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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364화 (364/372)

364화

잠시 후, 기사를 태운 림보가 자율주행으로 마구간에 도착했다. 승차감에 감탄하던 기사는 바닥에 내려온 후 림보를 실비아 앞에 대령했다.

“여기, 이게 네 반려마 맞지?”

“앗, 네. 맞아요!”

림보는 포리쉐를 보고 멍해 있다가 실비아를 뒤늦게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곤란한 처지의 주인 얼굴보다 좋아하는 말부터 먼저 살피는 반려마라니. 참 게임 꼴 잘 돌아간다 싶었다.

‘으휴, 이놈이나 저놈이나. 아무도 내 편이 없…. 헉, 뭘 저렇게 노려본담.’

속으로 구시렁거리다가 우라엘을 힐끗 쳐다본 그녀는 싸늘한 눈빛에 소스라치게 놀라 얼른 림보 위에 올라탔다. 저 얼굴에 대고 또 질문을 던졌다간 이번에야말로 참수행이란 강한 예감이 들었다.

그녀가 무사히 림보 위에 오르자 흑기사 7인이 각자의 말을 꺼내와 올라탔다. 고삐를 쥔 실비아는 두리번거리다가 말에 올라탄 기사 중 한 명에게 넌지시 질문했다. 차마 우라엘 황태자에게 더 말을 걸기가 겁나서였다.

“저, 어디로 가는 건가요?”

“저하가 가시는 대로.”

기사는 짧게 대답한 뒤 시선을 돌렸다. 어쩜 황궁에서 사는 것들은 하나같이 싸가지들이 없을까. 대기 중에 방사능이라도 흐르는 걸까. 입술을 삐죽거린 실비아는 림보에게 포리쉐를 따라가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림보가 이를 훤히 드러내며 미소 지었다.

“이랴!”

우라엘 황태자가 출발하자 기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실비아도 얼른 림보의 등을 두드리며 출발하라고 재촉했다. 림보는 기분이 아주 좋은지 목을 흔들며 포리쉐를 뒤쫓았다.

고삐만 겨우 쥐고 있는 실비아와 달리 황태자는 직접 말을 몰았다. 승마에 대해 잘 모르는 실비아가 뒤에서 봐도 승마 실력이 상당했다. 외제마에게 자율주행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쓰지 않았는데, 그 노련해 보이는 모습이 부러웠다.

‘나중에 승마를 익혀볼까. 자율주행으로 다녔더니 말 탄 지가 어언 두 달이 넘었는데도 아직 제대로 앉지도 못하잖아. 저렇게 멋있게 말을 탈 수 있다면 딱 좋겠는데.’

림보를 게임 초반부터 얻은 덕에 아직까지 그녀는 말을 잘 타지 못했다. 그동안은 인식하지 못했는데, 반려마를 기른다고 하면서 말 등 위에 제대로 올라타지도 못하는 걸 만인에게 생중계하자 새삼스럽게 민망해졌다.

황태자의 뒤를 한참 쫓아갔을까. 곧 황궁에 있는 줄도 몰랐던 광활한 푸른 초원이 나타났다. 저번의 동산과는 또 다른 곳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고 멀리서는 새소리가 들렸다. 멀리 내다보니 키가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숲이 보였다.

‘대체 황궁 부지는 얼마나 넓은 거야? 동산과 정원만 해도 엄청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들판과 숲까지 있다니.’

엘리셔스 제국의 황궁이 소도시 수준으로 크단 말은 밖에서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동산에 이어 이런 푸르른 초원이 나타날 줄이야. 실비아는 어마어마한 황궁 클래스에 입을 멍하니 벌렸다.

림보가 포리쉐를 따라 빠르게 달리자 그녀의 갈색 머리를 바람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쌀쌀한 날씨 탓에 바람이 꽤 매서웠다. 실비아가 몸을 부르르 떠는데, 푸르른 초원 한가운데에 들어선 황태자가 포리쉐를 멈춰 세웠다. 그가 멈추자 흑기사들도 신속하게 말을 세웠다.

우라엘은 말에서 가뿐하게 내린 뒤 뒤를 돌아봤다. 실비아를 위해 몸을 낮춰주는 림보를 응시하던 황태자는 포리쉐의 목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저 말이 그대의 반려마였군.”

“네, 저하.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파티장의 디저트를 다 먹어 치웠다고요. 림보가 맛있는 걸 워낙 좋아해서요. 벌도 충분히 받은 데다가 짐승이 맛있는 걸 좋아하는 건 당연한 세상의 이치이니,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 반려마는 원래 주인을 닮는 법이지.”

우라엘 황태자는 피식거리더니 곧바로 뒤돌았다. 포리쉐의 고삐를 쥔 그가 천천히 걷자 기사들과 실비아는 얼른 뒤를 따랐다.

방금 비웃은 거 맞지? 실비아는 우라엘의 뒤통수를 몰래 째려보았다. 제 딴에는 최대한 공손하게 말한 것 같은데 비웃음으로 대답하다니, 혹시 황태자의 가정교육이 전무했던 건 아닌가 하는 합당한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 림보와 내가 닮았다니, 무슨 말일까. 먹성이 좋단 소린가? 아니면 사고뭉치인 게 닮았단 소린가. 우라엘 황태자 앞에서 뭘 많이 먹은 기억은 없으니 후자 같았다.

‘참나! 난 딱히 큰 사고를 친 기억이 없단 말이야. 억울해.’

행동이 닮았단 게 아니라 생김새가 닮았단 걸까? 실비아는 옆에서 따라 걷는 림보의 면상을 훑어보았다. 그의 눈은 저 앞에서 걸어가는 포리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입을 헤 벌린 탓에 주둥이가 뒤집혀 있는 게 무척 못 생겨 보였다.

‘내가 림보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얘랑 내 생김새가 닮았다는 건 좀, 수치스러운데.’

정말 닮았다고 생각한다면 황태자는 눈깔이 단단히 삔 거였다. 실비아는 속으로 씩씩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황태자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제멋대로 훈련장으로 가 기사들과 술래잡기를 했던 기억은 실비아의 머릿속에 없었다. 정확히는 우라엘이 처벌하지 않고 넘어갔기에 사고를 쳤다는 인식 자체를 못한 거지만.

그때, 멍때리며 뒤따라가던 실비아의 귓가에 우라엘 황태자의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반려마를 아끼는 건 알겠지만, 일은 제대로 해야지?”

“네? 앗, 죄송합니다. 저하.”

포리쉐를 돌보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얌전히 기다리란 뜻으로 림보를 토닥인 뒤 포리쉐 곁으로 다가갔다. 손을 싹싹 비벼서 빗을 불러낸 실비아는 바람으로 엉망이 된 말 털을 가지런히 빗었다. 그다음 미니백에서 최고급 손수건을 꺼내 더러워진 말발굽을 정성스럽게 닦았다. 다행히 아까 초강력 접착제로 다시 붙여서 그런지 다이아몬드들은 제자리에 무사히 있었다.

“푸르르….”

투레질 소리에 실비아가 뒤를 힐끗거렸다. 다행히 림보는 한번 감시소에 갇힌 이력이 있어서인지 까불지 않고 얌전했다. 포리쉐 앞이라서 멋있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일단 그랬다. 기분 탓인지 눈을 아련하게 뜬 채 바람을 느끼는 모습이 명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명마처럼 보였다. 그는 비스듬히 잔디밭에 앉아있었는데, 척 봐도 무척 불편한 자세였다.

‘가만 보니까 포리쉐 때문에 고상한 척하는 거네. 어휴, 완전히 맛이 갔구만.’

실비아는 림보의 이상한 자세에 고개를 가볍게 젓곤 손수건을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황태자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저하, 포리쉐 몸치장을 마쳤습니다.”

황태자는 바람에 흩날리는 제 머리를 정돈하더니 손을 내밀었다. 이제 김칫국 따위 마시지 않는 실비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손에 든 고삐를 건넸다. 그는 포리쉐를 끌고 천천히 숲을 향해 걸었고, 흑기사들이 말없이 그를 뒤따랐다.

어정쩡한 자세로 여전히 허세를 부리고 있는 림보를 툭툭 친 실비아는 서둘러 그들을 쫓아갔다. 한 십 분 정도 걸었을까. 지대가 점점 낮아지는 것 같더니 눈앞에 잔잔한 호수가 나타났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안에 어떤 물고기가 사는지 다 보일 정도였다.

“우와!”

잠시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에 감탄하던 실비아는 포리쉐를 힐끗 보곤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호수 근처는 물이 있는지라 무른 흙이었는데, 포리쉐가 젖은 흙을 밟고 다닌 탓에 기껏 열심히 닦았던 말발굽은 물론이고 다리까지 간간이 흙이 튀었다.

역시나 황태자가 가만히 실비아를 바라봤고, 그녀는 호출당하기 전에 잽싸게 튀어가 포리쉐의 몸을 돌봤다. 팔짱을 낀 황태자는 부지런히 포리쉐의 갈기를 빗는 실비아를 내려다보더니 입술을 뗐다.

“넌 제국 출신인가?”

“아닙니다, 저하. 저는 제국 출신이 아닙니다. 어쩌다가 이곳에 돈 벌러 왔다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래.”

더 물어볼까 싶어 할 말을 고르고 있는데, 황태자는 다행히 더 자세히 묻진 않았다. 그는 실비아의 손을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저번에 보니 마법사는 아니던데, 어떻게 차를 휘젓거나 망치에 불을 붙이는 기술을 익힌 거지?”

“네, 저하. 아시다시피 저는 마법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던전을 돌아다니면서 음, 비급을 얻거나 보물을 찾아서 신묘한 기술을 얻었습니다. 망치에 불이 붙은 것도 그 비급 중 하나고요.”

“비급?”

앗차, 저도 모르게 인터넷에서 주워들었던 무협 용어를 사용해버렸다. 실비아는 바로 단어를 정정했다.

“비급이 아니라 비밀 책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던전 깊숙한 비밀장소에 들어갔다가 마법에 준하는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신비한 책을 얻었습죠.”

“혹시 그 책을 볼 수 있나?”

우라엘 황태자의 눈에 흥미가 감돌았다. 볼 수 없어. 애초부터 없는 책이니까. 실비아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 적절한 대답을 찾아냈다.

“그 책에는 마법이 걸려있었습니다. 제가 기술을 익히자마자 스르륵 사라지더군요. 그래서, 저하께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보여드릴 수가 없겠네요.”

“그래? 흐음, 근데 좀 이상하군. 황궁에서 수많은 던전 공략자를 만났지만 던전에서 기술을 익혔다는 이는 본 적 없거든. 몬스터를 죽이거나 상자를 열면 간혹 귀한 물건이 나온단 얘기는 가끔 들었지만 말이야.”

우라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가 던전에서 기술을 획득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그렇겠지. 기술은 사실 던전에서 얻은 게 아니라 남주들을 실컷 …한 후에 획득한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차마 말할 순 없지만, 우라엘을 실컷 해버린 후에도 실비아는 요긴한 기술을 얻게 될 예정이었다.

우라엘의 말에 머리를 빠르게 굴린 그녀는 다시 적절한 변명을 찾아냈다.

“어휴, 이게 흔하게 나오는 게 아니에요. 저도 매번 들어갈 때마다 좋은 걸 얻진 못합니다. 운이 따라준 덕에 이것저것 얻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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