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남의 여자친구를 길들이는 방법 (수정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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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갑자기 차갑게 불러선지 눈에 띄게 당황하는 게 보였다.
하긴 조금 전만 해도 어쩔 줄을 모르다가 갑자기 태도가 변하면 그럴 만했다.
"너 지금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하마터면 분위기에 순식간에 휘말릴 뻔했다.
난 잘못한 게 하나도 없었다.
유혹을 한 게 죄라면 죄가 되겠지만, 유혹을 당한 사람도 죄가 있었으니까.
우린 일방적인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니었다.
서로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한 공범에 가까웠다.
"나만 좋자고 한 일이 아니었잖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딱 맞았던 눈높이가 달라진다.
마주 보고 있던 유민이의 고개가 점점 위로 올라간다.
화가 난 표정을 지을 필요도 없었다.
그저 무심하게 정말로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예전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현실에서 연애할 때 감정적으로 밀어붙이는 여자 친구는 항상 강적이었다.
툭하면 울 준비가 되어 있고 길거리에서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이목을 끈다.
하는 짓이라곤 감정에 호소하면서 바닥에 주저앉을 뿐.
하지만 이게 효과가 그렇게 좋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면 자연스럽게 위축되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과한다.
여자 친구는 사과를 내뱉자마자 바로 울음을 멈추면서 '뭘 잘못 했는데?'로 응수한다.
잘못했다고 인정한순간부터 사과의 연속, 을의 연애 시작이었다.
이런 식으로 수도 없이 당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대응책이 떠올랐다.
멍청하게 당하고만 살 수 없다는 본능이 쥐어 짜낸 지혜였다.
"나만 좋았어? 우리 서로 즐겨 놓고 왜 이렇게 나오는지 모르겠네."
여자의 감성을 남자의 이성으로 맞서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감정적으로 나온다면 똑같이 감정으로 대응해야 했다.
단 막무가내로 나간다면 유치원생 수준의 언쟁일 뿐이니 이성을 섞는 게 중요했다.
"유민아, 나도 너 좋아. 근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좀 슬프네."
"아, 아니 나는..."
"알아, 버려질까 봐 그래? 안 그런다니까?"
절대로 사과해선 안 된다.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말을 혀 위에 올리면서도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그, 그렇지만..."
유민이의 마음이 이해는 됐다.
아카데미 생도 전부터 쭉 만나왔던 인연이 하룻밤에 사라졌으니 불안 할 수 있었다.
'근데 그건 그거고.'
난 스무 살 애들 연애 장난 맞춰주려고 소설 속에 들어온 게 아니었다.
그 장난을 입맛대로 바꿔놔서 조종하려고 온 거지.
"그래, 뭘 말하고 싶은 건데?"
강압적이면서도 배려가 있어야 한다.
화를 내면 안 되고 '난 너와 대화로 풀어나가고 싶다.'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연애에서 갑과 을을 정하는 건 성별이나 눈물이 아니었다.
대화의 주도권을 잡는 사람이 곧 갑이며 주인이다.
"그,그냥... 나는..."
유민이는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얼굴이었다.
울음이 터지면 대화가 이어지기 힘들기 때문에 지금은 달래줘야 한다.
"천천히 말해도 돼, 괜찮아."
언제든지 기다려줄 수 있는 달콤함을 맛보게 해야 울지 않는다.
당근과 채찍을 적절하게 주면서 차근차근 길들임이 옳았다.
"...태,태양이 네가... 인,기잇..가아...아..."
유민이는 울먹이는 목소리와 울망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스무 살 여자의 마음은 다 똑같았다. 여자 뿐만이 아니라 그냥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
갑자기 다른 남자를 만나서 바람을 폈는데 알고 보니 그 남자가 인기가 많다면?
자신이 언제든지 소모품처럼 버림 받을 수 있다는 상상을 했을 터였다.
상상만큼 관계를 망치는 효과적인 도구는 이 세상에 없었다.
'그래서 집으로 온 거겠지.'
자신이 생각하는 의심을 지우기 위해서.
자신을 버리지 않을 확신을 찾기 위해서.
아량이 넘치는 여자를 연기하기 위해서 일부러 '다른 여자'까지 입에 담았던 게 분명하다.
이렇게 마음이 넓은데, 이만큼 이해를 해주는데, 날 버리겠어? 나를?
뻔히 보이는 생각이었다.
한두 번 겪는 상황이 아니었다.
대처법? 이골이 날 정도로 알고 있었다.
"이리 와."
부드럽게 유민이를 끌어안고 토닥였다.
"흡...흐윽...태양아아아...."
품에 안기자 울음을 펑펑 터트리는 것까지 너무나 익숙했다.
가장 이상적으로 길들일 수 있는 단계를 밟고 나간다는 증거기도 했다.
"내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돼서 그래."
절대로 여기서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어선 안 된다.
확신을 받으면 안심하고 안심하게 되면 느슨해지는 게 사람이다.
버림 받을 수 있는 한 줌의 씨앗을 심어 놔야 느슨해지지 않는다.
항상 긴장하며 상대방의 눈치를 보고 더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애쓴다.
'이게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만들면 돼.'
사랑엔 여러 가지 형태가 존재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며 편안한 사이가 되는 사랑.
믿음과 신뢰를 넘어서 헌신하기까지 하는 고고한 사랑.
이 모든 건 내가 추구하는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불안에 떨며 정에 헐떡이는 사랑.'
어쩌면 이런 형태를 추구하므로 백태양의 몸에 들어온 걸 수도 있었다.
"널 버릴 생각도 없고, 불안한 일도 일어나지 않아."
달콤한 독이 유민이의 귀에 스며들 때마다 울음이 멈춘다.
발갛게 익은 눈동자가 날 올려보고 있었다.
듣기 좋은 달콤함에 속아 본질에서 멀어진다.
"근데 이렇게 말을 안 들으면 정말 곤란해져."
"자, 잘 들을게 태양아, 응? 나 진짜 앞으로 이제 안 이럴게..."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어?"
상황을 역전 시킨다.
날 선택하라는 투정의 말이 제발 버리지 말라는 애원으로 뒤바뀐다.
"그, 아, 내,내가..."
처음에 당당하게 좆을 잡았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랑에 굶주리고, 처음 잔 남자와 끝까지 좋게 이어지고 싶은 작은 여자아이만 남았다.
이대로 가만히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려도 됐지만 시간이 아까웠다.
"널 줘."
많은 말은 필요 없었다. 짧은 문장과 진한 입맞춤이 모든 걸 채운다.
숨이 끊어질 듯 혀를 섞고 치열을 핥으며 타액을 나눈다.
사랑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입안에서 느끼게 만든다.
"나...날, 줄게... 다 줄게... 믿어 줘..."
몽롱하게 홀린 암컷의 얼굴이 나타난다.
다 가져가게 해줄 테니 주워만 가라는 처연한 모습.
이게 우리의 사랑이자 네가 나에게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이젠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머리를 하얗게 만들면 끝이었다.
바지춤을 내리면서 천천히 유민이의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쓰다듬으면서 몸을 낮추게 하고 부드럽게 그녀의 볼에 자지를 갖다 댄다.
"널 어떻게 줘야 할지 알고 있지?"
"네...네에... 알고 있어요..."
슬픔을 담은 눈은 텅 비우고 그 안에 굶주린 사랑과 성욕을 채워 넣는다.
유민이가 입을 크게 벌리며 물고 빠는 건 사랑의 증거이자 애정의 잣대였다.
"이대로만 계속하면, 믿어 줄게."
억, 억 거리면서 목끝에 좆이 닿아 괴로울 법도 한데 열심히 고갯짓을 한다.
눈을 깜빡거리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며 입보지를 열심히 조인다.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볼을 타고 입술에 들어가는 게 보인다.
슬픔은 결국 사랑에 스며들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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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왜!!!!!!!!!! 내 뜻대로 안 되는 건데!"
한 남자가 책상 위의 모든 물건을 던지거나 내려찍으며 파괴 행위를 계속했다.
오 분 정도를 반복하다가 손이 반죽처럼 퉁퉁 부어오르자 부수는 걸 멈췄다.
"관측이 안 돼서 무슨 상황인지를 모르니까 몬스터만 부르게 돼!"
상황을 조금만 더 알았더라면, 하다못해 주변 인물만 파악할 수 있었다면 단순히 몬스터만 쏟아 내지 않았다.
아예 주변을 던전으로 만들거나 백태양 그놈을 혼자 함정에 빠트렸을 텐데,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남자는 계속 중얼거리거나 생각하면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단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어... 그놈을 데려오고 모든 게 이상해졌어!"
어떻게 백태양한테 빙의할 수 있는 거야! 왜! 왜! 혼자만 있는 공간에서 계속 소리쳤다.
빛 하나 들지 않는 공간엔 낡은 모니터만이 유일한 빛이었다.
"내가... 내가 신인데... 왜 이렇게..."
무슨 방법이 없을까 싶어서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내 질문을 누군가 해결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언제까지 나만 고민을 들어 줘야 한단 말인가.
남자는 고뇌하고 절규했다. 이대로 가다간 원하는 방향으로 완결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라고 써져 있던 표지는 점점 낡아가고 있었다.
지금이야 갓 뽑아낸 양장본 표지처럼 빳빳했지만 교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어떻게 바꾼 세상인데... 백태양! 백태양! 어딜 가도 백태양!"
인터넷 뉴스에선 백태양에 관한 기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남자가 봐도 잘생긴 얼굴, 조각 같은 몸, 게다가 강력한 힘까지 모든 걸 다 가지고 있었다.
인기가 없을려야 없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이놈을 나락으로 보내고 싶어!"
[띠링! 답변이 도착 했습니다.]
"오...오오!"
때마침 답변이 도착했다. 남자는 뚱뚱한 몸을 최대한 민첩하게 움직이며 모니터 앞으로 다가 갔다.
몇 번의 클릭과 함께 답변창이 보였고, 보자마자 키보드를 내려쳤다.
"이게 뭐야...! 내가 이딴 말 들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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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제가 원하는 대로 가질 않네요] 순애일지작가
순애일지작가님의 12번째 고민글입니다
소설이 제 말을 않 듣습니다... 작가는 신 아닌가요?
진짜 어이가 업내요... 왜 재 뜻데로 안 써질까요?
[답변1][좋아요0][싫어요1][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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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제가 원하는 대로 가질 않네요]의 답변 피아쨩
네?ㅋㅋ 작가는 무적이죠, 독자가 신이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세요 ㅋㅋ딱 봐도 무슨 글 쓰는 지 보이네요~
[좋아요0][싫어요0][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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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살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렇게까지 화가 난 건 어제 이후로 처음이었다.
"더 중요한 일 때문에 산 줄 알아...!"
백태양을 얼른 이 소설에서 지워야 했다.
"마침 4월은 현장 실습이 시작되는 날이고..."
달력을 바라봤다. 자세한 상황을 볼 수 없지만 얼마든지 위험한 상황은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너라고 별수 있을 것 같아...?"
용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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