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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들의 첫날밤을 수집합니다-345화 (345/372)

345화

현생에서라면 욜로족인 그녀는 황궁 사용인이 된 것만 해도 충분하다고 여겨, 더 이상 아무런 도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게임 세계, 마음먹은 대로 행동한다면 못 이룰 게 없었다. 자신은 이 세계의 유일한 플레이어니까!

그녀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출세하겠다는 마음가짐 덕에 공략을 훨씬 빠르게 할 수 있었다. 시스템이 혹독하게 강요한 게 아닌, 그녀 스스로 새긴 마음가짐이었다.

‘좋아, 해보는 거야.’

기사들은 하나같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일일이 검을 휘둘러 짚 인형을 벴다. 제 앞의 기사가 훈련을 마치자 실비아는 앞으로 나서며 부단장 샤이에게 물었다.

“꼭 저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훈련을 해야 하는 건가요?”

“아뇨. 실비아 님은 망치를 가지고 계셔서 검을 사용하는 저희와 똑같이 훈련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던전 경험자시니까, 원래 하던 방식대로 하시면 됩니다. 방금의 훈련은 평소에 저희가 이런 식으로 훈련한다는 걸 먼저 보여드린 겁니다.”

“아하, 그런가요.”

“네. 실비아 님 방식대로 하시면 됩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샤이의 말과 동시에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선망 어린 눈길로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힐끗 황태자 쪽을 바라보니 그도 나쁘지 않은 표정으로 실비아를 응시하는 중이었다. 말 그대로 나쁘지 않은 표정이란 거지, 미소는 아니었다.

‘비싸다 비싸. 입꼬리 올라가는 꼴을 볼 수가 없네.’

긴장감으로 천천히 심호흡한 실비아는 샤이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짚 인형을 스무 개 더 배치해 주세요.”

“네? 스무 개 더 말씀이십니까?”

눈이 동그래진 샤이가 되묻자 실비아가 망치를 가볍게 한 바퀴 돌렸다. 다행히 보호 효과라도 걸려있는 건지, 손잡이 끝에 달린 술은 살짝 그을렸을 뿐 멀쩡했다.

“아니다. 창고에 있는 거 다 꺼내주세요.”

“아…! 우선 알겠습니다. 거기, 짚 인형 있는 대로 다 가져와.”

기사들이 또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우라엘 황태자도 이번엔 좀 놀랐는지 늘어져 있던 몸을 바로 하곤 실비아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권태로웠던 그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또렷해지는 게 보였다.

‘그래,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봐두라고 우라엘. 이러다가 내 화려한 전투 실력을 보고 반하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완전 좋지. 히히.’

바지 벗고 달려올 우라엘 황태자를 상상하며 실비아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황궁 마법사 중에 독심술 능력을 가진 이가 없어서 다행이지, 만에 하나 그녀의 미친 망상을 누군가 알게 된다면 지하 감옥에 들어갈 것도 없이 바로 단두대행이었다.

샤이의 명령으로 훈련장을 짚 인형이 빽빽하게 채웠다. 기사들은 우라엘 황태자 뒤에 서서 실비아의 훈련을 구경했다.

“후우….”

한차례 숨을 고른 실비아는 망치를 단단히 쥐었다. 이미 망치에겐 미리 말을 해뒀는데, 그녀는 그동안의 전투와는 달리 한꺼번에 짚 인형을 해치울 생각이었다. 움직이는 데다가 한두 번 내리쳐선 죽지 않는 몬스터들과 달리, 짚 인형은 한 번씩만 타격을 가하면 될 테니까.

‘그리고 짚 인형은 잘 타지. <불망치> 사용!’

실비아가 속으로 스킬을 외치자 망치의 머리 부분이 화려한 불꽃으로 휩싸였다. 그 광경을 본 기사들이 헉, 하고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긴 아직 이르지. 실비아는 팔을 한껏 뒤로 젖힌 뒤에 힘을 주어 앞으로 망치를 던졌다.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간 불망치는 짚 인형 군집을 한 바퀴 돌아 화려하게 타격하더니 실비아의 손에 돌아왔다. 다행히 망치는 이제 좀 바깥세상이 익숙해졌는지, 실비아의 배를 가격한다거나 뒤로 날아가 울타리를 박살 낸다거나 하진 않았다.

밀집한 짚 인형들이 활활 불타기 시작하자 기사들이 박수를 치며 실비아를 극찬했다.

“우와, 불마법까지 쓸 수 있을 줄이야. 이런 기술은 어떻게 익히신 건가요? 마나의 파동은 별로 안 느껴졌는데 말이죠.”

“물리 공격과 마법을 함께 쓸 수 있다니. 마법 전사라고 불려도 될 것 같은데요!”

“하하, 과찬이십니다.”

마법 전사라니. 뭔가 애니에서 나올 것 같은 멋진 작명이었다. 쑥스러워진 실비아는 뒷덜미를 문지르며 두 뺨을 붉혔다. 불이 붙은 짚 인형들은 순식간에 으스러지더니 형체를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순식간에 종식된 상황에 모두 혀를 내두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데이 단장과 샤이 부단장이 다가와 실비아가 들고 있는 망치를 구경하며 감탄했다.

“와,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오는 데다가 불 마법까지 걸려있다니, 망치가 엄청난데요? 자세히 보니 보통 인간이 만든 무기는 아닌 것 같은데. 던전에서 얻으신 거라고 했죠?”

“네에. 저번 던전에서 얻은 보물 중 하나죠.”

실비아가 뿌듯해하며 망치를 보여주자 그들은 신기한 장난감을 본 아이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망치를 살폈다. 순간 주면서 흠칫했던 실비아지만, 다행히 ‘가벼움의 효과’는 플레이어 한정이었는지 데이와 샤이는 망치를 들곤 놀라워했다.

“와, 이거 엄청 무거운데요?”

“하하, 이게 좀 무겁긴 해요.”

망치를 돌려준 그들은 실비아의 조그만 몸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 작은 몸으로 장정들도 무거워하는 망치를 가볍게 하늘까지 던져버리다니! 아까 별이 된 망치를 보고도 놀랐는데, 불붙은 망치 보고는 기절할 뻔했습니다. 이 정도는 해야 던전에서 살아 돌아오는군요. 몸집이 작으셔서 실력을 살짝 의심했었는데, 잘못된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게. 손목이 이렇게 가느다란데….”

샤이가 실비아의 한 줌 거리밖에 안 되는 손목을 잡는 순간, 우라엘 황태자가 상석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황태자가 말없이 다가오자 샤이는 실비아의 손목을 놓고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실비아도 그들을 따라 허리를 숙였는데, 어이없게도 황태자 근처에 서 있던 흑기사들이 또 실비아의 팔짱을 꼈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 함께한 기사들과 달리 망치를 들고 있는 실비아를 위험인물로 간주하는 것 같았다.

처음보다 더 경계하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양옆을 제압한 기사들의 팔 힘이 아까보다 거세졌다. 보기보다 엄청난 전투 능력에 인물평가를 재고한 거로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가녀려 보이는 숙녀를 예비 범죄자 취급하다니. 정말 망할 놈의 철벽 수비였다.

‘흑기사들이 사람 보는 눈이 너무 정확해서 탈이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선 엄한 짓을 할 생각이 없단 말이야! 억울해!’

실비아가 불만스럽게 두 뺨을 부풀리고 있으려니 가까이 다가온 황태자가 입을 열었다.

“고개 들어. 아무래도 내가 엄청난 능력자를 포리쉐한테 붙여준 것 같군.”

“과찬이십니다, 저하.”

흑기사 두 명에게 결박당한 실비아가 비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경찰서로 연행당하는 범죄자 같은 자세에 저도 모르게 비굴한 태도가 되었다.

그런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황태자가 양옆의 기사들에게 눈짓했다. 그가 명령하지 않아도 척하면 척인 흑기사들이 잡고 있던 팔을 놔주었다. 갑자기 자유의 몸이 된 실비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황태자를 응시했다.

‘웬일이지? 나를 좀 신임하게 된 걸까.’

실비아는 기대감을 가득 안고 두 손을 고이 모았다. 초록색 눈이 곧 레이저가 쏴질 것처럼 반짝거렸다. 부담스러운 눈빛을 견디다 못한 황태자가 눈을 가늘게 찌푸렸다.

“왜 그렇게 보는 거지? 너 정도는 내 실력으로도 제압할 수 있으니 결박하지 말라고 한 것일 뿐이야.”

“네? 제 눈이 왜…? 아, 아닙니다.”

황태자 앞에서 말대꾸하는 건 명을 재촉하는 일일 뿐. 실비아는 불만이 치밀었으나 억지로 입술을 닫았다. 잠시 그러고 있으려니 황태자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장갑도 끼지 않은 섬세하고 긴 손가락을 본 실비아의 눈이 더욱 초롱초롱해졌다.

‘뭐, 뭐지? 설마 악수? 세상에, 나 드디어 우라엘 황태자의 생몸을 만져보는 거야?’

몸을 만진다기 다는 그냥 악수를 하는 것일 뿐이었지만, 우라엘 황태자의 털끝 하나 만지지 못한 실비아에겐 맨손을 마주 잡는 것 하나가 무척 큰 떨림으로 다가왔다.

실비아가 헤실거리며 기다란 손끝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러자 황태자의 무심했던 눈이 일순 커다래지더니 손을 확 뒤로 뺐다.

‘이, 이게 아닌가?’

우라엘 황태자의 격한 반응에 흑기사들이 그의 주위를 우르르 에워쌌다. 황태자는 손을 휘저어 그들을 물러나게 한 뒤, 부담스럽게 마주 봐오는 실비아의 눈을 피했다.

“방금 뭐…. 난 네 무기를 보고 싶은 거야.”

“어! 죄송합니다. 아유, 그런 줄도 모르고….”

당황했는지 우라엘 황태자의 귀 끝이 살짝 빨개져 있었다. 눈썹을 살짝 찌푸린 그는 실비아가 잡은 손을 다른 손으로 가만히 잡고 있더니, 곧 다시 손을 내밀었다.

‘쩝, 왜 저래. 누가 보면 악 소리 나게 세게 잡은 줄 알겠어. 민망한걸.’

그래, 어찌 보면 함부로 손을 잡은 셈인데 데드 엔딩이 안 뜬 게 어디야. 실비아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망치를 건넸다. 순간 고이 자란 우라엘 황태자가 ‘가벼움의 효과’ 없이 망치를 들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그녀의 우려와 달리 우라엘 황태자는 아무렇지 않게 망치를 손에 쥐었고, 그것도 모자라 한번 휘둘렀다.

‘보기보다 힘이 센가 봐. 우락부락한 기사들도 낑낑대며 드는 망치인데. 남주는 역시 남주라 이건가.’

다른 이들은 우라엘 황태자의 의외의 괴력에 익숙한지 놀라지도 않았다. 실비아만 혀가 보이도록 입을 벌리며 그 모습을 구경할 뿐. 우라엘 황태자는 망치를 공중에 던졌다가 다시 받아든 뒤 무심한 눈빛으로 실비아를 응시했다. 그러다가 파리가 들어가도록 입을 벌린 실비아를 보고 움찔했다.

‘아, 맞다. 쟤, 내가 입 벌리는 거 별로 안 좋아하지.’

실비아가 황급히 입을 닫자 황태자가 풍성한 은색 속눈썹을 내리깔더니 망치를 쓰다듬었다.

“이런 무거운 망치를 아무렇지 않게 들다니. 그대에 대한 내 평가를 더 상향해야 할 것 같군.”

“저하야말로 대단하십니다. 이 망치가 무척 무거운 편인데, 이렇게 가볍게 드는 분은 처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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