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30화 (30/325)

〈 30화 〉 류혜미, 준비.

* * *

솔직히 화가 난 이유엔 화풀이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안뚱땡은 못 때렸으니까.'

김민수가 바람을 피는 거? 사실 정해진 일이었다.

여자 친구가 있는 상태에서 하렘 순애 전개가 되려면 바람은 필수였다.

물론 현실에서 말하는 쓰레기 같은 바람의 형식은 아니겠지만.

'그냥... 어버버 거리면서 야한 상황 만들어지는...'

'옷깃만 스쳐도 여자애가 얼굴이 붉어지는' 상황이 몇백 번이고 연출될 게 뻔했다.

한 달 안으로 유민이와 김민수 사이를 찢어놔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여자 친구가 있으면 전개가 더뎌질 수 있어서 최대한 많은 여자를 확인해야 했다.

때문에 김민수가 바람을 피면 필수록 등장인물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근데 그냥... 빡치잖아.'

누구는 영문도 모르고 소설 속에 들어와서 남의 여자 뺏는 계획을 짜고 있고.

누구는 인간 콘돔처럼 다녀도 여자가 알아서 솔솔 들어오는 럽코의 삶을 산다.

정말로 불공평했기에 마침 기회가 생기니까 분노가 뻥 하고 터져 버렸다.

분노는 행동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대련 기회까지 얻을 수 있었다.

당연히 능력의 출력을 제한하고 싸우는 형식이지만 상관없었다.

김민수를 때리는 게 목적일 뿐 다치게 하는 건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주인공이 다쳐서 스토리가 진행 안 된다면 큰일이니까.

'표정 봐라.'

마주 보고 있는 김민수의 표정을 보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과 패배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눈매.

호령이 끝나자마자 달려가고 싶어서 몸의 균형도 과하게 앞으로 쏠려 있었다.

날 굉장히 얕보는 게 티가 났다. 하긴 직접 내가 싸운 걸 본 적이 없으니까 이해는 간다.

게다가 아직 또래에서 자기를 이길만한 상대도 만나 보지 못 했을 거다.

지금까지 이야기 흐름으로 봤을 때 172화까지 온 건 프롤로그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게 하렘 순애도 이제 막 시작한 거고, 아카데미 생활도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즉 아직 김민수에겐 빌런이라고 불릴 만큼의 적을 만난 적이 없다는 것!

원래 그 역할이 백태양이었으나 작가의 연애 경험 부족으로 등장하지 못했다.

"자 그럼, 준비…"

처음 하는 대련이었음에도 긴장이 되지 않았다.

백태양의 몸과 동화율이 많이 올라간 건지, 이 상황이 너무나 익숙했다.

조금 전에 김민수를 분석하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사선에서 내려치기.'

딴에 숨긴다고 한 거겠지만 너무나 의도가 잘 읽혔다.

과도하게 힘이 들어간 좌측 어깨가 '나 지금 올라가요.'라고 광고를 하고 있었다.

"…시작!"

김석구 교관의 호령이 끝나자마자 민수는 달렸다.

일반인은 제대로 쫓지 못할 아주 빠른 속도, 고작 '탓' 하는 소리만 났을 뿐인데 벌써 눈앞에 와 있었다.

'빨라, 빠른 데.'

빠르기만 했다.

의도를 읽을 수 없었을 때 빨랐다면 예상치 못한 일격이 된다.

하지만 다 읽히고 빠른 공격은 반격해달라고 소리치는 것과 같다.

"선수 필승!"

김민수의 말을 듣자마자 어이가 없었다.

기껏 속도로 접근해 놓고 소리를 내다니, 기습의 의미가 없잖아.

마치 만화에서나 보던 멍청한 경우를 그대로 보는 듯했다.

배후에서 기습을 하며 '죽어랏!'하는 장면이 연상됐다.

'게다가 강타까지?'

가볍게 하라니까 진심을 다하고 있었다.

좌에서 우로 내려치는 재빠른 기습에 강타까지, 맞는다면 뼈가 부러질 수도 있었다.

맞을 일은 없었지만 정말로 괘씸했다.

얕본 상대방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경우는 몇 가지 없는데, 김민수의 경우엔 단 하나였다.

'벽 느끼게 하려고?'

내가 이렇게 강하다는 걸 얼마나 알려주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세상일이 다 네 뜻대로 되면 좋았을 텐데, 애도를 표했다.

회피는 최소한의 동작으로 뒤로 한 걸음.

[강타 발동! 주먹에 강대한 힘이 깃듭니다!]

공격은 지면에서부터 힘을 받아 앞으로 한 걸음.

김민수의 얼굴에 경악이 깃든다.

이게 무슨 스킬인지 눈치를 챈 얼굴이었는데 모를 수가 없긴 했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스킬의 파괴력을 아는 만큼 급하게 몸을 뒤틀어 보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일격에 끝내기 위한 내려치기는 공격이 끝나자마자 너무 많은 틈을 드러냈다.

"개자식아, 오늘 좀 맞자."

억울할 수도 있었다.

오히려 사정을 알게 된다면 김민수가 화를 내는 게 더 맞았다.

여자 친구를 빼앗긴 걸 알게 된다면 얼마나 분노할까.

'내 알 바는 아니지.'

주먹이 민수의 명치에 파고든다.

15% 정도의 출력으로 얼마나 큰 힘을 낼 수 있을까 했는데.

"꾸에에에엑!"

반응이 장난 아니었다.

맞아본 적이 처음도 아닐 텐데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나왔다.

"민수야, 인생은 실전이야."

때린 뒤 멀리 날라가는걸 막기 위해서 주먹을 살짝 위로 뻗었다.

민수는 지면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몸이 들리고 말았다.

공중에서 아무것도 못 하는 표적을 맞추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었다.

뒤로 한 걸음 물렸던 발을 그대로 당겨 오면서 쭉 뻗는다.

그 동작엔 어떤 부자연스러움도 섞여 있지 않았다.

원래 그렇게 해야 하는 행동처럼 자연스럽고 부드럽다.

푹!

쭉 뻗은 발 끝엔 민수의 복부가 있었다.

거대한 말뚝이 박힌 것처럼 발은 복부에서 빠져나오지 않는다.

이대로 발등에 힘을 넣어 바닥에 찍으려는 순간, 민수가 움직였다.

"큭, 나도 알아!"

한 손으로 내 발을 단단히 잡은 민수는 반격을 시도하려고 했다.

검이 움직이는 걸로 봐선 또 내려치기였는데,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건가?

'알기는 무슨.'

말로 내뱉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여기서 굳이 말로 감정을 악화 시킬 필요는 없었으니까.

정반대 포지션의 라이벌 느낌으로 가는 게 가장 이상적이었다.

민수가 발을 잡아 준 덕분에 반대쪽 발을 들 수가 있었다.

복부의 충격을 참고 검을 휘두르니 몸이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잡힌 발을 축으로 삼아서 몸을 틀어 그대로 민수의 옆통수에 돌려차기를 박았다.

쾅!

카운터만 두 번째였기 때문에 충격이 상당했다.

민수는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이대로 끝낼 수 없어 주먹으로 내려찍을 준비했다.

대련이라기보단 일방적인 폭력에 가까웠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다.'

화풀이는 사실 앞차기에서 끝났었다.

그 후부터는 단 한 명을 이끌어내기 위한 미끼였다.

김석구 교관은 대련을 쉽게 멈추지 않는다.

빅토리 생도라면 응당 패배를 혹독하게 맛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벼운 대련이어도 승패는 확실히 나눠야 한다는 주의였다.

'근데 당신은 아니잖아.'

민수와 대련을 하자고 했을 때 교관들이 쫙 깔렸을 때부터 짠 계획이었다.

교관 중엔 당연히 그 사람이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빨리 튀어나와.'

[강타 발동! 주먹에 강대한 힘이 깃듭니다!]

바닥에 박힌 민수에게 절망이 떨어지려 한다.

게이트 견학 전까지는 다 나을 부상이겠지만 부상은 부상이었다.

연달아 얻어터진 민수는 제대로 공격에 대응할 수 없다.

김석구는 이 공격을 끝으로 대련을 멈출 생각이다.

하지만 민수가 다치는 걸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만!"

류혜미는 민수를 아주 아낀다.

여자 친구가 있는데 자기 젖으로 위로해줄 만큼 말이다.

어렸을 때 만난 소꿉동네 누나 설정에 자애로운 이미지까지, 상황이 악화되면 당연히 튀어나올 거라 예상했다.

류혜미는 민수의 하렘에 들어가게 될 여자로 접점을 만들어야만 했다.

근데 마땅한 계기가 없었다. 백화점 조사도 금방 끝났고, 상담을 가자니 김민수가 더 유리했다.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 꾸준한 연락할 구실이 너무 부족했다.

'근데 이젠 생겼어.'

대련에 난입한순간부터 올가미에 걸린 거나 다름없었다.

"대련은 중지입니다!"

연구 담당교관이어도 교관은 교관.

류혜미는 순식간에 내 앞에 당도했다.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싸움에 집중하는 거였다.

절대로 몸을 멈추면 안 된다.

정말로 대련에 집중을 하고 있어서 듣지 못한다는 걸 나타내야 했다.

"백태양 생도!"

힘을 조절하지 못해서 공격을 계속하는 거라면 교관 대행이 취소될 가능성이 높았다.

근데 싸움의 끝을 보기 위해 집중하는 모습이라면?

'가산점이 될 수도 있는 거지.'

당장 멈추는 것보다 몇 배는 이득이었다.

[강타 발동! 주먹에 강대한 힘이 깃듭니다!]

"멈추세요!"

류혜미는 말하면서 힘을 끌어올렸다.

주먹이 민수에게 가까워지기 직전에 하얀색 벽이 나타났다.

방어 계열로 보이는데 다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처녀는 안 되지.'

핥아보는 눈동자로 정보를 읽었을 때 류혜미는 처녀였다.

그리고 난 처녀에게 패배하지 않는다.

절대로.

[처녀폭격기 발동!처녀에게 패배하지 않습니다!]

예상대로 처녀폭격기가 발동했다.

보호막이 곧 찢어질 류혜미의 처녀막처럼 산산조각이 난다.

"?!"

보호막이 깨진 여파를 받은 건지 류혜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여기까지.'

목적을 이뤘으니 여기서 더 할 필요가 없어서 주먹을 틀어 바닥에 꽂았다.

민수의 바로 얼굴 옆에 꽂힌 주먹은 깊게 파여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쾅!

잠깐 정적이 일어났다.

류혜미는 급하게 민수의 상태를 확인했다.

주먹이 바닥에 박힌 걸 확인하고 안심했는지 안도의 한숨까지 내뱉었다.

"괜찮으세요?"

나는 잘못 하지 않았다는 표정으로 류혜미를 내려다봤다.

'네가 대련에 안 끼어들었어도 알아서 했다.'라는 은근한 눈치도 함께였다.

"그...그래, 고마워..."

"대련 끝! 승자 백태양!"

김석구는 이 상황을 빠르게 수습하기 위해서 결과부터 발표했다.

사실 소리만 클 뿐 민수도 크게 다친 게 아니어서 별문제가 되진 않았다.

"조,좋은 승부였어 태양아..."

"나도 좋았어."

민수는 대련이 끝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일어났다.

금방 일어나서 인사를 하는 것만 봐도 힘 조절이 깔끔했다는 증거였다.

진 게 부끄럽기는 한 건지 말하면서도 얼굴이 붉어진 걸 숨기지 못 했다.

"이번 일로 뭐 꽁하거나 그런 거 없기다?"

"다,당연하지 태양아 넌 나를 뭘로 보는 거야..."

웃으면서 말하는데 뭔가 찔린 얼굴이었다.

이 새끼 은근 속도 좁구나.

"자 그럼 대련도 끝났으니 이제 주의사항을 알려주겠다. 이쪽으로 오도록"

민수와 나는 김석구 교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건 다 챙겼다.'

이 대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총 세 가지였다.

민수에게 화풀이, 류혜미와의 접점 그리고 1학년 최강이라는 이미지.

하나라도 놓치면 앞으로 백태양짓을 할 때 제약이 생겼을 수도 있었다.

뒤를 힐끗 보니 류혜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굉장히 궁금하겠지.'

교관이 펼친 보호막을 손쉽게 부수는 생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날 찾아올거다.'

연구자들은 원래 다 그런 족속들이었다.

궁금한 게 생기면 직접 찾아가서 결국 정답을 찾는 부류들.

'게이트가 끝나면 천천히 요리해야겠네.'

양념은 모두 준비가 끝났으니 조리만 하면 되는 문제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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