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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347화 (347/372)

347화

“앗, 네. 조금만 더 하고 갈게요! 던전 공략 훈련을 계속하는 건가요? 그럼 제가 뭘 알려드려야….”

데이 단장이 고개를 젓더니 소탈하게 웃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하루하고 말 건 아니니까요. 오늘 보여주신 것만 해도 기사단에게 충분한 공부가 됐으니, 나머지는 차근차근 알려주시면 됩니다.”

“아앗, 네.”

오늘 보여준 거라곤 망치쇼뿐이었던 것 같지만, 데이 단장의 말대로 급하게 굴면 금방 지쳐버릴 것 같았다. 실비아는 다른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헝겊 인형을 하나 배분받았다. 데이 단장의 말로는 헝겊 인형엔 보존마법이 걸려있어, 일반적인 물리 공격으로는 찢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후우, 애먼 망상은 그만하고 이제 집중할 시간이지.’

황태자와 호호백발이 되어 손주한테 용돈 주는 상상까지 끝마친 실비아는 진지한 얼굴로 헝겊 인형 앞에 섰다. 망치를 꺼낸 그녀의 머릿속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오늘 소득이 많았어. 황태자와 단둘이 만날 거리를 만들었으니까. 정말 퍼펙트한 날이지만, 레벨 업 하는 방법은 따로 없는 걸까.’

그런 방법이 없다면 역시 던전들을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한숨을 쉬며 망치를 고쳐잡는데, 그녀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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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겊 인형을 가격하세요. 보상이 있습니다.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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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동시에 헝겊 인형 위에 비어있는 상태바가 하나 나타났다. 실비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오, 이건 마치 고리짝 옛날 게임에서 봤던 훈련장 같은 걸까? 계속 스킬을 연마하면 레벨이 오르거나 스킬 업이 되는 거지.’

옆을 힐끗 보니 기사들이 헛-하고 기합을 넣으면서 훈련하는 게 보였다. 저러면 더 힘이 불끈 솟아나나? 실비아는 그들을 따라 기합을 넣으며 헝겊 인형을 내리쳤다.

“얍!”

한 번씩 내리칠 때마다 상태바가 미세하게 차올랐다. 한참을 내려쳤을까, 실비아가 헉헉거리며 망치를 내리자 눈앞에 다시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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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30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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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망할. 한참 남았잖아. 한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겠고만.’

자그마치 일만 번이나 가격해야 보상을 얻을 수 있다니. 하루 만에 달성하긴 힘들 듯했다. 아무래도 현재 레벨이 70이나 되는 만큼 시스템이 레벨을 쉽게 올리게 놔두진 않을 것이다. 그러면 밸런스가 안 맞으니까. 더더군다나 단순히 헝겊 인형을 때리는 거니 1만 번의 숫자는 납득이 됐다. 숫자가 한참 남긴 했지만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에 실비아의 몸이 개운해졌다.

실비아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옆에 선 기사들도 훈련을 하나둘 끝마쳤는지 땀을 닦거나 몸을 가볍게 씻기 위해 우물로 향하는 중이었다. 실비아는 묵묵히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나도 몸을 좀 씻어야겠어. 정말 몸만 씻으려고. 정말이야.’

그렇게 몇 걸음 옮겼을까,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진지한 표정의 데이 단장이었다.

“어디 가시나요?”

“예?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오해 마세요! 제가 이상한 짓을 하려는 건 아니고요. 그냥 단순히 우물에서 기사들과 정겹게 몸을 좀 씻으려고… 정말이에요!”

지레 찔린 실비아가 묻지도 않은 소리를 술술 내뱉었다. 말하고 보니 스스로 수상한 사람임을 어필한 꼴이 됐다. 어색하게 미소 지은 그녀가 다시 우물로 향하려 했지만, 데이 단장에게 다시 어깨를 잡혔다.

“여성분 혼자서 혈기 왕성한 남자들과 함께 씻는 건 안 될 말입니다. 여자분들이 씻을 곳은 저쪽입니다. 저기로 가시죠.”

그가 손가락으로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눈 씻고 찾아봐도 훈련 중인 사람 중에 여자는 없길래 방심하고 있었건만, 여성 전용 우물가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실비아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곤 터덜터덜 여성 전용 우물로 향했다.

‘이런 불합리한 경우가! 나도 저들과 같이 씻고 싶다고. 훈련 끝나고 같이 씻는 돈독함이 있어야 동료끼리 친해지는 건데, 답답한 사람 같으니라고.’

실비아는 말도 안 되는 불만을 속으로 꿍얼거리며 우물에서 간단히 땀을 씻었다. 얼굴과 목을 대충 씻고 돌아와 보니 다른 기사들은 다 사라지고 데이 단장과 샤이 부단장만 남아있었다. 그들은 헝겊 인형을 치우는 중이었다. 샤이는 실비아가 실컷 두들긴 헝겊 인형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헝겊 하루 만에 헤진 것 봐. 보존마법이 걸려있어서 나름 튼튼한 건데, 실비아 님의 괴력을 버티지 못하네요.”

“헛, 그래요? 내일부턴 더 살살 두들겨야 하나….”

실비아의 목소리가 개미만 해지자 데이 단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보존마법을 걸어놔서 내일이면 새것같이 멀쩡해질 거예요. 실비아 님이 마법 효과를 초과할 정도로 열심히 하셔서 일시적으로 너덜너덜해진 겁니다. 대단하시네요.”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세상 성실한 사람 취급을 받고 말았다. 데이와 샤이는 술래잡기 때와 달리 존경의 눈길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런, 또 성실쟁이가 되어버렸어.’

실비아의 어깨가 저도 모르게 으쓱거렸다. 함께 헝겊 인형을 치운 셋은 내일 보자는 인사를 하고 각자 갈 길을 갔다. 실비아는 터덜터덜 마차 정류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는데, 훈련에 열중할 땐 몰랐던 근육통이 뒤늦게 그녀의 몸을 덮쳤다.

‘아우, 삭신이 쑤시네. 어쩐지 온갖 난리를 쳤는데도 멀쩡하다 싶더라니. 주목받고 싶은 마음에 너무 무리해 버렸어.’

퇴근 후에 훈련까지 했더니 어느새 밤이었다. 가을이라서 그런지 예전보다 더 빨리 하늘이 어두워졌다. 반짝이는 별을 보며 걷던 실비아는 순간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깨달았다. 숙식하는 사용인들이 별로 없는 엘리셔스 황궁의 특성상 최소 인력 빼곤 다 퇴근한 것이다.

실비아는 소름이 돋는 몸을 감싸며 오들오들 떨었다. 기분 탓인지 누군가 지켜보는 것 같았다.

‘아, 조금 무서운걸. 저번 황궁 개방 축제 때는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면서 감시하는 무사도 있었잖아. 어서 밖으로 나가자. 마차 정류장엔 사람이 좀 있겠지…. 어?’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아까만 해도 뒤에 아무도 없었는데, 어디서 나타난 거지? 실비아는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갑옷을 입은 기사 한 명이 멀리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퇴근하는 사람인가- 라고 안심하기도 잠시, 실비아가 걷고 있는 길은 사용인 전용 퇴근길이었다. 기사가 급해서 다른 길로 왔다고 쳐도,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퇴근할 때 갑옷을 입고 퇴근하는 기사가 어딨어!’

무척 수상한 사람이었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실비아는 저절로 자라처럼 목을 집어넣었다. 혹시나 해코지하려는 이라면 꿀밤을 제대로 때려주겠어.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쥔 채 스킬 장전을 하려고 기회를 엿봤다. 가까이 다가와서 이상한 짓을 하려는 순간 한 방 먹여 줄 생각이었다.

‘아냐. 아무리 그래도 제국의 기사인데, 기사도란 게 있잖아. 수상한 짓을 할 거면 갑옷을 입지 않았겠지. 내 오해일 수도 있으니 한번 시험해볼까….’

결심한 실비아의 걸음이 느려졌다. 기사가 단지 퇴근하거나 다른 쪽으로 갈 생각인 거면 그녀를 스쳐 지나갈 것이고, 아니라면 뭔가 반응이 있을 터였다. 다행히 기사는 실비아를 지나쳐 걸어갔다.

‘아휴, 내 생각이 너무 과했구나. 아무렴, 게임 세계인데 치한이 있으려고. 이 세계에 치한이 있다면 그건 나뿐일 거야.’

게임 세계의 유일무이한 치한인 실비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 순간, 기사가 갑자기 빠르게 돌아오더니 실비아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러곤 구석에 있는 나무 뒤로 그녀를 끌고 갔다.

“뭐, 뭐예요!”

깜짝 놀란 실비아는 <뚝배기 깨기> 스킬을 쓰는 것도 잊고 소리쳤으나 기사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힘 스탯을 발휘해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텼지만, 기사의 괴력이 의외로 엄청났다. 거의 인외 존재 수준의 괴력에 그녀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뭐야! 황궁 내에 강한 사람이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내가 꼼짝 못 할 정도로 괴력을 가진 이라니. 대체 뭐지?!’

정신 차리고 보니 화단 뒤편의 으슥한 공간이었다. 기사는 실비아를 벽에 몰아세운 뒤 제 팔 사이에 가뒀다. 뒤늦게 <뚝배기 깨기> 스킬을 쓰려던 실비아는 기사가 중무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투구 위에 꿀밤을 먹여봤자 작살나는 건 본인의 주먹일 뿐.

“저기, 왜 그러세요? 뭐 하시는 분인지 몰라도 소리칠…!”

“쉿. 실비아, 나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낮은 목소리에 실비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실비아는 그제야 투구 사이로 빛나는 기사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부드러운 빛을 띤 감색 눈이 둥글게 휘어졌다.

투구는 얼굴 가운데를 뚫어놓은 형태였는데, 아까는 너무 놀라서 자세히 살피지 못한 얼굴이 그제야 보였다. 조각 같은 코며, 보기 좋게 올라간 잘생긴 입꼬리가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그리고 금속 플레이트가 감싸지 않은 탄탄한 팔과 곧 터질 것 같은 굵은 허벅지까지.

짧은 시간에 속속들이 살핀 실비아는 반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블루? 네가 어떻게 은색 갑옷을 입고 있…. 아앗!”

“보고 싶었어.”

어느새 바짝 다가온 블루의 탄탄한 허벅지가 그녀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단단한 허벅지가 은밀한 곳에 닿자 실비아의 입에서 묘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오랜만에 본 블루 덕분에 잠시 사그라들었던 음란 마귀 세포들이 활발하게 깨어났다. 거기다가 갑옷을 입고 있어서 그런가? 뭔가 모르는 사람에게 끌려온 것 같은 기분이 묘했는데….

순간 실비아의 눈이 번쩍였다. 기사 갑옷을 입은 블루라니, 이것 참 귀했다.

‘이건, 역할극을 하라는 게임 신의 큰 그림이 아닐까?’

실비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주 고맙게도 퇴근 시간이 지난 황궁은 아주 조용했다. 오는 길에도 돌아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지 않았던가. 거기다가 여기는 화단 뒤 으슥한 공간. 일을 치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앗, 이러지 마세요. 기사님. 저는 일개 하녀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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