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돈키호테 데 라 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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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를 들어오자마자 가장 처음 보이는 건 커다란 풍차였다.
체리색 벽돌이 틈 없이 쌓아 올라져 있었는데 바벨탑같은 느낌을 줬다.
일반 풍차의 다섯 배는 커 보였고 풍차 날개는 단두대에서 쓰일 법한칼로 되어 있었다.
"많기도 하네."
이런 풍차가 30~40개였다.
그 밑으로는 끝도 없이 넓게 펼쳐진 초원이 보였다.
양떼들이 마음 놓고 풀을 뜯어 먹고 있었고 양치기는 나무 그늘을 침대 삼아 자고 있었다.
"김석구 교관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김석구와 이민준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게이트의 컨셉이 부여됐기에 난이도가 S로 바뀐 걸 알고 있는 얼굴들이었다.
"게이트 난이도가 변경 됐어.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일단 일반 생도들은 안전 구역에 있게 하는 게 맞는 것 같군요."
몰랐던 사실이다.
게이트 입구에는 안전 구역이 펼쳐져 있었다.
게이트에 진입하자마자 어지러움을 느낀 상태에서 죽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이걸 방지해주는 게 게이트라는 게 의문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좋았다.
힘도 없는 애들이 게이트 공략을 하려고 움직여 봤자 방해 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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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게이트가 활성화 됩니다.
돈키호테 데 라만차는 사랑받는 광기를 지닌 인물입니다.
그는 여러 사람의 입, 손, 행동에 의해 장소를 옮겨 다니며 모습을 바꿔왔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를 지탱했던 몇 가지가 있었죠.
우스꽝스러운 갑옷과 그의 멋진 조랑말 로시난테 그리고 조수 산초 판사!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거대한 풍차 거인과 화난 양치기를 기억하시나요?
오랜만에 책을 읽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게이트를 돌파하세요!
어쩌면 나중에 이 순간을 기억하며 행복에 젖을 겁니다.
클리어 조건 :: ???
제한 시간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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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구와 이민준이 계획을 짜서 설명하려고 할 때 설명창이 나타났다.
모두가 볼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종이가 하늘에 갑자기 나타났다.
"클리어 조건도 모르고 제한 시간도 없는걸 보니 S급 게이트는 확실합니다."
난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조건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 대신 시간도 굉장히 널널하게 주는 편이었는데,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제한 시간이 끝나면 게이트는 보통 다시 열려서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근데 제한 시간이 없다는 건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라는 걸 의미했다.
'죽거나 클리어하거나.'
약 마흔명 정도의 생명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거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게이트를 오고자 했던 아이들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하긴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 봤자 스무 살 짜리들이었다.
겉만 그럴싸하지 성인 된 지 사개월 된 애들한테 많은 걸 바라는 게 이상했다.
"일단 그럼... 클리어를 할 인원을 꾸려야겠군."
"그건 이미 다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들어오기 전에 김석구와 이민준은 어느 정도 의견 조율이 끝난 상태였다.
미지의 게이트를 돌파할 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소수정예였다.
어중이떠중이를 모으는 것보다 가장 강한 최소의 인원으로 돌파하는 게 피해가 작았다.
"김석구 교관님과 저, 민수 생도와 태양 생도 그리고 멜라니 생도 이렇게 다섯이서 가야 합니다."
이민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말을 편하게 한다고 해 놓고 이민준은 존대를 사용하고 있었다.
나름의 전투 태세를 갖춘다는 느낌이다.
'가장 이상적이다.'
상시 발동형 능력자 셋과 경험이 많은 교관과 헌터 팀장.
현재 짤 수 있는 최고의 소수 정예 인원이었다.
이민준 헌터팀은 팀원이 모두 뭉쳐야 힘을 발휘한다.
근데 사실 이민준만 1급 헌터고 나머지는 2급과 3급 사이였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민준과 아이들'이라는 멸칭을 달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럼 게이트 조사 전에 각자 스킬을 파악하는 건 어떤가요? 저는 순간 이동입니다."
이민준은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스킬이 많이 알려져 있었다.
매스컴에서 하도 노출이 되다 보니 저절로 외워진 경우였다.
"오직 저만 이동할 수 있고 물체는 단검 정도만 가능합니다."
이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러한 제약 때문에 이민준은 '닌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나는 몸이 딱딱해져, 경화라고 생각하면 편해. 몸이 느려지거나 하는 것도 없지."
김석구는 머리가 단단해지는 걸 직접 보여 주며 자기 스킬을 설명했다.
머리가 매끈매끈한 금속으로 변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만져 보고 싶은 충동도 들었지만 분위기가 무거워서 참았다.
"저는 용사입니다. 신체 강화형이구요."
김민수도 언론에서 두 세번 정도 떠들썩했던 능력이라서 자세한 설명은 넘어갔다.
애초에 자세하게 설명해도 크게 달라지는 게 없는 스킬이었다.
'용사라는 걸 어떻게 설명하겠어.'
용사는 그냥 용사였다. 세계관을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이자 악을 물리치는 정의의 화신.
단순하고 간단한 설명이지만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었다.
"제 메인 스킬은 강압입니다. 김석구 교관님이 말씀해주셨듯이 디 버프 계열로 생명체에 한해서 직접적인 압박을 가합니다."
"압박이라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가요?"
"아직 전력을 내 본 적이 없어서 확신할 순 없지만 스킬 발동까지 억제할 수 있을 겁니다."
생사가 오가는 게이트에서 능력의 출력을 확인하는 건 굉장히 중요했다.
이민준은 그런 부분을 하나하나 집고 넘어가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김석구와 김민수에게도 추가적으로 궁금한 게 생기면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럼 멜라니 생도는요?"
"저는 화기를 소환하고 조종할 수 있어요. 간단한 총부터 복잡한 기계들까지 전부 다요. 사수가 없어도 자동으로 발포할 수 있습니다."
"단점은 오래 사용하면 제어를 하지 못해, 기계 같은 복잡한 걸 꺼낸다면 더더욱 그렇고."
묵묵하게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김석구가 입을 열었다.
자신감 넘치던 멜라니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이것 때문이었나.'
폭발물 취급받는다는 게 납득됐다.
능력 제어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다면 뜬금없이 탱크가 길거리에 소환 돼서 모든 걸 터트릴 수 있었다.
어릴 적 커다란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게 분명했다.
"자자 일단 그럼 모두 능력 파악도 끝났으니까 컨셉부터 분석할까요? 돈키호테 아시는 분?"
이민준은 여러 헌터들을 다양하게 만나는 현역다운 모습을 보였다.
압도적인 사회성과 인간성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면서 분위기를 계속 이끌고 있었다.
낯을 대놓고 가리는 김민수와 불안한 표정의 멜라니, 그런 멜라니를 지켜보는 김석구.
이 셋을 데리고도 대화를 끊임없이 이어 나갈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제가 좀 읽어 봤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돈키호테의 여행기죠."
"아... 거기에 저런 풍차가 나오나요?"
"나오긴 하는데 저렇게 위협적으로 생기지는 않았어요."
내가 적극적으로 답하자 이민준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표정을 지었다.
딱딱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걸 체감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암담하다고 축 쳐지는 건 가장 안 좋은 거니까.'
그런 면에서 이민준은 완벽한 모습을 보였다.
이민준 뿐만 아니라 '이민준의 아이들'도 생도들과 어울리며 분위기를 좋게 만들고 있었다.
김석구는 처음에는 잘하다가 멜라니가 능력을 말하니 표정이 굳고는 풀 생각을 안 했다.
그 후로도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눴는데 놀란 점은 돈키호테 이야기를 아무도 모른다는 거였다.
고전명작이라는 건 알고 있고 세계문학전집에서 봤다고 까지 하는데 내용을 몰랐다.
'안뚱땡 짓일까?'
단순히 읽지 않은걸 수도 있었다. 유명하다고 해서 자세히 아는 건 아니니까.
"그러면 태양 생도 말대로라면 저 풍차가 거인이 될 수도 있다는 거네요?"
"네, 그리고 아마 저 양치기도 화를 내면서 사람을 팰 지도 모릅니다."
"음... 그렇다고 섣불리 먼저 공격할 수도 없는 노릇이군."
게이트에서 가장 까다로운 유형은 컨셉이 잡힌 경우였다.
지금처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디펜스라면 방어를, 오펜스라면 공격하면 된다.
하다못해 보스전이라면 그냥 가장 쎈 놈의 목만 따면 됐다.
"제가 먼저 저격을 해볼까요?"
"너무 위험합니다. 좀 더 경과를 지켜보고…"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첫 단추를 어디에 끼울지 계속 논의하던 무렵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잘 키워진 경주마나 군마가 내는 힘찬 소리가 아닌 겨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소리였다.
"허허, 여기서 다들 뭘 하는 겐가?"
"잘 모르겠습니다요. 나으리."
보자마자 누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돈키호테 등장인물에 대해서만 삼십 분을 넘게 설명 했다.
증조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구닥다리 칼과 창, 어설프게 얼굴만 겨우 가리는 투구.
털이 듬성듬성 빠져서 볼품없는 조랑말과 거적때기를 모아서 만든 벙거지 모자를 쓴 키가 작은 남성.
이 모든 조합이 의미하는바는 하나였다.
"돈키호테!"
"오! 나를 아는 사람이 있다니 벌써 나의 기사도 정신이 이 넓은 대륙에 퍼지고 있는 게 분명하군. 안 그런가 산초?""헤헤, 맞습니다 나으리. 역시 저에게 섬을 주시기로 약속한 분 답습니다. 이 산초! 지옥 끝이라도 반드시 따라가 보필하겠습니다요!"
김민수가 멋지게 앞을 가로막았지만 돈키호테와 산초는 민수를 신경 쓰지도 않았다.
민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들러리로 취급하고 있었다.
"산초! 저길 보게! 저 커다란 거인들과 양의 탈을 쓴 포악한 늑대, 그리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사악한 주술사를!""아닙니다요 나으리! 저건 그저 풍차입니다. 늑대는 없습니다 그저 양입니다. 주술사가 아니라 그냥 양치기일 뿐입니다요!"
"산초! 나를 믿어라! 너는 지금 악마의 꾐에 넘어가 진실을 보지 못함이 틀림없다. 당분간은 내가 너의 눈이 되어 진실을 알려주리라! 이랴!""아이고 나으리! 조금만 천천히 달려주십쇼! 제 짧은 다리로는... 아...참!! 로시난테도 다리가 짧구나!"
어수룩한 연극을 보는 기분이었다.
우리 모두가 상황 파악하지 못해 그저 둘의 대화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돈키호테는 로시난테를 능숙하게 조종하며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산초는 짧은 다리를 최대한 굴려 가면서 따라가기 시작했는데 우스꽝스러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상황을 지켜보는 게 전부였다.
"아이고 나으리! 풍차가! 풍차가 움직입니다요!"
"내가 뭐라고 했느냐! 산초, 드디어 악마의 꾐에 벗어났구나! 저것이 풍차의 본모습이다! 저 양들도 어금니를 숨기고 있을 것이며 양치기는 주술을 욀 준비를 할 게다!"
천둥처럼 퍼지는 돈키호테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풍차쪽으로 쏠렸다.
풍차는 돈키호테의 말처럼 점점 지면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커다란 거목이 뿌리를 스스로 뽑아 몸을 일으키는 모양을 연상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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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와 로시난테 그리고 산초가 등장함에 따라 클리어 조건이 밝혀집니다!
돈키호테의 눈은 이상과 현실을 흐리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보는 건 풍차가 되기도하고 거인이 되기도 합니다.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벌레라도 그의 눈으로 본다면 괴물로 변한답니다!
그가 세상 모든 걸 괴물로 바꾸기 전에 저지하세요!
클리어 조건 :: 돈키호테 사살(0/1)
로시난테 사살(0/1)
산초 사살(0/1)
※주의※
돈키호테는 자신이 만들어 낸 괴물에 의해 죽지 않습니다.
로시난테와 산초도 마찬가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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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나타난 클리어 조건을 알리는 정보창에 모두가 정신을 차렸다.
돈키호테는 소설 속 이야기가 모두 현실이라고 믿는 거대한 망상병 환자이기도 했다.
근데 만약에 그게 진짜가 된다면? 그가 보는 모든 게 전부 괴물로 변한다면?
"모두 돈키호테를 노린다! 민준이는 멜라니와 함께 후방지원을 하고 나머지는 나를 따른다!"
게이트에 있던 모든 물체가 돈키호테의 시야에 닿자마자 괴물로 변하고 있었다.
"절대로 풍차를 다 쳐다보게 해선 안 돼! 그 전에 죽여야 해!"
김석구의 급한 어조가 지금의 상황을 대변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돈키호테가 제대로 응시한 풍차는 단 하나였다.
근데 그 하나가 웬만한 A급 몬스터의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산초! 저길 보라! 풍차 거인의 칼날이 사형수를 죽이는 단두대보다 날카롭구나!""아이고 나으리, 어떻게 맞서 싸우려 하십니까!"
"뒤에 있는 젊은이들이 대신 상대해주지 않겠는가? 우린 어서 세상의 끝에 있다는 이상향을 찾아야 한다!""역시 나으리십니다요! 발상이 그냥 기가 막히고 천재적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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