타이밍이 없어.'
S급 게이트 클리어 기사는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었다.
1학년 생도가 최고 공헌도를 먹었는데 무소속이다? 수많은 연락이 날아올 게 분명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김민수에게도 연락을 넣고 싶었지만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한쪽에만 철저하게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줘야 마음을 더 끌기 쉬웠다.
그러나 5분 후 이민준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둘이 사이가 저렇게 좋았나?'
일방적으로 백태양이 김민수에게 말을 거는 그림이었지만 분위기는 좋았다.
김민수가 백태양을 바라보는 표정이 썩 좋지 않아서 한쪽에만 접근한 거였는데.
나름 훈훈하게 대화를 이어가는걸 보면 둘 다 말이라도 해볼 걸 그랬다.
미래의 유망주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할까.
아마도 게이트 전투에 관한 피드백을 나누고 있지 않을까?
이민준은 생각을 정리하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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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야 이건 기회야. 유민이 질투심도 유발하고 얼마나 좋냐?"
"그...그런가? 솔직히 나도 반전의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긴 했었어."
"역시 너는 이 머리 회전이 나름 잘 돌아가는 것 같아."
"헤...헤헤 그치? 나도 나름 이... 연애 부분에 대해서 아예 문회안은 아냐."
"문외한이야, 민수야."
"어어 아무튼 그거."
김민수를 꼬실 108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부 필요 없었다.
몇 마디 살살 긁어 주니까 바로 넘어올 줄이야.
평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까지 장착하고 있어서 당황했다.
'묘하게 여유로워서 짜증이 나네.'
학창 시절에 이유 없이 시비 걸던 놈이랑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득의양양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갑자기 라노벨 소설 내용을 설파하던 그놈.
내가 말하는 게 고증이 틀렸다느니 깊게 보면 다르다더니 하면서 가르치던 얼굴.
김민수는 지금 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실은 내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참... 태양이 너도 조급하긴 하구나."
뭘까.
왜 이런 말투를 갑자기 쓰는 걸까.
"카이반... 모델 제의 받고 그러면 놀이공원도 가고 그래야겠네."
왜 콧대가 저렇게 높아진 거지?
어깨를 과하게 으쓱거릴 필요가 있나?
"말 나온 김에 지금 가 볼까. 여기서 좀 기다려 줘 태양아, 금방 끝나."
김민수는 과도한 팔자걸음으로 멜라니에게 다가 갔다.
몇 마디 안 나눠도 금방 일이 술술 풀리는 게 보였다.
멜라니는 이게 맞나 싶은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가끔 날 보면서 상황에 대한 해명을 바라는 눈빛을 쐈지만 외면했다.
멜라니도 표정만 저랬지 마음속으로는 기뻐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라이벌 그룹의 딸과 가까운 사이인 사람을 쏙 빼내는 건 엄청난 성과다.
"지방 방송 모두 정리하고 모두 모여라, 오늘은 간단한 피드백 정도만 하고 수업 끝이니까."
김석구의 말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단번에 정리 됐다.
굉장히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대화하고 있던 김민수도 말을 멈췄다.
멜라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조금씩 조금씩 내 곁으로 다가왔다.
"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사람이 저렇게 순식간에 바뀌는 거죠?"
"나는 진짜 아무 짓도 안 했어."
"거짓말 치지 마세요. 제가 본 게 있는데 이렇게 발뺌을 해요?"
억울했다.
따지고 보면 나도 피해자였다.
"진짜 나 아무 짓도 안 했다니까, 쟤가 갑자기 저러는 거라고."
"안 속아요. 저번만 해도 제 눈도 못 마주치던 사람이 갑자기 모델 하다가 나한테 넘어오는 거 아닌가 하면서 절 은근히 쳐다보는데, 당신 짓이 아니라구요?"
"그런 말까지 했다고...?"
충격과 놀람의 연속이었다.
불쾌한 멜라니의 표정이 바로 이해 되는 문장을 구사할 줄이야.
어쩌면 김민수를 여태까지 과소평가한 걸 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의 국어 능력을 구사할 수 있었다니, 날 속인 건가?
바보와 천재는 구분할 수 없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때문에 1학년 D반은 백태양, 김민수, 멜라니를 제외한 인원은 게이트 견학을 한 번 더 하기로 결정 됐다."
"너 때문에 제대로 못 들었잖아."
"대충 들으면 앞뒤이어지지 않나요? S급 게이트를 다섯 명이서 깼기 때문에 다른 인원 실력 측정을 못 했다는 말이잖아요."
까칠하면서도 알려줄 건 다 알려 준다.
F급 게이트를 클리어할 때, 너무 과한 비대칭 전력의 존재로 인해 능력치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후에는 일주일간의 휴식이 이어졌는데, 휴식이 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근데 왜 일주일간 방학인가요. 교관님?"
"게이트를 클리어하자마자 바로 생도를 굴릴 만큼 빅토리 아카데미는 가혹하지 않다."
"감사합니다."
"F급 게이트를 견학할 땐 평소보다 교관이 두 배 이상 붙으니 안전 문제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D반 생도의 말에 궁금증이 풀렸다.
왜 굳이 일주일인가 했는데 빅토리 아카데미 나름의 배려였다.
게다가 상시 발동형 메인 스킬 보유자는 내일 견학하지 않아도 되니, 8일의 휴가를 받는 거였다.
교관들의 굵직한 업무도 모두 끝난 건지 지원도 필요가 없어졌다.
'괜찮은데?'
놀이공원을 가자고 말만 꺼냈지 언제 갈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이렇게 된다면 당장 내일 가도 문제가 없었다.
"태양아! 놀이공원 내일 갈까?"
"깜짝이야, 갑자기 귓가에 대고 말하지 말아줘."
"아...미안."
김석구의 말이 끝나자마자 김민수는 말을 걸어왔다.
적극적이어서 좋은데, 거리감을 못 잡고 말할 때마다 귀가 아팠다.
"따라서 백태양, 김민수, 멜라니는 해산해도 좋다. 셋을 제외한 생도들은 내일 있을 F급 게이트 주의사항 및 훈련을 실시한다."
순식간에 야유가 터져 나왔지만 김석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능숙하게 바닥에서 석판을 꺼냈다.
그때 대련장에서 봤을 땐 짐작을 못 했는데, 김석구의 서브 스킬임이 분명했다.
"그럼 우린 방해되지 않게 이만 가 볼까요? 민수, 당신은 저와 할 이야기가 아직 남아 있기도 하니까요."
"어어... 그럼 태양아 놀이공원 내일로 알고 있는다? 유민이한텐 내가 말할게! 꼭 내가 할 테니까 연락 안 해도 돼!"
"그래라."
유민이는 어차피 수업이 다 끝나면 우리 집으로 오게 돼 있었다.
'빠르면 다음 주 안으로 헤어지겠네.'
8일간의 방학으로 계획이 많이 앞당겨졌다.
[로시난테 발동! 안전 운전하세요!]
로시난테에 올라타며 뒤를 힐끗 바라봤다.
멜라니는 김민수와 대화하면서 괴로운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식은땀을 흘릴지언정 미간을 절대 찌푸리지 않는 정신력에 감탄했다.
김민수는 자신이 절대적 갑이라는 얼굴을 짓고 있었는데, 굉장히 안어울렸다.
'민수야 네가 무슨 계획을 가져오든 다 소용없다.'
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기대하며 엑셀을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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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순애일지작가님 말이 맞았어.'
긴 휴식 끝에 복이 온다는 답변부터 시작해서,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주변을 바꾼다는 말까지.
그 무엇 하나 그분의 말이 틀린 게 없었다.
어쩌면 날 보고 계신 거 아닐까?
김민수는 점차 멀어져가는 백태양의 모습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카이반 모델 제의를 받은 것도 나였고, 내일 놀이공원을 가자는 이야기를 꺼낸 것도 자신이었다.
이는 즉 모든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멜라니, 잠시만."
"아... 네."
백태양이 운전하는 틈을 타서 단톡방 주도권까지 휘어잡아야 했다.
이런걸 여태까지 모르고 살고 있었다는 게 정말로 후회 됐다.
'순애일지작가님은 연애를 백 번도 넘게 했겠지?'
정말 알면 알 수록 대단한 사람이다.
[김민수님이 울희쟉희♥(소유민)님과 백태양(백태양)님을 초대했습니다.]
[김민수] :: 애들아 내일 아홉 시까지 원더랜드 정문 앞에서 보자! 늦으면 안 돼! [2]
'금방 읽겠지.'
아직 읽지 않아서 [2]라는 표시가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들 단톡방을 확인하자마자 대답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미안, 잠깐 바쁜 일이 있어서...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최고로 잘나간다는 사람들만 짓는 표정인 '월드클래스 표정'이야말로 나에게 어울렸다.
그렇게 생각한 민수는 월드클래스 표정을 지으며 환하게 웃었다.
내일이 너무 기대돼서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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