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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371화 (371/372)

371화

‘화난 게 아니라면 여기서 뭔가를 더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냥 당황한 거라잖아. 기왕 발기도 했겠다, 이참에 가라앉히는 법을 알려주면서 돈독해지는 것도 괜찮지.’

초록빛 눈이 주위를 수상하게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숨어있는 호위는 없는 것 같았다. 그럼 됐다, 다시 우라엘 황태자에게 치근덕거려 볼까.

실비아의 간덩이가 다시 커졌다. 우라엘이 화난 게 아니란 걸 확인하고 나니 진도를 더 나가도 되겠다 싶어졌다.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우라엘의 주니어도 궁금하고 말이야. 크긴 한 것 같은데, 제대로 못 봤단 말이야!

단단히 마구니가 낀 그녀는 허리를 숙이며 우라엘에게 은근하게 속삭였다.

“저, 우라엘 저하, 제가 확실하게 진정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만….”

“하아,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우라엘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호기심이 들었는지 힐끗 그녀를 쳐다보았다. 흥분과 분노에 겨워 붉어진 눈가가 무척 섹시해 보였다. 저도 모르게 윗입술을 살짝 핥은 실비아는 초조한 기색을 숨기며 손을 싹싹 비볐다.

“아닙니다. 이건 확실히 제가 도와주면 빠르게 가라앉는….”

튼실한 허벅지에 손은 얹는 순간 어디서 많이 들어본 불길한 소리가 그녀의 귓구멍에 때려 박혔다. 시스템의 경고음이었다.

삐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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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던전 : <황궁의 수상한 호수>가 열립니다.]

[<불순한 자를 처단하는 호수 괴물 오후 네시>가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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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악-!

물살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괴생명체가 수면 위로 떠 올랐다. 마치 모가지가 긴 공룡과 비슷한 생김새였다.

‘저게 뭐야? 갑자기 히든 던전이라고?’

경악한 실비아가 급히 인벤토리를 켜서 망치를 꺼내려고 하는데, 괴물이 추처럼 머리를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워낙 빨라 시야에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를 얼른 실행시켜 봤지만, 괴물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설마, 나보다 레벨이 높은 건가?!’

콰득-.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기도 전 실비아의 눈앞이 시커메졌다. 괴물이 그녀를 도륙 냈다. 자세한 설명은 잔인하니 생략하도록 하겠다….

“히잉!”

“푸르르!”

“이게 대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함께 림보와 포리쉐의 울부짖음, 그리고 우라엘 황태자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아득하게 들려왔다.

삐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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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레벨로는 <불순한 자를 처단하는 호수 괴물 오후 네시>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실비아는 한 입 거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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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이 찾아올 때면 늘 함께 들려오는 새드엔딩 곡과 함께 그녀의 정신이 완전히 끊어졌다. 잠시 후 칼이 내려오는 효과음과 함께 데드 엔딩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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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재주 많은 황궁 사용인1>인 당신은 게임 시작 <75일> 만에 <호숫가에서 황태자에게 개수작 부리다가 ‘불순한 자를 처단하는 호수 괴물 오후 네시’의 간식> 엔딩을 맞았습니다.

저런! <망령의 누런 옥수수>가 신호를 보냈을 텐데요. 아이템을 줬는데 왜 활용을 못 하니…. 욕정에 눈이 먼 당신은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말았군요. 괜찮습니다.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이니까요. 이것 또한 당신이 인간이라는 증거….

결국, 당신은 노엘, 루카, 블루만 먹고 나머지 동정 미남들은 입도 대지 못한 채 무(無)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실비아! 그래도 세 명이나 먹은 데다가 괴물의 일용할 양식이 됐으니 퍽 좋은 삶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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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방금 뭐지?’

정신을 차려보니 마지막 저장 지점이었다. 우라엘 황태자의 시중을 든답시고 개수작을 부리기 바로 직전. 어쩐지 으슬으슬하고 소름이 돋는다 싶더라니 <망령의 누런 옥수수>의 경고였을 줄이야!

‘좀 눈앞이 노랗게 된다거나 경고음을 들려준다거나 할 순 없어? 날도 점점 추워지는데 그걸 어떻게 경고로 알아듣겠냐구.’

이렇게 쓸모없는 아이템이라니. 실비아는 속으로 울분을 삼키며 서늘한 목을 쓰다듬었다. 너무 순식간에 죽은지라 고통은 크지 않았지만, 괴물의 뜨겁고 냄새나는 입속은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히든 던전’이라니. 세비스가 황궁에 있으면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걸로 보아 오염된 던전이랑은 또 다른 종류의 던전인 것 같았다. 아마도 황족을 보호하는 장치 중 하나겠지.

‘이래서 레벨 80까지 올려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구나. 하하. 정말, 늘 신선해, 또 짜릿해. 지루할 틈이 없다니까, 이 개~같은 게임!’

그라데이션 분노를 보이는 실비아의 낯빛이 울그락불그락했다.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지만 분풀이할 곳이 없어 속부터 곪아가는 느낌이었다. 게임을 욕해봤자 어쩌겠는가. 나태 지옥에 가지 않을 기회를 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해야 할 처지인걸.

‘참자…. 다시 한번 결심하겠어. 공략조건 달성 전엔 우라엘에게 함부로 손대지 않기로.’

실비아는 또 한 번 소용 없을 다짐을 했다. 다짐 후에도 그녀는 기회가 오면 개수작을 부릴 것이다, 늘 그랬듯이. 적극적이면서도 소극적인 성격.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실비아의 이상 행동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데드 엔딩이 적극적인 그녀를 소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단세포인지라 금방 잊고 또다시 개수작을 부리겠지.

방금 겪은 데드엔딩의 후유증으로 실비아의 눈이 퀭해졌다. 음산한 미소를 지은 그녀가 좀비처럼 다가오자 포리쉐가 경계심 어린 시선을 던졌다. 포리쉐를 쓰다듬은 황태자가 차분한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하, 혼자만의 노예플을 즐길 때까지가 딱 안전 지점이었나 보다. 어쩐지 흑기사들이 황태자가 홀로 산책을 나선다고 할 때 별다른 소리를 안 하더라니, 이게 다 망할 놈의 ‘불순한 어쩌구 오후 네시’인지 뭔지 하는 괴물의 존재를 알고 있어서인 게 틀림없었다.

실비아가 손수건을 든 채 약쟁이처럼 흐물거리며 다가오자 우라엘의 미간에 실금이 그였다.

쟤는 걸핏하면 얼굴을 구기네. 실비아는 언짢아졌지만, 겉으론 티 내지 않았다. 자칫 황태자의 심기를 거스르면 ‘불순한 어쩌구’가 또 발동할 수 있었다. 속으로 툴툴대던 실비아는 얌전히 눈을 내리깔았다.

곧 우라엘의 붉은 입술이 벌어졌다.

“방금 하다만 말이 뭐지? 다시 말해 봐.”

그 말이 뭔데? 데드엔딩의 여파로 뇌세포도 몇억 개 사라진 것 같았다. 입을 멍하니 벌리며 고개를 갸웃하던 실비아는 마지막 저장 전 자신이 호들갑을 떨며 우라엘의 옷을 닦아주려고 했었단 걸 기억해냈다. 그녀는 포리쉐의 주둥이를 치우곤 황태자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예. 저하의 제복에 얼룩이 있으셔서 닦아드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귀한 몸을 저같이 미천한 자가 함부로 손댈 순 없는 법이죠. 저하께서 친히 닦으시…는 건 안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방금 찝쩍거리다가 죽었는데 또 황태자의 몸에 손대고 싶진 않았다. 직접 닦으라며 손수건을 건네려던 실비아는 우라엘의 된서리 같은 눈빛과 마주치곤 바로 말을 바꿨다. 불순하게 몸을 만지작거리는 것도 안 될 일이지만, 사용인이 황태자보고 스스로 몸을 닦으라는 건 더더욱 안 될 일이었다. 꺼림칙했지만 다시 한번 우라엘의 몸을 만지는 수밖에.

실비아는 아까와 달리 무척 건전한 손길로 그의 제복을 닦았다. 툭툭거리며 우라엘의 몸 여기저기를 치자 그의 눈빛이 또 싸늘해졌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예? 앗, 저하.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이렇게 툭툭 치며 닦아야 더 잘 닦인다고 들어서…. 평민들 옷 닦을 때 꿀팁입니다.”

싸늘한 눈빛도 익숙해진 탓인지 전처럼 겁나진 않았다. 더 겁나는 건 호수에 숨어있는 ‘오후 네시’ 그 망할 괴물이었다. 혹시나 우라엘이 불쾌해하면 괴물이 튀어나올 수도 있었기에 실비아는 황급히 변명을 내뱉었다.

“꿀팁?”

“그, 꿀처럼 달달한 요령이라고나 할까요. 어, 어찌 됐든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이 손수건은 이런 꿀팁 따위 없어도 잘 닦이는 것 같으니 제대로 닦겠습니다, 하핫….”

호숫가를 힐끗댄 실비아는 비굴한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우라엘의 제복을 박박 닦았다. 엄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전에 바지에 묻은 얼룩도 재빨리 토닥거리며 닦아 버렸다. 매직 수세미 같은 손수건 덕에 순식간에 우라엘의 제복이 말끔해졌다.

‘오후 네시’ 개새끼가 나타날까 봐 어찌나 쫄았는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실비아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활짝 미소지었다.

“다 됐습니다, 저하.”

“그래. 근데 기분이 뭔가….”

우라엘은 시선을 바닥에 둔 채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 그의 풍성한 속눈썹이 천천히 깜빡였다.

미니 백에 손수건을 집어넣던 실비아는 영문 모를 그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네?”

“아니야. 호수를 마저 돌아야겠어.”

흘러내린 앞머리를 우아하게 쓸어넘긴 황태자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실비아는 한 걸음 뒤에서 그런 그를 따라갔다. 너른 등을 보고 있자니 방금 전 그를 발기시켰던 추억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입맛을 다시던 그녀는 순간 경계하며 호숫가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수면은 고요했다. 하지만 ‘오후 네시’ 개자식이 언제 깜짝 등장할지 몰랐다. 그녀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며 살금살금 걸었다.

‘그러고 보니 그 괴물, 엄청 컸었지? <손은 눈보다 빠르다>를 써도 움직임을 파악할 수 없었어. 레벨을 다 올리기 전까진 조심해야…. 가만, 혹시 황궁 안에 이런 히든 던전이 또 있는 것 아냐? 호수의 괴물은 무리라도 적당히 상대 가능한 괴물이 있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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