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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여친쩔더라-37화 (37/325)

〈 37화 〉 흔들다리 효과 쩔더라

* * *

"산초! 저 드넓은 들판을 보아라! 그럴듯한 모습으로 우리를 속이고 있구나!""저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 지 모르겠습니다요."

"늪괴물이 우리를 속이기 위해 위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냐? 아직 기사가 되려면 한참 멀었구나!""아이고! 나으리 미천한 제가 어찌 고귀한 나으리의 뜻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요!"

돈키호테가 현실을 과장하며 눈으로 보는 모든 게 실현되고 있었다.

놈이 사물을 괴물로 만드는 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마술사 플레톤 네 이놈! 어디에 있는 것이냐! 당장 모습을 밝히거라!""이 고얀! 또 플레톤 놈의 짓입니까요?! 모습만 보인다면 제가 아주 혼꾸녕을 내줘야겠습니다요!"

첫 번째는 무조건 돈키호테가 그 사물을 눈으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아직 보지 않은 것과 앞으로 볼 예정인 것들에 대한 말을 늘어놔도 그건 괴물로 변하지 않았다.

실제로 돈키호테는 당장 눈앞에 있는 것 말고도 공주를 지키는 용이니 뭐니 떠들곤 했다.

"나으리 근데 젊은이들이 저희를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요... 가끔 공격이 저희한테도 날라옵니다요..."

"하하! 산초! 의심하지 말거라. 만에 하나 그들이 정말로 사악한 괴물이라고 해도 이 로시난테를 절대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야!""역시 로시난테는 최고의 명마입니다요!"

두 번째는 돈키호테가 변하게 하는 건 게이트에 원래 있었던 사물들이라는 거다.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고 악당이니 괴물이니 해도 모습이 변하지 않은걸로 알 수 있었다.

"이쯤 되면 풍차들이 서로 뭉쳐 거대한 용이 될 법도 한데... 플레톤의 실력이 거기까지는 발전하지 못 했나 보군!"

"멍청한 마법사 놈 같으니라고! 숨지 말고 나으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까!"

마지막은 사물이 원래 가진 한계 이상의 괴물로는 변할 수 없다는 거였다.

풍차는 풍차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움직이고 있었고 양도 갑자기 덩치가 확 커져서 곰처럼 변하는 일은 없었다.

양치기도 주술사가 됐을 뿐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집단 저주를 내린다거나 메테오를 뿌리지 않았다.

"젠장 뭐 저리 빠른 거야! 멜라니! 로시난테의 뒷다리를 저격해!"

"산초가 문제입니다. 모든 저격을 다 쳐 내고 있어요."

클리어 조건이 밝혀지자마자 모든 인원이 돈키호테를 노리고 덮쳤었다.

근데 산초가 순식간에 엄청난 몸놀림으로 모두를 가뿐히 날려 버렸었다.

"강압도 제대로 듣지 않네요. 아마 돈키호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산초부터 처리하려고 하지 않았던 게 아니다.

실제로 산초를 반죽음까지 몰아넣은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돈키호테가 산초의 용기와 기개를 칭찬했고 그럴 때마다 산초는 더 강해졌다.

로시난테라도 먼저 잡아서 기동성이라도 늦추려고 했지만 산초가 그걸 또 완벽하게 막아 내고 있었다.

'조합이 사기적이다.'

로시난테는 비루했던 조랑말의 모습은 벗어던지고 최고사령관이 탈법한 군마로 변한 지 오래였다.

돈키호테를 잡자니 거리가 순식간에 벌어지고 있어서 잡을 수 없고, 로시난테를 잡자니 산초가 막았다.

산초는 잡아도 돈키호테가 더 강한 모습으로 부활시키니 순차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었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안 보여. 풍차만 벌써 스무개째 박살 냈는데도 절반이나 남았어."

"그냥 아까 말했던 전면전을 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교관님."

"끙..."

풍차와 포악한 양들을 열 마리 정도 잡았을 때 나온 이야기였다.

그때 당시엔 돈키호테를 정면에서 막을 경우 너무 불리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었다.

몬스터를 처리하면서 배후에서 기습을 노리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한 작전이었지만 장기전으로 변하는 지금은 큰 의미가 없었다.

소수정예의 의미가 사라지기 전에 끝을 봐야 했다.

김석구와 이민준은 간단한 눈으로 의사를 주고받았다.

김석구의 입이 떨어지는 순간 이민준은 자신이 먼저 텔레포트 해서 앞을 틀어막을 터였다.

'돈키호테라... 돈키호테라면...'

난 계속 돈키호테의 내용을 생각하고 있었다. 굉장히 엉망진창으로 보이지만 이 게이트는 나름의 서사를 가지고 있었다.

풍차와 양치기는 정말로 소설 속에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강력했지만 늪괴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 결과 돈키호테의 묘사력이 부족했고 정말로 낮은 수준의 몬스터가 나타났었다.

'소설의 흐름대로 따를 경우 강력한 힘이 나오는 건 확실하다. 실제로 돈키호테는 지금 무사 수행 중일 테니까.'

당장 떠오르는 건 둘시네 공주와 돈키호테의 친구 카라스코였다.

앞으로 나올 경우 그 둘이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건 확실했다.

근데 그 둘은 적군이라기보다는 아군쪽에 더 가까웠다.

"이민준 팀장! 앞을 막아주게 곧 뒤따라가겠네!"

"넵!"

"멜라니!"

"알고 있어요!"

고민하는 사이에도 상황은 실시간으로 변하고 있었다.

더 이상 저격은 의미 없다고 생각했는지 멜라니는 거대한 화기들을 소환해 화력을 급격히 올렸다.

가장 먼저 돈키호테의 앞에 있는지형을 파괴시켜서 최대한 진격 속도를 늦춘 거였다.

"젊은이! 이런 과격한 수단을 사용한다면 나도 더 이상 참지 못하네!"

드디어 돈키호테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산초를 죽어라 패도, 로시난테를 집요하게 죽이려고 했을 때도 화 한 번 안 냈던 놈이었다.

근데 지금 자기 앞길을 막았다고 얼굴을 붉힌거였다.

"나으리 이놈들은 저에게 맡겨 주십쇼! 저도 아까부터 벼르고 있던 참입니다요!"

"이 녀석은 제가 마크하겠습니다! 돈키호테와 로시난테를 상대해주세요!"

틈도 없이 바로 달려든 산초를 막으며 이민준이 소리쳤다.

드디어 제대로 된 공략이 시작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흐름대로라면...'

원작에서 돈키호테는 기사로 변장한 카라스코에 의해 무사 순례의 길을 중단한다.

지금 길을 막았다는 건 대련을 신청한 것과 다름없었다.

"교관님! 여기는 김민수만 상대해야 합니다! 김민수! 너는 일단 돈키호테에게 기사 대결을 하자고 해!"

왜 라는 의문조차 하지 않고 김석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도 의아한 얼굴이지만 곧바로 움직였다.

"멜라니는 커다란 화기를 소환해서 가까이서 지원해주고!"

내가 생각한 그림과 어느 정도 비슷해지고 있었다.

이제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주면 된다.

난 멜라니 쪽으로 조금씩 접근하면서 돈키호테가 만든 괴물을 제압하는 것만 집중했다.

"돈키호테! 이제 그만 이 모든 걸 멈추고 나와 대결을 하자!"

어색하기 짝이 없는 김민수의 말투는 정말로 오글거렸다.

연기를 하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카라스코라고 소개 하라는 말에 알아서 연기를 하는 거였다.

이 상황을 진지하게 생각하므로 자연스럽게 한 걸 텐데, 오히려 그게 더 우스꽝스러웠다.

"허! 자네는 누구인가!""나 또한 기사이며 이름은 김민수다!"

소리만 들으면 어린아이들의 학예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굉장히 심각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강철 거인과 난쟁이였던 시절은 잊어 버린 떡대 좋은 산초.

날카로운 이빨을 갈며 김민수를 바라보는 로시난테.

"나에게 기사 대결을 신청하는 건가! 정말로 용감하군! 나 돈키호테! 증조할아버지께 물려 받은 천하대명검으로 너를…""야 김민수 그냥 빨리 박어! 신청 했으면 달려들어야지 뭐 하냐고!"

돈키호테가 자신을 꾸미는 말을 할 때마다 무기며 갑옷이며 색깔이 변하려고 했다.

근데 그걸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악당이 변신하는 것까지 기다려주는 주인공이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웠다.

"어어! 응!"

김민수는 바로 돈키호테에게 달려들었다.

나와 김석구는 괴물들이 김민수를 방해하지 못 하는데 온 힘을 다 했다.

'원작 같지 않지만 원작을 무조건 따라가고 있다.'

게이트를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이 점점 선명하게 보이었다.

김민수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게 이해됐다.

'김민수는 이 게이트에서 절대로 죽지 않는다.'

안뚱땡이 애지중지하면서 만든 캐릭터가 첫 게이트에 죽을 리가 없었다.

위기는 있어도 그건 단지 극복하기 위한 계기에 불과할 것이다.

굳이 첫 게이트가 돈키호테인 이유도 어려워 보이지만 쉽게 공략할 수단이 있기 때문이겠지.

보스전, 오펜스전, 디펜스전은 까마득한 난이도와 물량공세를 자랑했다.

하지만 클리어 조건을 알고 있는 컨셉 게이트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해진 역할 만 제대로 수행한다면 가장 쉽게 돌파할 가능성이 있는 거다.

이상할 정도로 내용을 모른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여기서 김민수가 무조건 이긴다.'

원작에서도 돈키호테는 기사로 변장한 카라스코에게 패배한다. 그리고 돈키호테를 굴복시켜 앞으로 1년 동안 무기를 쥐지 않겠다고 약속 시킨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돈키호테는 병상에 눕게 되지만 이성을 되찾는다.

그 후엔 훈훈한 마무리를 위해 과오를 청산하고 경건한 기분으로 숨을 거둔다.

애초부터 패배하기로 결정된 주인공이 바로 돈키호테였다.

"크아아아악!"

역시 결판은 빨리 났다.

김민수는 지친 얼굴을 하고 있지만 크게 다친 상처는 없어 보였다.

돈키호테가 쓰러져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자 산초와 로시난테도 힘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정말로 재앙을 부르는 주둥이였다.

"해치웠나?"

"여기도 상황은 정리 됐습니다."

김석구와 이민준이 내뱉는 클리셰 가득한 대사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쳤다.

돈키호테는 여기서 쓰러지지 않는다.

'아직 끝내지 못한 이야기가 딱 하나 있다.'

원래라면 산초를 시켜서 둘시네 공주에게 편지를 전달해 고백을 하는 이야기가 나와야 했다.

근데 이 게이트엔 처음부터 둘시네도 카라스코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안 봐도 뻔했다.

'돈키호테를 쓰러트리는 건 김민수가 그리고 공주의 역할은 멜라니가 할 테니까.'

멜라니가 처음부터 둘시네의 역할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둘시네와 멜라니의 공통점이라고는 서양 사람이라는 것 딱 하나뿐이었다.

소설에 따르면 둘시네는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 풍체가 좋은 여성이었다.

"산초... 산초도 없구나... 나는 아직 공주에게 마음을 전해주지 못 했는데..."

낙마한 돈키호테는 허망한 눈초리로 주변을 살폈다.

김민수는 역시 호구 주인공답게 제대로 된 막타를 치지 않았다.

몬스터에게 감정이입이라도 한 건지 슬픈 눈으로 공감을 하고 있었다.

"공주... 나의 둘시네 공주...아..."

돈키호테가 공주의 이름을 부르짖다가 한 곳에 시선이 집중 됐다.

"거기 있었구려... 나의 공주..."

멜라니에게 커다란 화기를 소환하라고 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멀리서 봤을 때 몸집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앞을 제대로 보지 못 하는 사람이 봤을 때 하나의 덩어리라고 생각할 정도.

"내가 곧 가겠소!"

돈키호테는 아까까지 쓰러지던 모습을 잊은 듯 몸을 벌떡 일으켰다.

곧바로 앞에 있는 김민수조차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멜라니 피해라!"

김석구가 아무리 소리를 쳐봤자 이미 늦었다.

멜라니는 처음부터 계속 고출력 화기를 소환하고 있었기 때문에 능력의 제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민준은 어느새 부활한 산초에게 묶여 지원을 가지 못 했고 김민수는 뒤늦게 돈키호테를 쫓았다.

"전 무기 사출."

이제부턴 내 차례였다.

안뚱땡이 원한 건 김민수가 멜라니를 간발의 차로 구해 내는 거였을 테지.

내가 눈을 뜨고 있는 한 김민수는 다른 여자를 절대로 꼬시지 못할 거다.

"내 마음을 받아주게 둘기네 공주!""니 역할은 끝났어.'

[강압 발동! 멜라니를 제압합니다!]

제어권을 잃은 멜라니에게 능력을 사용해 화기를 역 소환시켰다.

괜히 아까부터 전투를 지켜보면서 멜라니 쪽으로 이동한 게 아니었다.

안뚱땡이 연출하려고 했던 모든 상황을 그대로 받아먹는다.

멜라니의 허리에 팔을 둘러 품으로 끌어당긴다.

간발의 차로 돈키호테는 멜라니를 스쳐 지나간다.

힐끗 봤는데 남자의 품은 처음인지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왜! 너는 대체 누구길래 나와 공주의 재회를 막는 게냐!"

김민수에게 진 모습은 어디 가고 덩치가 세배쯤 불어난 돈키호테가 나타났다.

아마 이게 진정한 돈키호테의 본모습일 거다.

이 상태까지 김민수가 완전히 해치우는 걸로 게이트 사건은 마무리가 지어졌을 터였다.

'그렇겐 안 되지.'

무기 케이스에서 나온 무기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하나씩 바닥에 꽂힌다.

하나만 가져라가는 말이 없어서 괜찮아 보이는걸 다 긁어온 결과였다.

"나는 진정한 기사, 너를 벌하러 온 영웅, 백태양이다."

이야기의 결말을 맺을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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