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남의 여자친구와 기숙사에서...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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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아침이었다.
최고급 호텔에서 말끔하게 샤워도 하고 포근한 수면까지!
'호텔도 동네호텔이 최고였는데...'
지구에선 느껴보지 못한 극상의 호사였다.
"되게 좋은 호텔이었다. 그치!"
수진이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어제만 해도 손도 못 잡고 우물쭈물 거렸는데 오늘부터 바로 팔짱이었다.
불만도 없었고 걸을 때마다 닿는 가슴이 너무 말캉해서 좋았다.
"그러게요. 기숙사 나와서 여기서 살까 봐요."
"그럼 나도 기숙사 나와서 호텔에서 생활 할까?"
수진이도 내 말에 적극 공감했는지 고갤 연신 끄덕거렸다.
호텔 침대는 정말로 푹신했다.
'그 푹신한 침대에서 남자랑 한 시간을 통화 했었지...'
내가 영화를 볼 예정이라서 그랬다고 답하니 민수는 세계관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연애 문제로 전화해와서 약 30분 정도를 번개망치남자4에 대해서 말한 거다.
목소리는 얼마나 큰 지 말을 우다다 쏟아 낼 때 급하게 소리를 줄이곤 했다.
줄이지 않았으면 수진이가 깰 정도로 혼자만의 세계에 빠졌었다.
'월요일 방과 후라...'
뭔 놈의 방과 후에 그렇게 만나고 싶어 하는 지.
민수는 방과 후의 중요성에 대해서 또 30분 정도 주절거렸다.
알겠다고 말하면서 통화를 끊었는데, 이런 애랑 사귀고 있는 유민이가 대단해 보였다.
'설마 따로 봉사 시간을 받는 거 아닐까?'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아쉽다... 옷도 같이 골랐으면 좋았을 텐데..."
"부모님이 많이 걱정하시니까 어쩔 수 없죠."
"그래두... 내가 옷 골라주고 싶었는데..."
데이트 하러 갔던 딸이 갑자기 뉴스에서 나오면 부모 처지에선 얼마나 놀랄까.
나 같아도 바로 딸 핸드폰에 불같은 알림을 울릴 터였다.
'일 처리가 근데 되게 확실하네...'
소설 속 세계는 몬스터에 대한 대처 방안이 굉장히 철저했다.
이번 일만 하더라도 일반인 영상이 인터넷에 나돌 수 있었는데 모두 삭제 시키지 않았는가?
거기다가 미지의 상황이기에 현장의 사람들에게 최대한 보상을 마련하며 연구를 돕게 했다.
"저희가... 이제 직접 옷 고르러 가면 난리가 날걸요?"
"그렇긴 하지..."
명함을 준 회장은 생각보다 더 대단하고 높은 사람이었다.
각성자가 막 등장하기 시작한 시대부터 사업을 하고 지금 자리까지 올라온 대부였다.
그가 끼치는 영향력을 느낄 수 있었던 건 호텔 밖을 나올 때였다.
'그때 진짜 리무진 처음 봤어'
리무진과 레드카펫은 기본이었고 정장 차림을 한 사람들이 쫙 깔렸었다.
그 가운데에 지배인이 있었는데, 앞으로 모든 편의를 집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마련한다고 했다.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유명한 디자이너가 맞춤해서 골라준 옷들이었다.
쇼핑하기가 귀찮다면 매월 이런 식으로 날짜별 코디를 맞춰서 배송해준다고 했었다.
혹시 원하는 옷이 없다면 따로 배달을 해주는 서비스도 있다고 말했다.
"배달도 단순 배달이 아니라..."
"응... 간이 매장을 아예 집 앞에 설치하는 거라고 했어..."
스케일이 달랐다.
조립식 건축물을 사용해서 집 앞에 원하는 매장을 만드는 서비스!
"백화점 가는 날엔 또 사람들 우르르 나와있지 않을까요."
"백화점 데이트는 이제 못 하겠네..."
괜히 웃겼다.
하루만에 이렇게 달라지다니, 상류층 대우를 받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뭐 변장하면 되겠죠..."
"그렇..."
빵! 빵!
두런두런 대화하며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앞에 검은색 차가 나타났다.
매우 빠른 속도로 오며 클락션을 막 울려대더니 수진의 옆에서 딱 멈췄다.
굉장히 위협적이어서 한 마디 하려는 순간 수진이가 팔짱을 풀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놓지 않을 정도로 꽉 잡더니, 주변 사람 눈을 신경 쓰는 걸까?
"아...아빠...?"
아빠라고? 수진이의 아빠? 아버님?
자동차 창문이 부드럽게 내려가며 다부진 얼굴이 드러난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데도 야성미가 감춰지지 않았다.
깔끔하게 넘긴 올백 헤어스타일과 청바지와 청재킷의 조화는 너무나 잘 어울렸다.
차를 타고 있었지만 서부극에서 말을 탄 보안관 같았다.
"딸램, 뉴스 보고 깜짝 놀랐잖아. 아빠가 데리러 온다니까 왜..."
"아, 아니 오지 말라니까! 내가 간다고 했잖아...!"
"걱정돼서 어떻게 그래... 그리고 그...자네가..."
수진의 아버님과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몸을 90도로 숙였다.
웃어른께 예의 있게 인사해서 손해 볼 게 하나도 없었다.
이미지 메이킹의 시작은 무조건 인사였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백태양이라고 합니다!"
힘 세고 강한 아침에 박력 있는 인사!
누구라도 좋아할 만한 호쾌한 얼굴!
남성성 그 자체의 인사를 싫어할 사람은 있을 리가 없었다.
"음...큼흠...그래... 난 수진이가 말했듯이 수진이 아빠 되는 사람이고..."
응? 뭔가 눈빛이 이상했다.
인사는 마음에 들었지만 그런데도 뭐라고 하고 싶은지 입꼬리가 계속 씰룩거린다.
핸들을 쥔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는 걸 봐서는 힘을 억제하는 거다.
"아니 뭐 무슨 그런 이야기해! 그만하고 얼른 가자!"
수진이는 나에게 짧게 눈인사를 한 뒤에 다급하게 차에 탔다.
무슨 상황인지 모두 이해했지만 순진한 척을 하기로 했다.
"안녕히 가세요!"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창문이 닫혔다.
수진이를 태우자마자 시선을 정면으로 고정 했는데, 상대할 생각조차 없다는 행동이었다.
작별 인사를 할 틈도 없이 그대로 자동차가 쌩 하고 가 버렸다.
그 짧은 순간에 일어났던 모든 행동을 종합해 본 결과.
"딸바보였구나..."
하긴 내가 엄청 개자식으로 보이겠지.
호텔에서 자기 딸이 남자랑 나오고, 팔짱까지 끼고 있었으니.
'그래도 이미 다 따먹었습니다. 아버님.'
물고 빨고까지 끝냈다구요.
계속 따먹을 겁니다.
뒤늦은 견제는 의미 없다는 걸 언젠가 꼭 알려드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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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기숙사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푹신한 고급 침대도 좋았지만 얼른 내 집으로 가고 싶었다.
주인공의 자리를 뺏기 위해서 생각해야 할 것도 많았으니까.
"음?"
기숙사는 말이 기숙사였지 커다란 오피스텔이었다.
보안도 철저했고 아카데미 기숙사인 만큼 도둑이 들 일도 없었다.
"문이 열려 있네...?"
근데 지금은 문이 열려 있었다.
'분명 잠그고 나왔는데.'
왜 문고리가 한 번에 끝까지 돌아가는걸까.
도어락이 망가진 것도 아니었다.
정말로 잠금이 해제된 거였다.
"설마 도둑...?"
불안한 마음 반 그리고 어느 정도 예상 되는 마음 반이 섞였다.
기숙사는 보안이 철저한 편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외부인 한정이었다
문고리를 다 돌리고 문을 열기 전에 들어올 만한 사람을 생각해 봤다.
'김민수 아니면...'
민수는 일단 제외였다. 월요일 날 만나기로 했으니 그 정도 눈치는 있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지금은 오전 11시였다. 이 시간부터 남의 집에 있을 리가 없었다.
'개인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아낸 거지?'
민수는 비밀번호를 알아낼 정도의 지능은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단 한 명뿐이었다.
성인끼리 쓰는 기숙사 건물에 이성 출입 제한 같은 게 있을 리도 없다.
아카데미 생도라면 얼마든지 현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태양아~ 나 너무 기다렸어, 왜 이리 늦게 왔어?"
예상대로 문을 열자마자 나온 건 유민이었다.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는지 깜짝 상자마냥 튀어나왔다.
유민이는 날 보자마자 바로 안기더니 팔을 내 목에 감았다.
흰색 오프숄더 크롭티에 돌핀 팬츠가 눈에 들어온다.
골반 끝자락과 밑가슴 쪽 천이 살랑거리면서 시선을 잡아먹는다.
"비밀번호 어떻게 알아냈어?"
"너라면 당연히 초기 설정 안 바꿀 줄 알았지, 0000이잖아."
깜짝 놀랐다. 이런걸 알고 있을 줄이야.
상남자는 비밀번호따위 설정하지 않는다는 신조를 바꿀 때가 왔다.
품에 들어온 유민이는 아무 말없이 킁킁 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근데 우리 태양이 다른 여자 냄새가 많이 난다..."
안긴 이유가 이거 때문이었구나.
"키스 마크도 보이네...? 태양아..."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불안 했다.
천천히 내 목을 흝는 손끝이 불안 했다.
분홍색 매니큐어가 섬뜩해 보인다.
"그때 식당에서 봤던 선배일까...아니면...음..."
이럴 땐 대화 주제를 빠르게 바꾸는 게 옳았다.
유민이의 양다리를 번쩍 들어서 공주님 안기로 자세를 바꿨다.
"인기가 너무 많다 우리 태양이..."
보통 공주님 안기하면 꺅! 이러던가 하는 반응이 나와야 정상이었다.
근데 유민이는 무심한 표정으로 냄새를 맡거나 목을 핥는 걸 반복했다.
"어우, 아침 공기 쌀쌀하네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일단 집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똥개도 자기 집에서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법이니까.
"나 만나기 전에 지우려는 노력은 해야 하는 거 아냐...?"
지우기도 전에 찾아온 게 너잖아, 그 말이 혀 위에서 춤을 췄다.
솔직히 억울했다.
시간을 주고 그런 말을 해야지, 나보다 먼저 왔잖아 너.
"언제부터 내 집에 있었어?"
"이젠 우리 집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아?"
"아니 그...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잖아."
상황 판단을 빠르게 했지만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얘가 여기 온 걸 시작으로 모든 계획이 다 망가졌다.
원래라면 혼자 고독하게 집 안에서 주인공을 만드는 조건을 연구할 생각이었는데.
"나 옷 좀 갈아입고 올 테니까 얌전히 있어."
"응~ 알겠어."
유민이를 소파에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반바지에 흰 티로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땐 유민이가 보이지 않았다.
소파에 방금까지 누워 있었는데 어디로 간 거지?
"짠!"
갑작스럽게 뒤에서 등장한 유민이는 다짜고짜 내 바지에 손부터 넣었다.
"야! 지금 뭐..."
"우리 못된 태양이 꼬츄! 뽑아버리고 싶어서..."
유민이 보지 냅두고, 다른 여자 막 따먹고! 이어지는 말에 현기증이 일었다.
"영화 같이 보려고 놀러 온 거 아니었어?"
"너 나 이러려고 처녀 가져갔어?"
말로 이길 수가 없었다. 대화가 묘하게 불리하게 흘러 갔다.
집에 멋대로 들어온 걸 질책하고 사과를 받는 게 맞는 옳은 흐름이었다.
'왜 내가 바람 피고 들어온 것처럼 굴지 얘는?'
원래 이런 성격이었으면 대체 김민수랑 어떻게 연애했던 거냐고.
이렇게 질투가 심한데!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나서 잠깐 성격이 바뀐 거 아냐?'
충분히 의심 되는 일이었다. 근데 지금은 그쪽으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지금...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야?"
"내가 못 들어올 곳 들어온 것처럼 이야기한다 꼭?"
전여친을 상대하는 기분이다.
대화 주제를 아무리 바꿔보려고 해도 원점으로 돌아가는 감각!
뒷골이 절로 싸늘해진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다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이 상황.
내가 연애를 많이 해 보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당하지 않았을까?
"태양아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 나 화낸다 진짜?"
상대도 만만치 않은 강적이었다. 말캉한 자지가 단단한 손아귀에 콱 잡힌다.
정말로 뽑을 것 같은 말투와 행동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진정하고 일단... 그냥 정말로 궁금해서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영화 보러 왔다니까?"
뒤에 있어서 표정을 볼 수가 없었지만 목소리로 유추가 가능했다.
굉장히 날카로운 눈동자를 하고 뒤통수를 뚫을 듯이 노려보는 게 그려진다.
"그...렇구나... 그러면 영화 볼까?"
"싫어, 태양이가 기자한테 둘러싸일까 봐 구해준 건데, 아무것도 모르고!"
"무슨 소리야 기자?"
확실히 이상한 점이 있었다.
뉴스가 굉장히 크게 날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다.
근데 호텔에서부터 기숙사에 들어올 때까지 아무도 달라붙지 않았다.
보통 인터뷰라도 따고 싶어서 난리가 나야 정상이었다.
너무 잠잠해서 그런 기이함을 느낄 수가 없었는데, 유민이가 한 거였다니.
"…그 부분은 정말로 고맙...아!"
갑자기 자지가 터질 듯이 아파 왔다. 벌어진 바지 틈을 보니 꽉 쥐고 있는 게 보였다.
"근데 태양이는 그것도 모르고 참... 다른 여자 따먹고 오기나 하고..."
할 말이 없었다. 고맙기도 했지만, 이건 그렇다고 해도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이대로 자지가 뽑히면 백태양이고 뭐고 다 끝나는 거였다.
"그래도... 결국엔 이렇게 내 품에 있으니까 용서해 줄게."
"허억...허억..."
유민이는 자지를 놓고선 짠! 하며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처음엔 털털한 성격인 줄 알았다. 그런데 벗기니까 적극적이고 지금은 좀 무서웠다.
수진이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 왜 벗기고 난 후부터 성격이 조금씩 변할까.
"나 잘했지?"
"아... 너무 좋지..."
유민이는 앞으로 있을 모든 계획에 중심이 되는 여자였다.
김민수를 완전히 나락에 빠트리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 인물!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의 심기를 건드려선 안 됐다.
"나 근데 민수랑 대체 언제 헤어져? 내일? 내일모레?"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안 될까...?"
"왜? 처녀막 따니까 이제 나한테 관심이 떨어졌어?"
"그게 아니라..."
퀘스트에 대해서 설명할 수는 없었다.
내가 민수 자리를 뺏어야 하는데 널 이용해야 돼, 이렇게 말할 순 없지 않은가?
데이트를 거절하고 나한테 올 정도면 이미 마음은 다 넘어온 상황이었다.
'근데 민수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딱 봐도 이대로 헤어져서 나한테 온다? 내가 무슨 사악한 술수를 부렸다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왜냐면 자기는 완전 소꿉친구순애 남자주인공이고 나는 하루 만에 여자를 따먹은 백태양이니까!
전개가 이상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았다. 천천히 헤어져야 마음을 접는데 용이하다.
근데 손바닥 뒤집듯이 휙 하고 헤어지면? 미련이 남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오히려 더 포기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짝사랑만 최소 5년 이상했던 놈이야...'
퀘스트는 순애를 포기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짝사랑도 순애인 만큼 민수가 완전히 마음을 접어야 된다는 말이다.
물론 다른 남자랑 자면서 남자 친구가 있는 게 불편할 수도 있었다.
'근데 그때 조금만 기다리라니까 말 잘 들었잖아.'
불과 이틀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기다리는 정도가 너무 짧았다.
"그게 아니면 뭔데? 말해 봐."
적절한 핑계를 찾아야 했다. 유민이도 납득할 만한 대안!
사람은 마감이 가까워질수록 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했던가.
전구가 머리에 뜰 정도로 엄청난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핑계를 왜 대야하지?'
왜 내가 쩔쩔 매야 하지?
나는 백태양이고, 백태양만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다.
"야, 소유민."
조교를 시작할 차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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