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화
허벅지 안쪽을 잘못 두드리는 바람에 사타구니에 맞았을 때는 순간 기절할 뻔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는 소리가 몸속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실비아는 이를 악물며 견뎌냈다. 순간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몸 한두 군데 잘못되는 것 정도는 이겨낼 수 있었다. 말하자면 허세가 고통을 이긴 거라고나 할까.
실비아의 망치쇼에 기사들이 여기저기서 경악했다.
“저 여자 힘이 대단한걸. 저 큰 망치를 수수깡처럼 드네.”
“안 그래도 낮에 술래잡기하다가 당했는데, 내장 파열되는 줄 알았대도.”
“그 정도였나?”
“그 정도였어! 각혈도 한 것 같대도!”
망치를 가볍게 드는 실비아의 모습에 기사들의 기억은 점점 왜곡되기 시작했다. 허풍쟁이 기사 한 명의 말이 결정적이었다. 단지 스킬을 써 빠르게 잡았을 뿐인데, 기억 왜곡으로 괴력을 써서 내장 파열을 일으키는 어마어마한 여자가 되어버렸다.
‘후후, 이것 참, 이렇게 또 유명해지는 건가.’
실비아는 입꼬리를 흐뭇하게 올린 채 입바람으로 앞머리를 넘겼다.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기사들에게 결정타를 먹이고 싶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망치에게 조그맣게 속삭였다.
“야, 내가 가볍게 던지면 위로 날아올랐다가 땅에 박혀. 최대한 화려하게. 알겠지?”
“우웅….”
“안 하면…. 끽.”
작게 목을 긋는 시늉을 한 실비아가 훈련장 뒤에 있는 쓰레기 소각장을 슬쩍 가리켰다. 그 살벌한 모습에 망치가 무서운 듯 가늘게 진동했다.
“잠깐, 물러나세요.”
있어 보이도록 목소리를 낮게 깐 실비아가 손바닥을 펼쳐 보이자 기사들이 더 뒤로 물러났다. 혹시나 망치가 말썽을 부려서 기사 중 한 명의 투구 위로 내려꽂히면 대형 참사가 벌어지는 셈이니 조심해야 했다.
이미 커다란 망치를 쌍절곤처럼 휘두른 덕에 장내는 후끈 달아올랐다. 이 기세를 몰아 황궁 안의 전설이 되어야겠어. 입술을 굳게 다문 그녀는 망치 손잡이에 달린 술을 잡고 붕붕- 소리가 나도록 빠르게 돌렸다. 빠르게 회전하는 망치는 햇빛에 반사돼 은색 쥐불놀이처럼 화려하게 빛났다.
부-웅!
실비아가 하늘 높이 망치를 던지자 모두의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그 와중에도 우라엘 황태자는 실비아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실비아는 무척 차가워 보이는 그 시선에 민망해졌다.
‘저런 시니컬한 관객이 있나. 남들처럼 호응하면 얼마나 좋아. 배우들이 제일 싫어할 유형….’
순간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던 실비아는 시선을 위로 돌렸다. 망치가 저 멀리 하늘의 별이 되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와, 정말 높이 날아간다!”
“저게 말이 되나? 그냥 휙 던졌는데 저기까지 올라간다고? 저 여자 힘이 장난 아니네!”
‘어어, 설마 저대로 우주 밖으로 날아가는 건 아니겠지. 예상보다 너무 높이 올라간 것 같은데?!’
다른 기사들이 감탄하는 와중에 실비아는 이중턱을 만들며 심하게 놀랐다. 저대로 망치가 제국 밖으로 도망치는 건 아닌가 싶어서였다. 쓰레기 소각장에 버린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자유를 찾아 떠난 건 아닌가 싶을 즈음, 푸른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이 됐던 망치가 다시 무서운 속도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야…. 저거 망치에 불붙은 거야?”
“무슨 유성처럼 내려오냐. 마법 같다야.”
‘아니, 망치 저거 다시 쓸 수 있는 거 맞아?!’
너무 높이 올라갔던 걸까. 망치는 다시 내려올 땐 꽁지에 불이 붙은 상태였다. 유성처럼 낙하하는 망치의 모습에 실비아가 속으로 안절부절못했다. 저러다가 소각장에 갈 필요도 없이 그대로 쓸모없는 쇳덩이가 될까 봐서였다. 하지만, 가오는 버릴 수 없었기에 죽을힘을 다해 겉으로는 비장한 표정을 유지했다.
불붙은 망치가 점점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멀찍이 가장자리로 물러났고, 실비아만 덜렁 훈련장 가운데에 남겨졌다. 망치가 머리에 직격으로 꽂힐까 싶어 다리가 오들오들 떨렸지만, 그녀는 이 악물고 참아냈다.
‘살벌하게 추락하는 모습을 보니 좀 겁나는걸. 하지만 내가 던져놓고 내가 도망갈 순 없지…. 설마 저게 내 머리통을 박살 낼 생각은 아니겠지.’
쉬이익-! 쾅!
다행히 망치는 아직 실비아를 도륙 낼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망치가 훈련장 한가운데에 커다란 굉음을 내며 꽂혔고, 자욱한 모래바람이 사위를 뒤덮었다. 별로 보일 정도로 저 높이 올라갔던 망치가 빠른 속도로 땅에 메다 꽂히자 그 충격으로 훈련장 땅바닥이 지진 난 것처럼 진동했다.
“어우, 콜록, 콜록….”
기사들은 일반인들과는 달랐기에 망치가 꽂힌 충격에도 우왕좌왕한다거나 비명을 지르진 않았다. 몸을 한껏 낮춘 채 대기하던 그들은 자욱한 모래바람이 가라앉은 뒤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실비아가 망치 앞에 묵묵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는 휘파람과 함께 커다란 함성을 질렀다.
“휘유, 대단하십니다!”
“이야, 엄청나다. 이건 어디서 본 적 없는 엄청난 망치야! 이런 망치를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완전 신급 무기인데요.”
“하하, 하…. 던전에서….”
실비아는 먼지 더미를 덮어쓴 채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망치는 정확히 제 발에서 두 걸음 떨어진 곳에 내리꽂혔다. 세이브 시스템이 있으니까, 또 망치를 믿었기에 가까스로 도망치지 않고 참아낼 수 있었다. 일반인이었다면 거품을 물고 기절했을지도 모르는 공포였다.
실비아는 부들부들 떠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억지로 미소를 유지했다. 벼락이 지척에 내리꽂힌 것과 비슷한 공포감이 그녀의 전신을 휘감았다.
‘간지를 위해선 약간의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쯤은 참을 수 있어.’
실비아의 겉모습은 무척 평온해 보였기에 실상을 모르는 기사들의 눈에는 모든 걸 통달한 달인처럼 보였다. 멋짐을 위해 심신의 안정을 포기한 걸 높이 산 걸까. 반가운 메시지가 실비아의 눈앞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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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은 실비아의 엄청난 망치쇼에 혼이 쏙 빠졌다. 그와 함께 거리의 춤 공연과 술래잡기 등등으로 실비아는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세간의 평가가 <비범한 제국민1>에서 <재주 많은 황궁 사용인1>로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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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간만에 세간의 평가가 바뀌었네. 어디 상세설명을 볼까나.’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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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 많은 황궁 사용인1
- <재주 많은 황궁 사용인1>의 효과로 여기저기 부탁을 많이 받게 됩니다.
- <재주 많은 황궁 사용인1>의 효과로 황궁 길바닥에서 춤을 춰도 랜덤으로 간식값을 획득합니다. (*장소를 가려가면서 할 것. 아무 곳에서나 출 시 희소한 확률로 <귀족의 비아냥거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귀족의 비아냥거림>을 얻을 시 스트레스 100 획득)
- <재주 많은 황궁 사용인1>의 효과로 물건값을 10프로 할인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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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 아니라. 이게 좋은 거야? 마지막 하나 말고는 다 별로인 효과들뿐인데.’
부탁을 많이 받게 된다니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거기다가 황궁 안에서 간식값 좀 얻자고 춤을 출 필요가 있을까. 심지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출 시 <귀족의 비아냥거림>을 얻을 수 있다니. 최악이었다. 물건값 할인 말곤 그다지 좋을 것 없는 세간의 평가에 실비아가 떨떠름해 하고 있는데, 우라엘 황태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봤어. 근데, 훈련은 언제 보여주는 거지?”
“죄송합니다, 저하. 이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실비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훈련을 보여주라는데 망치쇼나 보여주고 앉았으니, 황태자 입장에선 황당할 법했다.
‘그래도 그렇지, 좀 따뜻하게 말해 주면 어디 덧나나? 정말 정을 붙이려야 붙이기가 힘든 애야.’
실비아는 입술을 내밀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았다. 어쩜 저렇게 차가울까. 잘생긴 것만 아니면, 아니 남주를 실비아가 선택할 수만 있었다면 우라엘은 후보에서 제외시켜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상석에 앉은 황태자는 팔짱을 낀 채 실비아와 기사들이 훈련을 준비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본인은 그냥 본다고 보는 건지 모르겠으나 선입견이 잔뜩 들어간 실비아의 눈엔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 라고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샤이가 아까와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짚 인형을 지그재그로 배치했다.
“하압!”
기합을 넣은 기사 한 명이 인형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그가 지나간 자리의 짚 인형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반쪽으로 깔끔하게 갈라졌다. 실비아는 저도 모르게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와, 엄청 빠르네? 술래잡기할 때 순순히 잡히길래 조금 얕봤는데. 낮에는 정식 대련이 아니니 봐준 걸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저 실력 그대로 술래잡기를 진지하게 했다면 제가 기사들을 쉽게 잡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 다음 기사도, 그 다음다음 기사도 빠른 속도로 짚 인형들을 베어냈는데, 하나같이 감탄이 절로 나오는 완벽한 검술을 자랑했다. 은색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이 정도 실력이면 우라엘 황태자를 호위하는 흑기사단들의 실력은 볼 것도 없겠지.
황궁 기사단들의 완벽한 검술에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던 실비아는 제 앞에 있는 기사가 짚 인형을 베는 모습을 보며 눈을 도르륵 굴렸다.
‘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아, 그 방법이 있지.’
이대로 다른 기사들처럼 짚 인형을 베면 별다른 인상을 못 심어줄 터였다. 망치쇼에서 한번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니, 이번에 근사하게 마무리하면 모두에게 제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겠지.
그녀가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실비아는 단순히 황궁 사용인이 아닌 더 높은 자리까지 단기간에 올라가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변태 같은 생각만 하는 그녀지만, 게임의 공략 때문이 아닌 부가적인 목표가 있었다. 바로 게임의 끝이 오기 전에 최대한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황궁에 들어오기 전에 다짐했었지. 게임이 끝나기 전에 최대한 출세하겠다고 말이야.’