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26화 (26/325)

〈 26화 〉 순애일지라며 미친놈아.

* * *

"그러니까 갑자기 김민수 삥을 뜯고 싶어졌다는 거지?"

"네... 네... 그렇습니다..."

"선배 왜 말을 높이고 그래, 선배니까 반말해."

"어? 어... 그래 태양아..."

사건은 빠르게 마무리됐다.

각성자들끼리의 능력 사용은 허가된 상황에서만 가능하므로 싸워 봤자 주먹다짐 정도였다.

백태양은 각성하기 전부터 싸움의 천재라고 칭송 받던 몸,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었다.

"손가락 몇 개 부러진 걸로 너무... 아파하는 거 아니야?"

"태양아 네가 너무 심하게 때린 것 같기도 해..."

"민수야 그... 음... 먼저 교실에 들어가라 그냥."

직역하면 방해 되니까 꺼져 였다.

민수는 당연히 알아듣지 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마침 나 유민이랑 이야기할 게 되게 많았어가지고...! 먼저 가 볼게!"

민수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교문까지 뛰어갔다.

선배 무리는 민수가 가는걸 보고 우리도 슬슬 보내주면 안 될까, 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어림도 없었다.

"아까 했던 말 다시 답해 봐."

"오늘따라 유난히... 민수 삥을 막 뜯고 싶어지더라구요..."

"말 편하게 하라니까."

"싶어지더라..."

클리셰를 위해서 조종이라도 당했단 말인가?

적당히 두들기니 마음의 문이 열려서 착해진 게 아니란 말이었다.

'하긴... 1%만 들어오는 학교에서 뭐가 아쉽다고 삥을 뜯어...'

빅토리에서 매달 돈과 많은 문화 혜택을 주기 때문에 굶어 죽을 수가 없었다.

사치를 부려도 최소한의 식비만 있다면 식당에서 얼마든지 배를 불릴 수 있었다.

'생도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인성 교육도 받는다.'

백태양 같은 희귀한 경우에나 급하게 아카데미로 편입 될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힘의 책임감과 사회적 규범에 대해서 철저하게 배운다.

"그... 태양아... 조금 있으면 지각 처리가 되는데..."

"가만히 있어 봐, 생각 중이니까."

"미, 미안..."

기X 특전대의 말에 따르면 유난히 민수 돈을 뜯어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아무런 생각도 없다가 민수 얼굴을 보자마자 골목에 데려가 삥을 뜯은 거였다.

'작가가 소설에 개입을 하는 건가...?'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클리셰를 만들기는 해야 하는데, 인성 교육을 철저하게 받았다는 설정이 발목을 잡았을 테지.

'근데 김민수는 성장 시켜야겠고...'

착하고 정의롭다는 이미지 굳히기엔 권선징악 스토리 만한 게 없었다.

단순하고 이해하기도 쉽다. 나쁜 놈들 물리치고 착한 놈들 구해주고!

'백화점 몬스터도 그러면 설명이 된다.'

나를 보면서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지었던 안뚱땡이다.

아마 나는 없애고 민수는 밀어 주는 식으로 전개를 짜는 것 같은데.

"어림도 없지. 안 그래?"

"어...어? 무슨 말..."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긍정해."

"맞아! 역시 태양이야!"

"난 태양이 말이 무조건 맞아!"

수많은 사람의 지지도 받았으니 객관성도 충분했다.

'어쩌면 일이 더 쉬워질 수도 있겠어.'

클리셰 이벤트만 잡아먹어도 주인공의 입지를 많이 뺏을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이야 0.1%지만 커다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잡는다면?

유민이를 통해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될 가능성이 있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생기네, 그치?"

"으,응 태양아...! 근데 이제 학교 가면 안 될까...?"

"지각하면 벌점도 많이 받아서 그래...!"

"절대 무릎이 저려 오거나 그런 게 아니고..."

혼자 너무 오랜 생각을 했었나? 정신을 차려보니 등교 시간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턱짓을 하자 다섯 명이 동시에 우르르 일어난다.

다리가 저리긴 한 건지 비틀거리면서 교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안쓰러웠다.

"이거 일이 쉽겠는데?"

교문을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이 경쾌했다.

++++++++

"백태양 생도, 잠깐 나 좀 볼 수 있을까요?"

교문에서 나를 맞이해준 건 수진이가 아니었다.

"네?"

"백화점에서 있었던 일로 조사가 좀 필요합니다."

갈색 머리칼에 깔끔하고 단정해 보이는 오피스룩을 한 여자였다.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치마가 아니라 바지라는 점인데, 당연한 부분이기도 했다.

'류혜미...?'

처음 보는 교관이었다.

명찰엔 이름 말고도 [연구 담당교관]이라고 써져 있는데, 목적이 딱 보였다.

"수업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출석 부분은 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권유하는 어조로 말하고 있었으나 사실상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하긴 그때 연구 표본은 다 시체 뿐이었으니까.'

단서가 부족해도 많이 부족할 터였다. 연구는 해야 하는데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없는 경우였다.

영상으로도 제대로 알아낼 수 없으니 그 환경에서 직접 싸웠던 사람을 조사 방법 뿐이었다.

"어디로 가면 되나요?"

"절 따라오시면 됩니다."

굉장히 지적인 이미지였다. 누가 봐도 일개 연구원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1%만이 모이는 아카데미는 교관의 기세부터 차원이 달랐다.

내가 전문가니까 믿고 따라오라는 느낌을 팍팍 준다.

"수진 선배도 지금 조사를 받는 건가요?"

"네, 유수진 생도는 지금 김석구 교관님에게 조사받고 있습니다."

"아하..."

교문에서 왜 안 보이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류 교관은 따라오라고 하면서 먼저 걸어갔다.

교문을 통과하자마자 생도들과 멀리 떨어졌는데, 조사하는 건물이 따로 있는 듯했다.

'이 틈에 그럼 정보를 확인해 볼까.'

[핥아보는 눈동자 발동! 페널티로 시선이 끈적해집니다. 엄한 오해를 사지 않게 조심하세요!]

마주 봤을 때부터 정보를 계속 확인해 보고 싶었는데 꾹 참았다.

눈빛만으로 오해를 받아서 이미지를 알아서 깎아내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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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류혜미

[신체] 키: 171cm / 몸무게: 60kg

[설명] 김민수 어렸을 적 친한 동네 누나다.

어렸을 적 같은 동네에서 자랐으며 그녀가 먼저 각성을 하는바람에 헤어졌다.

그녀는 어린 나이부터 연구와 조사 분야에 뛰어난 두각을 드러냈다.

그 결과 생도 과정을 생략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김민수와 같이 교육을 받지 못했다.

김민수가 잊어 버린 어렸을 때의 약속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원래는 꾸미는 걸 별로 선호하지 않으나 지금은 나름 열심히 관리하고 있다.

처녀를 따지 않아 메인 스킬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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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정신이 멍해졌다.

처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느꼈다.

근데 자세히 보니까 수상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친한 동네 누나 설정? 어렸을 때 약속?'

알 수 없는 이야기가 가득 적혀 있었다.

이게 과연 필요한 설정일까? 라는 의심이 들었다.

"태양 생도 왜 그러시죠?"

충격적인 정보창을 보니 몸이 절로 멈춰 졌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의심 했다.

스킬의 성능을 어제까지만 해도 칭찬 했는데 오늘은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정말로 사실이라면 정말로 큰일이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기로 들어가면 되나요?"

"네, 제가 자료를 챙겨 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류 교관은 그렇게 말을 하곤 곁을 잠시 떠났다.

난 눈앞에 보이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취조라도 당할 분위기를 생각했는데 굉장히 포근한 방 이미지였다.

'내 방이랑 비슷한 느낌이네.'

가장 먼저 보인 건 빔 프로젝트와 커다란 스크린이었다.

'영상을 보면서 설명해주려고 하나?'

엔틱한 나무 탁자를 가운데에 두고 철제 의자 두 개가 놓여져 있었다.

그 외에도 이것저것 있었는데 모두 무거운 분위기를 억제 시키려는 의도가 돋보였다.

문제는 지금, 이런 분위기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죄송합니다."

류 교관이 들어온다. 지적이라고 생각했던 첫인상이 다르게 보인다.

꾸민 듯 안 꾸민듯한 화장부터 시작해 C컬펌이 들어간 헤어스타일, 도도해 보이는 립스틱까지!

알고 나니까 선을 보는 차림이었다.

'이렇게 보니까 옷차림도...'

직장이기도하고 평소 이미지 때문에 치마를 입지 못했을 뿐 풋풋한 봄내가 나는 옷차림이다.

베이지색 바지에 가슴골이 정말로 살짝 보이는 와이셔츠에 카디건, 암컷의 냄새가 풀풀 난다.

도도한 이미지를 깨지는 못 했지만 여자라는 걸 어필하고 싶은 여자의 냄새!

"제 옷에 뭐가 묻었나요?"

"그런 게 아닙니다, 그냥 좀 긴장 돼서요."

"태양 생도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으니까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훌륭한 일을 하신 거니까요, 학교 측에서도 보상이 있을 테니 기대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말을 매듭 지으면서 빔 프로젝트를 키고 사진을 몇 개 띄우기 시작했다.

"이게 최초로 고블린이 나타났을 때를 찍은 사진입니다. 게이트가 정말로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게 보이시나요?"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정보창을 보자마자 들었던 생각이 계속 머리를 어지럽혔다.

"태양 생도는 아직 게이트에 대해서 배운 게 많이 없으시겠지만 대략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이 정말로 맞다면 퀘스트의 기간이 납득이 갔다.

단지 유민이와 김민수만의 관계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기에 1년이라는 긴 시간을 부여한 거였다.

"이런 현상이 말도 안 된다는 걸요, 혹시 처음 고블린이 나타나기 전에 이상한 징조 같은 게 있었나요? 땅이 떨린 다거나…"

"류 교관님."

도저히 궁금증을 억누르지 못했다.

지금 물어보지 못한다면 모든 대화를 집중하지 못할 터였다.

제발 아니길 빌면서 입을 열었다.

"혹시 김민수 생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시나요?"

뜬금없는 질문이고 분위기가 이상해질 수 있는 말이었다.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며 화를 낼 수도 있었다.

'그래 그냥 화를 내.'

집중 하지 않는 거냐면서, 심각한 사안을 다루는 중이니 잡담은 나중에 하라고.

나에게 주의를 주기를 바랐다.

'제발... 제발...'

그러나 류 교관은 얼굴이 점점 붉어지더니 손을 막 저었다.

최악의 변수,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큰일이 지금 일어났다.

"아니, 그, 무,무슨, 그냥 생도입니다. 저에겐 모두 다... 다 똑,똑같은 생도죠."

'씨발...'

메인 퀘스트에서 김민수의 순애만을 강조 했던 이유가 있었다.

유민이와 민수의 사이를 쪼개는 거라면 기간이 1년까지도 필요가 없었다

'다 이유가 있었어.'

근데 퀘스트는 김민수의 순애만을 강조 했고, 기한을 1년이나 넉넉하게 줬었다.

'아니 길다고 생각 했던거야.'

자만 했었다. 퀘스트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 거였다.

메인 퀘스트의 진정한 의도는 사귀고 있는 관계를 망치라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김민수의 사랑을 망가트려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불안했던 예감은 왜 이럴 땐 정확할까.

'아카데미 순애일지는…'

하렘순애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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