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폭풍의 편입생, 백태양(1)
* * *
"……다음은 편입생 안건입니다. 화면을 봐주시길 바랍니다."
한 여인의 말에 강당에 앉은 모두가 화면을 응시했다.
화면에 나와 있는 건 한 학생이었는데, 백발에 살짝 까무잡잡한 피부였다.
인상적인 건 전체적인 아우라였다.
정말로 이 학생이 빅토리 아카데미에 들어와도 되는가? 그 생각을 가장 먼저 들게 했다.
그만큼 '나 불량합니다'라는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이름 백태양, 나이 20세, 능력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만 디버프 계열로 추측됩니다."
"뭐?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거겠지 류 교관? 추측이라니?"
말을 꺼낸 건 머리가 다 벗겨진 남성이었다. 명찰에는 [게이트 전담교관]이라고 써져 있었고 그 밑에는 [김석구]라는 이름이 달려 있었다.
"그 이유는... 백태양 생도는 메인 스킬이 상시발동형인 능력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강당에 있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상시발동형 능력은 가볍게 나눌 주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상시발동형이 위험한 이유는 통제가 어렵고 능력 발동의 전조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마음을 먹기만 하면……"
류혜미 교관이 말하려 하는 걸 짐작 했는지 강당엔 침묵이 감돌았다.
"패트보이 대학살과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생도를 비교하는 건 너무 과한 처사같네만"
빅토리 아카데미 이사장 천해일
그가 입을 열자 어느정도 비교를 하고 있던 자들이 생각을 멈췄다.
그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
시대의 구원자, 불사신, 클로저, 마지막에 나오는 자, 천하대장군 등등 그에게 수도 없이 많은 이명들이 있었으나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불렀다.
초인.
모두 천해일을 초인이라고 불렀다.
그가 132살이 된 나이에도 20대 중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거나 하는 이유에서는 아니었다.
빅토리 아카데미를 다른 투자 없이 혼자 세웠다던가, 국가 권력보다 위에 있다던가 하는 이유도 더더욱 아니었다.
바로 그의 능력 때문인데, 그는 정말로 초인이 되어 바다를 가르거나 산을 부수는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가뜩이나 혼란스러웠던 게이트 초창기, 군대도 무력했던 날에 홀로 등장해 모든 걸 정리한 그를 모두 초인이라고 불렀다.
"이미 우리 아카데미엔 상시발동형 능력자가 다섯 정도 있는 거로 아네만?"
"하지만 이번에는 그 아이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다른 교관들이 천해일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을 때 류혜미만 고개를 내저었다.
화면을 다시 봐주시길 바랍니다, 류혜미는 분산된 시선을 한 곳으로 모으며 리모컨을 조작했다.
"청연고 패싸움, 길거리 시비, 묻지마 폭력에 대한 과도한 대응 등등 총 폭력 62회, 그리고 헌터와 교전...? 이게 뭔가?"
"그가 빅토리 아카데미로 편입이 결정되기 전에 벌였던 행동들입니다."
화면이 넘어가자 보인 건 그의 폭행 기록들이었다. 전부 정당방위로 인정 됐지만 하나 같이 심각했다.
"우선 백태양 생도가 너무 다루기 어려워 보였기 때문에 표현을 다소 과하게 표현한 점 사과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저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명확한 폭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어떤 사건에서도 먼저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과잉 대응이 문제가 됐었죠."
한 마디 한마디 말이 이어질 때마다 천해일의 표정도 애매해졌다.
나름 중립을 지키며 생도를 감싸주려고 했던 건데 뭐야 이거 완전 쌩양아치잖아? 하는 반전이 너무나도 강력했다.
아무리 선시비에 대한 대응이라고 하지만 결과만 봤을 땐 가해자는 누가 봐도 백태양이었다.
"특히 이 부분이 가장 큰 주목할 부분입니다. 각성의 계기, 보통 일반인이 후천적으로 각성을 할 땐 극적인 계기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거나 소중한 사람이 죽기 직전 구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거나 말이죠."
"근데 백태양 생도는 정말로, 단순히, 헌터를 패기 위해 각성을 한 케이스입니다."
사태의 심각성이 그대로 전달 된다.
사실 처음엔 긴급회의 안건 목록에 왜 편입생이 올라왔나 의아했었다.
편입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자격만 된다면 빅토리를 원하는 건 당연했으며, 가끔은 재능이 보이는 인재를 스카웃 하기도 했다.
이렇게 흔한 사안을 왜 다루지? 잠깐 류혜미의 능력을 무시했던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반성했다.
"...말만 편입이지 사실상 송치 아닌가? 너무 위험한 인재야"
김석구의 말을 류혜미는 반박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는 유치장에 있다가 아카데미 기숙사로 거처를 옮긴 게 맞으니까.
이대로 가만히 뒀다 간 패트보이 대학살의 재림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까만 해도 백태양을 옹호하던 천해일도 표정이 진즉 어두워진 상태였다.
브리핑 결과를 봤을 땐 백태양은 범죄자가 아니었다. 잠재적 범죄자도 더더욱 아니었다.
먼저 사건을 일으킨 적도 없었으나 잠재적 초고위험군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 했다.
"다음 화면을 바라봐 주시길 바랍니다."
류혜미가 리모콘을 조작하자 화면이 넘어갔다.
화면은 백태양이 각성자가 대치 구도를 하고 있는 부분부터 재생 됐다.
영상 속에 백태양은 밀리는 기색 하나 없이 각성자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아무리 영상 속에 나온 각성자가 제일 약한 5등급 각성자였다고는 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각성자와 비각성자의 차이는 무슨 짓을 해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짧은 시간 동안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다가 각성자가 기회를 잡아 백태양의 복부를 가격했다.
원래라면 배가 뚫려 내장이 다 튀어나와야 했다. 그러나 뒤늦게 정신을 차렸는 지 힘을 조절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백태양은 비틀거리며 먹었던 안주를 다 토해냈다. 술이며 음식이며 소화 되지 않은 것들이 튀어나왔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달려갔고, 상대방은 일단 진정을 시키려고 날아오는 주먹 잡으려는 그 순간.
"각성했군"
검은빛이 백태양의 몸을 감쌌다.
그게 각성이란 걸 깨달은 각성자가 급히 힘을 끌어올렸지만 주먹은 이미 명치를 강타한 후였다.
그대로 각성자는 건물을 뚫고 나가 주차 되어 있던 트럭에 처박혔고 영상도 그렇게 끝났다.
"정말로 사람을 패기 위해서 각성을 하다니, 게다가 저 파괴력까지!"
"정보에 따르면 저 헌터는 강화 계열이라고 합니다. 신체를 강화 했는데도 저 정도로 당하다니……"
"그렇다면 디버프 계열이 맞겠군요, 능력 사용이 늦었다지만 피해 정도가 너무 큽니다."
"후천적 각성자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참..."
선천적 각성자는 스킬 사용을 제한한 상태에서 인성을 교육 받는다.
만 19세 전까지는 후천적으로 각성해도 교육기관 안에 있어서 상관없었으나 문제는 이후의 후천적 각성이었다.
언제 어디서 각성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항상 눈에 불을 켜고 찾아야 했다.
이는 빅토리 아카데미뿐이 아닌 전 세계의 모든 아카데미가 최우선으로 두는 일 중 하나였다.
"여태까지 있었던 생도들과는 궤가 달라도 너무 다르니 원..."
"어느 반에 넣어야 할지가 고민이군요."
의견을 주고 받던 교관들은 말하면서도 단 한 명만을 계속 힐끗 거리고 있었다.
백태양이 안건으로 올라온 순간부터 팔짱을 끼고 굳은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던 단 한 사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있던 그가 주변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반에서 맡도록 하겠습니다."
[훈련 담당교관]이라고 써져 있는 검은색 명찰 밑에 써진 이름 [장두철]
이름만 봐도 믿음직스러웠다.
초인 천해일에 가려져 있을 뿐, 빅토리 아카데미 최강자 중 한 명으로 뽑히는 그라면 백태양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으리라.
"근데 백태양 생도는 언제 오는 겁니까?"
"내일입니다."
"네?"
근데 이걸 지금 다뤘다고? 그런 눈빛을 받은 류혜미는 빠르게 해명했다.
"영상의 날짜가 그저께 일입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저희도 사건을 접수 받았구요..."
"...백태양 생도는 유치장에서 갑자기 각성의 여파로 정신을 잃은 터라서……"
류혜미는 필사적으로 해명했다.
넝마 같은 옷을 갈아입히려고 했지만 준비할 겨를이 없어 알몸으로 침대에 눕혔다는 것.
전산처리가 방금 끝나 겨우 시간에 맞춰 자료를 정리 했다는 것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을 순식간에 처리 했는지 알리고 싶어했다.
사실 모두 그녀를 이해했지만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재미있었기에 그냥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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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실수했군'
불과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장두철은 달렸다.
그 정도의 신체 능력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백태양을 너무 과소 평가 했었다.
'당연히 그 정도 사건이 있었으면 앓아 누워있을 줄 알았건만...'
벌떡 일어나서 등교를 했을 줄이야. 계산 밖이었다.
후천적 각성자면서 몸의 적응이 너무 빨랐다.
교관의 관점에서 보면 훌륭했지만 백태양의 행보로 봤을 때 썩 좋은 일은 아닌 듯했다.
'등교 첫날부터 선도실이라니, 선도부원이 위험하다.'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몰랐다.
아직 보지도 않은 생도를 폭탄 취급하는 건 교관이 지양해야 할 자세였으나 어쩌겠는가.
보고 들은 게 있는데, 당연한 처사였다.
능력까지 발현해가며 재빠르게 선도실 앞에 도착했다.
숨을 고를 시간도 없이 문고리를 잡고 문을 두드렸다.
"백태양, 안에 있나. 있다면 문을 열어라."
여차하면 문을 부수고 들어갈 기세로 주먹에 힘을 줬다.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열...아홉...일곱...
만약에 하나를 셌을 때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문을 부수리라.
다시금 문을 두드리며 숫자가 둘까지 줄어들었을 때, 문이 열렸다.
"네 교관님, 무슨 일이세요?"
장두철은 잠깐 당황했다.
문을 연 건 백태양이 아닌 유수진이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아무 일이 없었던 건가?
유수진 뒤에는 백태양이 있었는데 딱 '선배에게 혼난 후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유수진을 제압하고 문을 여는 건 백태양이라 생각했는데…
"교관님?"
"아, 아아 미안하다. 백태양 생도가 우리 반이어서 왔단다. 오래 걸리는 문제니?"
"아니에요 제가 오해한 게 있어서 그랬어요. 아무 문제도 없어요."
묘하게 얼굴이 붉은 수진이 신경 쓰였지만 혼을 내서 그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수진과 태양은 자연스럽게 선도실을 나오자마자 문을 닫았다.
안을 절대로 보여 줄 수 없다는 행동이었지만 장두철은 눈치채지 못했다.
"백태양 생도, 너의 반 담임을 맡게 된 장두철이라고 한다."
잘 부탁한다, 장두철의 말에 태양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영상과도 너무 다른 모습에 두철은 혼란을 느꼈다.
반항적일 줄 알았는데 너무나 유순한 모습에 뭐가 진짠 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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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큰일 날 뻔했어.'
방금까지 있었던 일이 들켰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똥꼬쇼는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필사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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