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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368화 (368/372)

368화

우라엘 황태자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가 있었다. 그는 속을 알 수 없는 푸른 눈으로 실비아를 응시했는데, 그녀가 빤히 바라보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지, 장난치는 건가? 아니지, 저 비싼 입에서 농담이 나올 리가 없잖아? 그럼 협박인가.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서 황궁에서 나가라는 협박 말이지.’

이미 여러 번 헛물을 들이켰던 실비아는 경계심 어린 눈으로 황태자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황태자가 일개 사용인에게 협박할 이유가 뭐가 있겠나. 아무리 봐도 농담하는 것 같았다. 진심으로 심신미약인 게 거슬렸다면 표정이 안 좋았겠지.

그녀의 심각한 표정에 우라엘 황태자의 희미한 미소가 사라졌다. 다시 무표정이 된 그는 포리쉐 곁으로 다가와 말목을 부드럽게 쓸었다. 힐끗 보니 살짝 어색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지하 감옥에 보내지 않을 테니 염려하지 않아도 돼. 함부로 농담도 못 하겠군.”

“아! 다행입니다, 저하.”

농담이라니. 저 차갑고 고고한 우라엘이? 실비아는 속으로 꽤 놀랐으나 애써 태연하게 대답했다. 저 성격에 농담이란 걸 구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우라엘이 헛기침을 하더니 차분한 목소리를 냈다.

“그 정신으로 포리쉐한테 실수할까 봐 걱정되긴 해. 하지만 그대는 제국에 필요한 인재이니, 아량을 베풀어 특별히 봐주도록 하지.”

“가, 감사합니다, 황태자 저하.”

실비아는 허리를 꾸벅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녀가 다시 고개를 올리려는 찰나 포리쉐가 몸을 틀었다.

순간 따뜻한 온기가 그녀의 뺨에 닿았다. 우라엘 황태자의 손이 포리쉐와 부딪힐 뻔한 실비아를 막아준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던 우라엘의 표정이 굳었다.

“아, 이건….”

그는 바로 손을 빼내려고 했으나 포리쉐가 우라엘의 손등에 말머리를 비비적거렸다. 주인의 손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전조도 없이 훅 들어온 접촉에 실비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심지어 잠시 붙었다 떨어지는 접촉이 아닌 손과 뺨이 부비부비를 하는 상황이라니. 물론 우라엘의 의지가 아니라 포리쉐 덕이었지만 말이다.

‘고마워, 따봉 포리쉐야. 네 시중을 든 보람이 있구나. 앞으로도 열심히 시중들 테니 더 힘내주렴.’

“히잉!”

우라엘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굳어있던 찰나, 갑자기 림보가 실비아를 뒤에서 밀었다. 포리쉐와 붙어있는 그녀를 시샘한 듯했다.

‘그래, 너도 그동안 먹인 유기농 당근 값은 해야지.’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실비아는 괜히 발을 삐끗하는 척하며 우라엘에게 몸을 부딪쳤다. 어디까지나 부딪쳤단 소리다.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살벌한 황궁 안이다. 아무리 오늘만 사는 그녀라지만 황태자를 대놓고 껴안을 용기는 없었다.

하얀 제복에 넘어지듯 몸을 부딪친 실비아는 탄탄한 가슴팍에 잠시 얼굴을 묻었다가 급히 고개를 들었다. 고급스러운 체향에 순간 정신을 다 놔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정신을 놨다간 목숨줄도 놓는 수가 있었다. 그녀는 괜히 림보를 힐끗거리며 우라엘의 제복을 붙들었다.

“어맛, 저하, 죄송합니다. 갑자기 말들이 웬 난리를….”

“이게 무슨.”

굳어있던 우라엘은 황급히 표정을 굳혔다. 그는 말을 채 이어가지 못하고 입을 뻐끔거렸다. 충격을 많이 받은 것처럼 보였기에 실비아는 아쉬움을 감추고 제복을 놓아주었다.

그는 뒷걸음질 치다가 나무에 등을 부딪쳤다. 푸른 눈이 풍랑을 만난 배처럼 흔들렸다.

“이건…. 포리쉐가 다칠까 봐 손을 댄 거야. 다른 의도는 없었으니까 착각하지 말도록.”

“…제가 포리쉐를 해치지 않게 손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하.”

귀 끝이 빨개진 우라엘 황태자는 고개를 대충 끄덕이고는 밭은 숨을 내뱉었다. 놀란 기색이 역력한 황태자의 곁으로 포리쉐가 다가와 다시 비비적거렸다.

‘나도 저 광활한 가슴팍에 얼굴을 비빌 순 없을까나….’

이럴 땐 한낱 인간인 게 참 서러웠다. 하다못해 들개라도 됐으면 우라엘 황태자의 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애교를 피워도 됐을 텐데….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으려니 림보가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실비아만 알아볼 수 있게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뭐야, 이 기특한 말 자식. 포리쉐한테 넋이 나가서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줄 알았더니! 나를 위해서 일부러 민 거였어? 이제야 키워준 값을 하는구나. 장성한 자식이 첫 월급 기념으로 선물을 사줄 때 이런 기분일까. 실비아는 시큰해진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훔치며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림보야….”

“히잉.”

“림보, 림보야?”

그러나 감동을 채 나누기도 전 림보의 고개는 다시 포리쉐에게로 돌아갔다. 실비아가 여러 번 불러봤으나 그는 포리쉐한테 한눈파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어이없게도 포리쉐의 주인인 황태자에게 질투심을 느끼는지 림보의 검은 눈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아까의 윙크는 눈에 흙이 들어갔던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온통 포리쉐에게만 집중하는 림보의 모습에 실비아의 입이 삐죽거렸다.

‘그럼 그렇지. 뭘 바라겠어.’

언짢은 표정으로 림보를 째려본 실비아는 우라엘 황태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뭐 더 집적거릴 만한 거 없나 살피기 위해서였다. 조금의 접촉으로는 갈증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황태자는 포리쉐의 애교 덕에 기분이 한결 나아진 듯 차분한 표정이었다.

그를 진득한 눈길로 위아래로 훑어보던 실비아는 하얀 제복에 묻은 얼룩을 발견했다. 실비아가 몸통 박치기를 한 탓에 제복에 흙이 묻은 모양이었다. 조금 전 흙바닥에서 뭉갠 탓에 그녀의 시녀복에는 털어내지 못한 진흙이 군데군데 묻어있었으니까.

“어머, 저하. 저하의 순결한 제복에 얼룩이….”

미니 백에서 고급 손수건을 꺼낸 실비아는 호들갑을 떨며 우라엘에게 다가갔다. 개수작을 부릴 예정이기에 게임 저장을 한 번 더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나 깨나 조심하자, 데드 엔딩.

초록빛 눈에 감도는 도라이 기운에 포리쉐가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응시했다. 실비아는 포리쉐의 주둥이를 손으로 가뿐히 치우며 그 사이로 파고들었다.

“어우, 이거 봐. 죄송해서 어째요. 아까 부딪히는 바람에 이 비싼 제복이 엉망이 됐네요.”

“잠깐, 뭐 하는 거….”

레이스 손수건을 든 손이 이곳저곳을 찍먹했다. 거침없이 문지르는 손길에 우라엘의 눈에 당황이 서렸다.

그러든가 말든가, 실비아는 이미 게임 저장도 했겠다, 자제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나무와 포리쉐 때문에 퇴로가 막힌 우라엘을 가둔 채 손을 현란하게 움직였다. 그가 옆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할 의도였다. 광활한 초원처럼 펼쳐진 너른 가슴팍과 단단한 팔을 찍먹한 뒤에 복근이 숨겨져 있을 배 쪽으로 손이 미끄러져 내려왔다.

단순히 얼룩을 닦아준다고 보기엔 미심쩍은 손짓이었다. 꺼림칙한 손 움직임에 우라엘이 파드득 몸을 떨며 고개를 저었다.

“그만…. 내가 닦을 테니 이리 줘.”

“어머머, 저하. 여기 뻔히 시중들 사람이 앞에 있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황태자 저하가 직접 몸을 닦으셨단 게 소문이라도 나면, 같이 있던 제가 곤란해집니다.”

실비아는 도리도리 고개를 젓곤 다시 우라엘의 몸에 집중했다. 그녀는 제 변태 같은 미소를 들킬까 봐 고개를 푹 숙여야 했다.

우라엘은 답지 않게 안절부절못하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상한 사용인의 손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뜨거운 것에 덴 것처럼 피부가 화끈했다. 옷 위로 닿는 손길인데 왜 그런 걸까.

그는 재차 그만하라고 말하려고 입을 달싹거렸다. 그러나 손길이 이어질수록 기분이 묘했다. 결국, 살짝 벌어졌던 붉은 입술이 다시 굳게 다물어졌다.

‘왜 이렇지? 시중받는 건 당연한 일인데 어째서 어색하고 숨이 턱 막히는 거야.’

그녀의 말대로 황태자인 제가 시중들 사용인을 내버려 두고 스스로 몸을 정돈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점점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지나치게 뛰는 게, 몸 상태가 심상찮았다. 하지만 손길이 마냥 싫은 건 아니라서, 아니, 오히려 기분이 좋아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이상해. 다른 사용인들이 시중들 땐 이런 기분이 아니었는데.’

흑기사들이 철통 수비를 한 탓에 여성과 교류할 기회가 거의 전무한 우라엘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중을 남자 사용인에게만 받은 건 아니었다. 세심한 치장이나 옷매무새를 정돈하는 일은 시녀들이 해준 적도 꽤 많았다. 실비아와 비슷한 나이대의 시녀들이 그의 환복을 도와줄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맨몸을 그들 앞에 보이기도 했다.

사용인들은 황족의 수족 같은 존재이기에 그들 앞에선 무슨 일을 해도 아무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여자의 손길 하나에 이런 낯선 느낌이 드는 걸까.

우라엘 황태자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실비아는 제 욕심을 마음껏 채웠다. 대놓고 주물럭거리다간 아무리 여자를 잘 모르는 우라엘이라도 수상하게 여길 수도 있었다. 그래서 참수당하지 않게 적당히 선을 지키며 은근슬쩍 손에 닿는 환상적인 몸매를 즐겼다.

물론 진흙을 닦아준다는 기본 철칙은 지켜가면서 쓰다듬었다. 원래 횡령할 때도 회사 생활을 성실하게 하며 빼돌려야 완벽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법이니까.

‘더 아래로 손을 뻗는 건 위험하려나.’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 실비아는 번들거리는 초록빛 눈으로 우라엘의 상체를 훑었다. 고급 손수건에 매직 수세미가 되는 마법이라도 걸어놓은 건지, 아니면 구석구석 음란한 마음을 가득 담아 꼼꼼하게 문지른 덕인지 하얀 제복 상의가 새것같이 말끔해졌다.

이제 위는 더 할 게 없어 보이는데 말이야. 그럼 이제…. 실비아는 아래로 향하려는 눈깔을 가까스로 붙들었다. 더 가면 위험수위였다.

‘후우, 아직 일러. 눈깔 단속하자.’

불순한 눈길을 다잡은 실비아는 뻣뻣한 손길로 우라엘의 구겨진 상의를 정돈했다. 속마음 같아선 여기저기 움켜쥐고 싶은 부위가 많았으나, 그랬다간 뒷감당이 힘들 터였다.

우라엘은 제 의복을 지나치리만큼 깔끔하게 정돈해주는 실비아의 귀여운 정수리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조그만 사용인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는 윤기 나는 갈색 머리통이 꼭 밤톨 같다고 생각했다.

‘엄청 부드러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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