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34화 (34/325)

〈 34화 〉 야 이건 너무 클리셰잖아.

* * *

(유수진)

>태양아 오늘 게이트 견학이라며?

>다치지 말고 조심해!

>(귀여운 강아지가 하트 하는 이모티콘)

(소유민)

>태양아♥ㅠ♥

>같이 지원 가고 싶었는데 힝...

>오늘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슬퍼

>(작은 고양이가 하트모양 꼬리 날리는 이모티콘)

게이트로 향하는 버스 안에 타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이 문자가 날라왔다.

아침엔 준비를 하느냐 바쁘니 답장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까지 계산된 시간이었다.

수진이는 이미 해 봐서 알고 있다고 쳐도 유민이는 어떻게 이 타이밍을 안 걸까.

게이트마다 진입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감으로 맞추기 어려울텐데.

역시 마녀는 달라도 다른가?

(유수진)

>아냐, 혹시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

>내가 도움 줄 수 있는 거면 꼭 줄게!

>응 꼭해!

수진이한테 먼저 답장을 한 이유는 특별하지 않았다.

문자가 온 순서대로 답장 하는 게 익숙한 습관이어서 그럴 뿐.

"누구랑 그렇게 연락해?"

"그냥 아는 누나."

"그렇구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민수가 불쑥 얼굴을 들이댔다.

사실 이놈이랑 같이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었으니까.

2인 1조로 다니는 것도 게이트 내에서의 이야기였다.

가는 길만이라도 편히 가려고 했던 건데.

'왜 날 기다렸을까?'

기숙사 정문에서 기다리며 손을 흔들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김민수가 왜 자신을 기다렸는 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다.

심지어 옆에서 재잘재잘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방금처럼 옆에서 얌전히 있다가 몇 마디 툭툭 내뱉는 게 전부였다.

"너 왜 나 기다렸어?"

"아 그게... 어제 해준 이야기도 있고... 네가 내 연애 도와주기로 한 것도 있고 그렇잖아... 그래서 이게 음..."

말이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아서 집중하며 듣지 않기로 했다.

유민이의 메시지를 읽고 난 뒤 답장하는 텀이 길어지면 좋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헛소리 듣는 것보다 여자 메시지가 우선이다.

(소유민)

>헉 그럼 ♥!

>내일 또 기숙사 놀러가도 돼?

>그럼 그렇게 안다? 내일 바로 쳐들어갈게.

>게이트 끝나고 와서 연락해!

>♥♥♥♥♥♥♥

>(고양이 울음소리가 하트로 변하는 이모티콘)

어차피 유민이와 민수를 헤어지게 하려면 몇 가지 떡밥이 더 필요했다.

미리미리 준비해서 나쁠 건 없으니 만나는 게 오히려 좋았다.

'그건 문제가 안 되고...'

아까부터 김민수는 자기 핸드폰을 계속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입 다물고 그렇게만 있으면 신경이 안 쓰이는데 문제는 날 힐끔 거리기까지 했다.

"민수야 할 말 있으면 해."

"아, 아 그게 내가 유민이한테 마지막으로 문자 한 지 다섯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답장이 없어서... 게이트 때문에 바뻐서 그런가?"

매번 느끼는 거지만 한 번 입을 열 때마다 문장이 되게 길었다.

한마디를 들을 때마다 굉장히 귀가 물리는 느낌을 받게 하는데.

듣기 싫게 만드는 재주가 탁월했다.

"유민이도 나름 바쁘겠지...뭐..."

"그...그렇겠지? 솔직히 이제 오해도 다 풀었다고 생각했거든... 부끄러움 없는 모습으로 살고 싶어서 상담실에서 있던 이야기까지 다 했어... 사과도 했고 유민이도 받아줬는데... 다섯시간 동안 연락이 없으니까 좀 그래서... 유민이가 어제 정확히 열한 시 이십칠분 십칠초에 자러 간다고 했거든... 그러다가 내가 한 새벽 네다섯시쯤에 갑자기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그... 민수야."

"어?"

"내가 멀미가 나서 그런데 도착할 때까지만 조용히 가는 거 어때?"

"어...어어 좋지! 나도 그러려고 했어!"

조금 더 들었다면 귀에서 피가 나올지도 몰랐다.

유민이는 사실 답장도 잘하고 재촉까지 하는 여자란 걸 모르는 게 불쌍하긴 했다.

버스 안에서 살살 긁으면서 관계를 악화시킬까 고민도 했는데.

밀폐된 공간 안에서 김민수랑 대화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말을 할 때마다 침이 튀는 건 애교였고 꿀렁거리는 혓바닥을 어떻게 하고 싶었다.

왜 이놈이랑 안뚱땡이랑 계속 겹쳐보일까.

좋게 보고 싶어도 좋게 볼 수가 없었다.

그놈이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성격인 건 알고 있었지만 외모까지 겹쳐 보이다니.

'설마 이 새끼 살 찌고 안경 씌우면 그렇게 되는 거 아냐?'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하지만 깊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지금 최우선 목표는 김민수의 히로인들을 찾는 거였으니까.

김석구가 알려 준 학급 인원 설명으로는 누가 예쁜 지 알 수가 없었다.

사진도 보여주긴 했지만 사진을 믿는 건 하수 중의 하수였다.

공간을 왜곡시켜서 몸매까지 부각 시킬 수 있는 보정의 힘은 사람을 역변 시킨다.

실제로 사진 보고 엄청 예쁜 줄 알고 만났다가 햄버거가 나와서 도망친 적도 있었다.

[이번 정류장은 XX, XX입니다.]

"내리자 태양아!"

"그래. 근처여서 다행이네."

"맞아. 작년에는 제주도까지 갔다던데. 우린 운이 좋긴 한가 봐."

게이트와 던전은 성격이 아주 다르다.

던전은 주변 지형을 흡수해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다. 일종의 테라포밍을 한다고 봐도 된다.

근데 게이트는 정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허공에 균열이 나타난다.

공통점은 게이트와 던전 모두 다 주변 지형을 지운다는 거다.

던전은 지형을 새로운 지형으로 바꾸고, 게이트는 생성된 그 자리에만 균열을 만든다는 점이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게이트는 클리어하면 바로 사라지지만 던전은 클리어 해도 지형이 그대로 남는다.

물론 몇 가지 더 다른 점이 있었지만 이게 가장 대표적인 차이점이었다.

"근데 작년엔 던전이었잖아."

"그렇긴 하지... 부산물 엄청 나왔겠다."

단기적으로 봤을 땐 주변도 적게 잡아먹는 게이트가 이득일 수도 있었다.

근데 장기적으로 본다면 지형에서 나오는 여러 부산물들이 있는 던전이 압도적으로 이득이었다.

"우리가 교관 대행이라니... 좋으면서 긴장이 되긴 하네... 난 솔직히 태양이 너랑 대련하고 난 뒤에 여러 가지 생각해봤는데..."

민수는 버스에 내리자마자 바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자기 대련 피드백부터 시작해서 내 칭찬과 무기에 대한 이해도, 주먹을 쓰는 방향 등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마음 같아선 사과를 입에 물려놓고 턱을 치고 싶을 지경이다.

'얘가 이런 이미지가 아닌 것 같았는데...'

낯을 가렸던 거였다.

처음에 몇 마디 안 하길래 과묵한 동정인 줄 알았는데 말이 엄청 많은 놈이었다.

연애 상담해주겠다고 한 뒤부터 작정하고 숨겨 왔던 주둥이를 터트린 거였다.

"내가 아무래도 검을 쓰니까 너무 움직임이 예측 되는 것 같더라고... 너는 무기 케이스만 봐도 엄청난걸 쓸 것 같아... 안 무거워? 케이스가 엄청 크네...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한 손으로 들고 가는 것도 진짜..."

"민수야, 좀 뛸까? 교관 대행이니까 빨리 가도 될 것 같은데."

"그러자 그럼!"

버스 정류장과 게이트는 꽤 거리가 있었다

운이 정말 좋게 민간인들과 멀리 떨어진 산 쪽에 게이트가 나타났고 '마침' 그게 또 F급 게이트였다.

'참...'

아직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었지만 냄새가 풀풀 났다.

'가보면 알겠지.'

나무보다 더 높게 솟은 커다란 균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왔구나."

""안녕하세요 교관님.""

"그래, 앞으로 교관 대행이기도 하니 말 편하게 할게 괜찮지?"

""넵.""

김석구는 해 뜨기 전부터 왔는 지 이미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상태였다.

대머리여서 그런지 가끔 햇빛을 반사할 때마다 눈이 아파 왔다.

"태양이는 그때 설명했던 것처럼 후위에서 생도들을 챙겨 주고 민수는 전위다."

한 번 설명으로는 부족했는지 어제 말해줬던 게이트 주의사항을 다시 언급하려던 찰나.

누가 봐도 이마에 헌터라고 써져 있는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아 참 내 정신 좀 보게. 여긴 우리 게이트 견학을 도와주실 이민준 팀장님."

"안녕하세요. 이민준 팀장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F급 게이트여도 게이트는 게이트다.

무슨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르기에 보험은 많을수록 좋았다.

그중에서 최고의 보험은 당연히 헌역 헌터다.

그렇기에 빅토리 아카데미는 헌터로만 구성된 팀을 부른 거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예 팀을 부르다니.'

백태양의 기억에도 있었다. 언론에 꽤 많이 알려진 헌터팀 중 하나였다.

이민준 헌터팀은 개개인은 약하지만 뭉치면 A급 몬스터도 잡는 팀이었다.

A급 팀을 F급 게이트에 집어넣더니, 소 잡는데 쓰는 칼로 양파 자르는 격이었다.

'근데 남자네...'

팀이고 나발이고 팀장부터 팀원 전원이 남자였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몇 마디 나누니까 좋은 사람이긴 했다.

'김민수의 하렘은 언제 나타나는 거냐.'

집합 시간까지는 약 삼십 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하렘에 들어갈 법한 얼굴은 보자마자 알 수 있기에 입구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근데 태양 씨...? 라고 했나요?"

"네네, 말 편하게 하세도 됩니다 팀장님."

"그래? 고마워. 근데 무기 케이스가 왜 이렇게 커? 뭐가 들었길래?"

"그냥 뭐 여러 가지요."

"비밀이다 이거지? 서운하긴 해도 좋은 자세야. 자기 전력을 숨기는 건 중요하니까."

민수와 나는 이민준 팀에 둘러싸여서 여러 질문을 받고 있었다.

아무래도 교관 대행이 될 만큼의 유망주니까 눈도장을 찍으려는 게 분명했다.

지금도 은근슬쩍 칭찬해주면서 '선배'티를 내며 팁을 알려주려한다.

만약에 평범한 생도였다면 감지덕지 하며 허리 숙여 인사했겠지만 난 아니었다.

"그렇죠 뭐... 근데 F급 게이트인데 김석구 교관님은 엄청 열심히 살펴보고 계시네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난 오히려 모든 헌터가 저 모습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김석구는 인사가 끝나자마자 계속 게이트 옆에 붙어 있었다.

게이트와 연결된 수많은 기계들을 조작하면서 끊임없는 분석하고 있는 거였다.

제일 우려하는 건 아마 게이트의 등급 변화로 인한 난이도 상승이겠지.

"어? 태양아 애들 왔다."

이민준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언덕에서 수많은 검은 머리칼들이 천천히 얼굴을 보이었다.

'찾았다.'

모두가 다 검은 머리색을 하고 있을 때 찬란한 금발이 눈에 들어온다.

돌돌 말린 롤빵 머리, 고고하고 도도해 보이는 표정, 일반 교복과 궤를 달리하는 명품옷!

딱 봐도 '나 새로운 히로인이야'라고 써져 있었다.

소꿉친구, 교사 다음엔 부잣집 아가씨였다.

유민이도 부자처럼 보였지만 저 여자는 느낌이 완전 달랐다.

아예 대놓고 잘 산다는 느낌을 엄청 풍기고 있었다.

"음! 됐다. 이 게이트는 변동할 확률이 0%야."

분석이 다 끝난 듯 상쾌한 표정으로 김석구가 결과를 말했다.

"이민준 팀장님은 이 게이트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류장에서 세웠던 가설을 제대로 검증해볼 차례였다.

"나도 김석구 교관님이랑 똑같아. 변동 확률 없는 F급 게이트니까 아무도 안 다칠 거야."

우리가 지켜 줄게, 이민준은 굉장히 자신 있어 보이는 얼굴로 대답했다.

'진짜 웃기네.'

변동 확률이 없다고 밝혀진 F급 게이트.

곧 하렘에 참가하게 될 부잣집 아가씨 설정의 히로인.

[용사]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 김민수.

게다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있는 A급 헌터팀까지.

너무 뻔한 전개였다.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은 나조차 알 수 있을 정도로 전개가 예상이 된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F급 게이트는 무조건 변한다.

안뚱땡은 이런걸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내가 없었어도 게이트는 변했을 거다.

부잣집 아가씨와 동정아다를 이어 주기 위한 방법은 많지 않다.

가장 쉬운 건 흔들다리효과를 이용하는 거고 F급 게이트는 아주 좋은 수단이었다.

"태양아, 저기 저 금발 여자애가 유민이네 라이벌 그룹 딸이야."

"아...."

메인 히로인과 대립 구도를 세울 수 있는 입지까지 갖추다니.

김민수의 하렘에 들어갈 운명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야 이건 너무 클리셰잖아.'

모든 사랑에는 계획이 있다.

백태양한테 뺏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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