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359화 (359/372)

359화

그녀는 빠르게 주위를 훑어보았다. 헝겊 인형 패기에만 열중한 실비아와는 달리 기사들은 대련을 하거나 다른 체술을 익히고 있었다. 그 덕에 방치된 헝겊 인형이 몇 개 있었다.

기록 창을 열어 지나간 메시지를 보니 헝겊 인형을 ‘가격’하라고 쓰여 있을 뿐, 망치를 이용하라는 말은 없었다.

‘두 개를 쳐도 되는 걸까? 한번 시도해보겠어.’

실비아가 뜬금없이 옆에 서 있던 다른 헝겊 인형을 낑낑거리며 가져오자 샤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뭐 하시려는 건가요?”

“아, 두 개를 한꺼번에 때려보려고요. 제가 요즘 연마하는 기술이 있어서….”

물론 개뻥이었다. 그녀는 <손은 눈보다 빠르다>를 이용하여 헝겊 인형을 한꺼번에 빠르게 가격할 생각이었다. 인형들을 양옆에 하나씩 놓은 그녀는 샤이에게 몽둥이 두 개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스킬을 이용해 몽둥이로 헝겊 인형을 북 치듯이 번갈아 때리기 위해서였다.

훈련장 한복판에서 실비아가 기행을 펼치려고 하자 기사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다가왔다. 그들은 구경꾼처럼 좌르륵 앉아 기대하는 얼굴로 실비아를 바라봤다.

“이번엔 또 뭘 하시려는 걸까?”

“재밌겠다.”

그들의 손엔 누가 들고 온 주전부리인지 옥수수튀김이 한 상자씩 있었다. 생긴 게 영화관 팝콘과 흡사했다.

‘후훗. 주목받는 건 이제 익숙한걸. <손은 눈보다 빠르다> 스킬 사용!’

비장한 표정으로 인형들 사이에 선 실비아는 숨을 천천히 골랐다. 스킬 사용을 외치자 늘 그렇듯이 주변 공기가 느리게 흘렀다. 그녀는 우선 기사들이 놀라지 않게 리듬을 줘가며 양옆의 인형을 몽둥이로 한 차례씩 때렸다.

퉁, 퉁.

“핫, 차, 핫, 차!”

처음은 연습이었을 뿐. 점점 그녀의 북 치기 속도가 빨라졌다. 중모리장단으로 느리게 시작했다가 자진모리장단, 그리고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휘모리장단으로 환상적인 줘 패기 기술을 선보이자 기사들의 몸이 저절로 리듬을 탔다.

“이거 왠지 보고 있자니 점점 신나는데?”

“그러게. 좀 흥겨운 것 같기도 하고?”

“기왕이면 이것도 함께….”

옥수수튀김을 먹던 기사들은 주변에서 하나둘 뭔가를 주워 실비아 곁에 뒀다. 그녀는 무아지경에 빠져 주변에 있는 건 일단 두드리고 봤다. 쇠 양동이와 나무 의자, 그리고 은 갑옷을 입은 기사까지 함께 두드리자 마치 드럼을 연주하는 것 같은 화려한 소리가 훈련장에 울려 퍼졌다.

퉁, 탁, 퉁퉁, 타, 챙채래챙챙!

“여기서 공연하나 봐.”

“이게 뭐지.”

지나가던 사용인들과 들개들이 아름다운 소리에 홀려 훈련장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어느새 훈련장은 그녀의 공연을 보는 관객들로 가득 차 인산인해를 이뤘다.

인파를 본 황궁 요리사가 얼른 주전부리를 가져와 관람객들에게 팔았다. 이를 본 황궁 마법사가 빛 마법을 써 빛나는 몽둥이도 팔았다. 마치 현생의 응원봉 같은 거라고나 할까. 그렇게 훈련장 안에서 조그만 콘서트장이 형성됐다.

관객들은 빛나는 몽둥이를 흔들고 오징어를 뜯으며 함성을 질렀다.

“와아! 신난다!”

“정말 천상의 연주야.”

“오징어 팔아요~”

소란도 잠시, 스킬을 사용한 실비아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경악했다. 손이 여러 개로 보이는 환상이 펼쳐진 것이다. 범인의 눈으론 실비아의 손이 움직이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두둥, 타, 둥둥, 챙!

동대륙에 구전으로 떠도는 손이 여러 개인 파괴 신이 보이는 건 왜일까. 쑥대머리가 된 실비아의 연주를 지켜보던 관객들은 파괴 신이 현신해 그들에게 파멸의 음악을 들려주는 환상에 시달렸다. 실비아는 긴 머리를 정신없이 휘날리며 록 밴드 뺨치는 드럼 연주, 아니 몽둥이 휘두르기 실력을 보여주었다.

“으으, 영혼을 뺏긴 것 같아….”

“꺄악, 여기 사람이 쓰러졌어요!”

혼이 쏙 빠지는 연주를 보던 관객 중 몇 명이 지옥문이 열리는 환각에 시달리며 들것에 실려 나가는 사소한 일까지 있었다.

마지막으로 요란하게 손을 움직이며 몽둥이 실력을 보여준 실비아는 저도 모르게 쇼맨십을 발휘해 여러 바퀴 핑그르르 돌고는 제자리에 섰다. 그러곤 피날레로 은색 갑옷을 챙-소리 나게 줘팼다.

“끝!”

“와아아!”

그녀가 몽둥이 두 개를 든 채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자 관객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어떤 이는 손부채질을 하며 눈물을 말리기도 했다.

“와아! 왜 눈물이 나지….”

“정말 감동적인 연주였습니다.”

연주 그 이상의 감동. 무언가 크게 깨달은 표정의 관객들이 동전을 실비아 앞에 놓곤 떠나갔다. 춤을 춘 건 아니었는데, 공연이라서 그런지 때아닌 간식값이 생겼다.

‘음, 돈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준다면 안 받을 수 없지. 후우,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단 건 언제나 뿌듯한 일이야.’

흡족한 표정의 그녀가 주섬주섬 동전을 줍는 와중에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

[실비아는 간식값+a를 획득했다.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수고하셨습니다. 헝겊 인형1 (4200/10000)]

[와우, 손놀림이 장난이 아닌데? 헝겊 인형2 (1300/10000)]

———————————————

‘오오! 스킬을 쓰길 잘했어. 수치가 많이 올랐네. 거기다가 두 개를 때리는 것도 가능하다니. 이 헝겊 인형 두 개는 내 몫으로 따로 보관해달라고 말해야겠어.’

메시지 창을 본 실비아는 손으로 입을 막고 내적 환호성을 질렀다. 이런 식이면 다음 주쯤엔 2레벨을 한꺼번에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헝겊 인형 세 개도 가능하려나?

혹시나 해서 옆에 방치돼있던 다른 인형을 때린 실비아는 아무 메시지가 뜨지 않는 걸 보고 입맛을 다셨다. 아쉽게도 두 개가 동시에 때릴 수 있는 최대 개수인 모양이었다.

두들겨 팬 헝겊 인형 두 개를 제 뒤에 둔 그녀는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는 샤이를 돌아보았다.

“경제적 이득도 얻고 훈련도 하고 일석이조네요.”

“그, 그렇습니까. 실비아 님의 연주 실력에 사용인들이 눈물을 흘리더군요. 훌륭한 연주 실력 잘 봤습니다.”

“뭘요. 연주하려고 한 건 아니고…. 무아지경으로 몽둥이를 휘두르다 보니 제 안에 숨어있던 예술의 혼이 반응했다고나 할까요. 허허, 이 녀석. 나오지 말라니까 계속 기어 나오고 말이야. 적당히 해.”

굵은 목소리를 꾸며낸 실비아가 제 가슴을 툭툭 치며 예술의 혼인지 뭔지에게 말을 걸자 샤이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감동적인 연주 덕에 무슨 헛소리를 해도 먹히는 것 같았다. 실비아는 손사래를 치며 입을 열었다.

“방금은 농담이고요. 그냥 공격 기술을 연마한 것일 뿐이에요.”

“아! 그렇군요. 실비아 님은 전사가 아니라 예술 쪽으로 나가셔도 크게 될 분이신 것 같아요. 정말, 와…. 아, 이건 실례되는 말일 수도 있겠네요. 연주는 연주고, 기술 자체도 엄청 대단했어요. 손이 안 보이더라니까요! 실비아 님은 망치가 없어도 강하시군요.”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실비아는 뒷짐을 지곤 바람이 제 머리를 휘젓도록 놔뒀다. 쑥대머리가 된 탓에 어디서 오래 갇혀있던 사람같이 보였다. 샤이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동대륙에서 전해지는 모든 걸 초월한 도사와 같다고 느꼈다.

“뭐, 명장이 도구를 가리나요. 후후, 이 헝겊 인형 두 개는 한동안은 제 몫으로 써도 될까요?”

“그럼요, 얼마든지 쓰셔도 됩니다!”

샤이의 대답에 실비아는 인벤토리에서 펜을 꺼내 ‘실비아 거’라고 썼다. 명연주를 보여준 덕에 헝겊 인형을 한꺼번에 두 개 쓸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그녀는 뿌듯한 미소를 짓곤 방금 주워 올린 동전 개수를 셌다. 간식값이라기엔 액수가 꽤 컸는데, 금요일에 블루가 집에 놀러 온다고 했으니 이 돈으로 맛있는 걸 대접하면 되겠….

‘헉, 세비스에게 말한다는 걸 깜빡 잊었네! 어쩌지, 블루가 놀러 온다고 하면 좋아할까?’

둘은 현재 겉으론 그날 일이 없었던 것처럼 잘 지내는 중이었다. 하지만 모른 척한다고 해서 있었던 일이 없던 일이 될 순 없는 법.

세비스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만, 실비아는 야밤에 단둘이 한 공간에 있는 걸 피하고 있었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지만, 세비스와 자신의 관계가 단순한 식구 그 이상의 관계로 발전할까 봐 경계한 탓이었다.

‘미리 말하긴 해야겠지. 당장 내일이잖아. 하아, 좀 걱정되는걸.’

어쩔 수 없이 실비아는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집으로 향했다. 원래라면 최대한 세비스와 단둘이 있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 훈련장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퇴근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내일 블루가 온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선 그가 잠들기 전에 갈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도착한 그녀는 문 앞에서 한참을 심호흡한 뒤 안으로 들어섰다. 세비스와 꼭 대화해야 했기에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곤 소심한 목소리를 냈다.

“나 왔어 세비…. 공놀이 중이었구나.”

“아.”

늑대로 변신한 세비스가 바닥에서 공중자전거 자세로 놀다가 그녀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는 예전에 실비아가 사줬던 강아지용 장난감을 입에 물고 있었다.

잠시 일시 정지상태였던 그는 장난감을 뱉은 뒤 인사했다. 목소리가 무척 차분했다.

“일찍 오셨네요. 요새 계속 늦게 퇴근하시더니….”

“으응. 새 장난감 사줄까? 이건 이제 네가 갖고 놀기엔 너무 작아 보이네.”

실비아가 장난감을 들어 올리는 사이 세비스는 늠름한 표정으로 바르게 앉았다. 여느 때처럼 늦게 오실 줄 알고 한창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건만, 이렇게 맞닥트리게 되니 너무 민망했다. 어린 강아지들이나 좋아할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들키다니 늑대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쑥스러워진 세비스는 커다란 발로 제 얼굴을 가리며 답했다.

“그냥 심심해서 잠시 갖고 논 것일 뿐이에요. 저는 이제 성체라서 이런 장난감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 그런 것치곤 완전 흠뻑 빠진 것 같던데….”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벌떡 일어난 세비스가 장난감을 입으로 뺏어갔다. 그는 장난감을 문 채 웅얼거리는 발음으로 변명했다.

“으뇨, 증말 아니에요.”

“뭐, 그렇다니까 할 말은 없네.”

부끄러워하며 제 방으로 토도독 뛰어가던 세비스는 문 옆에 있는 바구니에 장난감을 넣곤 뒤돌아봤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