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화
충동적으로 손을 뻗으려던 우라엘은 멈칫했다. 그녀가 제 시중을 드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제가 그녀의 머리를 만지는 건 호감의 표현이었다. 아무리 여자를 만나본 적 없는 우라엘이라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냥 만져보고 싶었던 거지,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니 오해 살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지.
하지만, 굳이 참을 필요가 있나? 그는 이 황궁 내에서 하고 싶은 걸 자제하지 않아도 되는 몇 안 되는 이 중 하나였다. 우라엘은 일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을 참은 전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 사용인과 함께 있을 때면 남의 이목 때문에 행동을 조심하게 되고, 말을 하려다 마는 일이 늘어났다.
왜,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굳이 자제할 필요가 없단 결론을 내렸지만, 여전히 우라엘의 손은 쉽게 올라가지 못했다.
“푸르르….”
끝나지 않는 이상한 시중에 지루해진 포리쉐는 둘에게서 떨어져 나와 호숫가로 향했다. 물을 좋아하는 포리쉐는 호숫가에 난 풀들도 무척 좋아했다.
포리쉐가 풀을 뜯고 있자 림보도 인간 둘이 뭐하든 말든 신경 끄고, 포리쉐를 따라 풀을 뜯기 시작했다. 포리쉐와 달리 림보는 길가에 난 풀은 맛대가리 없어서 먹지 않지만, 포리쉐한테 호감을 사기 위해서 그도 억지로 웃어가며 풀을 뜯었다.
“...히잉?”
애써 질긴 풀을 우적우적 씹으며 포리쉐와 같은 입맛을 가졌단 걸 어필하던 림보는 수상한 기척에 털을 쭈뼛 세웠다. 잔잔하던 호수에 점점 파동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깜짝 놀란 림보가 포리쉐한테 뭐라 뭐라 말하려는 순간 호수가 다시 잠잠해졌다. 림보는 고개를 갸웃하며 수면에 제 얼굴을 비췄다.
‘뭐야, 왜 이렇게 추워.’
계속 제 욕심을 채우던 실비아는 순간 오싹한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을 날씨라서 그런가,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야외라서 춥네. 적당히 하고 자리를 옮길까? 아니지. 적당히는 개뿔, 한 게 뭐 있다고 적당히야. 실비아는 속으로 자문자답하며 강한 현타를 느꼈다.
그래, 한 거라곤 우라엘 황태자의 제복을 성심성의껏 닦은 것뿐이다. 뭘 주무르지도 않았고 꼬집거나 핥지도 않았다. 이런 건전한 일을 하며 일방적으로 느끼다니, 변태 중에도 최하급 변태가 된 기분이었다.
뭐, 반응이 돌아와야 할 맛이 나지 않겠어? 황태자면 어? 나같이 섹시한 사용인을 가만두지 말라고! 으슥한 풀숲에서 잔뜩 혼내거나 하란 말이야. 기껏 다이아몬드 수저 물고 태어나놓고 활용을 못 하고 있으니 원. 잡생각을 잠시 한 실비아는 손수건을 접으며 입을 열었다.
“황태자 저하, 많이 기다리셨죠? 이쯤이면 옷이 깨끗해진 것 같습니다. 손수건이 참 좋네요. 마법이라도 걸려있는 건지….”
손수건으로 닦은 것뿐인데 황태자의 상의가 살균 세탁한 것처럼 깨끗해졌다. 포리쉐용 손수건이 있는 게 괜한 게 아니었구나. 실비아는 감탄하며 쓰임을 다한 고급 손수건을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가만히 기다려도 우라엘 황태자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설마 고개를 끄덕였는데 내가 못 본 건가? 아차 싶었던 실비아는 숙이고 있던 얼굴을 들었다. 그 순간, 황태자가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실비아, 시중을 마저 들어야지.”
“네?! 어, 어떤 시중요? 지금 제가 땀을 좀 많이 흘려서….”
이건 19금 뽕빨 소설의 단골 레퍼토리!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던 시녀 여주에게 황태자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음탕한 시중을 들라고 요구하는, 바로 그것 아닌가.
음란마귀가 잔뜩 낀 실비아가 저도 모르게 어떤 시중이냐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눈이 으슥한 장소를 찾아 바쁘게 굴렀다.
생뚱맞은 물음에 우라엘의 미간이 좁아졌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던 걸 마저 하라는 소리야. 바지가 아직 더럽잖아.”
“아, 아아.... 그, 그렇네요.”
그의 말대로 새하얘진 상의와 달리 하의엔 진흙이 점점이 묻어 있었다. 실비아는 얼굴이 살짝 상기된 채 더듬대며 대답했다.
바지를 닦으라고? 세에상에나! 그러려면 무릎을 꿇어야 하잖아. 자세가 정말 야릇해질 텐데! 무릎 꿇은 채 탄탄한 허벅지를 만지면서 바지를 쓰다듬으라니. 그러다 보면 내 더운 숨결이 말 못 할 부위에 훅 끼쳐질 거 아냐. 아래는 차마 손대지 못하고 있었건만, 먼저 하라고 말해주면 오예지.
우라엘은 무릎을 꿇으라거나 허벅지를 쓰다듬으라는 말 따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이 시뻘게진 실비아는 이미 노예플을 자청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얼굴이 발그레해진 실비아가 새 손수건을 꺼낸 뒤 주저하자 우라엘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털썩!
실비아가 갑자기 제 앞에서 무릎을 꿇자 푸른 눈에 경악이 서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실비아는 우라엘의 종아리를 잡고는 매직 수세미 같은 손수건으로 얼룩을 열심히 닦았다. 마냥 처연해 보였던 우라엘이건만, 종아리가 은근히 탄탄했다. 그녀는 거칠어진 호흡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시중에 매진했다.
입술을 달싹거리던 우라엘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왜 무릎을...!”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후우, 하지만 저는 늘, 어떤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입니다. 저하.”
종아리를 잡은 채 손을 멈춘 실비아가 촉촉한 눈으로 우라엘을 올려다봤다. 심지어 종아리에 기대고 있는 건지 얼굴을 비비고 있는 건지 구분이 안 되는 자세였는데, 마치 노예처럼 보이는 그 모습에 우라엘의 눈이 흔들렸다.
‘대체 왜 이러는 거지?’
바지가 정말 더럽기도 했고, 실비아가 시중드는 게 묘하게 기분이 좋았기에 하던 걸 마저 하라고 한 거였다. 하지만 무릎을 꿇은 채 바지를 닦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시중드는 건 사막 왕국의 노예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노예 제도가 없는 엘리셔스 제국에서는 사용인들이 황족에게 예의를 갖출지언정 이런 굴종적인 자세는 하지 않았다. 방금 제 말투가 지나치게 강압적이었던가? 이런 자세를 취하며 충성심을 보일 정도로?
하지만 실비아가 취한 자세는 단지 충성스러워 보이는 것 말고도 다른 효과가 있었다. 황태자의 다리를 쓰다듬으며 가느스름하게 뜬 눈으로 올려다보는 실비아의 모습은 은근히 자극적이었다. 속된 말로 은꼴이라고나 할까.
눈을 부릅뜬 채 내려다보던 우라엘의 호흡이 점점 불규칙적으로 변했다. 다리를 나긋하게 매만지는 손길, 지배욕을 불러일으키는 자세, 그리고 야릇한 표정의 콜라보는 여자에 면역이 없는 그가 견디기엔 너무 막강했다.
어느새 도자기같이 하얗던 얼굴로 열이 몰리고 가슴께가 간질거렸다. 그뿐이면 다행이겠는데, 아래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처음 겪는 몸 상태에 우라엘의 동공이 흔들렸다.
가까이 붙어있던 실비아의 귀에 우라엘의 거칠어진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손을 더욱 은밀히 움직였다.
‘어때? 반응이 슬슬 오나? 이렇게까지 하는데 아무 반응 없으면 남주 자격 박탈이야.’
무릎을 꿇은 건 다분히 충동적인 행동이었지만, 의외의 결과를 얻었다. 원래는 우라엘의 허락 없이 일방적으로 노예플을 즐기려던 의도였건만, 이 자세가 그를 은근히 꼴리게 할 줄이야.
‘그래. 목표 상향이다. 우라엘, 오늘 네 것을 세우고 말겠어.’
실비아는 굳게 다짐하며 손을 더 야릇하게 움직였다. 실수인 척 그의 다리에 가슴을 스치기도 했다.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며 새초롬하게 눈을 깜빡이자 우라엘이 초조한 듯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쓸었다. 아슬아슬한 황태자의 표정을 보니 고지가 코앞인 듯했다. 신이 나서 다리 사이를 슬쩍 관찰한 실비아는 아직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자 안달이 났다.
이쯤이면 다른 남주들은 이미 풀발기하고도 남았을 텐데, 우라엘은 차분한 성격이라서 그런지 흥분도 쉽게 안 하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어디 문제가 있는 걸까.
‘설마, 남주의 기본 조건은 고추 튼튼이야. 아무리 청순하게 생긴 우라엘이라도 아래는 분명히 거대하고 흉흉할 텐데…. 그럼…. 옷이 문젠가? 이 바지가 강철로 만들어진 바지인가? 아니면 팬티가 강철인가. 어째서 다리 사이가 잠잠한 거지? 어서 세워. 발기하라고. 일주일 버텼으면 많이 버틴 거잖아. 내 인내심은 길지 않아. 최소한 네 고추가 서는 걸 오늘 봐야겠다고!’
급해진 실비아는 갑자기 무릎을 세우고 일어나더니 허벅지 쪽에 손을 뻗었다. 은꼴로 안 되면 대놓고 꼴리게 만드는 방법이 있었다. 미니 백에서 다급하게 손수건 두 개를 꺼낸 실비아는 양손을 모두 우라엘의 허벅지에 댔다.
“…잠깐, 어디에 손대는 거야.”
“네? 저하. 저하께서 시중을 마저 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하던 걸 마저, 후우. 마저 할 뿐입니다.”
“하….”
우라엘은 건전한 생각을 하며 다리 사이로 몰리는 열기를 애써 분산시키는 중이었다. 평소에 흥분할 일이 없는 차분한 성격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의 성공이었건만. 그는 제 중심부 주변에 닿는 따뜻한 온기에 경악하며 눈을 부릅떴다.
황급히 시선을 내려보니 일차로는 이상한 사용인의 두 손이 양쪽 허벅지에 각각 얹혀 있었다. 그리고 이차로는 그녀의 얼굴이 정확히 제 사타구니 앞에 자리했다. 거리가 아슬아슬했기에 후덥지근한 숨결이 예민한 부위를 뭉근하게 덥혔다.
대체 어떤 사용인이 황족의 중요 부위 앞에 얼굴을 들이댄단 말인가. 당황스러움에 실비아의 머리에 손을 댄 우라엘이 그녀를 제지했다.
“이제 됐다. 바지는 충분히 깨끗해진 것 같으니 일어나도....”
“이것 놓으세요, 저하! 저는 늘! 어떤 일이라도 최선을 다한다고 말씀드렸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대체 이 자세로 뭘 어쩌겠다는.... 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