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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여친쩔더라-29화 (29/325)

〈 29화 〉 선수필승, 후수필살

* * *

"오빠 갑자기 왜 나랑 안 만난다는 거야?"

"나 여자 친구 생겼어."

"헐, 진짜 웃긴다. 나 남친 있을 땐 개처럼 따먹더니 넌 여친 생겼다고 나랑 안 해?"

"내가 나름 순정남이잖아."

"개걸레남창 새끼가 지랄하네."

언젠가 했던 통화가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된다.

바람을 피우게 한 적은 있어도 바람을 피워본 적은 없었다.

남들이 들으면 그게 무슨 차이냐고 말하겠지만 엄밀히 따지면 결이 달랐다.

'수컷의 자존심 같은 거지.'

사자 무리에서 수컷은 단 한 명이었다.

단 한 명의 수컷이 수많은 암컷을 책임지고 그게 곧 강함을 나타내는 지표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수컷 된 도리로 암컷 하나 지키지 못 하는 찌질이들에게 교육을 선사했을 뿐이다.

'김민수 이 새끼...'

근데 바람은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

한 여자와 사랑을 약속 했으면 계속 지켜야지,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다니.

그건 수컷이 아니라 그냥 발정 난 금수와 다름없었다.

'물론 유민이 씹구멍은 내가 다 땄지만...'

여자친구랑 사이가 소홀하다고 바로 다른 여자한테 달려가서 손부터 잡다니.

너무 찌질하고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노X구 같은 새끼.'

이 새끼가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다 안뚱땡 덕분이었다.

둔감하고, 꾸미지 않고, 착하고 정의로운 남자주인공.

가만히만 있어도 여자를 꼬지고, 적극적으로 대쉬를 받으면 곤란해 한다.

'현실성이 전혀 없어.'

방과 후가 얼른 오기를 기다렸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김민수를 노려보는 게 전부였다.

하렘 순애까지는 솔직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안뚱땡이 펼친 전개니까.

근데 본인이 바람을 피우는 건 도저히 용서가 안 됐다.

자기가 우물쭈물 하다가 172화에 와서 겨우 손을 잡은 주제에.

하렘순애로 노선이 바뀌자마자 여자한테 쪼르르 달려가는 꼴이라니.

'이 새끼 오늘 내가 정신 머리 고친다.'

두드린다고 고쳐질 게 아니었지만 만에 하나의 경우가 있지 않겠는가.

처음이 어렵다는 말이 딱이었다.

몬스터한테 주먹을 휘두르니 백태양의 성향이 완전히 몸에 딱 달라붙었다.

"자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은 실습날이니 모두 몸 관리를 철저하게 하도록."

"""넵!"""

"아 참, 민수랑 태양 생도는 방과 후 잊지 말고 꼭 김석구 교관님께 방문하도록."

"옙."

"네, 알겠습니다."

드디어 모든 수업이 끝났다.

당장 김민수를 데리고 김석구 교관에게 가려고 했는데, 이 놈이 먼저 나에게 다가왔다.

"태양아, 가자."

상쾌함과 짜증이 반반 섞인 얼굴을 보자마자 주먹이 나갈 뻔 했다.

"그래."

사실 손만 잡았다면 김민수를 너그럽게 용서할 수도 있었다.

손깍지도 눈 감는다면 얼마든지 감을 수 있었다.

'근데 넌 선을 넘었어.'

상담실 창문 너머로 똑똑히 목격했다.

류혜미의 껌딱지 젖에 고개를 파묻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넌 수컷 실격이다.'

민수는 철저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

광활하게 펼쳐진 대련장에 단 두 명의 생도가 서있다.

흑발을 한 생도는 목검을 들고 진중한 자세로 상대방을 바라본다.

반면에 백발의 생도는 주변을 계속 둘러보면서 산만한 모습을 보인다.

'무슨 용사와 악당 같군.'

김석구는 지금 펼쳐진 광경을 간단하게 요약했다.

백태양과 김민수는 대련장에 마주 보고 서 있었는데, 달라도 너무 달랐다.

태닝한 구릿빛 피부에 백발을 휘날리며 불량스러운 인상을 팍팍 풍기는 백태양.

더벅머리 흑발 밑으로 깔끔하고 단정하며 당찬 표정을 지닌 김민수.

일부러 연출해도 이 정도까지 정반대의 사람이 나올 수가 있을까?

"가볍게 하는 대련이니까, 너무 진지하게 하지 마라."

생도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다른 반에 지원을 가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전세계에서 검증된 보석들이 모인 곳이 빅토리 아카데미였다.

근데 다른 반에 지원을 간다? 그건 이미 생도급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진정한 재능, 찬란한 보석.'

이들은 생도의 입장으로 다른 반에 지원 가는 게 아니었다.

'1학년 때부터 교관 대행이라니.'

아무리 빨라도 2학년 2학기가 보통이었다.

그 전까지는 인성과 실력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민수는 검증이 됐었지만 백태양은 정말...'

백태양이 평범한 행보를 보였다면 절대로 교관 대행을 할 수 없었다.

'전화위복이라고 해야하나... 몬스터 덕분에 백태양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가 사람을 구하는 모습을 보고 난 뒤엔 교관들도 마음이 바뀌었다.

몬스터만을 정확히 지정해서 능력을 사용하고 사람을 지키는 모습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백태양과 김민수라면 교관의 눈에 닿지 않는 범위를 완벽하게 커버 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직접 보고 파악하지 않으면 확신할 수는 없는 법.

간단하게 교관끼리의 대련을 통해 실력을 확인하고 내일 주의사항을 알려주려고 했다.

'확실히 백태양이 호승심이 강하군.'

김석구가 먼저 김민수의 실력을 확인하려고 할 때 백태양이 입을 열었다.

서로 붙어보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출력도 조정할 테니 크게 다칠 일도 없다면서 말이다.

백태양만의 주장이었다면 거절 했겠지만 민수도 적극적으로 의견에 동의했다.

그 결과가 지금 보는 그대로였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김석구 교관 말고도 다른 교관들이 주변에 포진해 있었다.

교관들도 사실은 궁금했을 거다.

선천적으로 폭력의 재능을 가진 백태양과 후천적 노력을 통해 천재가 된 김민수.

이 둘은 빅토리 아카데미 내에서도 비대칭 전력이었다.

김민수는 자기 능력을 훈련을 통해서 증명했고, 백태양은 실전을 통해 강함을 표현했다.

'스킬도 정반대.'

김민수의 메인 스킬은 [용사].말 그대로 용사의 힘을 낼 수 있었다.

위기의 순간에 항상 기회를 찾고 악을 만나도 굴복하지 않으며 신념을 관철하는 힘.

그게 바로 용사였다.

'백태양은…'

여러 사건들이 잇달아 터져서 스킬명은 확인하지는 못 했다. 그러나 분석은 끝난 상태였다.

순수한 힘이 육체를 압박하고 마음을 위축시킨다.

일반적인 디버프 계열의 스킬과 궤를 달리하는 힘이었다.

힘 자체도 위험한 건 맞았지만 가장 두려운 건 백태양 그 자체였다.

순수한 육체 활용만 봤을 때도 탑급인데, 상대방을 억제하는 힘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여기 있는 모든 교관이 알고 있었다.

'괜히 대련을 승낙했나?'

둘의 준비가 끝난 모습을 보니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교관들은 언제든지 둘 사이에 끼어들어 말릴 수 있었고, 능력의 출력도 15%로 제한했다.

사고를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자 그럼, 준비…"

갑자기 공기가 무거워졌다.

지금이라도 멈춰야 하나? 호기심으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내리는 거 아닐까?

김석구는 혓바닥 위에 말을 한 점 한 점 올리면서도 수많은 고민했다.

"…시작!"

고민은 길었고 시간은 짧았다.

대련은 결국 시작 했고, 모든 교관이 눈을 부릅 뜨며 상황을 지켜 볼 때.

먼저 움직인 건 민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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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는 대련에 이골이 날 정도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힘의 출력부터 몸의 움직임과 검의 숙련도까지 어느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

교관의 자격으로 다른 반에 지원을 나간다는 걸 알았을 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유민이가 뽑히지 않은 건 의외였지만 짐작하고는 있었다.

상시 발동형 스킬을 가지고 있음에도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게 유민이었다.

본인 말로는 힘의 제한이 있다고 하던데, 그걸 해제하려면 무슨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도와줄 수도 없는 문제라고 해서 아쉬운 마음을 삼켰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혼자 지원 나갈 줄 알았는데...'

백태양도 함께 지원을 나간다는 소식은 정말 놀라웠다.

각성자가 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지원이라니, 솔직히 스킬빨이라고 생각했다.

'백화점 사건도 진짜... 운이잖아.'

알게 모르게 있던 열등감이 폭발했다.

물론 영상을 확인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대처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으면 그 정도는, 아니 그보다 더 잘할 수 있었어.'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먼저 말까지 걸어가며 같이 가자고 했다.

근데 백태양은 그 호의를 다 무시하고 대련을 신청했다.

어이가 없었다. 각성한 지도 얼마 안 됐으면서, 자신을 얼마나 무시하는 걸까?

민수는 요즘 들어 유민이가 태양이에게 웃는 횟수가 늘어난 것도 신경 쓰인 참이었다.

혜미와의 상담도 백태양이 수상한 면이 많다는 쪽으로 흘렀었다.

'따지고 보면 쟤가 비밀연애 언급만 안 했어도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

억울했다.

감정이 그대로 몸에 퍼져 검을 쥔 손이 파르르 떨린다.

가볍게 해야 하는 대련이지만 조금 혼을 내줘도 문제 될 건 없었다.

아직 1학년이었기에 미숙하다고 핑계를 대면 그만이었다.

"준비..."

김석구의 말이 끝나자마자 달려들 준비했다.

각성자끼리의 대련을 백태양이 겪어 봤을 리가 없다.

몬스터와 다르게 각성자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게 움직인다.

민수는 모든 분석을 마쳤다.

백 번을 생각해도 모두 다 승리였다.

'오늘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 태양아.'

얼굴 좀 잘생기고 몸이 좋은 것? 다 의미 없었다.

진정한 힘 앞에서는 다 무의미할 뿐.

"시작!"

호령이 끝나자마자 백태양에게 달려갔다.

[강타 발동! 강대한 힘이 검에 깃듭니다!]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은 힘을 그대로 전달한다.

좌에서 우, 사선으로 내려치는 목검에 찬란한 빛이 담긴다.

바람 가르는 소리조차 없는 고요한 검격이 백태양의 몸에 떨어진다.

"선수필승!"

여태까지 대련하면서 그 누구도 반응하지 못한 일격이다.

이번에도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생도는 절대로 내 검격을 막을 수 없다는 자신감이 민수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먼저 뽑은 검은 반드시 승리를 가져 온다.

모든 건 다 백태양을 만나기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백태양에게 중요한 건 승리가 아니었다.

그런 장난 하자고 대련을 권유한 게 아니었다.

김민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대련하기 전부터 자신을 노려보던 눈동자를, 그 안에 깃든 분노를.

그저 자신의 예정된 승리에 도취되어 있을 뿐이었다.

김민수에게 백태양이란 그저 뒤늦게 각성한 생도에 불과했다.

그게 이 대련의 승패를 갈랐다.

단 한 걸음 뒤로 물러난 것으로 검격을 피한다.

일격으로 상황이 끝날 줄 알았던 민수에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어?"

목적을 잃은 힘이 애꿎은 땅에 떨어진다.

힘을 회수하려고 할 때 백태양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백태양의 주먹에 강렬한 빛이 깃든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힘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김민수의 눈에 경악이 담겼다.

"개자식아, 오늘 좀 맞자."

발뒤꿈치가 들리고 허리가 돌아간다.

지면에서부터 올라오는 힘이 백태양의 주먹에 온전히 담긴다.

피할 수 없다.

백태양의 주먹이 김민수의 모든 시야를 장악한다.

후수필살, 뒤늦게 뻗은 주먹은 죽음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최흉의 일격이 김민수의 명치에 박힌다.

"꾸에에엑!"

돼지 멱따는 소리가 대련장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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